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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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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미국의 어떤 사업가가 마더 테레사 수녀가 살아 있을 때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분이고 노벨상을 탄 분이니
아마도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보았더니
캘커타의 빈민굴에서 고아 300명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사업가가 실망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수녀님, 기업가들은 하루에도 수만 명씩 고아를 먹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겨우 300명을 먹입니다.
하나님은 둘을 어떻게 보실까요? ]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 하나님은 나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하라고 불렀습니다 ]
오늘도 하나님은 충성된 일군을 찾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성공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충성된 일군으로 불렀다는 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행4장 5장에서 산헤드린 당국의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수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면 반드시 따르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초대교회가
성장 뒤에 따라오는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으며
예루살렘교회의 이러한 내적 움직임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말씀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가 무엇이며 문제가 왜 생겼습니까?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열 두 사도들이 목회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1절에 보면
[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
초대교회는 아직 외적으로 산헤드린 공회의 핍박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외적인 문제보다 교회 내 내적인 문제가 생겨
교회가 분열할 위기에 처해진 것입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 하면 <2>
[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 ] 고 말합니다.
행2:41절에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강림 사건으로 인해 하루에 3천명이 주 앞에 돌아왔습니다.
또4:4절에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으로 인해 남자만 5천명이 돌아왔습니다. 5:14절에 [ 믿고 주께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라] 라고 말합니다.
6:1절에 [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 ] 고 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를 약 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만약 초대교회에 1만여 명의 성도가 모였다면
예루살렘 전 주민의 5분의 1이 교회로 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부흥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로 그 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니 그 속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하나님께 위선과 거짓으로 헌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 속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 하면
1절에서 구제 문제로 교회가 큰 난관에 봉착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교회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려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서로 나누었지만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매일의 구제에 빠지는 사람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충만한 사도들이 목회를 해도 실수가 생겼습니다(심방의 예)
긍휼 사역을 하다보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생기게 마련이므로
원망과 불평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볼 때 초대교회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구제의 문제였지만 그 내부에는 교회의 분열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도 구제문제로 히브리파와 헬라파로 나뉘어서
교회가 분열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예루살렘 밖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헬라 문화권 속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이 예수 믿게 되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그곳에 살면서
예수를 믿게된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니 헬라파 유대인은 굴러온 돌이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밖힌 돌입니다.
그런데 굴러온 돌이 밖힌 돌을 뺄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외지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은 본토박이 히브리파 유대인들로
소외감 및 피해의식을 갖게 된 모양입니다.
그 이유는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이
왜 우리 헬라파 과부들만 구제에서 빠지게 하느냐? 는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까? <3>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문제가 커지면 본질이 퇴색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수가 많아지니 아무래도 수 관리를 하다 보니
사도들에게 기도가 약해지고 말씀의 은혜가 덜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교인들도 기도가 약해지고 말씀에 은혜를 못 받으니
자연적으로 교인들이 은혜가 떨어지니
구제에 자기 사람들이 빠졌다고 불평하게 되고
교회가 히브리파, 헬라파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가만히 보면
교회가 기도가 약해지고 교인들이 말씀에 은혜를 못 받으면
사소한 것 가지고도 섭섭이가 되는 것 있지요.
혹 교회생활 가운데 섭섭한 마음이 들어오거든
내가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해서 그렇구나 하고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을 눈치챈 사도들은
현명한 판단을 해서 대책을 세웁니다.
먼저 사도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드리는가 하면?

