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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모범 (막 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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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날마다 계속되는 우리의 지상의 삶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땅의 지금 상황은 전쟁의 상황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누가 이기든지 지든지 승패가 있는 상황입니다. 전쟁에서 지는 편은 불행할 것이고 이기는 편은 기쁠 것입니다.

이땅에 오셨던 우리 주님은 이땅에서의 영전전쟁에서 승리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환경 그때 상황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30년는 가정에서 3년은 공생애서로 삶을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귀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탁월한 이론가였습니다. 하늘나라의 말씀들을 우리에게 잘 가르치시는 교육가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론과 가르침대로 살았던 실천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본을 보이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영적전쟁에서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오늘 주님은 우리가 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삶을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예수 그리스도를 알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알다는 말은 ‘야다’입니다. 이것은 경험하다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은 머리로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고 삶으로 행동하여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기도에 관하여 가르치고 기도를 먼저 모범으로 보였습니다. 전도를 먼저 가르치고 먼저 전도하였습니다. 사랑을 가르치고 사랑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모든 삶에 본을 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삶에서 본으로 역사하셧던 주님은 또한 우리에게 그런 삶을 기대하십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모범을 닮기를 바랍니다.우리의 삶에서 거룩한 주님의 삶을 닮아가면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거룩한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1. 기도자의 본을 보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기도의 삶이셨습니다. 기도가 삶의 중심이셨습니다. 기도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기도의 실천을 하셨습니다. 먼저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실천하셨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주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기도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입니다. 고난의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주님은 금식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우리 주님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금식기도하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금식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금식기도의 아름다운 실천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예수님은 철야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산에 올라가서 철야기도를 합니다.예수님이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여기 밤이 맟도록 기도했다는 것은 원어 의미가 ‘하나님의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라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기도라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기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셨지만 그가 드린 기도가 자기를 따라 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기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산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장소로 산을 많이 이용하셧습니다. 변화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역 마지막 시기에 감람산의 겟세마네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때 산기도를 하실때에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금식기도,철야기도,산기도 다양하게 하셨는데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새벽기도의 본을 보여주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여기 새벽에 기도하기 위해서 미명에 일어났습니다. 미명이란 아직 채 어둠이 걷히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4시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새벽 미명에 홀로 일어나셔서 우리 주님은 한적한 곳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새벽기도를 하실 때 전날 삶의 정황은 어떻습니까?
전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거기에서 귀신을 내어좇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제자들과 함께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 심방갔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든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열병이 고침받았습니다.

저녁이 해질때가 되었을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쫓아내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그 전날 굉장히 피곤한 사역의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물론 우리 주님은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나서 우리에게 이것을 율법처럼 명령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 어떤 곳에서도 우리에게 금식기도하라.광야기도하라.철야기도하라,새벽기도하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주님도 그렇게 기도하셨다면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만 우리 예수님은 많은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분이십니다.그런데 스스로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한 삶의 일정가운데서도 시간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기도의 삶을 사시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기도의 삶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실천하시는 결단을 하기기를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금식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철야기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산기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가장 적절하게 적용하기 좋은 기도가 저는 새벽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모든 시간의 주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일하신 시간이 새벽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 씨름한 끝에 새벽에 축복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강가에 도달했을때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 공격하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응답하시기를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군대를 불기둥 기둥가운데서 헤메게 하여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벽에 만나를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셧을뿐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시편의 기자 다윗은 시편5편3절에서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편108편 2절에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소원합니다.
새벽은 어떤 시간입니까? 하루의 시작입니다. 그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과 함께 할때 하루가 승리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새벽을 깨울 수 있습니까? 새벽을 기도하기 위해 깨울 수 있는 힘은 오직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찾으면 찾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자에게 크고 비밀한 것으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에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으로 충만으로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평강으로 채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새힘을 주십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함께 하여주십니다. 하루의 삶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제 다음주 5월 1일부터 21동안 우리 교회는 전교인 특별새벽기도축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 기간동안 우리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도대상자인 태신자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단오제를 앞둔 이 지역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전쟁의 삶에서 기도의 승리자가 되기기 바랍니다.

