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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릴 것이 없습니다" (딤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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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에베소 교회를 괴롭힌 거짓 교사들: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
① 거짓 교사들의 정체
바울은 자기 대신 말썽 많은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게 된 디모데에게 영적 스승이요 인생의 선배로서 여러 가지 권면(勸勉)을 합니다. 예배와 기도에 관한 주제, 교회 지도력에 대한 주제 등,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에베소 교회를 크게 어지럽히던 거짓 교사들에 대항해서 어떻게 '바른 교훈'(딤전 1: 10)을 가르쳐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에베소 교회를 혼란으로 몰고 갔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이와 같은 거짓 교사들에 대항해서 디모데가 가르쳐야 할 참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또 알아야 합니다. 딤전 4: 6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강조하고 있는 바른 교훈은 에베소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바로 깨우쳐서 좋은 양육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됩니다.

에베소 교회를 혼돈으로 몰고 간 거짓 교사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 세계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물질 세계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보았던 영지주의자들(GNOSISTS)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독교인이 된 다음에도 구약의 율법(TORAH)을 확고히 붙들려고 했던 유대계-기독교인들로 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명령들을 철저히 지키려고 했던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이지요.

그러나 바울과 디모데에게 적대감을 보이면서 에베소 교회를 크게 어지럽혔던 거짓 교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에베소 교회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꽤 영향력 있는 지도력을 행사했던 율법 교사들이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이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생활에 파선한 사람들'(딤전 1: 19)이었을 뿐 아니라, 그 '양심이 화인(火印)을 맞아서 외식(外飾)함으로 거짓말하는 사람들'(딤전 4: 2)이었습니다. 

②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
그렇다면 이들이 가르친 거짓 교설(敎說), 즉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본문 3-4절을 보세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그릇된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는 혼인을 금했고, 둘째는 음식물에 규제를 가했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반대했다는 것은 영혼과 육체를 이원적으로 나누어서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남녀간의 육체적인 교합(交合)을 죄악으로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거짓 교사들은 음식물에 대해서도 아주 까다로웠습니다. 아무 음식이나 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누어서 부정한 음식물은 절대로 입에 대서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컨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낙타나 사반(오소리), 토끼, 그리고 돼지고기와 같은 육식을 금하거나(레 11: 4-8), 지느러미나 비늘이 없는 물고기를 일체 먹지 말도록 금한 것(레 11: 10-12)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이 있어서 어떤 음식은 입에 넣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③ 거짓 교사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사람들
사도 바울이 볼 때 거짓 교사들이 가르친 극단적인 율법주의, 혹은 도(度)에 지나친 금욕주의는 교회 공동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것이 됩니다. 이들의 가르침이 진리인 것으로 착각해서 따르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겨서 결국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본문 1-2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교회 안에서 똑같은 목회자 밑에서 똑같은 말씀을 받지만 언젠가 믿음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다 끝까지 잘 믿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리 중에 일부는 반드시 믿음의 길을 떠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분명히 예언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은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이와 같이 믿음을 떠나는 사람들 중에 일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들이 믿음을 떠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혹하는 영, 즉 속이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떠나는 것이 영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말세가 될수록 공중에 권세잡은 악한 영들은 더욱 더 준동해서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길을 떠나는 것이 겉보기에는 세상적인 이유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영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 중 일부가 믿음의 길을 떠나 속이는 영과 사탄의 교훈을 따르게 될 것인데 이와 같이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들, 혹은 금욕주의자들을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양심이 화인을 맞는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양심에 불도장이 찍히거나 굳은살이 배기듯이 양심이 마비되어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외식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HYPOKRISIS'인데 그 원뜻은 '연극에서 배우 역할을 하다'는 뜻입니다. 진실은 아닌데 가짜로 연기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거짓말쟁이들인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서로 아구가 맞지 않아서 가르치는 것 따로, 행동하는 것 따로가 되고 맙니다.

