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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넓은 마음 큰 사람 (고후 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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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중표 목사

하나님은 우리에게 향하신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짧은 인생 살아가는 동안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이해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힘들고 괴롭게 살아갑니다. 그것은 환경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마음 때문입니다. 마음이 옹졸하고 은혜를 조금밖에 못받아서 스스로 인생을 괴롭고 답답하게 만들어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마음이 좁고 답답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불평이 많고, 오해도 많고,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과 다투면서 괴롭게 살아갑니다. 그 반면에 마음을 넓게 가지므로 인생을 평화롭고 여유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은 매사에 이해심이 많고, 긍정적이며 다른 사람을 좋게 하고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우리가 가정생활 하면서 부부간에 넓은 마음으로 사는지 아니면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면서 힘들어하는지, 또 내가 예수 믿은 후 좁았던 내 마음이 넓어졌는지, 이해심도 많아졌고 생각도 깊어졌는지,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도 좋아졌고, 여유있는 인생으로 변화되었는지 아니면 고집불통으로, 독선과 편견이 많은 인간으로 전락했는지 자기 자신을 성찰해 보십시다.

제가 목회하면서 교인들을 보면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 구분한다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고 또 하나는 마음이 좁은 사람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마음이 좁은 사람이 있습니다. 인물은 잘 생겼는데 속이 좁아서 만나면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회적인 지위를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넉넉하고 매사에 이해심이 많아서 가까이 가면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시끄럽고 소란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좁기 때문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마음이 좁아서 다락방 모일 때 사소한 일로 불평하는 것을 눈으로 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좁아서 교회에 분쟁이 많았음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신령한 은사를 많이 받아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사도성에 대해서 폄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정통 사도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식같이 사랑해준 교인들이 서로 분쟁하면서 ‘나는 바울파다, 게바파다, 아볼로파다, 그리스도파다’라고 할 때 고린도 교회를 세운 지도자로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11-13절)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게 열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옹색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색한 것입니다. 나는 내 자녀들에게 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뜻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11-13절)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성도들아 마음을 좀 넓혀다오. 그래야 이 험악한 인생을 사는데 그대들이 행복할 것 아닌가. 내 마음의 뜻이 그러하니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옹졸한 사람이 있으면 좀 넓혀서 넉넉한 인간으로 변화를 받으라”
우리는 마음이 넓은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 통이 큰데...’ 마음이 넓어야 큰 사람입니다. 아무리 인물이 좋고 공부를 많이 했어도 속이 좁으면 작은 사람입니다. 시어머니가 큰 마음을 가져야 며느리가 살기가 편하지 사소한 일로 삐딱하면 가정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남편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지 사소한 일로 오해하고 삐지기나 하면 아내가 살기가 힘듭니다.

넓은 마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

우리가 넓은 마음을 가지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자식이 마음이 넓으면 부모의 은혜를 압니다.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 경외하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 남편 안만났으면 내가 처녀로 늙을텐데 그래도 나를 구제해 준 것이 감사하지’ 그런 마음을 가져야 순종이 됩니다.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나를 채용해 주어서 내가 일할 수 있게 해준 사장님이 너무 감사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었기에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이 마음을 가질 때 부모의 은혜가 감사해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인생 사는 것 전체가 은혜요, 모든 삶이 다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웠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졌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넓은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소나무는 큰 나무이기 때문에 가시넝쿨이 몸을 휘감아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찬바람이 불면 가시넝쿨은 우수수 다 떨어집니다. 그리고 소나무만 독야청청 홀로 서 있습니다.
여물 먹는 소는 산에서 고기 잡아먹는 사자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여물 먹고도 땀 흘리면서 자기 할 일을 다 합니다.
비둘기는 콩알 먹으면서도 고기를 먹는 독수리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자기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시 37:1)
악한 자가 잘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하게 사는 것으로 이미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교수 모임에 가서 여자 교수님의 간증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어렸을 때 6.25사변이 일어나서 아버지는 전사하고 어머니가 혼자 남대문으로, 서울역으로 다니면서 떡 장사를 해서 자식을 공부시켰습니다. 이 분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공부 잘하는 남편을 만나서 함께 외국 유학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둘이 대학 교수하면서 벌이가 좀 넉넉하니까 이 분이 남편을 설득시켜서 친정 엄마를 모시게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함께 살다가 어머니 생신이 되어서 생일 잔치를 하면서 딸이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소원이 뭐에요.” 그때 어머니가 잠잠히 딸에게 그럽니다. “딸아, 네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면 소원이 없겠다.”  “알았어요. 제가 어머니 다니는 교회에 나갈께요.”

