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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벨의 믿음 (히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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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요셉 목사

[1] 서 론

목사가 헌금에 대해 설교하고 있을 때 교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는 설문을 미국에서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1위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도대체 전능하시고 부요하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왜 부요하게 살지도 못하는 내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배와 헌물의 그 의미를 잘 몰라서 갖게되는 생각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부족을 돕는 행위가 결코 아닙니다. 헌금은 믿음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요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적 행위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벨의 열납된 믿음을 통하여 예배와 헌물의 바른 신앙자세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아벨의 열납된 믿음

1.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양의 첫 새끼로 속죄 제사를 드림 (The Blood).

창세기 4장외에 가인과 아벨에 대한 말씀이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히브리서 11:4에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저는 "아벨이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 즉 가인과 아벨의 제사할 때의 믿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사실 창세기에는 아벨에 대해서 그가 믿음이 좋았다는 설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믿음은 좋았고 가인의 믿음은 좋지 않았다는 것을(제사드릴 때까지는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미리 아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뭔가 가인이 제사를 드릴 때 잘못이 있었고, 사람의 내면의 생각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악을 보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당시에 가인과 아벨이 어떤 의미의 제사를 드렸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제사는 감사와 헌신 그리고 속죄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경사상 최초의 헌물을 드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아벨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믿음은 드림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물론 아벨이 헌물을 드릴 때 가인도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군이었기에 곡식의 소산물로 드렸고 아벨은 목자이었기에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창세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의 제물에 피가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창3:21의 짐승을 잡아 가죽 옷을 입혀 주신 사건 후로 아담은 하나님께 어린 양으로 속죄 제사를 드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 가운데는 소제와 같은 농산물도 있지만, 속죄 제사는 이때 이미 제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죄를 속함받는 속죄제사는 반드시 속죄양의 피를 들고 나와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은 창3:21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그 부모인 아담이 드리는 속죄제사를 본받아 하나님이 시킨식 방법대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벨의 믿음의 표현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제멋대로 드린 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제사가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헌신의 의미와 자신을 대신해서 동물 등을 죽이며 죄를 용서 비는 것이라면, 제사가 받아드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분내고 안색이 변하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가인은 제사드릴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고, 죽을 죄인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그는 뭔가 하나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내가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열납하고 어떤 복을 주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어떤 계약조건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제사가 거부되었을 때 화를 내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자신이 죽을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제사가 거부될 정도의 죄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사가 거부되자 분통해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인의 제사는 그가 제사를 드릴 때 이미 그 제사에(제사 드리는 사람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고 그렇기에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셨습니다.

반대로 아벨은 올바른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쳐 주신 방법을 따라 제사를 드렸기에 제사가 열납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행위가(제사가) 가인과 같이 교만한 자세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바쁜 시간을 내어서 예배드려주고, 헌금을 드려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연히 복을 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돌아 보십시오.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의 기도를 할 때 회개했기에 당연히 죄가 용서되어야 한다는(이 죄 때문에 제가 죽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생명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전혀 없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가 살아있고 내 욕심과 내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가인과 같은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십시오.
아벨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나님이 시키신 방법대로 속죄양의 피를 드렸기에 그의 제사가 열납된 것입니다.


2. 믿음은 첫째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The First).

창4:4에 보면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분명히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경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했을뿐(창4:3), 땅의 소산물의 첫 열매를 드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여기 아벨과 가인의 헌신의 질적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의 대표성을 나타내는 것이 첫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아니겠습니까?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여호와께 드렸다는 것은 여호와의 존재가 아벨에게서 우선순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자기 인생의 첫째이신 하나님께 첫째 것을 드리고 싶어 한 것입니다.

이것은 후일 잠언3:9과 같은 말씀에서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는 명령으로 기록됩니다. 신약에서 주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첫째로)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우선순위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이런 우선 순위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의지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땅히 그것이 옳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유명한 자동차 기업의 프런티어인 헨리 포드의 일화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유머도 있었고 믿음도 있는 사람이어서 여러가지 흥미있는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번은 아일랜드 더블린을 방문했다가 한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그의 방문후에 고아원 강당을 짓기 위한 기금후원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치있는 일이라고 여겨 그는 2,000파운드를 후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는 잘못 기사화되어 포드회장이 20,000파운드를 약속했다고 머리 기사로 뉴스가 나갔습니다.

고아원측에서 이것을 포드에게 사과하면서 정정광고를 요청하겠다고 했더니 포드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힐수 없지요. 다 주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18,000파운드를 더 내지요. 그대신 강당이 완공되면 강당입구에 이런 글이나 써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헌금을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헌금은 우리에게 우리의 존재의 첫째 원인(first cause)이 되어주신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선을 드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우선순위로 삼은 사람들만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라고 할수 있습니다.

3. 믿음은 좋은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The Best).

아벨은 첫째 것을 드렸을뿐 아니라, 기름을 드렸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름은 구약시대에 가장 좋은 부분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제사할 때 기름부분은 반드시 태워서 주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기름은 주님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영양 과잉섭취의 시대에서는 이해가 잘 안갈지 모르지만 지구촌의 가난한 지역에서 아직도 지방섭취를 위해 기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기름은 좋은것의 상징이고, 아벨은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리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좋은 것을 드리고 싶어한 가능한 추측의 하나는 그가 이미 주님으로부터 좋은 것들을 받고 살고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좋은 것을 드린 이유는 이미 좋은 것들을 내려 주시는 좋으신 주님께 대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1:17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 어찌 좋지 않은 것을 드릴수 있단 말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 좋은 것들로 내내 우리네 삶의 마당에 은혜를 내리신 하나님께 우리의 좋은 것으로 돌려 드리며 항상 범사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한 사람들의 감동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현대교인들이 이런 감동을 상실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영감(감동)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주께 감사드리는 영감있고 감동있는 예배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4. 믿음은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The Most).

우리가 헌금정신을 묵상할 때마다 늘 강조하는 교훈의 하나는 헌금은 결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금은 존재의 문제요 철학의 문제입니다. 헌금을 통해 우리는 돈이 아닌 존재를 드리고 우리의 정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마게도니아 교인들의 헌금정신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린도 후서8:5)

전해오는 유명한 일화가운데,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톤의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서 선교집회가 있어서 선교헌금시간이 있었는데 주머니를 뒤지다가 바칠 헌금이 없었던 그가 헌금 연보대가 강단으로 나아가자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면서 "저는 저 아프리카를 위해 저 자신을 바치고자 합니다." 고 소리치며 서원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몸을 선교의 온전한 제물로 드리고서는 아프리카에서 큰 선교 업적을 남겼습니다.

본문에 보면 아벨의 예물에 대하여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예물에 담긴 아벨의 헌신을 하나님이 친히 인정 하셨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4장 4절 기사에 보면 아벨이 제물을 드린후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제물을 받으셨다고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아벨이라는 인간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제물보다 더 중요한 아벨의 헌신을 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헌금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예배학자는 헌금행위를 가르쳐 '생명을 바꾸는 사건'(exchanging life)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주님께 우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헌금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할 때 목숨을 바친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일지 모르나 구체적인 헌금으로 헌신하는 것이 더 어려울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고백과 헌신이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결 론

다시한번 이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선교사 C.T.Studd의 고백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드려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우리의 어떤 희생도 결코 지나친 것일수는 없다"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나아가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 The Blood, The First, The Best, The Most "를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의 예배와 헌물은 아벨처럼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모든 생활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산 제사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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