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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조연배우1] 지혜로운 조언자, 이드로 (출 18: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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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위대한 조연배우

‘영화제의 꽃’이라고 부르는 제77회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이 지난 2월 27일 미국 헐리우드에 있는 코닥극장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단연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등 4개 부분을 수상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였습니다. 70세가 넘은 영화배우 출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상을 받고 여자 권투선수 역을 열연한 힐러리 스웽크라는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주인공에 주목해야 합니다. 비록 주연상을 받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남우조연상을 받아 화제가 된 모건 프리먼이라는 흑인배우입니다. 모건 프리먼은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흑인배우인데 문제는 제가 봐도 참 못 생겼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많습니다. 1937년생이니까 나이가 거의 70세가 되었고 따라서 영화에서 맡은 역도 대개 할아버지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는 연기를 참 잘 합니다. 너무 연기를 잘 해서 그동안 아카데미 조연상에만도 네 번이나 후보로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특징은 한 번도 주연상을 타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연을 한 영화가 거의 없어서도 그렇지만 이 배우는 주로 영화를 빛내주고 주연을 빛내주는 조연을 맡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제 설교 중에 영화에 대한 인용 하는 것을 종종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인생을 배울 수도 있고, 나아가 신앙적으로도 좋은 교훈을 많이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달리기나 권투 같은 스포츠를 보면서 신앙적인 교훈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영화를 보노라면 참 많은 교훈을 배우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한 편의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주연배우도 필요하지만 아울러 아주 좋은 조연배우도 필요한 사실입니다. 요즈음 영화계에서 이 사람만 나오면 성공한다고 해서 유명한 주연급 배우를 수억 원씩 개런티를 주고 쓰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유명하고 연기 잘 하는 주연배우를 비싼 돈 주고 쓰더라도 조연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뒤받침 해 주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영화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특히 교회에서, 혹은 영적인 일을 할 때 반드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모든 일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주인공이 되고 주연배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너도나도 다 주인공만 하겠다고 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분란과 다툼만 일어납니다. 주인공은 하나면 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꺼이 조연배우가 되어 나보다 더 능력 있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도와 그 일이 잘 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에서는 주인공만이 갈채를 받고 모든 영광을 한 몸에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조연을 더 잘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높이 평가해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주인공으로 사람들한테 많은 박수와 칭찬을 받는다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은 줄어듭니다. 반대로 세상에서는 비록 그늘진 곳에서 보이지 않게 봉사하여 칭찬과 영광을 못 받았지만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는 더 큰 칭찬과 상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주인공만 되라고, 남들 앞에서 인정받는 주연이 되라고 강조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조연이나 때로는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까지라도 기꺼이 담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성경에 나오는 열 두 명의 위대한 조연배우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을 한 편의 영화로 본다면 성경의 위대한 주연배우들은 첫째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또 사람들 중에 주연급 배우를 꼽아본다면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 바울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위대한 주연배우들이 있기까지 그들 뒤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도왔던 위대한 조연배우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이 위대한 주연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조연배우들의 헌신과 충성은 오늘날 너도나도 주인공만 되려고 하고 박수와 인정만 받으려고 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참된 충성과 헌신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자, 이제 지금부터 이 위대한 조연배우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려 깊은 이드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의 방문으로 시작됩니다. 이드로는 성경에 그 이름이 르우엘이라고도 나오는 사람인데(출 2:18, 민 10:29) 미디안의 제사장이며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해 미디안으로 갔을 때 그를 사위로 맞아 40년 동안 데리고 살았던 분입니다.

