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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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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최약선 목사

한 정신병자가 밤에 몰래 백화점에 침입했습니다.
밤새도록 장난질을 했습니다. 가격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붙인 것입니다.
만원 자리에는 100만원자리를 붙여놓고, 200만원자리에는 5천원 붙여놓고.. 자기 마음대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백화점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는데.. 손님들이 들어와서는 이상한 눈빛도 없이 그냥 엉터리 가격표를 보고 그대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비꼬아 만든 이야기입니다.
현대인들은 가치관이 혼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뭐가 정말 중요하고 뭐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가치 있는 것을 싸게 취급을 하고 쓸모없는 것이 정말 귀한 것인 줄 착각하고 사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혼돈된 가치관을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엉터리 가격표 백화점에 와서 물건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내 생활을 한번 살펴보세요! 나는 정말 아까운 내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정말 내가 귀하다고 붙잡고 있는 그것이 내 인생에게 귀한 것인가... 한번 다시 보라는 것입니다.
아까운 인생을 쓸데없는 것, 가치 없는 것을 붙잡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인생을 마친다면 얼마나 인생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마 머리 좋은 분은 이 이야기를 하면 제가 이 이야기 전에 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화장실을 위해 산 여인”화장실을 위해 산 여인 이라는 예화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아실 것입니다. 어떤 가난한 집에서 남의 집 셋방 하나를 얻어서 살았습니다.
화장실을 주인집과 같이 쓰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늘 문제입니다. 화장실을 하나 쓰는 것도 주인 눈치를 봐야 되고.. 주인집에서 쓸 때는 들어갈 수도 없고.. 그래서 얼마나 괴로워요..
그래서 이 여자가 결심을 했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화장실 딸린 집을 하나 마련하리라.. 그리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몇 년 후에 정말 큰 집은 아니지만 집 한 채를 샀습니다.
화장실이 있어서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이제 주인 눈치를 볼 것도 없고..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아파트를 샀다고 해서 구경을 갔는데.. 이 집은 화장실이 두개네?
거실 옆에도 있고, 안방 뒤에도 하나가 또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니까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침에 아이들은 많은데 학교 가기 전에 자기가 먼저 들어가겠다고 싸우고..
화장실 두개 있는 집에 살면 진짜 좋겠다.. 그래서 거기에 인생을 또 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도 화장실 두개 있는 아파트를 사리라... 하고 죽어라고 돈을 모아서 화장실 두개 있는 아파트를 샀대요... 이제는 아이들이 눈치 볼 것도 없고..
그런데 얼마나 얼마나 고생하고.. 그것을 사겠다고 먹을 것도 먹지도 못하고.. 병들어서 몇 달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웃지만 우리도 거기에서 거기입니다. 우리도 헛된 것을 위해서 내 인생을 낭비하고 헛된 것에 끌려 다닌다면 내 인생도 화장실 두개짜리, 화장실을 위해 산 여인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거할 집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 인생을 걸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옷? 적당히 입을 것 이 있으면 되는 거지.. 꼭 명품을 걸쳐야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집? 적당한 집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 꼭 호화로운 집이 있어야 인생이 아름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런 곳에 인생을 걸고 살면 안됩니다.
인생은 자기 인생을 걸 수 있는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합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산다! 나는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을 산다! 내 인생의 목표는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그 말을 똑똑히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신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어물대고 말을 못합니다.

오늘 읽은 시 한 구절은 유명한 다윗 왕이 썼습니다. 그는 부귀영화를 누렸던 왕입니다.
그가 왕이었을 때 이스라엘은 가장 번성했습니다.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늘날 노래하기를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다윗이 위대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소망을 둔 것도 아니고, 세상 물질에 소망을 둔 것이 아니라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렇게 인생을 사니까 다윗의 인생이 위대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평가할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이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은 다윗밖에 없습니다.
왜? 다윗은 언제나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소망을 주님께 두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의 믿음을 본받아 삽시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소망을 주께 두고 살았는가..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아멘.
한절 읽으면 꼭 아멘하고 꼭 고개를 들고 저를 보세요!
인생의 연약함을 알게 하사... 다윗은 인생의 연약함을 알았기에 소망을 주님께 두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바로 살려면 인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인생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알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사람이 천만원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해도 무엇을 해야 수지가 맞을까.. 무엇을 해야 성공할까. 생각하고 알고 시작하는 것인데.. 천하보다 귀한 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무 계획도 없이 알지도 못하고 그냥 되는대로 산다면 하나님 앞에 죄악이지요.