그전에는 어머니 혼자 먼길을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교회에 나오면서부터는 자가용으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첫날 그 권사님의 딸이 교회에 나왔다고 하니까 새가족에서 박수치면서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 분이 환영을 받고 친교실에 앉아 있는데 한 분이 오더니 “아이고 교수님, 제 아들이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 대학에 번번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들어가는 길이 없을까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조금 있다가 저쪽에서 여 집사님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휴 저것은 새로 와가지고 너무 설쳐” 하면서 흉을 보면서 험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건넛방에서 남전도회 무슨 회의를 한다는데 “혼자 해먹으라고 그래” 하고삿대질을 하면서 서로 싸움을 합니다. 그것을 보고 이 분이 ‘이 교회 두 번 다시 안온다.’ 각심을 하고 어머니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집으로 갔습니다. 친정 어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오늘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딸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두 번 다시 교회에 안가기로 작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날 평생 교회에 다녔어도 하나님 한분 좋아서 다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불평하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는데 너는 어쩌다가 그렇게 교회에 와서 불평하는 소리만 들었니” 이 말에 대학 교수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면서 살기도 인생이 부족한데 너는 어찌해서 불평할 것만 봤니’ 자기는 대학원도 나오고 박사가 되었기에 속 깊고 생각있는 인생으로 자부해왔는데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속좁은 사람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넓고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 우리 어머님이 수십년 교회 다닌 것이 헛것이 아니었구나! 그 넓은 마음, 그 깊은 생각, 우리 아버지 전사하고 그 많은 세월동안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수십년 청상과부로 나를 길러 주셨거늘 내가 어찌 몰랐던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가 어떻게 위대한지 자신이 그렇게 왜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사라고, 대학 교수라고 목에 힘 주었는데 너무 작은 자신을 본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큰 사람이 누구입니까? 큰 마음을 가진 자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소한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이 왜소하게 보인 일이 있습니까 그러면 오늘로서 끝내십시오. 인생 짧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큰 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화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가능한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고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과거를 고칠 수 없습니다. 죽음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남의 성격을 고칠 수 없습니다. 날씨를 고칠 수 없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도 좋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넓은 마음이 무슨 마음입니까? 다른 사람과 화목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합니다.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습니다. 인간관계를 바르게 맺고 살아갑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엡 4:2)

관용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남을 존중하고, 격려하고, 허물을 덮는 넓은 마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거의가 다 마음이 왜소합니다. 핵가족화로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떨어져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하나, 둘씩만 낳아서 기르고 방도 한 사람이 하나씩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옛날 가난한 시절에는 방이 없으니까 형제들이 다 한 방에서 살았습니다. 밤에 잘 때 이불 하나로 자니까 서로 밀고 당기면서 자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서로를 배려해 주면서 정감있게 살았습니다.

