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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에 임한 구원 - 삭개오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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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인덕 목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같이 하나님을 믿는데도 그 섬기는 모습은 모두가 같지를 않습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많은 은혜를 받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맨송맨송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만나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무엇을 보고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하였다고 하셨습니까?

첫째는 삭개오의 열심입니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여리고 성에는 세관장이요 큰 부자인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다고 했습니다.
당시 세관장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있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은 적국인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요 그것도 대부분의 세관원들은 세금을 정해진 것보다 더 매겨서 자기 배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관원들 중에서도 세관장이었으니 그 지역에서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겠고 또 가진 재산이 많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백성들은 그 앞에서는 굽실거릴지 몰라도 뒤돌아서면 손가락질을 하고 욕설을 퍼붓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도 예수님에 관해서 들었습니다. 당연히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래 생각합니다.
"이곳 여리고가 예루살렘으로 오르내리는 길목이니 언젠가는 예수라는 분이 이곳을 지나가시겠지. 그때 내가 반드시 만나봐야지."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거리로 나섰지만 무리에 가려서 예수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까치발을 하고 보려고 해도 안 됩니다. 할 수 없어서 그는 창피를 무릅쓰고 뽕나무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지나가시던 주님이 그곳에 이르더니 가던 걸음을 멈추고는 뽕나무 위를 쳐다보시며 삭개오에게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들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하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삭개오의 열심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볼 수가 없게 되자 뽕나무로 기어올라가는 열심을 보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누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그저 예수님을 만나보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와서 하는 말들을 그는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눈으로 직접 그분을 보고 그분이 과연 그러한지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여리고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구걸을 하던 눈먼 사람을 고쳐주셨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더욱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게 되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요. 그리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기 일터에서 나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으로 나왔고 자기의 작은 키 때문에 모여든 사람들 너머로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자 뽕나무에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자기를 보고 비웃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을 뿐입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체면을 다 버려야 합니다. 점잖게 믿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시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성령의 은사가 내 안에 임하기를 위해서 또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점잖게 마음으로만 바라고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부르짖어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치던 여리고 길목의 눈먼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은혜 받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목을 지켜야 됩니다. 그 길목이 어디입니까? 바로 예배하는 시간 예배하는 장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삭개오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다가 예수님에 관해서 알게 되었듯이 은혜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어야 하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가 임할 수 있도록 은혜의 통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을 뿐만 아니라 그 은혜의 말씀을 우리 눈으로 직접 읽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그저 예수님에 대해서 들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고 작은 키 때문에 예수님을 보기가 어렵게 되자 뽕나무 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역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말씀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어수선하고 혼란해도 말씀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수록 더욱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힘들기 때문에 더욱 은혜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게도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십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이 내게로 다가오시도록 수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 은혜 받기를 간절히 부르짖으십시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날들이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였습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합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들입니다.
그랬을 때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누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삭개오처럼 기뻐하며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기뻐하며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며 부르짖다 보면 어느 순간 말씀이 내 마음에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말씀의 뜻이 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마음에 어떤 뜨거움이 생깁니다. 깨달아집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는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에 소원이 생깁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내가 이런 것도 받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얼른 아멘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 마음의 소원을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되고 그 소원을 나의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물론 너무 엄청나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생긴 소원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사인입니다. 삭개오가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자기 집으로 모시어 들인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마음에 다가온 주님의 은혜를 기쁨으로 받아야 하고 마음의 작정을 기쁨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성령의 감동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그렇게 사로잡아갑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하는 가운데 혹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우리 마음에 어떤 감동이 있다면 어떤 마음에 소원이 불일 듯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인지,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 거듭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 맞다고 확인이 되면 지체 없이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계십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의 은혜는 내가 소원하는 것 이상으로 주님이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 마음을 두드리실 때 아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를 방해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주님의 은혜 아래 살려고 작정하기만 하면 그리고 그러한 삶을 시작하려고 하면 꼭 시비거리들이 생깁니다.
보십시오.
삭개오가 기쁨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였더니 사람들이 수근거립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먹으려고 들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대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의 길에 전혀 흔들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입을 통해서 들려지건,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온다고 해도 조금도 두려워할 것도 없고 좌절할 것도 없습니다. 이미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요 이미 은혜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 어떤 여건에서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우리 앞에 닥친다고 해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삭개오는 은혜로운 삶을 곧바로 시작합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인 다음 일어서서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여기 삭개오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는 제일 먼저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잠언 11장 24절로 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데도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
남에게 흩어 구제하며 남에게 나누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쨌든 우리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남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삭개오가 본능적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돈밖에 몰랐던 사람입니다.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철저히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아쉬운 사람들만이 가까이 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그렇게 한 평생 모은 재산을 주님을 모시자마자 절반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참된 은혜는 내가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주셨는데 그렇다면 그런 큰 은혜와 사랑을 입은 우리가 주님 앞에 아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향남교회를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우리가 정성을 다하여 열심히 섬기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는 이유이지만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과 이웃교회들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허리띠를 졸라가면서 이웃을 섬기고 있기에 하나님이 향남교회와 우리 모두를 복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삭개오는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을 것이 있다면 네 배로 하여 갚아주겠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만큼 삭개오는 깨끗한 자라고 하는 그 이름처럼이나 깨끗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하는 고백도 되지만 혹시 그래도 자기로 인해서 섭섭한 일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하여 갚아주겠다고 하는 이 선언은 자기의 삶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는 누구에게서든지 강제로 빼앗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바란다면 진정 우리가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사람이 바로 이래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억지로 빼앗으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하여 이를 회복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한 일이 네 갑절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관계가 어그러지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한 마디 말을 해도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끊임없이 이웃을 돌아보며 격려하여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 받은 사람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이 힘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도 잘 못한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 해야 합니다. 내가 못하기 때문에 나도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남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도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어렵습니까? 어렵기에 더욱 이웃을 돌아보고 내가 힘들기에 더욱 이웃을 붙들어 주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도구 삼아 큰 은혜를 베풀어 나가십니다. 따라서 도구가 된 내가 먼저 복을 받게 되더란 말입니다. 내가 함께 은혜를 받게 되고 내가 더욱 힘을 얻게 되고 내가 더욱 부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를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지금까지 상처되는 말을, 믿음 없는 말을 나도 모르게 많이 했더라도 이제부터는 우리의 언어 습관부터 바꾸십시다. 나도 힘들기에 더욱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작은 사랑의 실천부터 시작하십시다.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부터 시작하십시다. 상처가 될 말은 꺼내지도 마십시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보다 큰 일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십시다. 내가 쓸 것을 줄여서라도 이웃을 돕는 일을 시작하십시다. 이웃과 모든 은혜를 함께 나누도록 하십시다. 그로 인해서 삭개오의 집에 임했던 구원이 우리에게도 임하며 삭개오에게 임했던 놀라운 은혜와 복을 우리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소원을 품고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 날 주님으로부터 오늘 구원이 네 집에 임했다고 하는 선언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소원, 보다 많은 것으로 함께 나누고자 하는 소원을 품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더불어서 필요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고 해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주님을 섬겨나가며 이웃을 섬기기를 힘쓰십시오. 그로 인해서 우리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시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함께 하심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의 은혜의 말씀대로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고 하는 놀라운 선언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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