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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로다 (행 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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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영태 목사

우리가 증인여. 우리가 다 봤어. 우리가 증인이라니깐. 교통사고가 난 어떤 사고 현장에서 얼굴이 하얗게 된 어느 여자 운전자를 놓고 주민들이 하는 소리였습니다. 우리가 증인이다 우리가 다 보았다. 그러면 더 할말이 없는 것이지요. 그것도 한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들입니다.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로다. 우리가 다 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교통사고입니까? 아니면 스나미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화산이 터진 것입니까? 그런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난번 동남아를 강타한 스나미 사건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증인이다. 우리가 보았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 내가 체험한 당사자다. 그래서 많은 기자들이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고 그 사람이 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 무덤에서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는 것을 보았고 그가 살아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이야기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증인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슴이 뜨거워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로다.

이 설교를 하는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겁쟁이였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비겁한 자였습니다, 이들은 말을 바꾸는 자들이었습니다, 죽기가지 따른다 했다가 정작 죽게 되자 언제 그랬느냐 하고 도망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증거자들이 되었습니다. 여기 이들이 전하는 이 복음이 온 세계를 바꾸어 놓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정치 경제 문화 복음이 들어 간곳에 바꾸어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더러웠던 것이 깨끗하게 바뀌었습니다. 폭력적이던 것이 평화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거짓이었던 것이 진실하게 바뀌었습니다. 우매하던 것이 지혜롭게 바뀌었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 바뀌어 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변화 속에 오늘 여러분과 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일에 증인이로다. 제자들이 바뀌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뀌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그 말씀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믿음이 일어나고 말씀에 순종하고 체험이 생기기시작하고 확신이 서고 그래서 바뀌었습니다. 증인이 되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과 신뢰 속에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빈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무서워 떨며 숨어 있는 다락방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오실대가지기다리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성령 받았습니다. 증인이 되어버렸습니다.

22절-24절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 지금 사도 앞에 모인 사람들도 압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압니다. 그분이 천국복음을 전한 것을 압니다. 그분이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신 것을 압니다. 그분이 병든 자를 고치신 것을 압니다. 그분이죽은자를 살리신 것을 압니다. 그분이 기적을 행하신 것을 압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고픈 자들에게 먹이신 것을 압니다. 그 모든 것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이 메시아인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이 압니다. 그들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못 박아 죽인 것은 그들의 힘이 커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하나님의 정하신 뜻입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잊지 못합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사람도 지옥 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곁에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 같은 죄인도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죄를 담당시켰습니다. 그 죄 값을 치르게 하시기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 죄 값을 치룬 곳이 십자가입니다. 내어 주셨기에 십자가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입니까? 12영도 더되는 천군천사들이 있습니다. 물로써 하루아침에 온 세상을 쓸어버리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쓰나미 하나로 온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하나님이 십니다. 지진과 해일과 홍수와 태풍과 가뭄이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힘이 없습니까? 참으시는 것입니다. 다 구원하시고자 기다리는 것입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을 받고 살라는 것입니다. “돌아 와 돌아 와 맘이 곤한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오라..” 여러분 복을 받고 사세요. 여러분이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것이 복을 바고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복을 받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길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도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비겁할 때가 많습니다. 못된 짖은 제가 다해 놓고 짐은 다른 사람들이 지게 만듭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주고 저는 이일에 깨끗하다 손 씻는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요. 그 현상이 오늘날 무슨 일이든지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일은 터졌는데 사람들은 희생이 되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일에 관여 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떡은 내가 먹고 벌은 네가 받으라는 것이지요. 유대인들이 이렇게 비겁했습니다.

이런 인간 앞에서 하나님이 행하신일이 무엇입니까? 그런 비겁한 인간들의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24절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다. 죽은 자를 과연 누가 살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밖에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사망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망의 고통을 풀어 버리셨습니다. 더 이상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덤을 열고 살아 나셨습니다. 바로 이일에 우리가 증인이다. 하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들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계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니 이제는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왜 그런 계시를 받고 말했는지 이제는 알겠다는 것입니다. 30-32절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이 본 계시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계시를 받고 미리 예언을 했습니다. 25-28절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주를 보았다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보았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육체는 다 죽는 것인데 그 육체가 희망에 거한다. 그것은 죽지 않는 소망이 있기에 희망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그래서 다윗이 노래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썩어질 육체가 썩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기쁨이 충만합니다. 다윗이 보았던 그 축복, 그 영광, 그 소망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체험했습니다. 본 바요 들은 바요. 만진바 입니다. 우리는 이일에 증인이로다. 당신의 증거 됨은 무어입니까? 무엇을 가지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겠습니까? 누구도 흔들 수 없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증거 됨이 당신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열려라 에바다라는 노래가 있지요. 어두워진 세상길을 주님 없이 걸어가다 나의 영혼 어두워졌네. 어느 것이 길인지 어느 것이 진리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네 주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 실패와 좌절뿐이네 사랑하는 나의주님 내 영혼 눈을 뜨게 하소서 열려라 에바다 열려라 눈을 뜨게 하소서 죄악으로 나의 영혼을 나의 눈을 뜨게 하소서.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볼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네 세상에서 방황하며 이리저리 헤메이다 사랑하는 주님 만났네 어두워진 나의 눈이 열리고 막혔던 귀가 열렸네 답답하던 나의마음 열리고 나의영혼 살리네. 눈을 뜨세요. 그리고 보세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세요. 증인되어 살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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