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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갈 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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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오주철 목사

어떤 가정의 아이가 국사, 세계사 성적이 좋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아이의 아버지가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학교 다닐 때 국사랑 세계사 성적이 어땠습니까?"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신도 변변치 못했습니다. "저도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이 말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사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많은 질병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는 육체적인 유전 외에도 정신적인 유전이 있습니다. 좀더 나아가서는 영적인 유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유전은 쉽게 인정하지만 정신적인 유전, 내지는 영적인 유전은 가볍게 취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적인 유전 못지 않게 정신적인 유전과 영적인 유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정신적 유전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풍성한 영적인 유전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어둡고 암울했던 정서적인 분위기를 내 대에서 끊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살았던 불신앙의 흐름을 내 대에서는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는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우리의 인생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말이 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에고치가 입으로 실을 뿜어서 집을 지어 살듯이 사람은 일평생 그가 하는 말에 의하여 자기 인생이라는 집을 지어 갑니다. 일생동안 그가 무슨 말을 들었는가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어 집니다. 특별히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살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고로 언어가 건강한 사람이 인격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성공적인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에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들은 말은 뇌에 새겨지고, 그것은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에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들은 말은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이 있습니다. 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쏟아진 말은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이 있습니다. 내 삶을 완성해 가는 힘이 있습니다. 성취해 가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8장 21절에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그렇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좋은 열매를 먹습니다. 반면에 나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나쁜 열매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내 입으로 뱉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하면 축복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나쁜 말을 하면 저주가 되어 되돌아올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운명을 바꾸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말투를 바꾸십시오. 말버릇을 고치십시오. 정제되지 않는 그 말투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도 없고, 건강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4장 28절에서 이렇게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하십시오. 축복의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축복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가만히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혹여 나 자신에게 남아있는 말의 상처가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던진 가슴 아픈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는 분은 없습니까? 지금까지 기억할 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 모든 상처와 아픔들을 오늘 이 시간 주님의 보혈의 피로 깨끗이 치유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들이 살아오면서 받았던 부정적인 말을 오늘 내 아이들에게 꼬리표로 붙여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상처가 되었던 아픈 말을 혹여 여러분의 가족과 자녀들에게 꼬리표로 붙여놓지는 않았습니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그것들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저주의 꼬리표를 잘라버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된 사람은 그 자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되어 그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죤 홉킨스 의과대학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부모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하는 자녀들, 마음속에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들은 고혈압, 동맥관상질환, 악성종양, 정신병, 자살 충동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그 지수가 높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은혜로운 말을 하려고 스스로 훈련하십시오. 제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들으신 그대로 이루어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을 보면 언제나 맨 마지막에 가서는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 지어다",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 지어다"라고 하면서 은혜가 충만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만큼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도는 누구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은혜로운 말을 합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말이 언제나 거칩니다. 무엇보다도 성도가 은혜를 받지 못하면 성도다운 구실을 못합니다. 사람이 철이 나야 사람 노릇을 하듯이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성도다운 구실을 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한심하고 추하듯이 오래 예수를 믿은 사람이 성도다운 구실을 못하면 한심하고 추해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기 전에는 성도다운 구실도 못하고 추했던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아름다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위로부터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라는 말의 뜻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은총'이라는 뜻과 '아름답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름다워집니다. 또한 말과 생각이 아름다워집니다. 행동이 아름다워집니다.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우리가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더 충성되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못합니까? 왜 나쁜 말만 골라서 합니까? 왜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 말만 하게 됩니까? 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듣습니까?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없고 자기 자신만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충만했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 늘어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부흥하려면 먼저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으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됩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풍성한 은혜를 받으십시오. 은혜의 강에 나를 완전히 담그십시오. 은혜의 소금에 나를 푹 절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은혜 받을 때입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으면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바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은혜라는 말 보다 더 자주 사용되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은혜 받아야 한다, 은혜 받았다, 은혜가 메말랐다, 은혜가 식었다,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가정이 평안한 것, 자녀가 잘 되는 것, 사업이 번창하는 것도 은혜라고 말합니다.