2. 전도자의 본을 보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38절에 보십시오.
여기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도 일어나 집중하신 일은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내가 전도하러 왔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온 갈리리에 다니시면서 친히 전도하셨습니다. 전도의 소명감을 갖고 오직 전도하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당시에 우리 주님은 대중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스스로 찾아와 보기를 원했고 좇기를 자청할 정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새벽에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로마에서 해방시킬 지도자로 밀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때 예수님이 조금 욕심을 부려서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였다면 굉장한 세력을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사람들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맡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직 아버지만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거룩한 의지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속에는 세상을 기뻐하고 하나님보다 나를 기쁘게 여기면서 살고자 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잘 되지 않을때에는 우리 속에 마음에 힘을 잃기도 합니다. 세상 속에서 내 욕망들이 좌절되면서 낙심하고 좌절하곤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볼때 예수없이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이 없어도 오히려 기뻐하는 것같고 삶이 형통한 것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나를 보면 아무것도 안되는 것같습니다. 사업은 안되고 가정 속에서는 여전히 물질의 어려움으로 삶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낄때가 없습니까? 그래서 마음과 육체가 쇠잔하여 진 분들은 없습니까?
구약 시편 73편에 보면 이런 정황의 시인의 고백이 소개됩니다.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인 시인은 신앙의 고민 중에 빠졌습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는가? 하는 것입니다.악을 범하는데도 오히려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려움에 처하고 재앙을 당합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고통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떨어질뻔하였습니다. 잘되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시기심이 일어나고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여러분 이런 마음이 우리들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0대에서 70대까지 얄미운 여자의 유형입니다. 어떤 여자가 얄미운 여자입니까?
10대에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쁜 여자가 얄미운 여자라고 합니다.
20대에는 성형수술을 하고도 표시가 안나는 여자입니다.
30대에는 처녀시절 이 남자 저 남자 아무나 막무가내로 만나 실컷 연애하고 결국 두루 갓춘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 잘간 잘사는 여자입니다.
40대에는 놀러갈 데 다 가고 할 것 다하고 자녀들에게 새벽밥 한번 안지어주었는데 자녀들이 일류대학에 척 들어간 여자입니다.
50대에는 잘 먹는데도 날씬한 여자입니다.
60대에는 남편이 돈 많이 벌어놓고 먼저 죽은 여자라고 합니다.
70대에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자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볼때 얼마나 모순이 많습니까? 그래서 얼마나 마음이 힘을 잃게 되고 그래서 신앙으로 사는 것의 기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런데 시편 73편에서 이런 고민을 갖고 있었던 시인이 결국 나중에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자기 육체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을 따라 살던 사람들의 기쁨이 얼마나 졸지에 끝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졸지에 이땅에서 끝나버리는 찰나적인 기쁨, 잠깐 밖에 못누리는 이 땅이 모든 영광들이 얼마나 허무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합니다.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기쁨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 제일 기뻐하는지 잘 아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일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3가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어떤 목자의 비유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목자가 양이 100마리 있는데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목자는 99마리를 들에두고 한 마리를 찾기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게 됩니다. 그러자 목자는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보아 잔치를 합니다. 여기 기뻐하는 목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회개할 것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 돈이 있었습니다.그런데 그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돈을 잃어버린 이 여인은 등을 켜고 돈을 찾기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잃었던 돈을 찾아냅니다. 돈을 찾고 나서 벗과 이웃을 불러모아 자기의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여기 기뻐하는 여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늘에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탕자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두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이 아버지를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돈을 받아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모든 돈을 잃어버리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회개하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이 아들을 맞이합니까? 기쁨으로 아들을 맞이합니다. 상거가 먼데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잡아 기쁨의 잔치를 나눕니다. 여기 기쁨의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한 영혼이 돌아올때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가장 기뻐하는 일이 바로 한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이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때 우리의 주 관심이 내가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행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기쁘게 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나를 기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고후5:9에서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 함께 전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같이 전도에 실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서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전도의 열심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일을 위해서 전혀 전도에 집중하면서 힘썻던 것을 봅니다.다같이 새로운 마음으로 전도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하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영적전쟁에서 승리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39절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이땅에 오셨던 주님은 귀신들을 내어쫓으신 삶을 사셨습니다.
여러분 귀신의 존재를 믿으셔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 것같이 보이지 않는 귀신 악한 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마귀와 귀신을 물리치시는 삶을 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귀와 귀신들을 이기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절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이땅에서 우리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 전쟁을 치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영적 권능을 갖고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같이 귀신을 물리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권세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14:1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합니다. 여기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의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믿고 기도하는 자는 이보다 더 큰 것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때나 지금의 때나 여전히 마귀와 귀신이 역사합니다. 귀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입니다. 그 귀신의 대장이 바로 마귀입니다. 이 악한 영들은 오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풍속을 주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모든 세상의 권세를 잡고 행세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게 종노릇하고 귀신을 순종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마귀와 귀신에 대해서 우리 주님은 대적하여 승리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적전사로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귀와 귀신과 우리는 대적하여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을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바로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입니다. 베드로 전서 5:8-9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악한 영들과 대적하여 싸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악한 영들의 전술 전략입니다. 오늘도 악한 영들은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말씀되지 못하게 공격하여 마음을 도둑질합니다.우리의 믿음을 도둑질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도둑질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사랑을 우리의 기쁨을 도둑질하려고 합니다. 이 악한 영은 지금도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악한 영의 가장 잘 쓰는 방법이 유혹과 거짓말입니다.

사람들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유혹합니다. 하와를 보이는 선악과 열매로 유혹하엿듯이 오늘도 사람들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거짓말로 유혹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들고 교회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지도자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모든 행위들을 자꾸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너 자신이 하나님이 되라고 하고 세상을 즐기라고 합니다. 육체를 따라 자유롭게 살라고 합니다. 돈을 벌어서 돈을 따라 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악한 영들을 이기셨습니다. 귀신을 내어쫓고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유혹이 있습니까? 삶의 유혹과 도전이 있습니까? 강한 주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귀와 귀신은 자기들의 요새를 구축하여 놓고 일합니다. 고후10:3-4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합니다. 이 견고한 진은 우리 삶 속에 사탄이 들어놀 수 있는 출입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견고한 진은 어떻게 생겨납니까? 죄로 인해서 생겨납니다. 우리들 마음의 용서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해서 생겨납니다. 가계에 내려오는 나쁜 전통들로 인해서 생겨납니다. 충격적인 인생의 아픈 경험으로 인해서 생겨납니다. 이곳 강릉은 악한 영의 견고한 진이 많은 곳입니다. 이제 올해도 또 이곳 강릉은 단오제를 할 것입니다. 단오제를 통하여 역사사는 사탄의 견고한 진은 너무 강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박당하여 그것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고 있습니다.

또 지역적으로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이곳의 많은 세상 사람들이 견고한 사탄의 요새에 갇혀서 속박당하여 살고 있습니다. 미신과 우상숭배에 속박당하여 살고 있습니다.각종 음란에 속박당하여 살고 있고 분노와 상한 마음에 속박당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악한 영들을 물리치시는 주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믿음 굳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로와졌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를 계속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오직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영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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