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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해변칠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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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 명 혁 목사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집사님 권사님등 39명이 기도원에 가서 함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지난 몇 주간 동안 새벽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기도 모임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요일 날에는 한끼 이상 금식하며 기도회를 준비했습니다. 우리 교회를 찾아오실 손님들을 맞기 위해서 한 주 전에는 대 청소를 했고 목요일과 금요일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느라 많은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수고를 했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찍이 와서 안내와 주차관리를 하느라 여러분들이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금요일 아침 350여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당을 가득히 채운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회개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기도자들과 고백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진솔하고 간절한 회개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작에 불과하지만 귀한 시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제 지난 금요일 아침 드려진 회개의 기도와 회개의 고백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녹음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녹음을 듣는 이 시간에도 우리들에게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창인 목사님이 고백하신대로 하나님 나라를 회개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손인웅 목사님이 고백하신 대로 회개만이 우리들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김성영 총장님의 회개의 기도와 김창인 목사님과 강원용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의 회개의 고백과 김상복 목사님의 회개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겠습니다.

이제 설교를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강변 홈페이지에 실려 있으므로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돌아가서 디베려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목적은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회개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패와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 있던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일곱 마디 말씀을 했습니다.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곱 마디 말씀을 ‘해변칠언’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말씀은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5)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얘들아" 이 말씀은 교만하던 제자들을 어린 아이들로 만들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 말씀은 솔직하지 못하던 제자들을 솔직하게 만들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겸손과 솔직함으로 돌이켜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는 말씀이었습니다(6). 이 말씀은 순종하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순종을 다시 배워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돌이켜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하신 말씀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12).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님을 먹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고기잡이를 크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목회 사역과 선교사역을 크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자신에게로 돌이켜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하신 말씀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일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오직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돌이켜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신 말씀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일도 아니고 사역도 아니고 오직 주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어린 양들을 먹이고 입히고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린양으로 돌이켜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왕래하고 활동했지만 앞으로는 어떤 분에게 붙잡혀서 움직이고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자기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으로 돌이켜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일곱번째 말씀은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었습니다(19,22).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차음부터 마지막까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일임을 가르쳐 보여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주신 일곱 마디 말씀을 듣고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가던 길을 돌이켜 주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새롭게 헌신했습니다. 겸손과 솔직함과 순종을 회복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회복했습니다. 새로운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교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주신 회개와 회복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회개와 회복의 은혜와 재 헌신의 은혜를 거듭거듭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의 내용을 더 자세히 보시기를 원하시면 다음의 설교문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도 사랑이십니다. 두 주 전 주일에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간 배신자요 겁쟁이들인 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평안과 사명과 성령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부활의 주님을 믿지 않겠다고 고집하던 불신앙과 의심의 제자 도마를 찾아오셔서 평안과 믿음과 항복의 은혜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부활의 주님을 두 번 또는 세 번 만난 다음에도 또 주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돌아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제자들 일곱 명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한 마디 한 마디 우리 마음 속에 새겨 보겠습니다. 사실 비데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의 형편과 모습의 우리들이 처해 있는 형편과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면 그 곳이 바로 디베랴 바닷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제자들에게 처한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주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 실패와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주님을 세 번씩이나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지만 주님을 등지고 옛 날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지금 극심한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잘 믿다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만 주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돌아가 다른 일을 하다가 실패와 좌절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이 강할 때 주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과 방법대로 일하다가 실패와 좌절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실패와 좌절에 빠진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또 다시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단체적으로는 세 번째 나타나신 사건이었고, 개인개인에게 일곱 번째로 나타나신 사건이었으며,  베드로에게는 네 번째로 나타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과 제자들에게 또 다시 나타나시고 또 다시 나타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이제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해변 칠언’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말씀은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5)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동정심이 가득한 부드러운 음성이었습니다. 책망이나 훈계를 하시는 대신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얘들아" 이 말은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얘들아" 이 말씀은 제자들을 어린 아이들로 만들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 말씀은 "너희에게 지금 아무것도 없지?" 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지금 고기도 없고, 믿음도 없고, 평안도 없고, 소망도 없고, 사랑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은 솔직하고 간단했습니다. "없나이다, 없나이다. 아무것도 없나이다." 자기의 실패와 공허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솔직한 회개의 고백이었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이 말씀은 제자들을 솔직하게 만들어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솔직하고 투명하게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꾸미며 위선을 떱니다. "뭐 별로 좌절하지도 않고, 별로 허탈하지도 않고, 뭐 괜찮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 앞에 거짓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제자들은 솔직했습니다. "없나이다, 아무것도 없나이다." 솔직해졌습니다.

