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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씨앗을 뿌려라 (사 5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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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포 : 이덕휴목사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사 55:8-11).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이제는 산야에 푸릇푸릇한 새싹과 더불어 이른봄에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겨울잠을 잤던 동식물도 새봄을 맞아 새로운 싹을 틔우고 농부들은 벌써 추수의 계절을 위하여 새 희망의 씨앗을 논밭에 뿌리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이제 새롭게 봄 단장을 하는 이즈음은 우리 신앙인에 있어서 교회력은 부활의 계절입니다.

금년의 부활절은 지난 3월27일 주일이었습니다. 예년에 비하여 상당히 이른봄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부활은 얼어붙은 산야를 부드러운 흙으로 변화시켰으며 새 생명을 잉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세상에서 부활을 몸소 증거 하시는 기간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부활의 계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부활절 절기는 부활절 주일이 지난 뒤, 여섯 번의 '부활 후 주일'이 있으며 이 주간의 주일에는 다음과 같이 각각의 이름이 있습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부활절 후 첫 주일을 '콰시모도게니티'(Quasimodogeniti)라고 부르며 이는 "갓난아이와 같이"(벧전 2:2)라는 뜻입니다. 부활절 후 두 번째 주일은, '미제리콜디아스 도미니'( Miserikordias Domini)이며 이는 "여호와의 자비하심"(시 89:2)라는 뜻입니다. 또한 부활절 후 세 번째 주일을, '유빌라테'(Jubilate)라고 부르며 이는 "여호와께 환호하다"(시 66:1)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후 네 번째 주일은, '칸타타'(Kantate)주일로서 이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시 98:2)라는 뜻이며, 부활절 후 다섯 번째 주일은, '로가테'(Rogate)주일로서 이는 "여호와께 간구하라"(요 16:24)라고 합니다.  의미입니다. 끝으로 여섯 번째 주일은, '엑사우디'(Exaudi)주일로서 이는 "여호와여 나의 절규를 들으소서"(시 27:7)라는 의미를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이후에 갖는 각각의 절기의 이름에 따라 자기의 소망과 믿음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절 절기 중에는 우리가 산 소망과 새 생명을 얻음에 감사하고 새로운 계절에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맞이하는 새로운 탄생임을 확신하고 우리 성도님들도 지나간 겨울의 긴 고난과 역경을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함께 영원히 묻어버리고 이제는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되심을 확신하면서 새롭고 영광된 우리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씨앗을 뿌리는 주님의 제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부활의 산 소망을 품으라

성경에 보면 많은 성경 기록자들이 한결같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의 저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또 사도 바울, 야고보, 베드로, 유다 등 신약성경 저자들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예언의 말씀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부활이 예시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9-10),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2)라고 하심으로써 성경 66권 전체는 참으로 주님의 탄생하심과 수난 받으심과 부활의 영광의 드라마를 한편의 서사시처럼 일관 되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독교 신앙을 우리는 흔히 부활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그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많이 몰라도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잘하지 못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 어느 구절을 보아도 기도 잘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라는 말은 없어도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고전 15: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3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부할 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산 소망이 무엇입니까? 영원히 살아있는 소망, 변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어떤 소망입니까? 우리도 예수님 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이지요 부활의 소망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은혜입니다. 

2. 부활 산 소망이 주는 의미

첫째로,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더라면 기독교는 우리에게 하나의 윤리적 종교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병 고침도 마술로 취급되었을 것이고,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의 순교 정도로 마무리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생명의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다만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던 그야말로 이슬람교도들이 말하는 하나의 선지자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것도 영생의 부활이셨습니다. 한 알의 밀 알이 썩어서 죽지 않으면 새 생명의 탄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생명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또한 주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고, 예수님의 병 고침이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되었으며, 그의 죽으심이 인류를 구속하는 대속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미 예고되어 있음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죄를 속함, 즉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인류의 죄 값인 사망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인데,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죄 값을 치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살아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모든 죄 값이 다 청산되고 우리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가 얻을 부활에 대한 확증이 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3).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 바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며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히 11:1). 따라서 주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를 멸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차 다가올 영생의 부활은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소망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해 주는 것이요, 우리 죄 속함의 보증이 되시며, 우리도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확증이 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씨앗을 뿌리자

이사야 45:22말씀에 보면,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결코 부활의 구원이 없습니다. 부활은 썩어서 죽을 것을 뒤로하고 이제 새롭게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바로 구원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고는 가을에 추수할 수가 없습니다.

