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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살전 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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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섭 목사

2월을 마무리 하면서 새 봄의 희망을 꿈꾸는 주일 아침입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삶 속에 꿈꾸며 노래하는 새 봄의 희망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읽어드린 말씀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란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24일,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아름다운 미모와 연기력, 그에 따른 경제적 부가가치, 그리고 영화계의 유망주였던 이은주 라는 스타가 꽃다웠던 청춘을 뒤로 하고 한 줌의 재로 돌아갔습니다. 그만한 스타가 되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스스로 늘 비애와 자책에 시달리다 행복해야 할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마감했습니다.

1962년 자살한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몬로는 죽기 전 이렇게 자신의 삶을 노래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젊고 아름답고 돈도 많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외롭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항상 공허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란 흔히 마음의 감기로서 그만큼 쉽게 걸리기도 하고 낫기도 하는 정신적 장애라고 합니다. 우울증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우울해지며 그런 기분이 지나치게 오래 갈 경우 병이 된다고 합니다. 프로이드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우울증은 억압된 분노의 표출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의학박사인 쉰들러는 “행복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이 우리 생각이 기쁘게 지내는 마음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대개의 사람들은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행복해진다”고 했으며 심리학자인 메스우 N. 초펠 박사는 “행복은 순수한 내적인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환경과 관계없이 생각이나 삶의 태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은 세상 사람들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속에 심령의 낙을 주시고 그 안에서 행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장 행복한 삶이 열려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2:18에서 환경을 인하여는 감사할 수 없지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영항 받지 않고 주 안에서 행복하게 삶을 사는 비결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때에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행복이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기는 말씀을 듣는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주님이 보장해주시는 참된 삶의 행복이 넘쳐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16 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기쁨을 원어로 ‘카이로’라고 합니다. 그 뜻은 ‘유쾌하게 은은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폭죽 터뜨리듯 잠깐 기쁘다가 불꽃 사라지듯 꺼져버리는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아닙니다. 은은하게 항상,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빌립보서 4:4 말씀에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주님 밖에도 기쁨이 있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며 진정한 기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세한 기쁨, 인기를 누리는 기쁨, 돈 많이 버는 기쁨, 승진한 기쁨 등은 잠시 기쁨을 주지만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매를 맞고 죽음의 위협까지 받는 등 극심한 고난을 당했습니다.(사도행전 4:19) 그러나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을 멈추기는커녕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받은 고난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어리석고 미련한 짓 같고 심지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한 것은 어리석거나 정신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운동선수가 승리를 바라보고 고된 훈련을 참아내듯이 장차 올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8)

지난 해 5 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Again 1907기도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장로로서 서울특별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사를 낭독해 불교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법원에 고발된 이명박 서울시장은 그 일로 그 동안 언론과 타종교의 도마에 올라 얼마나 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괴롭힘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 일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많은 기도의 시간을 보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 월 13 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서울시민과 불교신도 108 명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봉헌 발언 때문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이명박 사장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고난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오히려 더 큰 믿음을 얻게 하실 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4:13 말씀에 보면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항상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미국의 시카고에서 세일즈맨들이 모여 지역회의에 참여하기 위하여 공항 게이트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 사람이 실수로 팔기 위하여 진열해 놓은 사과 바구니를 발로 차 버렸습니다. 사과가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행기 시간이 급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멈춰 서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서둘러 타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큼은 달랐습니다. 그는 다른 사원들과 함께 게이트 쪽으로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추어 섰습니다. 동료 사원들에게 집에 도착하거든 자기가 왜 늦게 되었는지 자기 아내에게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고서는 이내 사과가 흩어진 쪽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돌아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과를 파는 노점상 주인은 16 세 소녀였는데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조용히 흐느껴 울면서 사방에 흩어진 사과를 주우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소녀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승객들 중 그저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남자는 소녀와 함께 무릎을 꿇은 채 여기 저기 나뒹구는 사과를 부지런히 주워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가지런히 진열하는 것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 지갑에서 20 달러를 꺼내 소녀에게 주면서 자기 팀이 소녀의 장사에 손해를 끼친 것을 사과하며 위로했습니다. 신사가 이 소녀 곁을 막 떠나려고 돌아설 때 감동이 된 소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세요? 혹시 예수님이 아니세요?” 그렇습니다. 오늘 날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 같은 분들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통하여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일을 하든지 주 안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항상 기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비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 밖에서 얻는 기쁨은 곧 사라질 기쁨이요 안개와 같이 헛된 것에서 기쁨을 얻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고 고귀한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고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형통할 때나 어려울 때에도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여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24 시간을 입으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정신으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얼마 전 한국과 독일 간의 친선축구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던 축구국가대표선수 김동진 이란 청년이 있습니다. 독일이라면 월드컵 3 회 우승팀이고 2002 월드컵 때 우리나라를 이기고 결승전에 진출한 팀입니다.  김동진 선수는 첫 골을 넣고 난 후 바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가 선교신문의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김 선수가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있어 하나님은 가장 힘들 때 도움을 주신 분이십니다. 한 때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힘들어하며 방황했는데 그 때도 제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일이면 경기가 많은 편이지만 경기장이나 합숙훈련을 받는 근처 교회에서 빠지지 않고 예배들 드리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동료들과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기도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또한 박주영 선수 역시 골을 넣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이 극치의 순간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경기 중 가장 기쁜 순간에 그 공로를 뛰어난 기량을 가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하기 전 더 많은 기도시간을 갖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으며 경기할 때마다 자기의 영혼 높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놀라운 힘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하는 무릎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들면서 과거에 누렸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른 백성들과 구별시켜주는 특징입니다. 출애굽기 33:15-16 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백성들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실 때 모세는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거든 우리를 이곳에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즉 하나님 없이 간다면 올라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17 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또한 기도의 응답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이요 통로입니다.

