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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파종과 수확의 법칙 (갈 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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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존경하는 스승님을 한 분 꼽으라고 하면 저는 한신 대학교 신학과 명예교수로 계시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전경연 박사님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분은 신학계의 거두이시고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치셨으며 많은 저서를 남기신 분이십니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셨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전 날 까지 서재에 앉아서 책을 쓰셨습니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까지 수유리에 있는  한신 대학교 도서관에 가셔서 책을 쓰는데 필요한 참고서적을 빌리실 정도로 건강하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또한, 그 분은 교수임과 동시에 복음의 열정을 가지신 목사님이셨습니다. 교수로 계시면서도 자기 개인 사재를 털어서 교회를 두 개나 개척했습니다. 수유리에 가면 성북교회라고 아주 멋진 건물에 500~600명이 출석하는 유명한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와, 서울 중심에 있는 이름 난 경서교회 두 곳이 모두 목사님의 복음의 열정으로 탄생한 교회입니다. 그 분은 그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시다가 교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후배 목회자에게 그 교회의 목회를 위임하고, 본인은 학교로 돌아가서 다시 또 학업과 교수활동에만 전념하시곤 했던 분이셨습니다. 

  전경연 박사님이 돌아가신 후에 장례식을 마치고 가족들은, 박사님의 유언대로 그 분이 남기신 얼마 안 되는 유산을 정리해서 그 중에서 1억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헌금했습니다. 내가 몸담았던 직장을 위해서 1억을 헌금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90의 연세에 어디 부동산 투기를 해서 돈을 버신 분도 아니고, 그야말로 검약하고 검소하게 평생을 사신 결과였습니다. 살아생전에 그 분은 늘 서재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시는데, 추운 겨울에도 그저 웬만하면 난로를 안 피우시고, 무거운 그 외투를 뒤집어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셨습니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외투를 벗으시고 난로에 불을 지피셔서 그 방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셨던, 그런 존경스러운 교수님이셨습니다. 정말 그 분은 우리에게 존경받을 학자요, 또 교회의 개척자요, 또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경연 박사님께 공관복음, 바울서신등의 과목을 배웠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으로는 그 목사님의 아들이 저랑 친한 친구처럼 지내는 목사님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학부를 졸업할 때 교수, 학생들 앞에서 채플 시간에 졸업 설교를 했습니다. 마침 그 때 전경연 박사님께서 제 설교에 대해서 평가를 해 주셨는데, 꽤 좋은 평가를 해 주셨던 듯 싶습니다. “이 분은 참 복음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앞으로 아주 좋은 설교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칭찬해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제 뇌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분을 생각할 때 마다 “나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멋진 삶을 살고,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요즘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학자들, 유명인들, 정치인들도 시간이 지나니 일제 시대에 협력했던 부끄러운 과거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현직에 있을 때 저질렀던 치부들이 드러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변함없이 부끄럼 없이 일관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인생을 통해서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둘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7절 말씀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아멘!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말은 잘못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자기는 별로 진실되게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합니다. 또는 자신은 아내에게 은혜와 관대함을 베풀지도 않으면서도 아내가 왜 나를 존경해주지 않느냐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기대를 갖지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씨를 뿌린 대로 거두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을 심고, 불의를 심고 어찌 진실과 인정을 받기를 원하느냐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스스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에 대해서 불평을 터뜨리고 불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심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이어서 보면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은 조롱 받으실 분이 아니다’라는 말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그리 호락 호락히 넘어가실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별로 심은 것도 없는데, 또한 진실하게 살지도 못했는데 마지막에 그에게 많은 상급을 주시고, 영화로운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가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았으면 하나님은 그 값을 반드시 갚아주시고 보상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습게 알고 넘어갈 그런 호락호락한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심고 거두는 원리,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성경의 원리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속담 대로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도 미움을 심으면 증오를 거둡니다. 복수를 심으면 살인을 거둡니다. 그러나 순종을 심으면 기적을 거두고, 이웃에 대한 구제와 사랑을 심으면 축복을 거둡니다. 용서와 관용을 심으면 신뢰와 존경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성실과 근면을 심으면 풍요로움을 거둘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름과 방탕을 심으면 가난과 실패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 인생에 후회 없는 삶, 그리고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진리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파종과 수확의 법칙입니다.

