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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승천) (행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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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구원 목사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이 마지막 종착역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확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기독신자들의 가슴 속에 새 소망으로 부동의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살다가 죽었던 그 어떤 영웅호걸이나 가인(佳人)이나 재사(才士)라도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을 호령하고 무덤에서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생명종교의 특색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해(害)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친히 부활을 증거 하신 일로 끝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 사도신경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라고 하므로 승천이 그리스도의 높아지신 신분 즉, 승귀(昇貴)의 제2단계인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도 모르게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500여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Ⅰ.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성경이 자증 하고 있습니다.

1) 성경적 증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주의 승천은 그의 부활만큼 다량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일대 전환점이고 승천은 부활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부활과 승천이 독립적 가치가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승천에 대한 기록은 부활만큼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승천은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과 승천의 필연적인 역사성입니다.

2) 예수님 자신의 증언입니다.
요한복음 6장 62절에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도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5절에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0절에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7절에『…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8절에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3)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본문 1장 9절에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0-51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시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승천이 부활에 비해 불완전한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는 '올리우셨다'는 표현이 몇 번 반복되고 있고 그 승천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0절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0절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적극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헬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의심 없이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의 부활과 같이 바로 처음부터 교회의 신앙의 한 부분으로 되어 왔다."라고 했습니다.

Ⅱ.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의 성격입니다.

1) 신인전인(神人全人)의 승천입니다.
본문 1장 9절에 『…저희 보는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체와 영혼을 가진 모습을 가지시고 승천하셨습니다.

2) 유형적(有形的, 가견적) 승천입니다.
본문 1장 9절 말씀의 연속입니다.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올리워 가셨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쳐다보는데 천사들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물었습니다.

3) 땅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는 승천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8절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땅의 처소에서 하늘 처소로 옮기우는 것입니다.

4) 영광의 승천입니다.
천국은 우주의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그곳은 죄가 없는 세계요 의인들에게 옹위되는 곳입니다. 그곳은 천사들이 수종드는 곳이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Ⅲ.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중요한 교리 적 의의를 함의합니다.

1) 그리스도의 귀향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 『…나 있는 곳에…』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그리스도의 본향입니다. 하늘은 그리스도께서 살기에 적당한 곳이지만 이 세상은 신천신지가 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의 승귀의 처소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위치에 알맞은 처소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2) 구속사역의 확증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습니다.

3) 하늘 왕국의 실증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8장 3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4) 구속사역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했습니다.
구원 사역이 보혜사 성령으로 인하여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가 승천하셔야 보혜사 성령이 임하여 이 땅에 구원 사역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예수 믿기로 작정된 자를 예수께로 초청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죄를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십니다.

5)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칼빈(Calvin)은 그의 이사야 주석에서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의 시작을 맛볼 뿐이라고 했습니다.

6) 자기 백성에 대한 약속 성취의 예표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 중에 나타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므로 믿는 성도들도 주와 같이 예비 된 처소로 올리워진다는 예증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성도들의 승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누가는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함께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부활하신 아침에 무덤에 나타났던 흰옷 입은 천사들이라고 했습니다(요 20:12; 막 16:5; 눅
24:4).(J. A. Alexander)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나라는 중생에서 시작되고 중생이 그 기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올리우신 하나님의 나라는 실존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민간 정부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예레미야 주석 4권 p.253).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은 하나의 연계된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부활에 이은 승천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진리인 동시에 계시종교의 근간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믿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위대한 부활 승천의 사실은 언제 어디서나 기독 신자들의 활력과 소망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지 아니했던가?
그리스도가 승천하시므로 보혜사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영광의 영은 주의 백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고 말았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전개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주의 백성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은 주의 백성들은 새 삶의 목표가 설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령님은 지금 이 시간도 승천의 진리 앞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승천은 세상종말인 동시에 영원한 나라의 시작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잠간 동안의 슬픔과 애통과 탄식의 눈물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영원한 가나안 천국의 무지개를 보는 행복한 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땅의 사람들은 부활과 승천에 의심을 합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아무리 첨단과학 문명에 익숙할 지라도 성경의 귄위만 인정한다면 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실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지상의 공간개념으로 함부로 추측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가상의 공간이나 심령 천국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실존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의 권위를 확실히 받들어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 어느 시대 그 누구라도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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