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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짐을 내려 놓읍시다 (마 11: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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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공재영 목사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어떤 삶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까? 그런 삶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 자리는 시골 할머니가 큰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을 때 마음착한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기사 아저씨는 할머니가 태워 달라고 하니 기쁘게 태웠는데 여전히 차안에 타고 계시면서도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 그것을 본 기사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무거우니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나 하나 타고 가는 것도 미안한데 어찌 짐까지 내려 놓을 수 있느냐고 죄스러운 말을 한것입니다. 인생살이란 반드시 짐이 있는 법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그 짐을 져주시기 위함입니다. 운전기사가 할머니만 태우려고 한것이 아니고 무거운 짐까지 차에다 내려놓게 하려고 태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 하나만 부르신 것이 아니고 나의 모든 인생길에서 지고 가는 짐을 함께 책임져 주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 하시리라(시55:22)"라고 약속하혔습니다. 성도의 위로와 축복은 자기 짐을 믿고 예수께 맡기며 내려 놓는 것이며 이 사람이 세상에서 힘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길이 고달프고 힘든 것은 짐이 무겁기 때문이지 내가 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본문은 인생길에 참된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하나님이 찾으신 자리가 어떤 자리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과 자리는 어린아이와 그 자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짐을 내려놓기 때문이며 그곳에 전성기를 만납니다.

  1. 모든 사람은 짐을 지고 간다는 것입니다(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이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심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외의 법칙이 자신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예외의 법칙이 자신에게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묶여진 짐이 있는 것을 인정한다는 자기 표현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사람도 예외의 삶을 사는 사람 곧 면제된 사람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메시지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 말은 나의 어떤 짐도 져주시겠다는 확실한 예수의 약속인 것입니다. 짐의 내용과 부피와 무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짐의 내용에 따라서는 거기에 맞는 능력의 사람을 붙여 주실 것이고, 부피가 크면 큰 그릇을 준비하여 담을 것이며 무게가 많이 나가면 많은 사람을 동원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힘 없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보지말고 죽음의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하시며 그 예수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앞에 어린아이처럼 내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평안의 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힘든 것이 인생의 자랑이 아니고 내 짐을 내려놓고 사는 복을 노래하는 삶을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이 삶을 보여준 사람이 욥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5:11)"고 했습니다. 나의 짐을 보시고 지금 찾아오시는 예수께 그짐을 내려놓는 성도가 됩시다.

  2. 짐을 가볍게 하는 것을 배웁시다(30).

  짐은 쉽게 나에게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남이 짐을 져주는 삶을 살기만 하면 자신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쉽다'라는 말과 '가볍다'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면 쉽다는 것은 힘들지 않고 평안하며 적합하다는 뜻이요, 가볍다라는 것은 무겁지 않아 부담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비켜가고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자기 삶을 복되게 하는 자리는 짐을 가볍게 하는 지혜입니다. 나 자신이 비켜가고 싶지만 않아도 나의 삶은 불안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선각자가 필요하고 어른이 필요한 것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되어지는 삶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께 가서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 연약한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이 겪는 모든 것을 겪으셨으므로 능히 아실 뿐 아니라 친히 우리의 삶을 헤아리셔서 우리의 짐이 무겁지 않도록 그 짐을 헤아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짐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그 예수를 믿고 짐이 가벼워지는 사람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더 커져 가는데 나 자신이 약해지므로 내 짐이 더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내가 약할 때에 누리는 복은 강한자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손을 잡아 주심을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이 하나님으로 짐을 가볍게 합시다. 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3. 짐을 내려 놓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9).

  짐이라고 하는 것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관계속에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은 반드시 나하고 관계가 되는 것이지 나와 관계가 없는 것은 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 존재가 없어지는 자리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자리를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유하고 겸손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온유와 겸손의 자리가 우리의 모든 짐을 내려놓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짐의 속성을 그것이 수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짐이라고 하는 속성은 항상 우리를 걸고 있는 것이며 누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걸고 있는 것은 못받아 들일때 찢어지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받아들일 때에는 걸고 있는 것이 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누르고 있는 것은 내가 올라가려고 하면 할 수록 더 큰 충격을 받지만 나 자신이 밑바닥에까지 낮아질때에는 더 이상 누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와 겸손의 자리입니다. 그것을 예수께서 하셨기에 우리의 짐을 맡으실 수가 있고, 우리에게 그 짐을 내려 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온유의 자리는 용서하는 마음만 있으면 가능하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의 자리는 자족하는 마음을 소유하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리인 나의 생각으로는 어렵지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의 자리에 자신을 믿음으로 세울때에는 가능할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더 나은 것을 나 자신이 이룰때에 소유합니다. 믿음으로 더 큰 짐을 예수께 내려놓는자가 됩시다.

  결  론
  어두운 세상은 밤이 와서 어두워지는 것과 내가 눈을 가리워서 어두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짐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 생긴 어둠인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떠서 온유와 겸손으로 짐을 내려 놓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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