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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 걸으라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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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상복 목사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 사도행전3:1-1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령이 강림하시면 우리에게 권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구원받은 자들이 성령의 힘과 능력을 체험하도록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가 걷고 뛰는 사건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메고 와서 성전 미문에 내려놓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침 9시, 정오, 오후3시에 정기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본문의 9시는 오후 3시를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정기적인 기도생활을 한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기도하며 사는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기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언제나 기도가 충만합니다. 기도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도 기도에 충만한 은혜가 있어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온갖 종류의 앉은뱅이들이 일어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여러 형태의 기도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중보기도위원회는 여러분이 써낸 기도제목을 가지고 1주일 내내 아침부터 1시간씩 교대로 연속적으로 기도합니다. 화요일 10시에는 화요중보기도팀 100여명이 모여 그 기도제목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성전건축이 완공될 때까지 구역별로 드리는 건축중보기도도 있습니다. 구역예배로 모일 때나 위원회, 선교회 등에서도 기도를 합니다. 수요기도회와 예배중보기도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주보를 펴놓고 순서 하나하나가 진행될 때마다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배 중에 말씀과 찬양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면 누군가 저 뒤에서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금요일 밤 9시부터 하는 심야기도회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QT를 통해 기도하며, 직장에서는 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합니다.

  기도가 여러분 삶에 습관이 되고 생활 스케줄 속에 꼭 들어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힘은 성령의 힘입니다. 성령의 힘은 기도를 통해 나타납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과 성령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들이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반드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본문의 앉은뱅이는 평생 부모님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날도 사람들이 그를 성전 미문에 앉혀놓았고, 그는 전처럼 동전 한 푼이라도 얻을까 하여, 지나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몸과 마음이 약한 사람들, 슬픔과 분노와 괴로움이 있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영혼이 연약해서 늘 사탄에게 패하고 죄의 종으로 끌려 다니는 사람들, 좋지 않은 성격과 습관 때문에 일평생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짐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그들이 누구보다 우리를 더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가끔 우리 때문에 실망을 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남다른 인격으로 내게 힘과 도움과 모범이 되어줄 줄 알았는데…’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우리 삶에 변화와 능력이 나타나야 됩니다.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도움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분에게 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 저분의 기도는 응답이 되잖아. 저분의 변화를 보니 저분에게 대답이 있구나.’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남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동전 한 닢을 주고 싶어도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으면 줄 수가 없지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육적, 경제적, 신앙적 도움을 풍성하게 받아서 언제나 넉넉히 나눠줄 것이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간이든, 기도든, 사랑이든, 물질이든, 재능이든, 지식이든, 그 무엇이든지 반드시 줄 것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의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를 겨우 맺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많은 열매를 맺어서 내게 찾아오는 누구에게든지 따서 줄 수 있는 풍성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계속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풍성하고 넉넉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줄 것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줄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의 핵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문제해결의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돈 몇 푼을 원했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보기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돈 몇 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에게 무관심한 채 그저 불쌍해서 동전 몇 푼을 던져주었을 뿐이지만,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값싼 동정이 아니라 “일어나 걸어라”고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매우 멋있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아무나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줄 것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예수의 이름과 성령의 충만함이 있으면 앉은뱅이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돈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 내 안에 성령 충만함이 있다. 일어나 걸어라.”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명령만 하지 않고 직접 앉은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말만 하지 말고 빵도 한 덩어리 주어야 합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손을 잡아 일으켜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와 함께 현실적인 도움의 손길을 펴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이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제일 유명한 예가 오병이어의 이야기입니다. 무려 5천명, 만 명이 모인 곳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가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 사랑의 손길과 성령님이 합할 때 거기에서 5천 명을 먹이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의 그 작은 손에 힘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보십시오. 여러분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인간적으로, 직장 때문에, 건강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펴서 그분들의 손을 잡으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목사의 기도를 받기를 원합니다. 목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동일한 하나님이시요, 같은 성령이시오, 같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옆을 보십시오. 여러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마음에 모신 여러분,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준 적이 있습니까? 꼭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난 성격 때문에 평생 힘들게 사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선언할 때 그 분이 일어나 자유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그 분의 성격에 변화를 주시는 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이 있는 사람을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붙들고 기도해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반드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교회와 가정과 형제와 친구들 가운데서 기도의 일꾼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시는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앉은뱅이가 발목과 발에 힘을 얻어 일어났습니다. 그는 걸었고, 뛰었고, 손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성령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경험한 바로 그 성령님이 이 시간에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옛날에 역사하신 성령님은 오늘도 내일도, 어떤 형편 중에도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어도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은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분을 통해 결정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랐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과 실력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뻗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을 확실히 믿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몸의 질병이면 이제 기도할 때 아픈 곳에 손을 얹으시고 “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기도하십시다. 만약 사람 때문에 고생한다면 그 사람이 있는 쪽으로 손을 펴고 “하나님이여, 그를 용서할 수 있는 자유를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을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유를 얻어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직장이나 사업에 문제가 있어서 경제적으로 심히 어려우면, 이 시간 만복의 근원 하나님께 손을 들고 “옛날에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하나님, 이제도 나타나셔서 제 문제를 해결해주옵소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혹시 자녀 때문에 속을 썩고 있다면, 그 자녀를 생각하며 “하나님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딸, 내 아들을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령의 역사를 꼭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제가 성령의 역사로 해결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 앉은뱅이도 무엇인가 받을 것을 기대하며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앉은뱅이의 믿음이 서로 일치하여 불꽃이 튀었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와 동일한 축복이 우리의 삶에도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도 기대하십시다. 우리도 믿으십시다. 우리도 선언하십시다. 우리도 기도함으로써 인생의 문제를 성령의 힘으로 해결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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