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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부모의 책임 (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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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얼마전에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뉴스를 들었습니다.
한 여중생이 아기 아버지를 죽인 뉴스입니다. 그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먹고 들어오고 그리고 술에 취한 채로 식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날도 이 여중생은 술에 취한 채로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행동하던 아버지를 우발적인 행동으로 죽였다는 것입니다.비록 아버지를 죽였지만 이소녀의 가정을 알고 있는 주위 이웃들과 많은 사람들이 이 소녀 구명을 위해 탄원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잘못한 것도 인정하지만 부모가 더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힘들다고 자녀들과 함께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얼마전의 뉴스에는 자녀들을 제대로 먹을 것을 주지 않아서 굶겨죽이기도 하고 마구 폭행하다가 죽인 일도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말세를 당한 우리 주변의 일들입니다.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책임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위한 책임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나름대로 맡은 책임들이 있습니다. 일을 위한 책임도 힘들고 교회에서 나름대로 맡은 책임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가장 힘이 드는 책임이 있다면 부모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3명의 딸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저는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또 대학원에서는 신학과 상담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녀 교육이 교육학으로 신학으로 상담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단순하게 영어의 ABC 순서처럼 또 수학의 공식처럼 단순하게 되어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자녀교육에 실패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구약에 보면 엘리제사장도 사무엘선지다도 다윗이나 솔로몬 왕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뛰어잔 믿음이었고 지도자였는데 가정에서 자녀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데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일을 다 잘해도 가정에서 자녀에 부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실패하게 되었을때에 그 휴유증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그 후손과 가문이 믿음에 떠남으로 인해서 많은 죄를 범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대한 책임을 부모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들의 입장에서 자녀교육을 학교에 맡기고 학원에 맡기고 교회에만 맡기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의 위임자는 바로 부모들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교사는 바로 가정의 부모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본문 신명기를 통해서 언약의 백성의 가정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복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통해서 이방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원하십니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주님의 자녀들이 이땅에서 복된 삶을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어른들에게 부모들에게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1.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4-5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언약의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자기 백성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제일의 삶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태어날때부터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어려서부터 가정에서부터 가르쳐져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가르침이기 이전에 삶으로 체득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라고 말하기 이전에 사랑하여야 합니다.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 사랑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마음으로 뜻으로 보여야 합니다.

먼저 부모들은 자녀를 가르치기이전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녀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관계를 갖으셔야 합니다. 가정에서 우리 부모들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신 것을 오직 인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본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회 속에서 믿음의 후손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서 믿음 생활을 잘 하는 부모들을 둔 자녀들이 결국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가르칠때 우리가 경험하는 진리가 한가지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들을 닮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 부모들이 살아가는 삶을 본받습니다.그래서 엄격하게 말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면 우리 부모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제가 어느날 아이들에게 밥을 먹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얘들아 밥을 남기면 안된다“라고 하면서 밥을 다 먹을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가 밥을 남겼습니다. 그랬더니 셋째아이가 말을 합니다.”아빠 밥을 남기지 말라고 했잖아요“라고 합니다. 아무리 말로 가르쳐도 삶으로 본보이지 않을때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외국에 갔는데 자기 아내가 너무 예뻐서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같은 거짓말을 합니다.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에 대해서 같이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실수가 아들 이삭에게 그대로 반복됩니다. 거짓말하는 부모 밑에서 거짓말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정직한 부모 밑에 정직한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렸을적부터 가정에서 믿음으로 양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부모로서 저에게 육신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었습니다. 그 부모님들의 사랑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받은 부모님들의 사랑을 생각하여 보면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도 많은 것같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어서 미성숙한 우리 부모님들을 이해하고 수용하였지만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어렸을적부터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살았다면 더 좋았을텐데라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정이 영적인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으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의 가정의 부모들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적인 부모들로 세워지를 바랍니다.

요즘 저의 딸들이 그런 고백을 할때가 있습니다.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이 너무 행복한 것같아서 좋습니다“라고 합니다. ”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 되어서 너무 좋은 것같습니다“라고 합니다. 비록 육신적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을 느끼는 모양입니다.아이들도 영이 있기 때문에 영으로 누리는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일전에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가 티이부이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무려 자녀들이 10여명이 되는 가정입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낳아서 40대초반의 저또래의 나이인데 아이들이 연년생으로 그렇게 낳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을 봐주고 서로 친구가 되어 놉니다. 식구들이 많다보니까 옷도 먹을 것도 항상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사님과 사모님을 중심으로 날마다 감사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언17장 1절에 보면 “마른 떡 한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날마다 건강하게 세워져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무장할 책임이 있습니다.