그러면 인생을 바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여기에서 고백하기를 인생은 연약한 존재임을 그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 소망을 두지 않고 주님께 소망을 둡니다.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나의 종말..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만 보고 삽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은 내 인생의 내일을 보고 삽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인생에 끝만 보고 사는 것입니다. 왜냐? 인생의 성공 실패가 오늘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끝 날에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막이 내려온 후에 우리는 심판장 되시는 주님 앞에서 그 때 내 인생의 성공 실패가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인생의 종말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늘 기도하면서 그려봐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그려봐야 됩니다.
그렇게 사는 인생은 소망을 주께 두는 사람이고, 그런 인생이 인생을 바로 살고 승리합니다.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모세는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말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면 우리의 평생이 일십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 인생은 그냥 번개같이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천년만년 사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내 인생이 심판장 되시는 주님 앞에 선다..
그것을 생각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루하루 바로 살 수 있습니다.
또 다윗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연약함을 모르니까 소망을 주님께 두지 않고 마치 내가 서면 서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인생처럼 연약한 존재가 없습니다.
인생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질그릇과 같습니다. 조금만 부딪히면 금이 가고 깨지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이것이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깨집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박살나고 맙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지켜주십니까?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사는 자들을 지켜주십니다.
그릇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그 그릇의 위치가 달라지고 가치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질그릇이라도 밥을 담아서 주인 밥상에 올라가면 밥그릇이고... 개밥을 담으면 개밥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삽시다! 우리 그렇게 살아요..
그렇게 살아야 내 인생이 아름다워집니다. 인생은 보잘 것 없습니다.
내가 알면 얼마나 알고, 내가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습니까? 인생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려면 내가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시고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귀하게 사용해주십니다.

두 번째, 다윗이 무엇을 깨달았는고 하니, 5절을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두 번째 다윗이 소망을 주님께 둔 이유는 인생은 허무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통 사람이 이야기했으면 착각일까.. 그런 말을 하겠는데..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부귀영화 다 누리어 보니까 그것이 인생의 다가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허무하다는 말은 허무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참 소망이 나에게 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만족할 줄 알았는데.. 있어보니까 또 불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다윗이 누려보지 않은 것이 뭐가 있습니까?
권세가 없었어요? 물질이 없었어요? 세상적인 기쁨이 없었어요? 다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그것은 허무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의 소망을 주님께 두겠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리빙스턴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리빙스턴이 아프라카로 선교사로 떠난다고 할 때, 가장 말렸던 사람이 리빙스턴의 형이었습니다.
너는 아프리카로 떠나서 이름 없이 살다가 죽으려고 하느냐..?
그래도 가겠다고 하니까.. 네가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갈 때.. 나는 유명한 의사가 되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겠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빙스턴은 아프리칼 들어갔고 그의 형은 자기가 말한대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잘 살다가 둘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형백과사전에 보면 리빙스턴의 형은 돈을 많이 벌고 영국에서 잘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백과사전에는 딱 한줄! 리빙스턴의 형! 이 끝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선교하다가 죽은 리빙스턴.. 그의 시신이 영국에 돌아올 때 영국에서 국장처럼 치루어 주었고 영국에서 유명한 분이 들어가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습니다.
누가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허무하기에 나는 소망을 주님께 둡니다...
여러분에게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열심히 노력하세요! 그러나 여러분의 인생을 그 곳에 빠뜨리지는 마세요!
여러분은 그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지... 거기에 여러분에 인생을 빠뜨리지 마세요!
여러분은 소망을 주님께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다.”
얼마나 진실한 고백입니까?
사람이 나는 든든히 섰다.. 그럴 때가 많지요? 내가 이렇게 건강한데.. 믿지 마세요!
하나님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실패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내 인생을 성처럼 쌓고 있는데 내 인생쯤이야 편하게 살 수 있을거야..
NO! 아닙니다.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 바벨탑입니다.
내가 이렇게 힘이 있는데..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하나님 앞에 나의 작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나는 참 작은 존재이다.. 그러니까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다윗이 위대한 인물이 된 두 번째 이유입니다.
허무주의자가 되지 마세요! 내 인생에게 나의 소망을 두지 마세요!
주님께 소망을 주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다윗은 인생은 어리석은 존재이니... 나는 소망을 주님께 둡니다. 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인생은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인생을 바로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고집이 아닙니다.
근본을 모르는데 어떻게 바로 삽니까?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인생을 어떻게 바로 삽니까?
적어도 우리는 근본을 알고 살아야합니다.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이것을 모르니까 인생들이 어리석게도 우왕좌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보니까 그림자같이 다니며.. 그랬습니다.