은혜를 히브리어로는 헨(hen)이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카리스라고 합니다. 헨이나 카리스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노력의 댓가나 행위의 결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아무런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또한 은혜란 구원의 첩경입니다. 율법을 행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믿을 때에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도 은혜로 받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성령을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도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란 믿음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결코 믿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죽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누가 "당신, 예수 믿으십시요, 믿지 않으면 죽이겠소"라고 협박을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믿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핍박을 해도 예수를 믿습니다. 생명을 위협해도 내가 믿는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보십시오.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시기하는 관원들이 그를 사자굴에 던져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만 기도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깁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믿음을 지켜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사자 입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분명히 은혜만이 믿음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디도서 2장 11절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하신 그 엄청난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흔히 은혜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시시하고 값없는 구호물자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보면 자기의 피와 땀이 섞여진 것은 소중히 여기지만 누구에게서 받은 선물은 시시하게 여겨서 얼마동안 가지고 있다가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란 그런 시시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희생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희생이 은혜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에 은혜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합니다. 경홀히 여기게 됩니다. 무시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에 보면,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소중한 것인데 그것에 이르지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우습게 여기고 멸시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하신 말씀이 "쓴 뿌리가 나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우습게 여기는 자가 곧 쓴 뿌리인 것입니다. 그러한 쓴 뿌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러움을 입게 됩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됨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은혜를 멸시하고 망령되이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는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값지고 귀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들과 비교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항상 은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시간마다 때마다 새롭게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아주 소중한 교훈의 말씀을 합니다. "은혜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지거나 주식이 떨어지면 아우성을 치고 야단입니다. 어쩌다가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면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은혜에서 떨어졌는데도 애통해 할 줄을 모릅니다. 은혜가 식어졌는데도 가슴을 치며 울 줄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의 무디어짐을 두려워하십시오. 육체가 무디어지면 분명히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찬양을 해도 내 심령이 무디어져 있다면 이것은 아주 심각한 영적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심령이 병들면 결국에는 은혜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은혜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삼손은 사사로 하나님의 큰 권능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군인 천명을 죽였습니다. 크고 무거운 성 문짝을 맨손으로 뚝 떼어 어깨에 메고 헐몬산 꼭대기에 옮겨다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센 장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들릴라고 하는 여인으로부터 들어서는 안될 소리를 듣다가 잘못된 사랑에 빠져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자 엄청난 죄를 짓고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졌습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게 됩니다. 결국에는 두 눈이 뽑혔으며 맷돌질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은혜가 떨어지면 하나님과 주의 종과 성도를 멀리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영의 눈이 뽑혀져 신령한 것과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고 세상 것과 육신적인 것만 바라보게 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삼손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맷돌질했듯이, 헛되고 헛된 세상 것을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맷돌질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헛되고 헛된 일을 위해서 맷돌질하는 신세가 되지 마십시오. 신령한 것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은혜가 충만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옛날 나아만 장군은 세상 권세를 누렸으나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교만한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만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제야 깨닫고 겸손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엘리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그가 병이 들자 잘못을 깨닫고 머나먼 이스라엘 나라의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밖에 나와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나중에 깨닫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게 됩니다. 그랬더니 그의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까 육신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아 그 썩고 부패한 피부가 깨끗하게 나아서 어린아이 피부보다도 더 아름답고 귀한 피부로 바뀌어졌습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을 사랑하던 그가 하나님만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삶의 변화가 옵니다. 세상 것만을 사랑하던 것이 주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것만 좋아했던 것이 이제 신령한 것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향락을 위해서 쫓던 것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 전에 나오신 우리 모두에게 이런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나아만의 생각이 깨어질 때에 변화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생각을 꺾을 때에 변화가 올 것입니다. 내 생각이 깨어질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깨뜨릴 때에 비로소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 안에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 중에도 은혜 없이 자신의 힘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욕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일을 해도 소리나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주의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교회 일도 소리 없이 조용히 합니다.

나아만이 여종의 말을 듣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육신의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육신의 질병만 고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심령의 변화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 부족한 종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여러분 심령 속에 부딪힐 때에 완고한 심령이 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 앞에서 돌덩이 같던 심령이 녹아지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고 방망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단단하고 강한 무쇠일지라도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물처럼 녹아지듯이 아무리 단단하고 완고한 심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치면 깨어지고 녹아져서 부드럽고 은혜로운 심령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은혜 안에 있게 되면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사단의 앞잡이가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은혜에서 떨어지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첫째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노라" 여기에서 떨어진다는 말은 헬라어로 엑세페사테인데, 이 말은 순간적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지기 쉬운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이 뚝 떨어져서 자기 아내 사라를 제쳐놓고 하갈을 사랑하게 됩니다. 때문에 평화로웠던 가정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충만할 때는 하나님과 교회와 주의 종을 사랑하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뚝 떨어지면 주의 종과 교회를 멀리하고 하나님 말씀이 듣기가 싫어집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다가, 믿음이 뚝 떨어지면 세상 일과 세상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다윗은 은혜가 충만했을 때는 주님께 충성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떨어지니까 기도하는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는 하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옷을 벗고 목욕하던 밧세바에게 미혹을 받아 끔찍한 간음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 간음죄를 숨기기 위해서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어 죽게 만들어서 살인죄까지 범하게 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세상 아래만 내려다보게 됩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육체의 사람이 되어 끔찍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사랑이 떨어집니다.
