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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계산하며 살지 맙시다 (행 8: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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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공재영 목사
 
사람은 누구나 사는 것이 힘이 들면 쉽게 내 뱉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귀찮다’라는 말이며 이것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일이 많아 서도 아니고 병이 들어 약해져서 나오는 말도 아닌 것입니다. 삶이 지쳐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분출 되는 고통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 해는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인데 몇시간 차를 타고 가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놀라운 적은 어떤 사람은 긴 휴가를 얻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야영을 하며 사막저편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태양 곧 자신을 위한 화려한 일출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똑같은 태양인데 그 태양을 보며 세상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 순간 자신의 지금까지 무거운 짐들 곧 삶 속에 계산하므로 만들어진 모든 사슬들을 풀어 버리는 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편한 교통도, 쾌적한 호텔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어도 그 순간을 위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자신의 삶 속에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새벽의 축복을 누리는 길은 세상을 계산하며 사는 삶을 벗을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사슬을 벗어버려야 자신을 담대하게 열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부러워만 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돈을 주고 하나님까지 살고 팔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계산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계산하며 살 때 늘 자신을 속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 미신적인 삶을 벗어버립시다.(18,20)

본문은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신적인 대접을 받으려 함을 기술한 내용입니다. 자신의 어떤 행위나 값을 드려 하나님을 사서 자신의 소원을 성취해 보겠다는 철저한 미신적인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 삶이 우리를 불한하게 하며 쫓기게 합니다. 이유는 세상에는 사람이 계산할 수 없는 자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자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리이지 내 계산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그 사람은 부모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고, 그렇게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자녀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 질 때 인간관계는 보람을 느끼고 삶이 자랑스럽게 됩니다. 올바른 관계인식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 참된 믿음이라면 미신적인 자리는 관계는 중요하지 않고 계산하여 결과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람이 만들어 놓은 우상처럼 자신이 필요하면 기도하여 복 받겠다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섬기지 말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곧 나의 창조주시며 내 아버지로 관계를 인식하고 그 살아계신 실존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미신적인 신앙으로 섬기는 자리는 아쉬우면 어떤 것도 붙잡으려고 하는 혼합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많은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콜롬버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믿음하나로 신대륙을 발견한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 세상을 계산하는 미신적인 사람보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갑시다.

2. 한이 풀리는 생활을 삽시다.(19)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이 자리를 잡았을 때에 그것이 한이 되며 그 한이 행동이로 나올 대에 이기적인 감정이 용암이 분출하듯이 솟구쳐서 자신의 한이 풀어질때 까지 악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서러운데 어떤 사람은 한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싫어하여 그 현상이 보여지면 한이 맺히도록 악한 감정으로 심한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물림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자라온 배경에서 두가지 한을 품고 산 사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권력에 대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돈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베드로는 지적하기를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였다”고 책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마술을 행하여 뭇 사람을 놀라게 하여 힘있는 자로 대접을 받았던 것이며 그 댓가로 많은 물질적부를 축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마술사 시몬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고는 자신의 행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깨닫고 돈을 주고 그 권능을 살려고 덤벼들고 있는 것이 본물의 현장입니다. 끝없이 솟아나는 한 사람의 한 맺힌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상한 삼령을 치료해 주셔서 한이 서린 사람이 아니라 축복을 대물림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받고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치료의 복인 것입니다. 치료의 축복이 있어야 새로운 세상이 보여지게 되고 세상을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 감사하는 자라가 만들어지고 한을 풀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3.자신의 축복을 보는 자가 됩시다.(24-24)

돈을 주고 하나님의 축복을 살려고 한 시몬이라는 사람 때문에 영어에  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성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축복의 시작은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며 성도의 축복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산다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뭇 사람들을 속이면서 영화를 누렸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자리를 찾았다면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는 것인데 그 축복은 보여지지 않고 여전히 세상을 계산만 하면서 자신의 한을 채우려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범사에 삼사하라고 하시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서 자신에게 있는 축복을 볼 때에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저것만 생각하면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생활 속에 감사하는 자리요, 자족하는 삶의 자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죽는 자리에 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을 믿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를 위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나의 모든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 죽어 주신 예수님만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떤 생활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 하지 않고 다시 시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유는 그 하나님이 일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나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있는 축복인 것이면 그것을 보는 자는 세상을 계산치 않습니다.

결론
세상을 계산하기를 좋아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계산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은 은혜를 받을 때문이지 그것이 축복의 조건은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그냥 사랑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것만을 보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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