  두 번째로 하신 말씀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는 말씀이었습니다(6). 고기잡이 방법을 새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지시를 따라 고기잡이와 전도 사역을 하여야 할 것을 이미 3년 전에 배운 일이 있었습니다. 깊은 데로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다시금 베드로에게 고기잡이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오른 편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왼 편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3년 전에는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주님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제 주님의 분부와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순종을 다시 배워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다시금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고 주님의 권위 앞에 다시금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주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세 번째로 하신 말씀은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12). 실패와 좌절과 피곤함과 배고픔에 쌓여 있던 제자들에게 따끈따끈하게 구운 떡과 생선을 가져 다가 주시면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친히 떡과 생선을 가져 다가 먹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먹이시기를 늘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음식을 먹여 주셨을 뿐 아니라 마지막에는 자기의 살과 피까지 먹여 주셨습니다. 요6:53,54,56에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말씀을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먹어야 합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님을 먹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고기잡이를 크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목회 사역과 선교사역을 크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먹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하고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와서 나를 먹으라".

  네 번째로 하신 말씀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가장 하시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인들이 피차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자기 나 사랑해?" 우리 주님이 왜 여러분들과 저를 연인처럼 보시면서 우리들의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어하시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아니 베드로의 가슴에 주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불타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또는 이것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의 몸과 우리의 집과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사역과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명예를 더 사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 보다는 내 사업과 내 왕국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한 순수하던 처음 사랑이 금이 가고 깨어지게 됩니다. 주님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도 금이 갔고 깨어져 있었습니다. 주님을 배신했기 때문이고 주님을 또 다시 등졌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방법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또는 이것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의 사랑의 호소에 베드로의 깨어진 사랑이 싸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가슴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사랑을 다시 배워주시고 사랑을 다시 만들어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님이 세 번째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뉘우치는 눈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허물 많은 베드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눈물의 사랑의 고백을 기뻐하셨습니다.

  다섯 번째로 하신 말씀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주님의 양을 먹이는 것으로 나타내라고 분부했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분부했습니다. 주님이 지으신 양이고 주님이 목숨을 버려 피값으로 사신 것이기 때문에 "내"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의 양을 먹이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다시 부여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 "어린 양"은 나이 어린 어린이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크고 힘있는 어른 양들만 먹이지 말고 지극히 작고 힘없는 어린 양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다. 영혼의 양식뿐 아니라 육의 양식도 먹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주님께서 분부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양무리들을 존귀히 여기며(시16:2) 그들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고 육신의 음식으로 먹이고 사랑으로 먹이고 주님의 살과 피와 생명으로 먹여야 합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먹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로 어른들을 먹이기 전에 먼저 어린 아이들을 먹이라고 분부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 양들을 먹이면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치라"고 분부하기도 했습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늙어서는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미래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이 모두 순교의 길을 걸어갈 것은 미리 보여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왕래하고 활동했지만 앞으로는 어떤 분에게 붙잡혀서 움직이고 활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십자가와 고난을 피해 다녔지만 앞으로는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음의 고난을 영광과 연결시키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 자신이 걸으신 그 길을 베드로와 제자들이 따라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만 순교의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일곱번째 말씀은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었습니다(19,22).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주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입니다. 맨 처음으로 되돌아온 느낌입니다. 우리는 처음 믿을 때도 주님을 따라야 하고 주님을 위해서 일을 많이 하고 난 다음에도 역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차음부터 마지막까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일임을 가르쳐 보여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만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고(시선을 집중)(히12:1,2), 주님을 생각하고(생각을 집중),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생각하고 주님만을 섬기고 주님만을 순복하고 주님만을 닮아야 합니다.

  오늘 주신 일곱 마디 말씀을 듣고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가던 길을 돌이켜 주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새롭게 헌신했습니다. 겸손과 솔직함과 순종을 회복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회복했습니다. 새로운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교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에게 주신 회개와 회복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회개와 회복의 은혜와 재 헌신의 은혜를 거듭거듭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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