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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소금이다 빛이다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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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마태복음 5 장부터 7 장까지를 산상설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설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이 산상설교의 제목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어떤 때는 설교보다도 설교 제목 정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설교의 핵심을 찌르는 인상적인 제목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산상설교 말씀 가운데 핵심을 찌르는 말이 무엇일까요. 산상설교는 크리스천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세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나? 그런 교훈이 가득합니다.

산상설교는 내용이 꽤 깁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핵심을 오늘 본문 가운데 있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소금과 빛!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소금과 빛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산상설교는 이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을까요? 소금과 빛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크리스천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소금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뚜막의 소금이 아닙니다.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소금이 부엌에 있으면 그 소금은 음식 맛을 내는데 쓰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소금은 그 쓰임새가 그 이상입니다.

부엌의 소금과 세상의 소금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소금은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먼저 소금은 음식 맛을 내는데 씁니다. 그런데 소금의 쓰임새는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테니스 코트에 소금을 뿌리면 흙이 단단해집니다. 세탁기에 거품이 많이 일 때 소금을 뿌리면 거품이 가라앉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묵은 때나 기름때도 잘 지워집니다. 옷에 피가 묻었을 때 소금물에 담가두면 깨끗이 지워집니다. 성에 낀 유리창은 소금 주머니로 닦으면 잘 닦입니다. 튀김 요리를 할 때 기름에 미리 소금을 조금 넣으면 기름이 튀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래서 야채나 생선을 튀기거나 볶을 때 소금을 넣으면 좋습니다.
밀가루를 반죽할 때 소금을 넣으면 탄력이 생깁니다. 소금이 밀가루의 끈적끈적한 성분인 글루텐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수나 스파게티를 삶을 때 소금을 넣으면 탄력성이 좋아져 쉽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두부를 요리할 때도 소금을 넣어주면 부드러워집니다. 야채를 데칠 때도 약간의 소금을 넣으면 물의 끓는 온도가 높아져 부드러워집니다.
또 소금은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생선이나 고기를 굽기 전 소금을 뿌려두면 표면이 재빨리 굳어져 쫄깃쫄깃한 맛이 납니다. 달걀을 삶을 때도 물에 소금을 조금 넣으면 껍질에 금이 가지 않고 잘 까집니다. 어패류를 손질한 뒤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도마에 남아 있을 때도 소금을 뿌리고 문질러 주면 깨끗이 닦입니다.
깎은 사과가 변색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0.5% 농도의 소금물에 담가두면 됩니다. 찐 감자를 먹을 때 소금에 찍어 먹으면 단맛이 납니다. 커피나 단팥죽을 먹을 때도 소금을 약간 넣으면 향기가 훨씬 좋아집니다.

현대 과학도 소금의 효능을 다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소금의 쓰임새가 이리도 많습니다. 그러나 소금의 효능 가운데 최고의 효능은 썩는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해 줍니다.

즉 세상의 소금이란 세상의 부패하고 썩은 것들을 막으라는 사명입니다. 세상이 썩어 가는데 크리스천들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 소금은 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무 쓸데없어 밖에 버려집니다.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본문 13 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3>

작년에 어느 권사님이 김장 김치를 담갔습니다. 배추도 좋은 것을 골랐고, 고춧가루나 젓갈도 좋은 것을 사서 양념을 했습니다. 그래서 막 익었을 때 참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도 먹지 않았는데 김치가 물러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소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같은 소금을 쓴 다른 집 김치도 형편이 같았던 것입니다. 요즘 시중에 소금이 대부분 중국산입니다. 국산 천일염을 써야 김치 맛이 오래 갑니다. 나쁜 소금을 쓰니 보관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좋은 소금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소금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썩은 악취로 가득합니다. 죄악이 널리 퍼졌습니다. 죄는 세상에 너무 깊이 넓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옆 건물에 요즘 게임방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게임방에 전자오락실이라는 글이 붙어 있습니다. 문이 조금 열려 있기에 들여다보니 슬롯머신이 가득합니다. 전자오락이 아니라 노름하는 기계입니다. 이십여 평 되는 데에 의자가 촘촘히 50 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다른 곳은 불경기라 손님이 뜸한데 이곳은 사정이 다릅니다.

요즘 연예인들이 저마다 누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모델료로 수억 원씩 받고 있습니다. 그 사진 가지고 무슨 돈벌이가 될까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인터넷이나 휴대폰 업자들이 누드 사진을 보여주고 몇 백억씩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 보는데 300원이랍니다. 몇 명이나 볼 것 같습니까? 어떤 연예인 사진은 800 만 명이 접속을 했다고 합니다. 사진이 수십 장이 있는데 대충 계산해도 수익이 200 억 원 정도 됩니다.
이러니 음란산업이 수그러들겠습니까? 죄악이 판치는 곳은 불경기가 없습니다. 돈 덩어리가 굴러다닙니다. 청소년들이 이런 음란한 문화에 오염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썩은 것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아주 심각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 때문에 망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 도시 전체를 태워 없앴습니다. 도를 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소돔과 고모라는 죄 때문에 심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에 의로운 사람 열 명만 있었어도,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 의로운 사람들이 바로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죄악이 판을 쳐도 소금 크리스천이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능히 그 죄악을 소멸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법원에서 희한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38 살 김 모씨가 노래방 화장실 앞에서 술 취해서 어른에게 시비를 걸던 고등학생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습니다. 치료비가 2천 7백만 원이나 나왔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미성년자가 시비를 걸면 피하거나 잘 타일러야 하는데 꾸짖다가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에 10 %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료비에서 10%를 빼고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요즘 세태가 이정도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소금 역할을 하기가 쉽지만은 안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무기를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빛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소금인 동시에 또한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4 절부터 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이 빛도 세상의 빛입니다. 그것도 작은 빛이 아니고 아주 광대하고 큰 빛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큰 빛이면 동네를 다 훤히 비췹니까? 그것도 산 밑에 동네도 아니고 산 위에 동네를 밝히는 빛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를 다 밝히려면 높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집안을 밝히는 작은 불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히는 빛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무조건 이깁니다. 어두움은 빛에 맞서 싸우지 못합니다. 빛이 나타나면 어두움은 무조건 물러갑니다.

