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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확신 (롬 8:15-17, 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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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패배적인 생각, 또는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거나, ‘다른 사람들은 다 해도 나는 못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나는 무능하다’, ‘나는 뭔가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을 할 능력이 없다’, ‘나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이것은 ‘아무도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고 이렇게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야’라는 생각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결국 ‘어차피 내 인생은 잘 되기는 틀렸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곤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우리 인생을 소심하게 만듭니다. 또한 낙심하게 만들고 인생의 열정과 용기를 빼앗아 갑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내 인생을 바꾸려고 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 합니다.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던 눈에서 긍정적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믿음 안에서, 희망의 눈으로 보는 시각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휴양도시인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가면 유명한 동물원이 있습니다. 그 곳은 각종 희귀한 동물들을 다 모아 놓은 곳입니다. 각 코스를 다 돌아 본 후, 맨 마지막으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코스가 하나 있습니다. 그 코스의 제목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 있다는 곳에서 사람들은 기대를 가지고 줄을 길게 늘어서서 순서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이윽고 관람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미소가 흘렀습니다. 기쁨이 넘쳐서 그 문을 나서는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안에는 어떤 신기한 동물이 있지 않았습니다. 벽에 큰 거울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면 누구의 얼굴이 보였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요, 하나님의 창조적인 걸작품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참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한 번 따라해 볼까요? “나는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맞습니다. 단점도 많지만, 요모조모 따져보면 나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옆에 계신 분들도 어떤 분이겠습니까? 꽤 괜찮은 분들입니다. 옆 분들께 얘기해드리겠습니다. “당신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간의 신체를 돈으로 계산하니 7000원 정도 되더랍니다. 성냥 몇 갑 살 돈 밖에 안 되더라는 얘기입니다. 황이 좀 나오고, 인이 나오고, 칼슘 얼마 나오고...
  그런데 다른 어떤 사람이 다시 계산하니 사람의 몸은 500만불의 가치가 있다고 했답니다. 인간의 장기 하나 하나가 참으로 소중하고 굳이 값으로 따져도 아주 비싸기에 말입니다. 또한 그것을 떠나서도 인간은 참으로 존귀한 존재입니다. 왜입니까? 이 세상에 나하고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오로지 나 하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개성이 있습니다. 독특합니다. 그러니 나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뭐든지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진짜 귀한 양복은 손으로 지어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두도 진짜 좋은 구두는 수제화입니다.  손으로 직접 만든 게 귀한 것이고, 하나밖에 없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난 하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얼마나 귀하고 귀하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왜 귀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많이 부르던 찬송 411장에 보면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받는 사람임이 성경에 써 있습니다. 중앙일보나 한국일보에 써 있으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써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들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우리가 얼마나 귀한존재인지 모릅니다. 411장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 이것이 내가 귀한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내가 귀하디 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이 땅에 왔다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만세 전에,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시고, 계획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의 삶을 이미 다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아멘!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아셨고, 우리를 예정하셨고, 때가 되어서 아브라함을 부른 것처럼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영신교회로 부르시고, 우리 가정으로 부르시고, 대한민국으로 부르시고, 이 시대 2000년대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부른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곧 의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가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깨끗한 사람이다. 내가 너를 의롭다고 인정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이제 하나님 앞에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되어서, 흠 없는 자가 되어서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귀의 특성이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사람들의 약점을 살피는 것입니다. 마귀는 “너 옛날에 이런 약점 있지? 사기 쳤지? 도둑질 했지?”라고 속삭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다 잊어버렸고, 너의 과거는 내가 다 의롭다고 인정했다. 너의 죄가 다 씻어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의롭다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또한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너를 영화로운 자리,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워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에 우리도 그 영광에 동참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살아있는 자들 그대로 불멸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도 썩지 않은 불멸의 몸으로 바뀔 것입니다. 영광의 몸으로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때 우리도 거기에 동참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미래까지도 다 설계되어 있고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리 보니 우리가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과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확신이 있습니까? 승리의 확신이 있습니까? 영생의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 받음의 확신이 있습니까?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 죄가 다 사함을 받았느니라” 즉, 여러분 마음속에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건강의 축복도 받을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 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히딩크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늘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그 전까지 16강에도 못 들던 우리 한국팀을 그가 와서 담금질하고 재련하고 훈련해서 세계 4강에 드는 강한 팀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히딩크는 명장 중의 명장입니다. 진짜 명장은 시시한 팀을 훈련시켜 큰 강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즘도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 히딩크가 이끄는 팀이 4강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입니다. 어느 팀이나 히딩크가 지도하면 강력한 팀이 되는 모습을 또 한번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히딩크는 선수들을 발굴하는 눈이 있습니다. 그는 무명의 선수도 딱 보면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봅니다. 그래서 이영표와 박지성 선수를 발굴해냈습니다. 그들은 월드컵 전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선수였습니다. 물론 이영표는 제 동생입니다만^^  히딩크가 두 선수를 발굴해 월드컵 대표팀에 세웠고, 그들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박지성이 한 골 넣고, 히딩크의 넓은 가슴에 뛰어서 올라가 안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듯 그들을 훈련하고, 조련했던 사람이 바로 히딩크였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의 지휘 하에만 가면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히딩크 밑에만 가면은 승리하는 팀이 된다는 것,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드라마 얘기라 좀 그렇습니다만, KBS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을 거둡니다. 세상에 스물 세 번 싸워서 스물 세 번 다 이긴 명장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건 알렉산더도 못했던 일입니다. 아마 이순신 장군 밑의 부하들에게는 이런 확신이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이긴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져본 적이 없으니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대장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을 내세우기만 하면 우리는 승리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승리하셨습니다. 무덤의 권세를 깨치고 영원한 부활의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승리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미래까지도 다 설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 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미래가 밝을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 잘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지금은 좀 어렵지만, 다 잘될 것입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이 축복하시니 잘 안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다 잘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이 축복하시는 교회이니 말입니다. 교회는 더욱 왕성하고 성전 건축도 아름답게 잘 완결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니 대한민국도 앞으로 더 번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자 이 민족을 택하셨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이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가 가져야 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의 확신입니다.

