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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하여 새 사람 되리라 (삼상 10:1-16, 행 1:6-8, 눅 24: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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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오동 목사

1. 역사를 통하여 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하신 큰일을  네 가지로 생각해 보면 맨 먼저 천지창조를 들 수 있습니다. 6일간 천지와 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는 왕적인 지위를 주셨습니다. 결국 따지면 창조는 전적으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출애굽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수여하시고는 그들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삼으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역사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내려왔으나 하나님은 그 민족을 통하여 여호와 신앙을 전승하셨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도 그 민족과 역사를 배경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하신 큰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이제는 온 세계 만민을 구원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하신 또 하나의 큰일은 성령을 보내신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셔서 그가 다스리시는 왕국이 땅 끝까지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그 문호를 개방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이루어주셨는데 성령께서 임하시는 일은 우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징조를 통하여 성령의 나타나심을 알 수 있으나 성령님께서는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신앙생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성령의 임하심입니다. 고전12:3에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는 주님이시다’라 할 자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맨 먼저 한 질문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절실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교회의 직분을 받고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직분을 받을 때 우리는 교회가 정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직 같으면 노회에 청원하여 허락을 받고, 교회에서 투표로 선출되고, 교회예법에 따라 임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한 질문대로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할 때 오늘 우리 대답은 어떠합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우리가 주님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 있어서 성령님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절대 필수입니다.

2. 이제 바야흐로 사울이 왕으로 임직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에게 “우리도 다른 나라같이” 되고 싶다고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왕을 세워 달라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되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나라들 같이 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왕을 세우는 절차에서 나타났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울로 하여금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기 위하여 길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이 있는 곳으로 그 발걸음을 인도하셨습니다. 겉으로 되어지는 일들이 우연인 것 같으나 그 배후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지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새 한 마리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 된 우리에게야 얼마나 더 철저하게 보살펴주시는가를 실감 있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 잔치에 초대되고 그 잔치의 상석에 앉게 됩니다. 그 지방 기라성 같은 VIP들이 모인 자리에 상석에 앉은 사울은 아마도 안절부절 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초대되어 온 그 지방 유지들도 생면부지의 젊은 사람이 상석에 앉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개인은 물론 우리 교회에 되어지는 일들이 현재 우리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세밀하게 섭리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이제 공적인 모든 행사를 마치고 사무엘과 사울 두 사람의 독대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몇 가지 중요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비록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들 같이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주소서”라고 요구했으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은 열방과 다르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聖徒)”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과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불러 세우실 때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불러 세우셨습니다.

(1) 먼저 9:27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주리라”고 했습니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늘의 음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에 따라 일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직분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백성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장로교 신조에 있는 대로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개인적으로든지 집단적으로든지 이 기본 원칙에서 떠날 때 이미 우리는 성도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들과 같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인 일은 우리에게 오늘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2)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부은 일”입니다. 이것은 임직 예법으로 성령 임재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제사장을 세울 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왕을 세울 때도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히브리말로는 메시야요, 헬라말로는 그리스도입니다. 여기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들과 달라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은 이미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직분을 감당할 때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의 직책을 부분적으로 수행해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1:에 “옛적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그리스도의 왕 직을 잘 수행했느냐에 따라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해야 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이것이 평가기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은 축복의 표시입니다. 우리들 교회에서 임직식을 할 때는 안수가 있고 난 다음에 소위 “악수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그 직분자가 되었을 확인해 주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성경에는 아무나 나서서 자칭 “내가 왕이다” 또는 “내가 선지자다”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뽑으시고, 예법에 따라 의식을 행하고 나서 주의 일꾼으로 사역하게 됩니다. 다윗의 말년에 아도니야가 자칭왕이 되었다가 결국 다윗과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정식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바람에 아도니야의 반역이 일일천하로 끝나게 된 것은 유명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그 권한을 교회의 치리회를 통하여 행사하십니다. 교회는 다른 사회조직과는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절대적입니다. 여기 교회의 권위와 질서가 있습니다.

4.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나서 그를 보내면서 길에 되어질 몇 가지 징조를 예고해 줍니다. “가다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가다가 다볼 상수리나무 밑에서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등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예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통하여 사무엘이 한 말을 확인케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사울은 하나님이 들어 쓰시기 위해 선택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징조를 요구했습니다. “나에게 나타나시고 나를 부르신 이가 여호와이심을 확인할 수 있는 징조를 주십시오”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요구를 들어 주셨고 기드온은 확신을 가지고 주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들어 쓰실 때 역시 이런저런 징조를 주셨습니다. 교회의 투표행사라든지, 임직식이라든지 하는 일들도 그런 징조의 일환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십시오.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역시 인간적인 요소가 얼마나 강하게 작용했습니까? 그렇다고 주님이 그 일들을 무시했거나 거부했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고는 절대 순종하시므로 그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일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사울이 마침내 벧엘에 있는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에는 선지자의 무리들이 예언을 하면서 사울을 향하여 내려오면서 사울을 환영하였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도 그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예언을 하게 되었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지금까지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외적인 절차를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은 결코 사람들이 세우는 것도 아니요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처럼 되게 해달라고 했으나 하나님은 열방과 다른 왕으로 세우십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 행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열방의 왕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해야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라 왕직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라 우리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 능력보다 위대한 일을,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맨 먼저 주신 분부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조급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분부를 따랐습니다. 열흘 동안 모여서 합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하여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인간적인 훌륭한 조건보다도 더 우선적이고 결정적인 일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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