빛도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빛입니다. 창조에 기초가 빛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없으면 이 세상도 없습니다. 식물은 빛으로 탄소동화작용을 합니다. 빛에서 양식을 얻습니다. 빛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을 유지하도록 에너지를 줍니다.

이 빛을 연구해서 인류에게 문명의 혜택을 준 이가 아인슈타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빛에서 상대성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자동차의 길을 찾아주는 위성항법장치(GPS)가 이 상대성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음악을 듣는 시디플레이어도 레이저를 이용한 것입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빛의 유도 방출에 대한 연구의 결과입니다. 이 레이저로 바코드를 읽습니다. 원거리 측량을 하기도 합니다. 의료용 기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음주단속 기계도 아인슈타인의 빛이 알갱이라는 것을 발견해 만들어졌습니다.

빛을 전기 에너지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 빛을 이용해서 현대 문명을 이루었다고 해도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빛은 빛의 여러 가지 효능 가운데 소금과 같이 부패를 막는 기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빛은 살균력이 있습니다. 빛은 썩은 쓰레기를 분해시킵니다. 빛이 없는 어두운 곳이 썩습니다. 빛이 있으면 곰팡이나 이끼가 끼지 못합니다.

세상의 낮과 밤거리를 비교해 보십시오. 빛이 없는 밤이 되면 죄인들이 밖으로 나와 활개를 칩니다. 술집이 열리고 죄를 먹고 마십니다. 온갖 범죄가 밤에 주로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11:9-10>

빛은 어두움을 드러냅니다. 죄가 가득한 세상에 빛을 비추면 그 죄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빛이기 때문에 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을 꺼내서 죄를 드러내 부끄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등불을 켜면 등경 위에 두어야 합니다. 등불을 말 아래 두지 않습니다. 말이란 됫박을 뜻하는 것입니다. 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빛이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아예 불이 꺼지고 맙니다. 그래서 등불은 높은 곳에 둡니다. 그래야 집안이 다 비췹니다.

우리가 빛을 발하는 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빛을 발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빛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남의 빛을 받아서 반사합니다. 그래도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달입니다. 달은 태양빛을 받아서 지구에 빛을 비췹니다. 보름달이 뜨면 밤길도 환합니다. 그러나 그 빛은 태양에 비하면 형편없이 약합니다. 보름달이어도 구름이 끼면 구름을 뚫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 빛을 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발광체라고 합니다. 발광체는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항상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빛의 반사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입니다.

발광체가 되려면 스스로를 태워야 합니다. 촛불을 빛을 내기 위해서 제 몸을 태웁니다. 등불은 빛을 내기 위해서 기름을 태웁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려면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도 같이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따라서 하면 안 될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소금입니다. ‘소금이 되라’가 아니고 이미 소금입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빛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고 벌써 빛입니다.

소금과 빛이 되어 세상의 더럽고 썩은 것을 치료해야 합니다. 세상이 병이 들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가정의 소금과 빛입니다. 가정은 쉬는 곳입니다. 가정이 병이 들면 가족들이 쉬지 못합니다. 화목이 깨지면 가정은 쉼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소금을 말씀하실 때 화목을 강조하셨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막 9:50>
우리가 소금이면 맛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 화목하려면 우리 집에서 내가 맛을 내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화목해 질것입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집에 웃음꽃이 피겠습니까? 가정에 예수를 믿는 식구 한 명만 있어도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사회의 소금과 빛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깊은 병이 들어 있습니다.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맙시다. 이 사회에는 크리스천이 천만 명이나 됩니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고, 불법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소금이고 빛인데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소금이 맛을 내려면 먼저 녹아야 합니다. 빛을 발하려면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나의 희생 없이 소금과 빛이 될 수 없습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누가 질서를 무너뜨립니까? 맞서 싸워야 합니다. 잘못을 지적해야 합니다. 사회를 계몽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자연의 소금과 빛입니다. 자연 생태계는 최근 몇 십 년 동안 심각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야생동물들이 멸종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에게 이를 지키고 관리케 하셨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크리스천의 사명입니다. 자연을 지키는 일에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해야 합니다. 하수구에 아무것이나 흘려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물건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육되는 소가죽 같은 것은 괜찮지만 안 되는 동물 가죽들이 있습니다.
몸에 좋다는 보신용 약이나 음식을 너무 밝히지 마십시오. 특히 한국 사람들 세계에서 알아줍니다. 부끄러운 최고입니다. 우리가 앞장서서 하나님이 주신 물과 공기와 땅을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우리는 소금이다. 우리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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