이 ‘이드로’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뛰어난’ 혹은 ‘탁월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어떤 의미에서 뛰어나고 탁월한 사람이었을까요? 바로 모세라는 위대한 주연배우가 있기까지 옆에서 도왔던 뛰어난 조연배우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조연배우 시리즈 설교의 첫 번째 인물로 선택되었습니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출애굽기 2~4장으로 돌아가 이드로가 모세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이미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 궁전의 왕자로 자라다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깨닫고 젊은 혈기에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쳐 죽이고 도망을 갑니다. 애굽을 떠나 방황하던 모세가 다다른 곳은 미디안 광야였습니다. 이 미디안 광야의 우물가에서 모세는 목자들의 행패를 만난 십보라등 일곱 자매를 구해주게 되는데 이 자매들은 별다른 조처 없이 이 나그네를 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출애굽기 2:20을 보십시오. 이드로는 그냥 돌아온 딸들을 나무라면서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이드로가 매우 사려 깊고 은혜를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딸들은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당황도 되었겠지만 이 나그네의 도움에도 은혜를 갚을 줄 모르고 자기네끼리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드로는 그 이름도 모르는 나그네를 청해 자기 집에서 대접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후에 이드로는 모세를 사위로 삼아 40년 동안이나 한 집에 함께 살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장인 장모 집에 함께 살아본 분이나 사위를 데리고 함께 살아본 분도 계시겠지만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남의 아들을 데려다가 사위 삼아 함께 살다보면 예뻐 보이고 마냥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운 짓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네 집에서 살던 버릇 그대로 행동해서 때로는 괘씸하거나 버릇없어 보일 때도 있겠지요. 더군다나 능력이 별로 없는 사위거나 딸에게 잘 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오늘 모세는 40년 동안이나 애굽의 왕자로 자란 사람입니다. 아무리 죄를 짓고 쫓겨난 몸이지만 귀하게 자라신 몸이라 가난하고 척박한 미디안 광야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때로는 얼토당토않게 행동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 생활을 하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요즈음으로 치면 버르장머리 없고 귀한 체 하고, 자기 집에서 하던 버릇대로 멋대로 행동하고, 게다가 능력도 없는 사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드로는 그를 맞아 40년이나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안 나오지만 우리는 이 이드로가 정말 사려 깊고, 참을성 많고, 남을 잘 품어주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출애굽기 4:18에 보면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가 장인을 찾아가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허락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애굽에 있는 형제들이 아직 잘 살아있는지 보기 위해 돌아간다고 둘러댑니다. 아마 사실대로 말하면 딸 걱정 때문에 허락 안 할까봐 이렇게 말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드로는 기꺼이 모세 가족이 애굽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합니다. 전후사정을 다 알고 있는 이드로로서는 사위와 딸이 애굽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당연히 걱정도 될 터인데 사위의 말에 기꺼이 허락을 한 것입니다. 역시 이드로는 참 좋은 성품과 이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위대한 화해자 이드로

그런데 여러분, 오늘의 본문인 출애굽기 18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장인 이드로는 사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일에 대해 듣고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찾아옵니다. 이 때 이드로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친정살이를 하던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옵니다. 우리는 왜 그동안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이 친정살이를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히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와 큰아들인 게르솜은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갈 때 동행했는데 출애굽기 4:24부터 보면 그 돌아가는 길에 모세가 둘째 아들 엘리에셀을 낳고 할례를 안 주었다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할 뻔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건 후 십보라와 두 아들은 더 이상 출애굽 사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볼 때 십보라와 두 아들은 이 사건 이후 출애굽 사건에 동참하지 않고 미디안에 있는 친정집에 가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왜 지도자의 아내인 십보라와 두 아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지 않고 친정집에 돌아가 있었을까요?