  첫째, 심어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심는 자만이 거둘 수 있습니다. 봄에 농부가 밭에 파종하지 않았더라면, 가을에 가서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얻을 것이 없습니다. 농부가 아무것도 심지 않았는데 밭에 나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입니까? 잡초입니다. 잡초는 아니 난 만 못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위해 참 많이 애쓰고, 기도하고, 사랑을 베푸시는 걸 몸으로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권사님들이나 제직들 회갑이나 고희잔치에 가서 예배를 인도할 때면, 그 자녀들이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해서 부모에게 잔치를 베풀어 드리는 걸 볼 때, 참 마음이 흐뭇합니다. “이 가족은 서로에게 많은 것을 투자했구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심어주었구나”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투자’와 같습니다. 인생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을 위해서, 우리의 지혜와 열정과 근면과 물질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일부는 이 땅에서 거두기도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우리가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신앙도 투자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천국을 위한 투자입니다. 기도하고,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성경 공부하고, 이웃을 향해서 구제하는 것, 다 하늘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심는 자만이 거둘 수 있어요. 심지 않고 왜 나는 거둔 게 없나하고 불평해 봤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즐겨 인용하는 세계적인 백화점 왕, 존 워너 메이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 출석하던 교회는 건물이 너무 허술해서 비가 오면 양동이를 받쳐야 했습니다. 게다가 마당은 진흙 바닥이라서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되기 일쑤이고, 신발을 늘 버리곤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벽돌공이었고, 그는 아버지를 도와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주급 대신에 벽돌 한 리어카를 받아가지고는 교회 마당에 깔았습니다. 어찌 보면, 당시에 가장 큰 것 같은 자기 임금 대신에, 한 리어카의 벽돌을 싣고 와서 하나님 앞에 심은 건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셔서 세계적인 백화점 재벌이 되게 하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돈만 위해 살았던 인물이 아닙니다. 교회 학교를 사랑해서 주일 학교 교사로서 평생을 살았는데, 그가 섬기는 교회학교 학생이 7,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체신부 장관으로 일 할 때에도, 교사로서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백화점을 경영하면서도 50,000명이 넘는 백화점 직원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복지에도 많은 것을 투자했습니다. 6개월 이상 회사에 근무한 사람들은 2주의 유급휴가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휴가를 받아도 갈 곳이 없으니까, 넓은 땅을 사서, 휴양지를 건설하고, 거기에 많은 스포츠 센터를 만들고,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서, 직원과 가족들이 마음 놓고 가서 즐기다가, 쉬고 재충전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또 그들이 직장 생활 하다가 퇴직 후 노후를 보낼 곳이 없음을 알고, 많은 집을 지어서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많은 것을 심은 모습 아닙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백화점들은 토요일도 밤 10까지 일해야 겨우 문을 닫는데, 존 워너 메이커의 백화점은 토요일 오후 1시면 문을 닫아 영업시간을 오히려 단축했습니다. 주일에는 아예 백화점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백화점은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날마다 수입이 늘고 확장되어 갔습니다. 백화점 직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심었고, 많은 축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심는 자에게 수확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파종과 수확이 법칙은 좋은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나쁜 씨앗이나 좋지 않은 씨앗을 심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중 8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아멘.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종류를 심습니다. 육체를 위해서 또는 성령을 위해서 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깅 하고, 운동 하고, 등산 하는 등의 육체를 단련하는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타락한 육체, 타락한 육신의 본성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따라서 이기적인 삶을 살고, 쾌락을 추구하며, 썩어질 것을 위해서 귀중한 것들을 투자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 보면, 육체를 즐기는 자들을 열거합니다. 그들은 음행을 즐기고, 호색을 즐기고, 우상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을 쌓아놨다고 했습니다. 이런 악을 심는 자들은 결국,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이 썩어질 것은 멸망을 거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육신의 본능만을 위해 살아갔던 이들, 그것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헌신했던 사람들, 그들의 종착역은 멸망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해 열심히 심은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영원한 생명을 거둡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입니다.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뜻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씨앗을 뿌리는 그런 삶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들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뿌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씨앗은 바로 복음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뿌려지면, 그 씨앗은 놀랍게도 한 가정을 바꾸고, 한 지역을 바꾸고, 한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가장 위대합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한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에 보면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복음을 위해 투자되는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복음을 위해서 헌신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며 또한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헌신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교회를 건축 중이니, 교회를 위해 헌금하는 일도 열심히 하시고, 정성을 드리시고, 마음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십시오.