이 말은 헛되게 산다는 말입니다. 헛된 것을 쫓아다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 없이 나 혼자 다니는 것은 그림자처럼 다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명예를 쫓아다닙니다. 이것은 그림자처럼 다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멋진 인생이 목표인줄 알고, 돈만 번다면 믿음생활이고.. 뭐고 없습니다.
부모도 안보입니다. 그것은 다 그림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없어지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지 말고 주님과 함께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 다니는 것은 그림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림자는 없어지면 끝나버립니다.

다른 종교의 이야기를 하면 안 되었습니다만 스님들 중에는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쓴 글 중에 그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떤 중인데.. 정신이 잘못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술을 잔뜩 먹고서 절로 들어가다가 개울창에 빠져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지나가다가 스님의 옷을 훔쳐갔습니다. 훔쳐갈 것이 따로 있지.. 그것을 훔쳐다가 뭐하려고.. 그런데 아침에 스님이 깨어서 탄식을 합니다.
나는 여기 있는데... 스님은 어디 갔느냐...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자신을 생각해봅니다. 종종 최약선은 있는데 최 목사는 없는 때가 있더라구요
그렇다면 내 인생이 과연 가치 있는 인생일까..
여러분도 아무개는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아무개는 없다면..
예를들어 회사에서 김 과장은 있는데 김 집사는 없다면.. 그것은 그림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이 그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은 어리석은 존재이니까 나는 소망을 주님께 두고 날마다 주님과 함께 가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인 나만 있고.. 나만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소망의 주님과 함께 다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으니까 헛된일에 분요하니..
헛된 일.. 쓸데없는 일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안나온 집사님에게 주일날 왜 안 나왔냐구 물으면 바빠서 안나왔다고 합니다.
뭐가 바쁩니까? 딸기축제 가느라고 바쁘다고..
그것이 바쁜 것이냐구요.. 그것은 헛된 일에 바쁜 것입니다. 등산 가느라고 못나왔대요.. 그것은 헛된 일에 바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왜 인생을 낭비하는지 아십니까? 헛된 일을 쫓아다니느라고 .. 헛된 일에 바쁩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과 같이 바쁘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주님은 교회당에다 가두어놓고, 주님은 안방에다가 열쇠로 잠그고 가두어 놓고..  따라오지 마세요.. 그리고 나 혼자 바쁜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헛된 일에 분요한다는 말은 헛된 것에 욕심을 부린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헛된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마세요! 그러면 인생이 망합니다.
사망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망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생들이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아야 되는데.. 어리석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림자처럼 다니고 헛된 일에 바쁘고 헛된 일에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부부가 결혼해서 30년을 잘 살았습니다.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다.
천사가 나타나더니 어려운 가운데 30년을 잘 살았구나...그러면서 아내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아이들은 많은데 집은 작고, 우리아이들 공부방도 하나씩 주고. 집 앞에는 조그마하지만 꽃도 심을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집 하나 주세요..
자고 일어나면 너의 소원이 이루어졌을것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로 집이 변했는데.. 아이들에게 공부방도 하나씩 줄 수 있고.. 집 앞에는 작지만 꽃도 심을 수 있는 정원도 있는 집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천사가 또 나타나서.. 이번에는 남편에게 소원하나를 말해보라고 했다고 하빈다.
그런데 이 남편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렇게 좋은 집에서 한 30년 젊은 아내와 함께 살아봤으면..
그랬다고 합니다. 남자를 믿지 마세요!
그런데 천사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래.. 네 소원도 들어주마. 자고일어나면 그대로 될 것이다..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어떻게 되었는고 하니, 60살 먹은 네 남편이 90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네 소원대로 30살 젊은 내 아내와 살아라.. 그랬다고 합니다.
아직도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나봐요..
쓸데없는 욕심 갖지 마세요! 망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제 자신도 그런 것을 많이 깨닫습니다.
이것인줄 알고 하면 아닌데.. 괜히 쓸데없는 것에 그림자처럼 다니고.. 헛된 일에 바빴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오늘 539장 찬송을 부르는데 뜻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희 집에 문둥이 거지 두 사람이 밥을 얻어먹으러 왔다가 가면서 부른 찬송이 539장입니다. 문드러지고 손가락도 없고.. 문둥이 두 사람이 보릿살 한 바가지, 묶은 김치 한 사발 얻어가면서
이 몸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저는 지금도 부여군 양화면 월양리.. 그 곳에 가면 옛날 그 찬송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주께 두어야합니다.
인생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인생은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인생은 허무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주님께 두고 살아서 여러분의 인생이 정말 마지막 날에 아름다운 해처럼 빛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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