주자 십회훈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불춘경종 추후회"(不春耕種 秋後悔)라는 말이 있습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후회한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농민들이 겨우내 덜덜 떨다가도 봄이 되면 신바람이 납니다. 가을을 위한 서곡이 울려 퍼지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을은 어떻습니까? 부활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부활의 씨앗을 뿌리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부활의 열매는 생명의 열매요 영생의 열매입니다. 부활의 열매를 얻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이 봄에 부활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 씨앗을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의의 씨앗을 뿌리기 바랍니다. 잠언서 11장8절에 보면,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됨을 자랑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롬 15:17) 다시말하여 우리는 하나님 외에 자랑할 것이 한가지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일은 하나님의 의의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자선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고후 9:10)라고 하신 바, 이는 우리가 먹을 씨앗도 하나님께서 주시거니와 거두어들일 것도 우리에게 갑절로 풍성히 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나니 그것이 주님의 사랑의 열매요 의의 자선의 열매인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복음서는 말하고 있습니다(마 13:3-8; 막 4:3-20). 이사야 선지자는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사 61:11). 우리가 고난 중에 말씀의 씨앗을 우리의 마음 밭에 뿌리고 가꾸기에는 참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롬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계십니다. 그 길은 영광의 길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결코 가시밭길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4. 맺음

하나님의 일꾼은 이렇게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의의 씨앗을 뿌리시고 의의 열매를 거두어들이십시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구나? 내가 누구를 보낼꼬?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일꾼을 찾으시는 하나님께서, 일꾼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꾼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때로는 시련을 통하여, 때로는 연단을 통하여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뒤돌아보십시오!  열심히 기도하였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순수했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사도 바울이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라" 고백하였는데 모든 신앙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평안하십니까?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를 강한 신앙인, 순수한 신앙인, 열정적인 신앙인,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기를 원하면 우리는 부활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데는 여간한 노력이 아니면 아니됩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그냥 믿기만 하면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저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매시간 매사에 내가 나됨을 인정하는 것은 구원에 길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은 연단의 길이기도 합니다.

욥이 고백한 것처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련과 연단은 우리를 정금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시련과 연단은 하나님의 더욱 크고 놀라운 은총을 입게 하는 축복의 열쇠요, 은총의 문입니다.

예수님도 연단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을 따라는 우리도 연단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떠한 시련과 연단이든지, 기도로써 연단되고 기도로써 인내하여 성령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우리 모두가 되어 하나님 주시는 시험을 통과하여 마귀의 궤계를 정면 돌파하여 정금과도 같은 순수하고, 온전한 신앙인으로 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는 일에 많은 고통을 받을지라도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눈동자처럼 바라보시고 머리카락 할 올까지도 세시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8-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온갖 소산물을 육의 양식으로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육은 썩어 없어집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영생의 낙원에서 오늘 너희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분명히 우리와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썩어질 몸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낙원에서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 이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는 말씀입니까? 여러분은 저와 함께 주님과 영원히 사시는 하늘에 소망을 두시고 부활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셔서 부활의 열매를 거두시는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 계셔서 오늘도 은혜와 소망의 단비를 뿌려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스올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이제 영생의 산 소망, 부활의 산 소망을 알게 하시고 거두어 주시며 영원히 낙원에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이 나에 나됨이 아니오라 오직 주님의 보혈의 피 값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이제 부활의 산 소망의 씨앗을 저희들 심령심령 위에 뿌려주신 은혜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봄 부활의 계절에 오직 성령이 저희와 함께 임하시면 우리가 모든 하늘의 권능을 다 받고 온 세상 끝까지 주님의 말씀의 씨앗, 의의 씨앗, 부활의 씨앗을 뿌리는 저희들 되게 끝까지 오른팔을 들어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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