우선 사도들은 이 문제를 작은 문제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했습니다.
열두 사도는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아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들은 겸손하게 문제를 인정합니다. 열두 사도는 2절에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 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먼저 지도자인 자신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이것은 헬라파 사람들이나 히브리파 사람들의 잘못 이전에
우리의 잘못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사도들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건드려 놓으면
오히려 더 일을 크게 벌이고 망쳐놓는 경우 많습니다.
그들은 이 일이 단지 구제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교인간의 갈등과 교회 안에 분열이 일어나는 조짐이 보이는 것은
단지 구제를 잘 하고 못하는 행정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하고 공궤를 일삼는 일이 마땅치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들은 그 문제를 파악하고 나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4>

3절입니다.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
해결방법의 첫 번째는 사역을 분담하고 위임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사도들이 하지만
교회 사역은 모든 제자들에게 나누어져야 함을 알게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하나님처럼 받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책임감으로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세도 지치고 백성들 속에는 자꾸 소외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조언으로
오십부장, 백부장 제도를 세워 백성들을 돕게 합니다.
마치 교회에서 장로, 집사, 순장을 세워 성도들을 돕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복음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복음이 능력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역자들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평신도들을 사역자들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만 해왔던 교회사역을 제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일군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일곱 집사로 알고 있는데
성경에는 이들이 집사라는 말이 없어요. 우리성경은 행21:8절 바울이
[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
거기에도 원문에는 집사라는 말이 없습니다. 집사 아니었겠나 것이지요.
평신도 사역자로 세운 것입니다.
어쨌든 이들이 장로이든 집사이든 원리와 기준을 제시하고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교회 안에 일군을 세울 때 그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날 1천만이 넘는 기독교 인구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점점 타락하는 것은 교회가 제 역할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5>
교회가 사람을 잘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직분을 남발했기 때문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목사로 세우고, 장로로 세우고,
직분자로 세웠기 때문에 교회가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행6장에서 사역자를 세우는 이 원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의 지침과 원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역자를 세우는데 있어서 세상적인 기준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가.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지위, 명예가 얼마나 높은가를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받는 사람 ] 외의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세상의 지도자가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영성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기관입니다.
세상에서 탁월한 리더십과 전문적인 리더십,
세상에서 성공한 리더십도 교회에서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지도자가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성령충만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진 전문성이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여전히 교회에서도 그 방법, 그 경험으로 교회를 운영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경험과 지혜가 충만한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충만한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충만이 뭡니까? 하나님의 주권적인 질서확립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인 사람이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하면 담대해집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일군은 담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함과 같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지혜로움’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도 조직과 사역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도 있고 열정도 있고 마음도 순수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입니다. 약3:15-16절에
[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세상의 지혜는 정욕적이며, 마귀적이라 <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머리를 잘 써서 요령 껏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꾼은 이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가 되면 큰일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17절에 나타난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입니다.

청교도 신앙에 영향을 받은 <나다니엘 호오돈>이
「주홍글씨」라는 작품에서는 청교도의 엄격함을 비판하였지만 「큰바위 얼굴」이라는 작품에서는
지혜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묘사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참으로 지혜가 있고 인격과 품위가 있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정치가나, 힘있는 군인이 큰바위 얼굴이 아니라 인격과 지식과 삶이 잘 조화된 사람입니다.
결국 그 책에서는 그 동네에서 태어나서 그 동네에서 자라며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일평생을 살은
주인공 어네스트가 큰바위 얼굴이 됩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인격과 지식이 잘 조화된 사람입니다.

