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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 ! (계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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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득철 목사

      “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

      엊그제 TV에서 보험 사고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완견이 다리가 골절이 되었는데 그 치료비가 보험처리 된다는 것입니다.

      애완견의 가격보다 10배 이상 많은 치료비가 들어가는데 개주인은 치료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까짓 개 얼마나 한다고 할 수도 있으나 개주인에게 있어서 그 개는 가족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운전자가 다소 억울할 수도 있으나 말도 아니되는 치료비를 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하여 애완견 값보다 10배 이상을 더 들여서라도 치료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어떨까요 !
     
      인터넷에서 보니까 중국에서는 운전기사가 실수로 개를 다치게 하였더니 개에게 절을 하라고 시키고 또 개 치료비도 받아가는 일까지 생겼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사람에게 그리 대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참으로 걱정됩니다

      참으로 설교를 하는데 개 이야기를 꺼내야 되니 그렇고 그렇지만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애완견과 사람을 비교하여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지만,
      우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누구일까요 !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분입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천사들이 놀라고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그렇다 쳐도 정작 당사자이신 독생자께서는 어떻게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힘을 거절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를 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

      우리가 수없이 살폈지만 창세기에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창조하실 때에,
      “ 우리의 형상을 따라 ” 우리의 모양대로 “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드셨다는 것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을 무엇입니까 !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연계시 !
      즉,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 유전자가 유전적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닮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은 자식 삼으시기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사랑하시는지 이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왜 하나님께서 악의 제국의 멸망의 그 순간에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라고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대언케 하셨는지 보게 됩니다.
     

      본론 :

      1.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v4) !

      “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셨을 때에 하늘에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 눅 23:44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

      하늘도 주님의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빛을 잃고 어두워졌습니다.

      이렇게 당신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사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 인생들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

      멸망하는 큰음녀와 왕국 !

      짐승에 의하여 갈기갈기 찢어지고,
      하늘에서 부어지는 진노의 심판으로 인하여 멸망할 큰음녀의 왕국 !

      그곳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당연하게 큰음녀와 함께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당신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대로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인생이 큰음녀와 함께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자식을 둔 부모는 자기 자식이 잘못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애완견을 살리기 위하여 애를 쓰는데,
      우리 인생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모양대로 자녀 삼기 위하여 청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우리를 마지막 그 순간까지 포기하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4절의 말씀에서 우리 인생을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살피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종으로 부려먹는 사탄의 종노릇을 자청하는 인생들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에게 보게 하십니다.

      왜 그러시는 것일까요 !

      만일 우리를 하나님께서 일찍 부르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의 긍휼을 알지 못하고 사랑을 외면하면서 지옥불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으로 기도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 20: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5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포도원의 비유에서 먼저 와서 일하였던 자들이 셈을 할 때에 반응이 어떠하였습니다.

      “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

      그들은 먼저 부름을 받아서 일함으로 얻은 안식과 평안의 귀중성을 잊고 오직 눈 앞의 동전 몇 닢에만 정신이 팔려 감사치 않고 불평불망이 가득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자 되지 않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
      포도원의 일군처럼 먼저 얻은 안식의 가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과연 몇 시에 부름을 받았는가 !

      그리고 그 부름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부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 신앙생활은 늘 남과 비교하다가 감사와 찬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 서서 머리만 긁적긁적 하게 될 것입니다.


      2. 긍휼의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저들의 죄(v5) !

      “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죄입니다.
      큰 음녀가 지은 죄가 하늘에 사무쳤고 그의 불의한 일이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큰음녀의 지은 죄가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살피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이유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삯을 치르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앞에서는 용서치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천하의 살인마였다는 김대두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기독교에 오고 싶다고 했을 때에 모든 것을 회개하고 오라고 하니까 백담사로 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일놈 이라고 하지만,
      그 윤리라는 것이 무엇이며 도덕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

      시대에 따라 변하고 사회 통념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란 생명을 나타내는 사랑을 무가치하게 한 것이 죄입니다.

      남녀가 왜 눈이 맞는지 아십니까 !

      거기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사 우리 인생의 죄를 사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는데, 그 사실을 큰음녀가 부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대놓고 그렇게 말을 아직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첫째 짐승의 출현과 둘째 짐승의 출현으로 큰음녀와 왕국이 전성기에 들어서면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 로마 카톨릭에서는 죄를 신부가 용서하여 주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큰죄는 예수님이 용서하시고 작은 죄를 신부가 용서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게 우리 구주의 죄사함의 유일성을 훼손하는 행위 !

      그 행위를 큰음녀가 주님의 재림 전에 전세계적으로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자 ! 그러한 때가 여러분 당대에 임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3. 행한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의 심판(v6-8) !

      “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

      큰음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인생들을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가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진리에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큰 음녀가 한 행위대로 갚으시는데 갑절로 갚아주시겠다 하십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영혼을 사냥하던 큰 음녀 !

      그가 행한 행악을 하나님께서 갚으시는데 하루 동안에 큰음녀가 행한 모든 행악의 심판을 부으시겠다 하십니다.

      큰음녀가 아무리 강대한 군대를 가졌더라고 대적할 수 없는데 그 이유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다가 하룻밤에 18만 5천 명의 군대가 죽은 일이 있습니다(사 37: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 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 뿐이라).

      천사 하나가 18만 5천 명을 하룻밤에 전멸시켰는데,
      하늘에 천사는 몇 명이나 되는지 셀 수 있다면,
      큰음녀의 세력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천사도 대적할 수도 없는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

      아마도 큰음녀에게 빠진 인생들은 큰음녀가 위대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큰음녀에게 붙어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강하신 하나님은 저들을 진멸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전 주에 이미 짐승에 의하여 갈기 갈기 찢어져 뜯어 먹힌 큰음녀의 왕국의 패망한 모습(계 17:16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8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을 살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망하기를 원하는냐 묻습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생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면 저들이 과연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본문을 살피게 하심은,
      그 심판의 날에 혹 하나라로 우리가 오늘날 전한 복음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소망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누가 그 사명을 감당하시겠습니까 !
      오늘 우리 하나님은 그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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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약막 2010.07.17. 20:38

아 ! 우리 약막교회 홈페이지가 있을 때에 올렸던 설교 본문을 여기서 보는군요 !

지금은 홈이 없어서 올리지도 못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도와주실라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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