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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 (행 2: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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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도행전 2:34-39)

  좋은 부모에게서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서 평생 먹을 걱정 없이 장수하면서 잘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 믿는 믿음까지 있어서 예수님까지 잘 믿는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평생 평안하게 건강하게 잘살면서 장수하다가 죽은 사람은 더 큰복을 받은 사람임을 믿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잘살았고 천국에서도 영생 복락을 누리는 사람이니 그야말로 복의 복을 받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만에 한창 젊었다고 할 나이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옷을 벗기우시고 채찍에 피가 흐르도록 맞으시고 저주스럽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예수님 이름으로 된 재산을 소유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결혼도 하시지 않았고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해보신 적이 없고 어떻게 보면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십자가에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기원전 700여 년 전에 장차 오실 예수님을 이사야 53장에서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예수님이 얼마나 초라한 모습으로 얼마나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사셨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 53:2-9) 이사야 선지자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하나하나 자세히 눈으로 본 사람처럼 구체적으로 예언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저주받은 우리들을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고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우리의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은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모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의 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가장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행세를 하지만 실상은 타락한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주모자들입니다.
  이들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갈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이들을 가장 무섭게 책망하시는 것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나열을 하면서 책망하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에 주모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자가 타락한 성직자들입니다. 돈과 명예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입니다. 죄를 범하면서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2. 타락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선동에 넘어간 어리석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에 함께 하였습니다.
  이들 중에 구경 삼아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군중심리에 이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목이 터져라고 외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에 동참한 어리석은 죄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3. 헤롯왕과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권세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인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는 악독한 짓을 한 사람들입니다.

4. 사형집행을 담당한 로마의 병정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명령에 따라서 그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입니다.

5.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가장 큰 죄인을 가룟 유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붙잡아 넘긴 행동대원이었습니다. 은 30냥을 받고 돈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 스승을 잡아서 넘긴 배신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3년 동안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을 존경할 만한 스승으로만 알았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는 믿지를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 속에는 사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 13:26-27)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그는 마귀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멸망의 자식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을 갖지 못한 불신자였습니다. 또한 도둑놈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는 데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이 세상에서 보면 결정적인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악한 날에 가장 적당하게 시험받기 위해서 준비된 사람으로 평소부터 그런 못된 짓을 하고 결국은 나쁜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차라리 나지 아니했던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전형적인 불택자였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서 자살할 지경이었지만 절대로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이렇게 외칠 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서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으니 어찌할꼬 가슴을 치면서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베드로는 이스라엘 온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그 뜻을 똑바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과거에 범한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범한 죄 또 미래에 범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 모든 죄까지 모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죄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사람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야 하고 죽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이 모든 죄값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는 행위요 예수님의 발에 못을 박는 행위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했다면 그 죄값으로 예수님이 못박히셨으니 오늘도 죄를 범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찬송가 147장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옛사람이 남아서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만 잠시뿐이지 하나님 뜻대로 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잠시뿐이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뿐이지 우리는 거룩하게 살지 못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15-25)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해결책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대로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얻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밖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 법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성령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죄 많은 세상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음란한 세상이라도 우리는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독한 세상이라도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 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성령은 강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누구나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음란해지고 더러워지고 너무 악의 세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밤 저와 여러분은 떡과 잔을 나눌 때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의 세례를 부어 주시옵소서. 떡과 잔을 받을 때 성령의 불을 내려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머리 속에 넣고 기도하면서 떡을 받으시고, 기도하면서 잔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밤 비바람 치는데도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면류관의 주인공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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