기독교인이 결혼해서 안 된다, 특정한 음식은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입에 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모두 양심이 화인 맞아서 위선으로 거짓말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극단주의를 경계하세요.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지나친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것은 해롭습니다. 일본에서도 극우 민족주의자들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극단적인 좌익도 문제이지만 극단적인 우경세력도 분명 국가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도 극단을 피하고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용(中庸)의 길을 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균형잡힌 신앙,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심추가 분명한 신앙, 우리는 그런 신앙을 길러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육적인 세계는 무조건 나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극단적인 이원론이요, 기독교적 창조관에 부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을 하시오!" 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을 하지 마시오!" 하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비유를 들면 이렇습니다. 제가 개울물을 건너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은 제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물 안에 들어가지 마시오." "개울물 안에 있는 수초(水草)를 밟지 마시오." "나뭇가지를 밟지 마시오." 항상 부정형만 써서 충고할 것입니다. 한번도 "그 개울물은 얕으니 그냥 건너뛰세요!" 하면서 긍정적으로 격려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은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기보다 좌절시키고 낙담시키는데 더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 그 자체보다 사람이 하는 의식(儀式)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지요! 여러분,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의문(儀文)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고 까지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한 바울의 반박>
①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좋은 것입니다.
결혼이 죄악된 것이므로 하지 말아야 하며, 특정 음식은 불결하므로 먹지 말아야 한다는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가르칩니까? 3절에 보면 혼인이나 음식은 믿는 사람과 진리를 아는 사람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혼인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제정하신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창 2: 24을 보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막 10: 6-8에서 예수님도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사도 바울의 입장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바울의 기본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시기에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좋지만 정욕을 이기지 못할 경우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고 가르쳤습니다(고전 7장 참조). 독신으로 사느냐, 결혼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은사와 관계된 것이지 율법적인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지요(고전 7: 7).

음식에 대한 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은 육식은 일체 하지 않고 빵이나 채소, 물만 먹었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원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창 1: 31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음식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일체의 음식이 좋은 것이지요. 막 7: 1-23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모든 음식이 좋은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의 뱃속에 들어가는 부정한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부터 나오는 일체의 나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8장은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음식이기에 일체의 음식이 다 좋은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어떤 음식이든지 다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공동체의 건덕(健德)을 해치고 형제자매들을 넘어뜨리게 될 경우, 그 특정 음식 먹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까닭에 바울은 고전 8: 1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특정 음식을 먹고 안 먹고는 우리의 양심과 결부된 것이요 공동체의 건덕을 고려할 일이지 율법적인 규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②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신념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본문 4-5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의 창조 신앙이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사는 온 우주는 거룩하시며 좋으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기에 일체가 좋습니다. 우리가 볼 때 어떤 것은 악하고 추하게 보여도 모두가 좋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다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뱀이나 이, 구더기 같은 것은 더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전체를 다 함께 놓고 볼 때 그와 같이 추하게 보이는 것도 전체를 아름답게 만듭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에는 어두운 부분이 필경 있습니다. 이 음영도 전체의 미(美)를 위해서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태양이라고 할 경우 태양 빛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밝기나 선명도가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만물에도 하나님의 모습을 더 잘 반영해서 더 아름다운 것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모습을 덜 반영해서 덜 아름다운 것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좋으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은 좋은 것이라고 하는 낙관론이 기독교의 기본 신앙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몸의 세균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언뜻 생각하면 세균이란 해롭고 불결한 것이어서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 장기 곳곳에 세균을 적당히 배치해 놓으셔서 오히려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십니다. 입안이나 손등에 수많은 세균들을 유효적절하게 배치해 놓으셨기 때문에 이 세균들이 가지가지 항체들을 만들어 미생물과 싸우게 하시는 것이지요!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감사함으로' 라는 말은 희랍어로 'META EUCHARISTIA'라는 말인데 단순히 감사 드리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기도의 양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이 다 선한 것이기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피조 세계를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혼도 좋은 것이고 모든 음식이 다 좋은 것입니다. 결혼과 음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선이나 악이나 고통이나 이익이나 손해나 성공이나 실패나 갖가지 문제가 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릴 경우 그 어떤 것도 다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이 됩니다! 롬 8: 28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③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집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기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씀 드렸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는 능력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감리교 가정 예배서인 「하늘 양식」(2005)을 보니 이런 예화가 나옵디다. 카피르 사람 하나가 선교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자기가 기르는 사냥개가 선교사님이 주신 성경책을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치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위로하면서 성경책 한 권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원주민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불평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기르는 사냥개가 성경책을 망가뜨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성경책이 저희 집 개를 망쳐 놓았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선교사님이 이 말을 듣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성경책이 당신댁의 사냥개를 망쳐놓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제 우리집 사냥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먹기 전에 우리집 개는 사냥 하나는 정말 잘하는 아주 뛰어난 맹견(猛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으니 사냥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사나운 사냥개까지도 온순한 짐승으로 바꿀 수 있다는, 참 재미있는 예화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부패한 마음을 고쳐줍니다. 우리의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아 줍니다. 히 4: 12-13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 1: 1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 자체가 곧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 'LOGOS TOU THEOU'와 여러분이 드리는 감사의 기도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다 거룩하고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귀찮고 가슴 아프고 눈물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다 귀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만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눈앞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이든 보이지 않는 심리적이며 영적인 것이든지 간에--모든 것이 좋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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