  이웃을 향하여 구제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우리가 이웃에게 물질적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에선 냉수 한 그릇 이라도 내 이름으로 형제에게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11장 25절에서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풀면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씨앗을 뿌리십시오. 잠언 22장 4절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아름답고 귀한 씨앗들을 많이 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파종과 수확의 법칙은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7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적용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투자하느냐가 수확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5분 기도하는 사람하고, 30분기도하는 사람하고 일생을 살아간다면 어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같을 수가 없습니다. 많이 뿌린 사람은 많이 얻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일주일에 한 시간 봉사하는 사람하고, 바쁘지만 시간을 내어 5시간 봉사하는 사람하고는 그 가치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리는 헌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 정성을 다해 최선을 드리는 것은 그것이 물질의 많고 적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가장 큰 헌신의 물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두 렙돈을 드린 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것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의 전 재산 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심기를 노력하십시오. 교회가 건축할 때, 할 수 있으면 많은 건축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것은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쓸 것 안 쓰고 아껴서 헌금 드리시는데, 그중에도 좀더 많은 정성을 가지고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드리고 희생한 사람들에게는 이 예배당에 더 많은 애착이 갈 것입니다. 헌금을 하는데 관심이 없고, 형식적으로 드리고, 또 안 드린 분들은 이 예배당에 별로 애착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과 물질이 봉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물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파종과 수확의 법칙은 봄에 심으면 가을에 거둔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오늘 심고 오늘 거둘 수 없다는 말 입니다. 적어도 오늘 심으면 내일 거두든지, 봄에 심으면 가을에 거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파종하면 씨앗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김 매고, 잡초를 뽑아주며 가을이 되어야 수확할 수 있듯이, 기다림이 필요하고 수고와 봉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뭔가 힘들이지 않고 인생의 성공과 축복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로또복권 사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오늘 당장 복권 사서 내일 당장 재벌이 되기를 꿈꾸는 것입니다. 여기에 허황된 심리가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농부의 기다림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5장 7절 이하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심으면 내일 거둘 것을 기다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자신을 매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을 하지만 늘 고독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그 여인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어느 길가를 지나가는데 행복을 파는 상점이란 간판이 붙은 상점이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을 원했던가’하며 가게에 들어가서 “나는 행복을 사고 싶어요. 돈은 얼마든지 있어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상점의 주인이 여기저기를 찾아서 씨앗 몇 개를 내어주더랍니다. “이런 것 말고요. 열매를 원해요. 지금 당장 행복한 것, 행복을 주세요.”라고 외쳤더니 상점 주인이 “뭘 잘못 알고 오신 것 같습니다. 우리 가게는 씨앗만 파는 가게입니다. 열매를 팔지 않고 씨앗만 파는 가게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행복은 어느 날 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고나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파랑새가 창문을 열고 날아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의 씨앗을 심으셔야합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곳에서 씨앗이 자라면서 행복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노력 없이 수고 없이 행복한 가정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행수로 성공이 오고 축복이 오지 않습니다. 성공의 씨앗을 심으셔야 합니다. 축복의 씨앗을 심으셔야 합니다. 잘 가꾸고 땀을 흘리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럴 때, 때가 되면 성공과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과 다윗을 보십시오. 