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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가 주신 평안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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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종호 목사

(요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 14: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1. 하나님을 떠난 현대인의 가장 큰 고통은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다.

역사 이래 “염려”는 인간의 삶의 중심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이후부터 염려는 인간의 마음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이러한 염려로부터 자유를 누리려는 강한 욕망에서 출발했다고 보여 질 정도로 그러한 염려를 해결하기 위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인류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염려는 더욱 더 커졌습니다.

현대 정신의학자들의 통계 결과는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염려에서 출발하는 정신병, 우울증,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질병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지난주에 워싱턴의 로이터 통신은 미국인들의 77%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 세계에 전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외형적으로는 풍성해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황폐해져 갑니다.

이러한 인간의 염려는 염려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염려는 근심과 두려움을 일으켜서 결국 “불안과 공포”라는 모습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고, 정신질환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강요합니다. “근심(타랏소)”이란 “물을 흐리게 하도록 동요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래를 향한 자신의 인간적인 소망의 기본 구조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또한 “두려움(데일리아오)”이란 “겁에 질리다”라는 의미인데, 의지처를 상실한 자의 심리적인 반응입니다.

염려는 이러한 근심과 두려움을 통해 우리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갑니다. 염려가 아무런 특정 대상과 관련 없이 두려운 감정으로 다가올 때 “불안”으로 나타나고, 어떤 특정 대상과 관련되어 두려운 감정으로 다가올 때 “공포”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불안과 공포는 극히 정상적인 사람에게도 나타납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나 신경질환의 증세로 나타나며, 때로는 혈관, 운동신경 및 내장의 장애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결국 근심은 관계를 이루었던 기본 질서의 체계가 흔들린 모습입니다. 두려움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 관계의 상대자를 대적자로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염려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 자신과 자신 사이, 자신과 이웃 사이, 자신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깨트려서 근심케 합니다. 깨어진 관계의 상대자는 심판자이거나 대적자입니다. 깨어진 관계에서는 하나님도, 자기 자신도, 이웃도, 만물도 자기의 심판자나 대적자로 여기며, 그들을 생각할 때 겁에 질린 상태가 됩니다. 두려움 속에 빠집니다.

창세기 3장은 그 대표적인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모든 근심과 두려움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로부터 출발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는 모든 관계를 깨어 놓습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를 이루는 질서를 흔들어서 흐리게 하고, 동요케 하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의 상대자들을 자신의 심판자나, 대적자로 여기게 하여 그 마음이 겁에 질리게 합니다.

2. 불안과 공포를 해결하는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세상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졌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면 될 수록 염려는 증가하고, 그 염려로 인한 근심과 두려움은 불안과 공포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주와 선생으로 따르던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을 때 그것을 염려하며 근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요 14:27에서 그들을 향하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과 다른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근심”하지 말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해결해 주신다는 확실한 보증입니다. 즉 모든 염려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제자들의 근심과 두려움의 근원은 자신들이 주로 고백했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염려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염려를 해결하여 모든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불안과 공포를 이기게 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약속하시고, 근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14:26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끼치시는 방법은 성령과 말씀을 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과 말씀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인류의 가장 큰 고통인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 성령과 말씀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를 해결하는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그 선물은 약속하신대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이시며, 성경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구든지 성령을 모시고,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을 때 평안을 누립니다.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평안은 관계의 회복에서 오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염려가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깨어진 관계들 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평안(샬롬, 에이레네)”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에서 옵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에서 평안이 임합니다. 평안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인생에서 최고의 성공은 평안의 성취에 있습니다. 평안한 자는 관계가 회복된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망하는 “평안”은 주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나의 평안”, 곧 주님의 평안을 선물로 주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평안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끼치노니(압히에미)”라는 표현은 “유산으로 남겨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주인이 줄 때만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평안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소유에서 오는 세상의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께 순종함으로서 그 평안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그분께 감사하며, 공경하고, 행동으로 순종하는 표현이 있을 때 그 평안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대 목표인 그 평안은 우리의 순종 여하에 따라 지금 얻어 누릴 수도 있고, 일평생동안 누려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 같은 평안들은 일시적인 착각이나 마취일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 회복으로부터 오는 평안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참된 생명 유지와 생명 활동을 위한 능력으로서 하나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그 평안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평안을 누리는 자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염려로 인해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된 우리들에게 제일 먼저 이루어 주시기 원하시는 것이 이 평안입니다.

구약에서 민 6:24-26에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라고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도록 명령하시며, 그 축복의 내용 세 가지를 명시해 주셨는데 그중의 하나가 평강입니다. 평강은 평안과 같은 단어로서 “샬롬”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얼굴을 비취셔서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얼굴을 향하셔서 평강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세 가지는 보호와 은혜와 평강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복을 주시며, 우리들이 그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3. 우리의 첫 번째 개인 비전은 주가 주신 평안의 회복이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축복 내용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 깊이는 더욱 더 풍성합니다. 이제는 구약과 달리 성령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호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들이 언제나 하나님께 나아가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신분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 14:28에서,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더 이상 우리의 슬픔이 아닙니다. 크신 하나님께 나아감을 기뻐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기 위함이므로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기쁨의 모든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요 14:25에서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라고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요 14:29에서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이미 그 시작과 끝을 모두 목격한 자들입니다. 이미 우리 앞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의 약속을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선물로 받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 나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자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세상은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와 평강으로부터 오는 기쁨으로 이길 수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의 회복은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첫 번째 개인 비전입니다.

예수님은 요 14:30-31에서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세상 임금의 인도를 받으며 평안이 사라진 불안과 공포의 삶 속에 들어갑니다.

평안이 우리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상태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요 20:19, 21, 26에서 세 번씩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평안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요 16:33에서 예수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평안과 기쁨은 세상을 이기는 성도의 최고의 무기입니다. 평안과 기쁨은 이미 예수님께서 승리해 놓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통로입니다. 성령과 말씀 가운데서 평안을 회복한 자는 살전 5:16-18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염려를 주께 내어 맡기고 근심과 두려움 대신 평안을 누리는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약속하신 성령 안에서 평안을 누립시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기뻐합시다. 이 평안과 기쁨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 말씀의 가르치심을 받고, 그 인도하심에 순종합시다. 롬 8:6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엡 4:3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하셨고, 엡 6:15에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속에서 “평안”을 성령의 선물로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평안을 들고 세상 임금이 주관하는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평안으로 인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가 주신 평안은 불안과 공포를 이기는 영원한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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