  옆 사람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다.”
  15절, 16절 말씀을 다시 읽어 봅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아멘!
  우리는 종의 영, 율법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양자(養子)의 영이라고도 부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이 그렇게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이미 자녀가 된 것입니까? 말씀속에서 증거하듯이 우리는 이미 자녀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주실 것이 아니라 이미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는 권세가 따라옵니다. 자녀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가장 쉽게 말하면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오늘 17절에도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란 말씀이 있습니다. 후사란 상속자란 뜻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 당당하게 요구할 자녀의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에게 용돈 달라고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아빠 돈 주세요.”라고 손을 쑥 내밉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나한테 돈 맡겨 놓았냐?” 해도 “아~ 주세요. 달라구요.”하고 자녀들은 떼를 쓰면 속수무책이 되곤 합니다. 부모가 “내가 너한테 왜 줘야하냐?”하고 물으면 대답이 걸작입니다. “엄마, 아빠가 날 낳으셨잖아요. 뭘 모르시는거 아니예요?” 라고 합니다.  부모는 낳은 죄밖에 없는데 돈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꾸짖지 않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능력이 되는 범위내에서 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가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녀는 이런 특권, 이런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제 아버님께서는 강원도 시골 평창 읍에 우체국장을 지내셨고, 저는 7남매 중에 막내아들로 자랐습니다. 관사가 우체국 안에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우체국이 제 놀이터였습니다. 우체국 마당에 집배원들의 배달용 빨간 자전거가 쭈욱 서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제 자전거였습니다. 저는 그 중에 맘에 드는 자전거를 골라 타고 매일 돌아 다녔습니다. 키가 작아서 큰 자전거를 못 타니까 한쪽 다리를 껴서 8자로 타고 다녔습니다.

  심심해서 교환실에 들어가면 교환수 누나들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500개에서 1000개의 코드가 있는데 전화가 오면, 해당하는 집 코드를 찾아 꽂고 연결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심심할 때면 누나들 틈에 끼여 전화선 꽂는 놀이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우체국 안에 들어가면 전보 보내는 기계가 있는 곳도 있는데 그곳도 제 놀이터이자, 놀잇감이었습니다. 저 보고 뭐라고 꾸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였겠습니까? 예! 우체국장의 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체국 안에선 그만한 권세가 없었습니다. 만약 다른 아이가 우체국에 와서 이것저것 만지면 분명 혼나고 쫓겨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나만의 천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나라의 대통령의 아들이나, 기관장의 아들도 그럴진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권세가 어떻겠습니까?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깊이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당당히 가서 요구할 특권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양자(養子)는 입양한 아이를 말합니다.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고, 밖에서 주어 와서 키운 양자라면 대뜸 아버지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로마시대에는 양자로 삼아도 자기 아들과 똑같이 대우했다고 합니다. 양자가 똑똑하고 귀하면 그 아이에게 자기 재산을 물려 주었으며, 어느 가정에 입양되면 옛날의 신분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양자로 들어간 집의 귀족의 신분을 그대로 물려받아 살았다고 합니다.