여호수아의 기도는 태양을 멈추게 하므로 아모리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대승하였고 한나의 기도는 무자한 그녀에게 사무엘을 얻는 기쁨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엘리야의 기도는 3년 반 동안이나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이스라엘 대지에 큰 비를 내리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빌립보 감옥 문을 열게 함으로 간수장이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성령의 기쁨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3 년 반 동안이나 막혔던 하늘 문이 열린 것도, 꼭꼭 닫아두고 간수가 겹겹이 지키는 옥문도 기도할 때에 단번에 열려진 줄로 믿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나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동적으로 되어지지도 않습니다. 노력하고 힘쓰고 애쓸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44 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삶을 승리하는 법칙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강하게 훈련되고 준비 된 사람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는 인생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 46:3-4 말씀에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 즉 영혼의 호흡이 끊어지면 더 이상의 성도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밀폐된 공간이라도 호흡을 하면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할 때도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 절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일 안에서’라는 뜻으로 나그네 인생길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 축복과 자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의 모든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 말씀처럼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위스컨신 주에서 치매로 공생하는 아내를 둔 남편 Mr. Stillwater씨의 이야기가 미국의 한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내를 요양원에 맡긴 것이 마음에 걸린 남편은 하루를 마다 않고 거의 매일 저녁 요양원에 들러 한 두 시간을 곁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양원을 찾을 때는 늘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갔다고 합니다. 하루는 자녀들이 함께 와서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가리키며 이 분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남편을 몰라보는 아내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는 좋은 아저씨”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남편이 아내 옆에 앉아 “내가 좋으냐”고 묻자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니까 좋아”하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나하고 결혼하자”고 했고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계속 사다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더랍니다. 남편은 요양원에서 봉사하는 목사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요양원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탄절 오후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주례가 치매 걸린 아내에게 묻습니다. “옆에 있는 이 분을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 아내는 또박또박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주례의 허락을 받아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인사 시간을 갖고 준비해 간 메모지를 읽어 내려갔다고 합니다.

“오늘 저희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제 아내와 이런 번거로운 결혼식을 다시 준비한 것은 단 한 번만이라도 제 아내에게 ‘사랑하는 남편’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일 다시 제 아내가 저를 기억 못해도 저는 오늘만이라도 저의 사랑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도 제 아내에게 오늘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 번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식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오늘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에게 이 사랑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분의 아내는 치매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약 6 년을 더 살았는데 한 가지, 자기 남편을 남편으로 부르며 살았다고 합니다. 아내의 장례식 날 남편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족합니다. 제 아내가 요양원 결혼식 이후 적어도 저를 남편으로 불러준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고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이제 저의 남은 인생은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제 아내보다 더 외롭고 아픈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얼굴과 인격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의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까? 감사는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의 엄마가 “차돌아, 아빠가 없는 그 불쌍한 아이에게 네 축구공을 주렴” 이라고 말하자 아들이 대답합니다. “축구공 대신 아빠를 주면 안 될까요?”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삶이 아니라 감사하여 살기에 행복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행복한 삶이 되려면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이 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므로 더 좋은 감사의 조건들이 넘쳐나며 사랑과 행복의 노래가 흘러넘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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