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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되길 원하셔! (렘 2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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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연수 목사
- 설교 일시 : 2005년 4월 10일

(렘 29:11-14) 『[11]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12]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13]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14]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쫓아 보냈던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너희를 모아 오겠다. 내가 너희를 포로로 보냈으나, 나는 a너희를 그 곳에서 너희의 고향으로 다시 데려오겠다. 나 주의 말이다. (a. 또는 너희의 운명을 회복시켜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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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본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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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봄 기운이 온 대지에 꽉 차있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여러분의 영혼 가운데 성령의 봄바람이 불어 오시기를 축원드립니다.

■ 좌절한 현실 너머엔 무엇이...?

오늘의 본문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요시아 왕 13년(B.C.627)에 활동을 시작하여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B.C. 587년 이후 얼마동안까지 활동하면서 다른 여느 예언자들보다도 더 자기 민족의 불의와 죄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던 눈물의 예언자라는 것, 많이 들어서 잘 아실 겁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다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무능력하신 분이라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보면 고통의 연속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신비한 방이 있었답니다. 그 방은 거기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젊어지는 방입니다. 어느 날 70세 되신 할머니가 젊어지고 싶은 맘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안내원은 큰 책 한 권을 내 보이며, "이 책에는 할머니의 70평생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할머니가 더 살고 싶다면 살아오신 70년간의 과거를 똑같이 되풀이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록을 얼마쯤 읽다가 그만 책을 덮어 버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살꺼면 내가 다시 살아 뭣하겠습니까?. 나는 다시 젊어지기를 포기하겠소."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멋 모르고 삶을 볼 때와는 달리 긴 인생의 경험이 쌓인 분들이 보는 삶은 고난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까지 표현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나 인생이 고난의 바다이기 때문에 희망의 등대는 더욱 빛이 납니다. 인생은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그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희망을 잃게 만드는 현실의 안개가 짙어질수록 비전의 사람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런 어둠의 시기에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절망의 현실만 보지 않고, 그 절망 너머의 것을 보는 눈을 가집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이고, 믿음입니다.

■ 눈물의 예언자? 희망의 꿈을 꾸는 예언자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운 역사의 시기에 이스라엘이 경험한 것과는 전연 다른 희망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희망의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래서 쓰여진 편지가 바로 오늘 본문이 기록된 29장입니다.

(렘 29:11)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내 삶이 하나님의 형벌이라 여기며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또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예레미야의 눈에는 포로의 시기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 때가 아니요 가장 가까이 계신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때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갈 때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부르짖고 찾을' 때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희망과 부푼 꿈은 오히려 하나님이 보실 때에 불행과 재앙의 잿더미 위에 나 앉은 것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우리가 한숨을 내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떨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희망을 보십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영혼의 눈을 들어 눈물을 씻어낸 후,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희망의 언덕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비로소 하나님의 시선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 절망을 넘는 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라!

우리가 자주 겪는 큰 오류 가운데 하나는 이 세상의 원리와 생각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 불행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왜 나에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론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우리를 물질로 연단하실 때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오히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더 강력하게 나를 움직여 가시는 상황인데도 우리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판단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세상의 <복>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소유의 있고, 없음에 달려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은 성서의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준으로 보는 사람들은 물이 없을 때 하나님이 계신가? 하고 물었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땐 오히려 이집트에서 고기가마 옆에서 고기 구워먹던 때가 더 하나님의 임재가 있던 때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집트 생활 중에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셨을까요? 아니면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계셨을까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이 산, 저 산으로 도피를 다니고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처럼 떠 돌 때보다 왕궁에서 편하게 지낼 때가 더 하나님이 다윗을 가까이 하시고, 더 친밀하게 동행하셨을까요? 광야에서 매일 매일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여호와는 나의 방패요, 피할 바위시오, 산성이시라고 고백했던 다윗은 왕궁에서 살던 풍족하고 편한 때에 자신의 충직한 부하의 아내를 범할 뿐 아니라, 그를 죽이기까지 하는 지독한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고 그 죄과로 낳은 자식이 죽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이 우리를 조여올 때...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놓아 버리신 걸까요?

실패의 한숨이 터져 나올 때...
하나님은 나를 향한 아무 계획도 없이 손 놓고 계신 걸까요?

예레미야가 외쳤던 그 시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경험한 사실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 그들은 향락에 도취되어 불의와 악을 일삼으면서 생각하기를, 그들이 생각하고 계획한 것은 무엇이나 다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패해서 나라가 무너지고 왕과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심판 받는 사람들은 심판 받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때는 그 이전이고, 오히려 인간들이 체감적으로 ‘심판이 왔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이미 그 분이 가장 가까이 접근해 오시는 때입니다.
우리는 그 때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시편 40:5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예언자 예레미아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시간을 바르게 파악하였습니다.
그 영적 감각을 회복하도록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 전심으로 찾고 또 찾으면...

요즘엔 봄이와도 제비가 날렵하게 땅위를 스치듯 나는 모습을 보기 어렵스빈다. 어렸을 적, 제비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 때 새끼들이 서로 먼저 받아먹으려고 입을 한껏 벌려 다투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어떻게 어미가 그 비슷한 새끼들을 가려서 골고루 먹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조류학자의 연구결과로는 어미 새가 가장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 즉 먹지 못했으므로 배고픔에 못이겨 죽을 힘을 다해 그 입을 벌리는 새끼의 입을 찾아 먹이를 주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희망 발전소는 하나입니다.

[12]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13]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14]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기도하면... 찾으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향하여 전심으로 찾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 이제는 다시 희망으로!