비행기에 휘발유가 떨어지면 땅으로 곤두박질하듯이 은혜가 떨어지면 사랑이 뚝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에베소 교회는 은혜가 충만했을 때에는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자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고 믿음과 사랑이 식어지고 만 것입니다. 겨울이 돌아오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잎과 열매가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은혜가 떨어지면 사랑과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은 봄이 오면 따뜻한 기온 때문에 다시 잎이 나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은혜가 떨어지면 은사도 성령의 열매도 떨어지지만 은혜가 충만해지면 은사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풍성하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은사가 꽃이 피고,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은혜에서 떨어지면 영력이 떨어집니다.
사사기 16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삼손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전과 같이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그를 떠나셨으므로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더라" 머리카락이 다 깍인 삼손이 블레셋 군대 앞에서 일어나 힘을 떨치리라 해보았지만 아무런 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력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면 영력이 떨어집니다. 영력이 떨어지면 아무 힘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일에 세상 것을 버리고 교회에 나올 힘도 없어집니다. 헌신할 힘이 없어집니다. 전도할 힘도 없어집니다. 시험을 이길 힘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은혜가 충만할 때는 사단의 시험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불같은 시험일지라도 당당하게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면 칠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험이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영력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에 풀무불 속에 들어가면서도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지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난로가 펄펄 끓고 있을 때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툭툭 튕겨 버립니다. 그러나 식어서 미지근한 난로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피시시 하고 물이 고이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은혜가 충만해서 믿음이 충만하고 영력이 충만하면 불과 같은 시험이 다가와도 그까짓 것 툭툭 튕겨 버립니다. 어떤 시험과 어려움도 다 물리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력이 식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별것 아닌 말에 시험을 받아서 교회에 나오느니 안나오느니, 주의 일을 하느니 마느니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에 별것 아닌 일에 시험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은혜를 회복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항상 은혜가 충만하여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가 떨어졌으면 은혜를 회복해야 됩니다. 무엇 때문에 은혜가 식어졌는지를 찾아야 됩니다. 왜 은혜가 떨어졌는가를 찾아야 됩니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다시금 예배에 열심을 내십시오. 성경을 열심히 읽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면 다시금 성경을 펴십시오. 기도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면 다시금 기도의 재단을 쌓으십시오. 그래서 내가 왜 은혜에서 떨어졌는가를 찾아서 회개하고 처음 은혜를 회복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은혜 받는 비결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은혜는 우리가 사모하는 만큼만 받습니다. 조금 사모하면 조금 받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조차도 없으면 은혜도 없습니다. 그러나 많이 사모하면 넘치는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인물 중에서 가장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은혜를 가장 사모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시편을 잘 살펴보면 언제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였고, 여호와의 율법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모했습니다. 또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그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며,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성전에서의 한 날을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게 여기고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무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할 만큼 사모했습니다. 특별히 시편 86편 3절에서 7절까지에서 다윗은 얼마나 은혜를 사모했는지 온종일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다윗과 같은 갈급함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은혜를 사모해서 온종일 주 앞에서 부르짖어 보았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사모하는 것과 정비례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으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 받는 것에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나 구하기만 하면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솔직히 우리는 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모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그렇게 은혜를 사모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원인 중에 하나는 교만입니다. 오바댜 1장 3절은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다"라고 했고, 예레미야 49장 16절은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교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속았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라고 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습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초라하고 추하며 가난뱅이인 줄도 모르고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모릅니다. 그래서 행실이 방정맞고 매사에 성실하지 못합니다. 잠언 21장 24절에서는 이러한 교만한 사람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기억하십시오.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욕을 먹습니다(잠 11:2). 미움을 받습니다(잠 16:5). 다툼을 일으킵니다(잠13:10). 교만한 사람은 배우려 하지 않는데, 이것이 큰 단점입니다. 교만하면 성장이 중단됩니다. 신앙과 인격은 물론 실력도 성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멸망의 선봉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교만하면 은혜를 받을래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은혜를 사모합니다. 대체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더욱 은혜를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받으면 영안이 밝아져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안한 이야기입니다만, 교회 안에서 제일 은혜 받기 힘든 분들은 항존 직분자들입니다. 그리고 세상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 세상 지식이 많은 사람, 신앙의 연배가 좀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조건 자체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내려놓고 아주 낮은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에스라가 율법책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니 말씀을 듣고 다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의 자세가 있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가 풍성한 성도가 되어서 언제 어디서나 매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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