마지막 기준은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 칭찬받는 사람 ] 입니다.
영성과 전문성뿐만 아니라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스스로 드러나지 아니하지만
빛은 드러나듯이 주위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 지혜충만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들이 교회의 일군이 될 때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헌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사도들이 일곱 명의 사역자들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 [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니 ]합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예루살렘교회가 빠르고 힘있게 성장하자
사탄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교회성장을 해치려는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사도행전 3:1-6:7까지의 내용에 대하여
사탄이 교회에 대하여 공격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가 하면 <7>
첫째는 사도들을 위협하거나 잡아가두는 등
교회가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게 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둘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교인들이 탐욕과 거짓에 빠지게 함으로써 내부로부터 병들게 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성령충만한 교회에는
사탄의 계략이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세 번재는 이 두 가지 시도가 다 실패하자 교회성장에 가장 치명적인 일
즉 사도들로 하여금 기도하지 않게 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력하지 못하게 하기를 도모한 것이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워서 그 우선순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우선순위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일은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역은 평신도 일군을 세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기도와 말씀은 교역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되야 합니다. 현장사역자, 주차봉사자, 긍휼 사역자라 할지라도
말씀묵상과 기도는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야 합니다.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강조하는 말씀 중 하나가
일평생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하라고 합니다.
식당봉사를 하든, 미화봉사를 하든 성도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말씀을 공부하고 나누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해 사회 곳곳에서 개혁을 부르짖습니다.
교회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질을 잃은 개혁은 방황과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새 영을 받고 새로운 환상을 받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목회신념 가운데 한 가지가 안 바쁜 목회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목회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 내일교회는 기도와 말씀에 전무 하는 목사가 목회하고
성령충만한 일군들이 사역하는 우리 내일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 명의 사역자가 <8>
우리의 사역에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본문 5-6절에 보면
[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
[ 사도들 앞에 세웠으며,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 합니다.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도들의 제안도 중요하지만
사도들뿐 아니라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이 보인 태도 또한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사도들이
[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그러면 구제하는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무하리라 ] 하자
본문 5절에 보면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했다" 했습니다.
사도들의 이 제안에 일체 반대하거나 따져 묻는 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에 대한 신뢰와 절대적인 협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인들 사이에서 잠시 일어났던 원망이 사라지고 기쁨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뜻을 잘 이해하고
사도들이 요청한 그대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일곱 사역자를 세우는 일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의 영적 성숙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는 사실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교인들이 택하여 세운 일곱 사람은 모두 헬라파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사실도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구제에 빠지곤 하자
그 일을 할 사람 일곱을
모두 헬라파 사람들로 택하여 세우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헬라파와 히브리파를 안배해야 한다거나 동수로 해야 한다거나 하는 논쟁이나 힘겨루기 없이 단번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의 성숙함과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곱 사람이 다 헬라파이지만
그 중에 제일 끝에 언급된 니골라는 본래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이었습니다.
즉 해외동포출신이 아니라 완전히 외국인인데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니골라를 교회 일군으로 세웠다는 것은 <9>
유대인의 혈통이 아닌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가장 소수이고 가장 소홀히 여겨질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겠는가 합니다.
혈통과 출신지역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동등하게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려는 의지를 엿보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 온 교인들이 합력하여 이 시험을 이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또 한번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7절에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부흥의 핵심은 말씀이 왕성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일체의 사역을 정지하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가르칠 때
교회가 살아나고 부흥하는 역사가 더 강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왕성하다 ] 는 하나님의 말씀의 세력이 점점 강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동적인 정복력 때문에
인간의 심령이 그 말씀 앞에 순종하게 됐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정복했다는 말입니다.
핍박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난이 문제가 아닙니다.
유혹이 문제가 아닙니다. 불편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원망하고 불평할 일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한냐? 아니한냐? 가 문제입니다.;

부흥의 조건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더라는 것입니다.
행12:24절에 야고보가 첫 순교자로 바쳐질 때 베드로는 옥에 갇혔습니다. 교회에는 무서운 환난과 핍박이 휘몰아쳤습니다.
이러한 때에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더라]는 말씀을 보면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할 때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흥왕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2)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성장하지 아니하는 교회나 교인들이 있습니다.
만약 자기 자녀가 성장하지 않을 때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교인들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금년에 들어와 교회가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0>
말씀을 사모하는 열기가 달라지고 기도의 열기가 달라지니
교회는 절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장한다는 말은 우리의 성을 쌓고 우리 조직을 키우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적어도 대구복음화는 우리가 책임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일에 여러분들을 들어 사용하고자 합니다.
말씀이 내 속에서 왕성하여 감격과 확신이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3)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고 합니다.
당시 유대인 가운데 레위인들이 18,000명 쯤 되었는데
그 가운데 제사장들이 8,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은 축제 기간에 대제사장의 제사 드리는 일을 도왔는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드렸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예수 믿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1) 성령충만 지혜충만하여 칭찬받는 일군들이 교회에 세워지고
목사가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 그 교회에 말씀이 흥왕할 때
2) 교인 수가 심히 많아지고
3)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믿게되는 역사가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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