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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손과 발 되어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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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오늘 우리는 공동의회를 통해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웁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는지 주님의 뜻을 여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는 기도한 후에 조건에 맞는 사람을 놓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성령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가려서 뽑으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적으로 투표를 합니다. 사람이 뽑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기다립니다. 사람을 보는 주님의 눈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 왔기에 교회가 투표로 뽑는 이 일도 어느 정도 정확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뽑는 바로 그 사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뽑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이 고르시는 바로 그 사람을 헤아려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뽑는 사람들은 멋진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신앙의 모본이 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기준을 높이 두면 우리 모두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준을 약간만 낮추면 모두 합당합니다.

사실 오늘 투표는 장로를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을 세울 때는 보다 기준이 높아야 합니다. 물론 안수집사나 안수권사가 장로보다 신앙이 부족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장로가 더 높은 지위라는 것도 아닙니다. 역할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 근거해서 안수집사와 안수권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집사를 뽑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집사를 세운 후 크게 부흥했습니다.
7 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 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제사장들은 유대교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제사장은 구약의 율법대로 제사를 집례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생기면서 그 제사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단번에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직업을 잃는 것입니다.

가장 마지막에 꺾일 것 같은 제사장들이 개종을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결단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은 교회가 성령이 충만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첫째 말씀이 왕성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까지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교회가 일곱 명의 집사를 세우고 나서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과 집사들의 역할분담이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군들의 수가 늘어난 것도 성장의 비결입니다.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는 갑자기 성장한 교회입니다. 아직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임에 대한 원칙과 조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이 있었지만 그 지도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사실은 더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사도들이 공회에 잡혀가고 핍박을 받을 때라 그런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문제가 터졌습니다.

문제는 돈에 대한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 연보를 바쳤습니다. 연보한 것은 좋았는데 이 연보를 사용하는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있기 전에 유대인들에게는 회당이 있었습니다. 당시 회당에는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아주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매 금요일 아침마다 시장과 개인 집을 돌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금품과 식량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모은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배급되는 것을 쿱파(Kuppah)라고 하였습니다. 쿱파의 의미는 ‘바구니’라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매일하는 모금운동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갑자기 일어날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금을 타무이(Tamhui)라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쟁반’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회당의 전통에 따라 초대교회도 신자들은 사도들의 발 앞에 많은 연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은 회당 시절의 바구니와 쟁반보다 훨씬 규모가 있는 물질이었습니다.

신도들은 은혜를 받은 대로 연보를 가지고 왔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본토 유대인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본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아람어를 사용했고,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하나는 해외에서 돌아온 이방 유대인입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땅 밖에서 살면서 이방세계 의 통용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명절을 모국에서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서 다시 외국으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구제가 히브리파 쪽 과부들에게 몰렸습니다. 사실은 헬라파 쪽 과부들의 사정이 더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손이 안으로 굽었는지 사도들은 토박이 교인들에게 손이 더 갔습니다. 그래서 헬라파 교인들이 히브리파 교인들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과 원망입니다. 모세가 출애굽 했을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원망으로 모세의 지도력을 흔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5:42 말씀을 보니,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가르치기와 전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교회가 커지면서 사도들이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났습니다. 원래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한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로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사도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누구에게 더 주고, 누구에게 덜 준다고 원망했습니다. 사도들의 사랑이 한쪽으로 몰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조금만 기다리면 다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기다리질 못하고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헬라파 쪽 지도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재정은 이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본연의 임무인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곱 집사를 지도자로 세우니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제는 헬라파를 잘 아는 일곱 집사들이 감당했습니다.

집사는 제직회의 회원으로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직분입니다. 재정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집사를 세울 때, 세 가지 조건을 찾았습니다.

본문 6:3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3>

첫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반대로 성령이 빠져 나간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고 성령이 빠져 나갔다면 어찌 될까요? 바람이 빠진 풍선. 탱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쭈글쭈글합니다.

성령은 원래 바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루아흐’나, 헬라어 ‘푸뉴마’나 다 바람이란 뜻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빠지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있는 일도 안하고 시키는 일도 안합니다. 새 일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겸손하게 일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길 줄 압니다.
이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과 같습니다.

5 절 말씀을 보면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뽑힌 7 집사는 모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세우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믿음 충만과 이어져 있습니다.


둘째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경우도 반대로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지혜 없이 일하는 사람은 헛수고만 합니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그릇 칩니다. 일하는 데는 순서가 있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이 순서를 뒤바꿔합니다.
지혜는 생각하는 힘이 넓고 깊은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이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회 일은 열심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칭찬을 듣는 사람입니다. 칭찬은 일의 결과입니다. 일하는 과정에는 원망을 들을 수도 있고, 비난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끝까지 일을 추진해서 그 결말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칭찬을 받는 사람이어야 할까요? 뭐든지 한 가지라도 잘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 일꾼은 백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라도 하나님이 일하라고 주신 은사라고 깨닫고 열심히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할 사람은 교회 모임에 안 빠지고 열심히 나오는 사람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배에 안 빠지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칭찬 들을만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까? 성품이 착하고 너그럽다고 칭찬 들을 수 있습니다. 묵묵히 궂은일을 감당해도 칭찬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인정받고,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이 세 가지가 갖춰진 사람을 찾았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

오늘 우리 멋진교회는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할까요?


첫째로 임직자로 뽑히면 아멘! 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뽑혔는데 나는 부족하다며 임직을 사양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뽑히는 모든 분들이 겸손하게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사양한다면 한 사람도 뽑힐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족하지만 이번 기회에 앞으로 주님께 잘하라는 기회 주신 줄 믿고 임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부족한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도생활도 하고, 십일조 생활도 하고, 구제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잘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교회를 즐거이 나오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교회 나오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예배시간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임직자는 교회의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멋진교회를 사랑하고 어디서든지 이 교회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는 내가 지킨다.’ 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목사를 도와 교회 부흥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는 사도들의 일을 도왔습니다. 여러분 저는 주님의 손과 발 되어 주님을 섬기려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를 돕는 것은 주님의 손과 발이 되는 것과 동일합니다.

임직이란 주님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눈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부흥시키라고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교회에서 임직자로 세워지길 바랍니다. 예수를 수십 년 믿으면서도 집사, 장로 못 되는 건 자랑이 아닙니다. 여자도 장로로 세운지 벌써 십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 모두 꼭 장로까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아유! 난 집사가 제일 좋아.”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집사는 서리집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리가 뭡니까? 정식으로 못하고 대신 임시로 그 보직을 맡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리집사는 임기가 일 년입니다.

서리집사가 제일 편하다는 말은 교회 일에 푹 빠지기 싫다는 뜻도 됩니다. 적당히 예수 믿으면서 편하게 교회 다니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임직자로 세움을 받는데 뒤로 빼지 마시고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되고 싶다고 맘대로 됩니까? 교인들 과반수 이상이 나를 생각해 주고, 인정해 주어 하나님 뜻 가운데 세워지는 것입니다. 한 평생에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 멋진교회는 예루살렘교회처럼 새 일꾼들을 통해 말씀이 점점 왕성해 질것입니다. 교인들의 수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허다한 불신자의 무리가 이 도에 복종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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