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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손과 발을 보라 (눅 24: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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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 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어느 교회 목사님이 "오늘 저녁예배 때 십자가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미리 묵상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예배 시간에 교인들이 은혜를 사모하며 모였습니다. 목사님은 촛불을 켜들고 강단에 올라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그림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먼저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이마에 촛불을 비추었습니다. 한참 뒤에는 못 박힌 예수님의 손과 발을 촛불로 비추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에 찔려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옆구리로 촛불을 옮겼습니다. 이것이 설교의 전부였습니다. 목사님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말보다도 주님의 못 박힌 손과 발을 보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던 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이 열 한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향하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저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하시며 손과 발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으나 제자들은 기이히 여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가운데 오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찬송가 185장을 부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려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죄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내 손과 발을 보라"는 말씀의 뜻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확실한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독재자 이디 아민이 우간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 반정부 인사인 케파 셈판기목사의 서재에 권총을 든 두 명의 괴한이 나타났습니다. 그 날은 부활주일로서 셈판기 목사가 교인들에게 설교를 하고 막 돌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셈판기 목사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2분만 시간을 주시요. 나와 당신들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싶소." 괴한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셈판기 목사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드린 것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사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내 영혼을 주님 품에 맡기오니 주님과 함께 부활하게 하소서." 눈을 뜨자 괴한들은 권총을 품에 넣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정부에서 목사님의 생명을 노리고 있으니 각별히 몸조심을 하셔야 합니다." 2분 사이에 그들은 감동된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두려움은 없습니다. 영원하고 참된 생명에로의 부활을 확실히 믿으며 이런 확신과 당당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오래 믿어 직분을 가진 성도들 가운데서 너무도 모르면서 잘 안다고 하는 편견으로 점점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모태 신앙이라 하면서 신앙의 감동이 없습니다. 오래 믿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설교를 들어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설렘과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니 감사의 고백도 간증도 없습니다. 주보만 보면 설교를 다 안다고 합니다. 유식의 편견입니다. 유식의 편견은 무식의 편견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합니다. 자기보다 못하던 사람이 잘되면 시기하고, 자기보다 못 배운 사람이 뛰어나도 시기하고, 자기보다 모든 면에 모자란 사람이 자기보다 능하면 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편견이며 믿음 없는 행위로서 믿음의 분위기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과 믿음 있는 사람의 삶의 내용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지만 믿음 있는 사람에게는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내 손과 발을 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못 박혔던 자국들을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확실한 체험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아니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성장은 확고한 신앙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믿음을 지켰기에 오늘의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어떤 핍박 앞에서도 굴하지 아니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이후로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전쟁 중에 독일 어느 마을의 예배당이 폭격으로 부서졌습니다. 폐허가 된 교회를 건축하면서 벽돌로 종각 등을 다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관 앞에 세운 예수님의 동상은 상처가 컸으며 특히 손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동상을 복구하기 위해 이런 저런 계획을 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목사님은 예수님 동상의 팔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새겼습니다. "이 동상의 예수님은 손이 없으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의 손을 가지고 계신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통하여 일하신다. 우리의 손은 곧 예수님의 손이 되어 일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일하는 사람을 천히 여기고 놀고 먹는 사람을 높이는 유교적인 잘못된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가치관은 정반대입니다. 창세기 2: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사람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태초의 인간인 아담을 그저 놀고 먹고 즐기게만 한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을 지키고 다스리도록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장수촌에 사는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이 남보다 잘 먹고 잘 살아 장수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공통점은 나이가 90세가 되든 100세가 되든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집안 일을 거들고 가만히 놀고 먹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도 일군이 많아져야 합니다. 큰 일을 맡든 작은 일을 맡든지 간에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섬기는 사람이 많고, 말만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말없이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엄한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규모 없이 행하며 도무지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규모 없이 행한다는 말은 군인들이 줄을 맞추어 행진할 때에 그 중 한 사람이 대열을 벗어나 제멋대로 걷는 모습으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문제가 많아지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사시면서 쉴 새없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박혀있던 굳은 살, 딱딱해진 발바닥의 어디를 보아도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내 손과 발을 보라"는 말씀은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우리 자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일로 인해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발이 되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하는 자를 도우시며 축복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시기에 소아시아 지역의 비두니아 총독이 로마 황제에게 보낸 편지가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황제시여! 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제 부하 중 몇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게 하여 세례도 받게 하였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하게 살펴보게 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밤이건 낮이건 모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또 많은 양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주 빵을 때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로마의 관리들을 위해서 그리고 황제폐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공동체로 비춰질 때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한 성도가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지혜롭고 전능한 힘을 가진 왕이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왕국의 장수 중에 무술이 뛰어나고 지혜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에 감사할 줄 알았고, 주어진 일에 항상 성실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왕으로부터 부름 받고 적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에게 칼을 버리고 갑옷을 벗게 하였습니다. 성밖으로 나가 적을 물리치되 주어진 권세를 쓰지 말 것이며, 다만 사랑으로 적을 물리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권세와 힘과 능력으로 쉽게 적을 물리칠 수 있건만, 이를 사용치 말고 단지 사랑으로 적을 승복시키라 하십니다. 저는 성령에 의지합니다. 헌신은 육체적 고통이 따르고, 사랑은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의 군병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못박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 손과 발을 보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삶의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희생과 봉사입니다. 주님은 "내 손과 발에서 사랑의 흔적을 보며 사랑하는 길을 배우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 하실까?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살고 있는가" 를 물으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시기 바랍니다. 부디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짐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신앙인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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