기도와 부르짖는 간구는 희망을 여는 비밀번호입니다.

장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절망적인 형편에 빠진 사람들이나 중병에 걸린 사람들, 모든 가진 것을 다 털린 사람들,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살맛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완전히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사들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었고, 심리학자나 종교가들을 통해서도 입증이 된 사실입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생명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어로는 chicken soup series로 유명한 잭 캔필드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 중에,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암 환자들에 대해 기록한 책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생존을 위협하는 암 선고를 받은 사람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는 회복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용기와 신념을 갖고 암과 싸워 암을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불치병이라는 암도 사랑의 힘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력과 믿음, 또 환자를 향한 아낌없는 지원으로 육체와 영혼의 고통을 초월해 암을 극복해 낸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삶이 사랑의 손길, 끝없는 희망, 긍정적 마음 가짐, 굽힐 줄 모르는 믿음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보면 서로 친구사이인 암전문의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간단한 대화 한 토막이 실려 있습니다. 한 의사가 자기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돼. 자네나 나나 전이성 암 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만큼, 똑같은 스케줄에 따라, 똑같은 용도로 처방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나는 22 퍼센트 밖에 성공하지 못하고, 자네는 74 퍼센트나 성공을 하지? 전이성 암을 치료하는데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일이야. 자네,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
그러자 그의 친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보게. 자네나 나나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만큼 처방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전이성 암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은 에토포사이드(Etoposide), 플라티눔(Platinum), 온코빈(Oncovin), 하이드록쉬리아(Hydroxyurea), 이 네가지 뿐이야. 나도 자네가 처방하는 그대로 환자에게 처방하고, 똑같은 약을 주고 있네. 그런데 자네는 아마 틀림없이 그 약을 줄 때 환자에게 ‘이 약은 어제도 먹은 에포(EPOH) 라는 약입니다.’ 라고 말할 거야.” 그가 그 약 이름을 '에포' (EPOH)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네 가지 약 이름의 첫 자를 따면 ‘EPOH’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아마도 자네는 이 '에포' (EPOH)를 열심히 드시라고 말하며 약을 줄 거야.
하지만 나는 통계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별로 많지 않은 환자들이지만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순서를 뒤집어 말하며 약을 주네. '에포'(EPOH)를 뒤집으면 '호프'(HOPE)가 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지 ‘여기 '호프'(HOPE)라는 약이 있습니다. H는 하이드록쉬리아(Hydroxyurea)이고, O는 온코빈(Oncovin), P는 플라티늄(Platinum), E는 에토포사이드(Etoposide)입니다. 이 '호프'(HOPE)라는 약은 당신에게 희망(HOPE)이 될 것입니다. 이 약을 열심히 먹으세요. 그러면 당신도 희망이 있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다른 것이라고는 이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은 희망이 없이 약을 처방했고 다른 한 사람은 희망을 주면서 약을 처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판이하게 나타났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고 처방 할 때는 10명중에 7명이 죽어 나갔는데, 그에 비해 똑같은 처방을 하는데도 희망을 주었을 때는 10명중에 7명이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갖느냐 버리느냐 하는 것이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알게 됩니다.

■ 희망을 만드는 자.

바이엘사의 아스피린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의약품입니다만 원래 염료로 개발됐다 실패한 제품이었답니다. 그러나 그 실패의 결과로 엉뚱한 약품이 탄생해 생명을 살려내는 귀중한 의약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노란 메모지인 3M의 ‘포스트잇’도 월래는 강력 접착제를 만들기 위해 실험하다가 실패해서 접착력이 너무 약한 접착제가 된 실패 사례였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잘 붙지 않고 쉽게 떨어지는 약한 접착력을 응용해서 쉽게 아무데나 붙였다 떼어내도 종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메모지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쓰이는 문방 용품의 히트 상품이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환난을 당하나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저는 여러분이 희망을 갖고 사는 아름다운 삶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본 아름다운 시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를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잔잔한 미소로 따뜻이 이해해 주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웃을 일이 아닌데도 항상 웃고 심지어 울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에도 기쁨을 주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랑을 늘어놓을 때 화제를 슬며시 우회시켜 주시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이해관계로 서로가 말 못하고 있을 때 활짝 웃음으로 다가와 화해를 시켜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너무 급하게 뛰다가 넘어졌을 때 당신 가족처럼 아파해 주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오히려 상처받은 것이 없는지 안쓰럽게 신경 써주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내일 양식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룰 때 쌀 한 가마니를 소리 없이 두고 간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시장에서 탐스러운 사과를 사와서는 앞집, 뒷집, 옆집에 줄 것을 갈라놓던 정갈한 당신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나 같으면 도저히 희망이 없어 인생이 끝났다고 할 상황이었는데도 의연히 잘 참아 결국 승리해 내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그대가 저 세상으로 떠나는 기막힌 일이 닥쳤는데도 겉으론 냉정하고 속으로 한없이 울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창가에 앉아 지난 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멀리서 휘파람으로 희망을 전해주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한 해를 힘차게 뛰었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어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등을 두드려 주던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탄식 섞인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눅 18:8)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성도 여러분,
처음에 우리는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을 계획했지만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의 실수 때문에 그 계획이 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깨어진 우리의 실수를 가지고, 우리의 허물을 가지고 더욱 아름다운 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때때로 실패와 역경이 닥칠지라도 그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창조해 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희망의 언덕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그런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품고 계신 희망 프로젝트,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실현될 믿음의 실험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희망을 생산해 내는 <비전 메이커>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 다같이 오늘 설교 제목을 옆 사람에게 말해 주십시다.

“하나님은 그렇게 되길 원하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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