  오늘 바울이 말하는 양자의 영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일한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는데 아들이 와서 절을 꾸벅 하며 "어머니, 오늘 아침을 한 술 얻어 먹을 수 있겠습니까? 제게 밥을 주시겠습니까? 잘 기록해 놓으시면 돈 벌어서 꼭 갚아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우리 아들이 커서 별말을 다 하는구나!”하고 기특해 하시겠습니까? “별 미친놈 다보겠네, 제 집에서 제 밥 먹는데 뭐가 그렇게 인사가 거창 하냐 이놈아! 그냥 주는 것을 먹고 가면 되지”라고 하겠습니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엄마! 한 그릇 더!”가 아닐까요? 그러면 엄마가 먹을 밥도 넘겨줍니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친구 집에 놀러가서 밥을 먹을 때면, 배가 덜 찼다고 해서 더 달라고 하기가 차마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더 주겠다고 해도 “괜찮아요. 배불러요” 하곤 합니다.

  자녀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부모는 그 자녀를 축복하고 자녀의 일생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한 삶으로 설계해 주시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아멘! 자녀들은 그 부모의 놀라운 축복을 이어받기 전에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은 고난을 당해도 감사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우리에겐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상속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하고, 헌신 해야 하고, 헌금도 드려야 하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바로 이런 부모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의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사람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는 도움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아멘.
  우리는 근본적으로 약합니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기 때문에 늘 어려움을 당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성령님 이십니다.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육신의 부모를 모시고 있지만, 늘 부모님이 우리 곁에 계신 것은 아닙니다. 형제들이 있지만, 우리가 고난당할 때 형제가 늘 옆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일생을 함께 살아도 어떤 가정은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울 때 혼자 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늘 동행 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 이십니다.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에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도우시나니’란 말은 ‘파라클레토스’란 말인데, 그 말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 우리를 협력하시는 분(Helper),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 우리를 상담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지라도, 뭘 위해 기도해야 될지 몰라도 그분은 탄식 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도할 용기마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님은 탄식 하시면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위기를 순간순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도운 것 같습니다. 누구입니까?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의 중보기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든든하지 않습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 기도할지라도 그 기도를 바르게 교정시키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27절에 보니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되도록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시는 분이 성령님 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당연히 응답을 받아야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다 응답이 됐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 입니다만, 희랍의 한 신이 왕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의 한 가지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 주겠다” 고 하니, 왕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으니 내 손이 닿는 것 마다 다 금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데, 마이크를 잡으면 마이크가 금이 되고, 종을 잡으면 종이 금으로 변했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왕비에게 알리려고 가다가, 강아지가 반갑게 다가와서 껴안으니 강아지가 금 강아지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꼭 껴안았더니 아내가 금덩이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와서 안기니까 그 아들도 금덩이가 됐습니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더니 수저도 금덩이요, 밥도 금덩이로 변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쫄쫄 굶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다 된다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도움이 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진정한 도움자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가져야 될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확신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합력이라는 것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일에 동참하시는 것 그것도 합력입니다. 또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성공과 불행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아픔과 시련과 고난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오고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이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해도 마지막에는 성공할 것입니다. 지금 고난이 있어도 마지막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오히려 시련 때문에 내게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8장 28절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많이 부르던 찬송이 43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입니다. 찬송에 보면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의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란 가사가 나옵니다. 내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형통하게 하시고, 선을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11장 5절에서 하나님은 만사를 성취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사셔야 합니다.

  어느 어촌의 가장들이 고기를 잡으러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갔습니다. 그날 날씨가 흐리고 폭풍이 몰려왔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도 고기잡이 나간 아빠들이 돌아오지 않아 그 가정의 어머니들이 바닷가에 가서 서성이며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안에는 아이들밖에 없었습니다. 초가삼간 집에 아이 둘이 초불을 켜놓고 놀다가 초를 떨어뜨려서 불이 나서 초가삼간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다가 집에 불이 났으니 불 끄느라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너무 운이 없지 왜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나왔을 법 합니다. 이렇게 서러운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가 있습니까? 고기잡이 나간 남편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집 한 채있는 것은 다 태워버리고.. 새벽녘이 되었는데 배한척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까 그 동네에서 나간 남편들을 다 태운 배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 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무서운 폭풍 가운데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느냐고 너무 반갑다”고 하니  우리가 폭풍 가운데 아무것도 앞이 보이지 않아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서 방황하고 있는데 멀리서 불길이 치솟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조건 그것만 보고 노를 저어 왔는데, 정신없이 오다 보니 여기가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집 한 채를 홀랑 태워 버렸지만 사랑하는 남편의 생명을 건지고 보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은 재물을 잃은 것 같지만 그것을 통해서 많은 영혼을 얻을 수 있고, 인격을 얻을 수 있고,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우리의 불행과 우리의 질병이 합력하여 마지막에는 선한 결과를 이루고 형통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어려움이 와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누구 입니까? 바로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한다면, 고난이 오고 시련이 와도 하나님만을 사랑 한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과는 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감사 하십시오. 그리고 이 확신 가운데 살아가십시오.
자녀의 확신, 성령이 나를 도우신다는 이 확신,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날마다 세찬 파도에서도 승리하고, 험한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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