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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름에 합당하게 삽시다 (엡 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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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빅세종 목사

할렐루야!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엡 4:1∼16의 말씀으로 부름에 합당하게 삽시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쓰신 서신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주로 교리적인 면을 언급하고 있고 그 다음에는 신앙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도 1장 ∼ 3장까지는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 쓰셨고 오늘 읽으신 4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절을 보세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되었으면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절을 보세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평안하지를 못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일본에게 식민지를 살아왔으니 그건 한국인에겐 축복이었다고 망언을 하고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하면서 또다시 한국을 침략하고 강탈하려는 일본과의 갈등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고통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심지어 우리 내 자신의 마음 속에서도 선과 악이 다투고 있는 모습이고 사랑과 미움이 갈등을 일으킵니다.
오죽하면 사도바울 같은 선생님께서도 원하는바 선을 행치 않고 원치 않는 바 악을 행한다고 하시면서 괴로워하셨겠습니까?
·가정 법원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신적이 있나요?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일어나고 있는 수치스러운 갈등들!

이!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해결의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담장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주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신 2절의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면
제일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최고의 덕은 겸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 전날 밤에는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뜨셔서 일일이 제자들의 발을 다 씻겨 주셨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지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이 발을 씻기셨습니까?
바로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빌 2:5에서는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이게 무슨 마음입니까?
겸손의 마음입니다.
왜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겸손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하셨습니다.
잠 6:16절을 보면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가지니 곧 교만한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잠 6:18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교만은 죄의 근본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쓰는 것입니다.
누가 교만합니까?
공부 좀 많이 했다고 교만합니다.
돈 좀 있다고 교만합니다.
권력의 자리에 앉았을 때 교만해 집니다.
재능이 좀 있다고 교만합니다.
심지어 어떤 여자는 좀 예쁘다고 교만하기까지 합니다.
이거 다 망합니다.
시 101:5에서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말없이 봉사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 속에는 항상 평안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겸손하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온유입니다.
온유라는 말은 "부드럽다"는 의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불평 없이 순종을 합니다.
잠언서에서는 "유순한 대답은 격노를 그치게 한다" 하였습니다.

성낸다를 영어로 angry라 합니다.
또 성낸다를 mad 미쳤다 라는 말을 같이 쓰기도 합니다.
성난 사람을 가만히 보세요
자세히 보면 미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화가 잔득 났을 때에 여러분의 얼굴을 거울에 한없이 비춰보세요.
꼭 뭐 같아요?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억으로 받는다" 하였습니다.
호랑이나 사자는요 무섭고, 강팍하고 사나운 짐승입니다.
거기에 비해 토끼는 힘이 없고 약하고 작은 짐승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그 무섭고 사나운
호랑이나 사자는 점점 더 멸종해가고요 그 약한 토끼는 엄청나게 번식한다는 거예요.
사람의 지체 중에는 이빨이 제일 셉니다.
가끔 식사하다가 혀를 깨물 때가 있는데 얼마나 아퍼요!
그냥 피가 줄줄 흐르죠
이빨과 혀!
이건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약한 혀가 뽑혀 진다는 얘기 들어 보셨어요?
그 세고 강한 이빨은 60년 정도 지나면 못쓰게 돼서 뽑아 버리거나 어떤 사람은 닭고기 먹다가도 이가 부러진다지만 언제 혀를 못쓰게 돼서 뽑아 버리고 의설로 대신 한 것 보셨습니까?

온유하면 약해 보입니다.
여기저기서 이용당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왼 뺨을 맞으면 난 두발로 걷어차고 말 한마디 없이 마치 쇠로 만든 얼굴처럼 살아갑니다. 나한테 덤비지 말라는 거죠. 나 겁나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나 기억하세요!
온유함이 강팍함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옛말에 같은 말이라도 탁해서 다르고 툭해서 다르다는 말이 있죠?
분위기를 싸늘하게 하는 언행을 고치세요.
나 때문에 오히려 그 분위기가 아름다워지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나누어줄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에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였습니다.
성령 받았다하면 뭐 그저 머리는 불 받아서 곱슬머리가 되고 가슴엔 불 받아서 시커먼 점이 생기고 제가 보기엔 샤워 안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이런 것만이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예요.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되게 하시는 일입니다.
요 17장에서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이는 우리가 하나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로다" 하였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변질되지 마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결혼했을 때 제 아내의 몸매는 바이올린 같았습니다.
은선이를 낳은 후에는 제 아내의 몸매가 기타와 같았습니다.
수술하고 난 지금의 몸매는 어때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모양이 달라요!
그래도 그 여자는 제 아내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똑같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가 생긴 것은 다르지만 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린 지체입니까 아니면 티눈입니까?

뒤에서 사냥개가 쫓아옵니다.
여우가 도망을 칩니다.
겨우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한 다음 물어봅니다.
야! 여우야!
너 도망치느라고 너무 수고했다. 간신히 살았구나
너 머리야!
넌 도망칠 때 무슨 역할을 했니?
아! 난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균형 잡히게 길을 인도하며 얼마나 애섰는지 아니? 그래 잘했다 너 앞발은?
말도 마!
저 냇가를 건널 때 돌에 찢겼는데도 아프다는 소리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한걸. 잘했구나
뒷발이 말합니다.
말도 마 난 가시에 찔렸어
이것 봐 지금도 피가 나잖아
꼬리가 말을 합니다.
난 언제나 꾜리야!
날 알길 우습게 여겼지 그래서 달릴 때 속도가 나지 말라고 땅에 질질 끌었다! 아마 왜 빨리 안 달리나 궁금했지? 바로 나 때문이야
어! 너 꼬리야 그랬어 그럼 이 추운 날 너 고생 좀 해야겠네 추운 날 동굴 밖에서 추위에나 떨어보렴! 하고 여우가 동굴 밖으로 꼬리를 내 놨습니다.
어떻게 됐겠어요?

나는 지금 우리 교회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혹시 꼬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진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물질적인 유산을 주시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성령의 하나될 수 있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 겸손과 온유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다가 잘했다, 착하다 칭찬 받고 마음엔 언제나 평안을 누리다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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