먼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무슨 특별한 일도 아닌데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집에 돌아가 오래 있으면 무슨 뜻입니까? 장인 장모 생신도 아니고 아프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십중팔구 부부싸움을 해서 부부간에 갈등이 생겨 집을 나갔을 확률이 큽니다. 그렇지요?(지금 대답한 분들은 조금 수상한 분들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는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 하신 이유가 안 나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학자들은 아마도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할례를 반대해 생긴 일일 것이라고 봅니다. 24절에서 하나님이 다짜고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고 나오는데 이는 모세가 큰아들 게르솜에게는 할례를 베풀었지만 둘째 아들 엘리에셀은 난 지 8일이 훨씬 지나도록 할례를 베풀지 않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세가 첫째 아들에게는 할례를 주었는데 둘째 아들에게는 안 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마도 이방인인 부인 십보라가 할례를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일 것으로 봅니다. 추측해 보건대 큰아들 게르솜은 비록 할례를 베풀지 않는 이방땅 미디안에서 낳았지만 모세가 강력하게 주장하여 할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십보라가 고집을 부려 정해진 날짜를 초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모세의 생명까지 위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다가 십보라가 그 순간 재빨리 아들의 양피를 베어 남편의 발 앞에 던지자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 이후 부부 사이에 큰 갈등이 일어나 십보라는 아들들을 데리고 미디안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18장 2~4절에 보니 장인 이드로가 딸 십보라와 두 손자를 데리고 모세에게 온 것입니다. 왜 데리고 왔을까요? 이유는 하나지요. 갈라져 살던 딸 십보라와 사위를 화해시키고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간혹 이런 일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겨 부인이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버렸는데 남편이 친정에 찾아가 부인과 애들을 데리고 오려고 하니 친정부모가 오히려 화를 내며 못 가게하고, 심지어 갈라지라고 하는 경우 말입니다. 화해를 시키고 갈등을 해소시켜야 할 부모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딸과 두 손자를 데리고 모세에게 와서 다시 화해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연 이드로는 사려가 깊을 뿐 아니라 갈라진 사이를 화해하게 만드는 peace maker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담당한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도 부부간에 이런 가정의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목회자가 교회 지도자 가정에도 불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 불완전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갈등을 이기고 해결하느냐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인의 노력과 화해정신이 있었기에 모세는 아내와 두 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갈등을 해결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또 교회 안에 이드로 같은 사람들이 참 많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고도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들을 화해하게 만들고 갈등을 해소시키는 그런 분들 말입니다. 참 훌륭한 조연배우들입니다.




위대한 조언자 이드로

그런데 그 다음에 이드로가 한 일이 더 위대합니다.

본문 7~8절에 보면 모세는 오랜만에 만난 장인에게 어떻게 그 동안 하나님이 자신과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시고 보호하셨는지 신나게 설명합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이드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위 모세와 더불어 번제를 드리고 그 제물을 먹습니다(10~12절). 참으로 훈훈한 장인과 사위의 관계입니다. 가끔 보면 내 친부모보다 장인이나 장모가 사위에게 최고의 후원자가 되는 경우를 봅니다. 며느리와 시부모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재정적인 후원도 중요하지만 아내와 처가를 통해, 혹은 남편과 시댁을 통해 영적 후원을 받는 것이 정말 귀합니다. 장인 장모가 사위인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시부모가 며느리인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면 그만큼 큰 힘이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댁과 처가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사실은 어떻게 이방인인 미디안의 제사장이 하나님을 찬양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방신인 미디안의 신을 섬겼던 이드로가 사위 모세의 말을 듣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험한 곳을 보고 나서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완강하게 기독교를 부인하고 안 받아들이는 처부모나 시부모가 결국 예수님 믿게 되기까지는 이렇게 사위와 며느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잘 믿어 잘 되고, 성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그 분들이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생깁니다. 13절부터 보세요.

모세에게 온 이튿날 장인 이드로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모세는 백성들을 재판하느라고 앉아있고 백성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세 한 사람이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재판했기 때문에 모세는 하루 종일 앉아 재판만 하고 백성들은 기다리느라고 하루 종일 줄을 서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분명히 모세는 과중한 업무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와 피로를 느꼈을 테고 일의 효율성은 떨어져서 백성들은 하루 종일 서 있느라 불평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드로는 이 일이 결코 선하지 않다고 말합니다(17절). 혹시 우리도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정말 열심히는 하는데, 자신은 점점 피곤과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주변에 불평과 불만만 늘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분명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선한 일이 아닙니다. 왜 선하지 못합니까? 혼자서 다 하느라고 일을 비효율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큰 사건과 작은 사건, 중요한 사건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다 모세가 듣고 처리하다보니 백성들은 하루 종일 기다리며 서 있어야 했습니다. 나도 손해요 백성들도 손해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효율적입니까? 또한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므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최고 지도자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랫사람들이나 동역자들에게 과감하게 맡기지 못합니다.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치고 탈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몇 가지 결정적인 조언을 합니다.