어떤 젊은 부부가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는데 부인이 깜빡하고 물건 하나를 덜 샀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잠깐만 서 있으라고 하고는 다시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어디 한군데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나 하고 봤더니 아가씨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부인이 열받어가지고 남편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어디를 그렇게 눈 빠지게 쳐다봐” 하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그 일로 이 부부는 1년 6개월동안 싸웠다고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잉꼬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도 주일날 예배 끝나고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데 남편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한 여자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남편에게 가까이 가서 “여보, 이제 다 봤소 다 봤으면 갑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착한 마음입니까 넉넉한 마음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넉넉한 여유를 가져야 가정이 편합니다. 이상한 남자들 참 많습니다.
오래전 얘기입니다. 제가 어느 성도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목사님이 온다고 음식을 잘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그랬습니다. “아이고 우리 자매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참 맛있네요.” 그랬더니 남편이 기분 나쁜 투로 “오늘만 그럽니다. 나한테는 한번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 해준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을 합니까 평상시에 누가 그렇게 먹습니까 손님이 온다고 하니까 대접하려고 그렇게 준비를 한 것인데 그것을 삐딱하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 한번은 어느 자매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 가서 남편에게 그랬습니다. “성도님, 우리 집사님은 참 미인이셔요.” 자기 아내 예쁘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런데 제가 다녀간 후에 남편이 아내에게 “목사가 속이 앙큼하구만 남의 부인을 탐내게... 교회 나가지 마” 하면서 뭐라고 해서 그것으로 둘이 다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한달동안 교회에 못나왔습니다.
혹시 속좁은 부인 있습니까 또 속좁은 남편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마음을 넓히십시오.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여, 마음을 넓히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서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좋게 보면 자기도 좋고 다른 사람도 편한 것을 사소한 것 가지고 다투고 싸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요즘 신문에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인물이 틱낫한이라는 스님입니다. 불교 승려요, 베트남 시인으로 한국에 평화운동을 하러 왔습니다. 저도 이 분의 대표적인 책「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와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기쁠 때만 웃어야 하는 것 아니다. 웃음은 입으로 하는 수행이다. 기쁘지 않더라도 웃고 있으면 얼굴 근육은 부드러워진다.” 이런 내용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화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은 못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내 상처의 응어리를 풀어야 인생이 풀립니다.

셋째, 자기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넓은 마음이 뭡니까? 자기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이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불행한 과거를 원망하고 ‘나는 팔자가 사나워’ 하면서 탄식합니다. 자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상처받은 과거를 용서하지 못한채 탄식하고 저주하면서 괴롭게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됩니다. 부모님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유일한 은혜의 부모님 아닙니까 과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해야 합니다. 자기 용모가 까마면 까만대로 ‘은혜를 많이 받으라고 바싹 구웠구나!’ 하면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출생, 성격,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감사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 됩니다. 부모가 나에게 준 병도 축복이고, 상처도 축복이고, 모든 것이 다 축복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 때리는 것을 늘 보고 자랐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우리 아버지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나는 결혼하면 절대로 내 아내를 때리지 않을 것이다. 내 아내를 사랑하며 돌보며 살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분노를 느끼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장성해서 예수 믿고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내를 때리지 않겠다던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자기 아버지가 했던 대로 자기 아내를 구박하고 때렸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 들을 때는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 하면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그렇게 자랄 때 우리 아버지를 보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수없이 다짐했는데 내가 우리 아버지의 모습대로 살다니...’

인간은 두 종류의 생애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미워하는 사람을 닮고 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닮게 됩니다. 왜 미워하는 사람을 닮느냐? 밤에도 그 사람 미워하면서 생각하고, 낮에도 그 사람 생각하면서 미워하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사람을 닮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그 사람을 닮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 아버지가 잘못을 했다면 아버지를 용서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태어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몰라서 그랬지’ 하면서  내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됩니다.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 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며느리 얻으면 절대로 저렇게 안해야지’ 다짐합니다. 그러나 이 며느리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옛날에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했던 행동을 며느리에게 똑같이 하게 됩니다. 그 시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입니다. 시어머니를 용서해야 그 독이 자기에게 들어오지 않고 은혜가 들어옵니다.

예수 믿으면 마음이 넓어져야 됩니다. 생각이 깊어져야 됩니다. 감사가 하늘로 높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내게 임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봄이 오면 나무 가지가 부드러워져서 꽃이 피고, 얼었던 땅이 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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