그들은 수고 없이 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까지 그 씨앗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고난을 참아 왔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기까지 그 수많은 나날들을 고난 속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기도하며 기다려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꿈 꾸는 행복의 열매, 성공의 열매, 축복의 열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수고하고 기다릴 때 얻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파종과 수확의 법칙은 낙심하지 말아야 수확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은혜를 베풀었는데 배신이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용서를 베풀었는데 비난이 돌아오고, 친절을 나눴는데 오히려 변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잘 해봐야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열심히 예배 드렸는데 축복이 없는 것 같을 때, 열심히 십일조를 드렸는데 물질의 축복이 따라 오지 않는 것 같을 때, 열심히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했는데 응답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우리는 낙심하고 포기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기다리게 하시고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십니다. 아직 여러분의 때가 되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차주황 집사님을 보십시오. 결혼하고 10동안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포기하고 아이를 입양 할까 하는 생각도 수도 없이 하셨답니다. 때가 이르니, 10년 만에 차경회를 주시고, 그 다음에 차하현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니 십년 만에 둘 씩 한꺼번에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다리고 계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기 위해서 2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3년도 못 기다리고 주느니 못주느니 실랑이를 합니다.
  한 가지 기도 제목을 위해서 10년 동안 기도해 보셨습니까? 10년 동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셨습니까? 우리는 드린 것은 별로 없는데 받을 궁리만 하다 보니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는 것입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거두지 못한다면 우리 후손에게 그것이 돌아 갈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매우 어려운 교회에 부임을 해서 열심히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심방 하고 말씀을 준비해도 교인들에게서 변화를 발견할 수없고, 달라지는 것 없이 늘 그 모습 그대로 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목회를 포기 하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강단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잠깐 졸았는데 꿈을 꿨습니다. 꿈에 자신이 큰 화강암 앞에서 정으로 그 바위를 깨는 꿈이었습니다. 아무리 땀을 흘리며 정으로 깨도 바위가 끄떡도 안하고,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애쓰고 애쓰다가 지쳐서 던져 버리고 못하겠다고 포기 했습니다. 그 때 어디에선가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왜 그 일을 그만 두려 하느냐? 네가 할 일은 정으로 계속해서 바위를 깨는 것이다. 깨지든지 안 깨지든지 그것은 네가 알 바가 아니다. 깨지게 하는 것은 내가할 일이다. 너는 그저 정으로 바위를 깨는 것이다.”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목사님은 깨닫고 다시 일어나서 정으로 화강암 바위를 깨기 시작했는데, 3번을 깨니 그 단단한 바위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목사님은 그 의미를 깊이 생각 했습니다. 그는 포기하고 싶었던 목회에 다시 열정을 불어 넣었습니다. 다시 일어나 사랑으로 열심히 목회 할 때, 그의 노년에 풍성한 부흥의 열매를 맺는 축복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사업을 위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인생의 어떤 변화를 위해서 무수히 노력하고 투자 했는데, 당장 열매가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웃에게 수많은 사랑과 구제를 베풀었지만 열매가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봉사와 헌신을 다 기억하십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내가 드린 헌신과 봉사는 내 후손 천대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받지 못할 지라도 내 후손에게 그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내가 따먹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내 후손이 따먹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편 37장 25절에 보면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억하시기 때문에 그 자손이 걸인이 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은 때로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 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이 있습니다.
시편 126장 5절엔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고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인생의 파종기에 생명과 복음과 정직과 사랑과 용서를 심으셔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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