이드로의 첫 번째 조언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하라는 것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이드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라!”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어떤 일이 제일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바쁜지 언제나 많은 일이 밀려 있습니다. 한꺼번에 그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지도자의 최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본문에 의하면 당연히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분명한 사실을 잊고 다른 일에 분주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는 당연히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언제까지 제일 중요한 일은 놔두고 작은 일, 자질구레한 백성들의 일상사를 일일이 다 챙겨주고 판단해 주겠습니까? 절대 안 되는 일입니다. 모세도 지치고 백성들도 지칩니다. 말씀(원리)을 가르쳐서 백성들이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가르치면 이제 웬만한 일은 자기가 알아서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자녀에게 매일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드로의 두 번째 조언은 중간 지도자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21절에 보면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라고 말합니다. 마치 군대에서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등으로 나누듯 사람 숫자에 따라 중간 지도자를 세우면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직이 중요합니다. 효율적이고 능력 있게 일을 계획하고 처리해 갈 수 있는 조직이 중요합니다. 특히 조직의 핵심은 어떤 사람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드로는 “재덕이 겸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세우라”(21절)고 합니다. 이것은 재능과 덕을 겸비한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 참되어서 거짓이 없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큰일과 작은 일을 구분(18:22)하고 어려운 일과 쉬운 일의 구분(26절)한 뒤 가장 중요한 일들은 최고 지도자가 감당하고 나머지 일들은 중간 지도자들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 때문에 지치는 일도 막을 수 있고 또 더 책임 있게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조언자의 조건

오늘 모세는 이러한 이드로의 조언을 전적으로 따릅니다. 이드로가 이런 충고를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모세가 기꺼이 이런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드로는 사위 모세와 40년  간이나 같이 살면서 동고동락 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성격과 특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나를 잘 아는 사람의 조언은 적절한 것일 수밖에 없고 또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아내나 남편, 부모 등 가장 가까운 사람의 조언을 가장 못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드로가 모세를 잘 알았다 한들 이런 귀한 지혜를 이드로가 혼자 생각한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우리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원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 기울이고 따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나를 돕는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남의 충고를 듣는 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4절).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진 지도자로서의 장점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이드로는 누구입니까? 이렇게 나를 잘 알고 나를 진실로 사랑하며 적절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이드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드로가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합니다. 그리고 내 진심 어린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분도 참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좋은 지도자는 물러가야 할 때, 사라져야 할 때를 압니다. 27절에 보면 모세가 장인을 보냈고 이드로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사라져야 할 때임을 알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참 중요한 일입니다. 흔히 교회의 큰 지도자들이 멋진 은퇴를 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모양으로 후임자에게 참견을 하다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러갈 때를 알고 조용히 사라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도자가 더 멋있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모세도 이런 이드로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든 사명을 마친 후 모압 평지에서 조용히 사라져 느보산에 묻힙니다. 무덤도 어딘지 모릅니다. 그동안 키워온 후계자 여호수아가 마지막 출애굽을 마무리하고 가나안 진입을 완성하도록, 마음껏 일하도록 사라져 준 것입니다. 또한 그 후계자 여호수아도 자신의 사명을 마친 후 조용히 사라집니다(수 24:29~30). 참 멋진 지도자들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 곁에는 이드로라는 훌륭한 조언자요 조연배우가 있었습니다. 다음주에 나눌 아론과 훌이라는 조연배우들과 더불어 이드로는 모세라는 위대한 주연배우가 있게 한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이 있을 때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분들의 조언과 도움을 기꺼이 수용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기꺼이 이런 위대한 조연배우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겸손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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