6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여기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합니다. 여기 마음에 새기라는 것은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겨서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먼저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의 다스림을 받을때 결국 가정도 다스림을 받습니다. 모든 삶을 다스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부모일지라도 기억할 것은 우리의 마음은 부패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죄성이 가득차있습니다. 우리의 부패하고 죄성의 마음을 다스릴 힘은 오직 말씀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다스리고 우리의 자녀를 다스릴 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 부모들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그 부모세대들은 그 마음에 말씀을 채우지 못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지 못하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결국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동안의 삶에서 하나님을 크게 10번이나 거역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강퍅하였고 너무나 굳어 있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세대락 어떤 세대입니까? 애굽에서 나올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세대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등으로 인도하면서 기적을 체험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은혜에서 멀어져갔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광야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면 그 말씀은 우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선택을 바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귀하고 온전한 뜻대로 분별력있게 선택하는 모습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말씀이 없는 자들은 그런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런 선택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헛된 것을 좇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실패한 것은 마음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도 실패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마다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우리는 실패합니다.

우리의 마음들은 세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엄청나게 많은 세상적인 것들이 유혹을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이 찾아옵니다. 그런 욕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들은 자꾸 헛된 가치를 향해서 동요가 일어납니다.
특별히 자녀들에 우리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교회 속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일단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자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데 아이들을 고액과외 시키고 해외유학을 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의 자녀들이 공부잘하여서 좋은 대학 갈 필요있습니다. 공부 잘해서 해외유학가면 좋지요.문제는 그것이 부모들의 욕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 오히려 아이들을 망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먼저 우리 부모들이 어른들이 성경적인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마음을 잡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먼저 자녀를 위해서 말씀을 물려줄 수 잇는 말씀의 부모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어머니 신앙의 아버지가 먼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9살 때 그의 어머니가 죽으면서 유언을 했습니다. 그 요지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은 경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새어머니도 링컨을 신앙으로 양육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이렇게 링컨을 말합니다.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만한 조건을 하나님은 한가지도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를 주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링컨뿐만 아니라 많은 훌륭한 자녀들의 배후에는 훌륭한 어머니 훌륭한 믿음의 부모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무디같은 사람은 “내가 성취한 것 가운데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어머니의 덕이고 은혜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들이 먼저 말씀의 부모 경건한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7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여기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가르칠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집에서든지 길에 있든지 심지어는 누웠을때에든지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성경을 가르칠 교사입니다.
시편127:3에서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단어는 하나는 ‘기업’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은 ‘상급’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여기 기업이라는 말은 현대적인 말로 ‘숙제’입니다. 자녀는 어떤 의미에서 숙제입니다. 인생의 가장 부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거룩한 부담이 우리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에베소서 6:4에서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먼저 교양있게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양이란 본래 “일정한 지침을 가지고 훈련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아이를 무조건 자유롭게 키운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마치 법이 없는 국가처럼 혼란이 일어날 뿐입니다. 가정에도 교양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삶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게 살아가야 할지 주의 뜻 주의 교양과 또 우리의 세상에서의 삶의 교양들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가르침의 교양이 없으면 우리의 자녀들은 이기적인 인간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요즘 학교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사회봉사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을 오용하는 예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취지나 방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남을 사랑하고 섬기고 돕는 것들을 훈련시켜주어야 합니다.
특히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너좋을대로 하라고 그냥 방임해서는 안됩니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순종하고 예를 갖추는 연습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가정의 규범이 없으면 규모가 없는 아이가 될 위험이 많습니다.가끔 우리아이들을 기죽이지 않는다고 전혀 규범이 없이 자녀들을 무조건 자유롭게 풀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도로에 교통신호등이 없는 것과 같이 위험합니다. 우리의 삶은 최소의 가정에서부터 사회생활을 배우는 기초규범과 예의가 가르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어릴적부터 잘 가르쳐질때 어른에이르기까지 삶의 기초가 됩니다. 잠언22:6에서 “마땅이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속담에 보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받은 교육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이전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한 규범이나 예의가 가정에서부터 가르져야 합니다. 왜 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우리 자녀들에게 훈계하라고 합니다.
여기 자녀를 훈계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교양이 예방차원이라면 훈계는 치유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아버지도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라고 합니다. 왜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을 징계하라고 합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처럼 인간의 본성 옛성품 우리의 자아들은 죄로 인해서 자기 중심적이고 마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타락한 의지를 붙잡아 주기 위해서는 몸을 쳐서 복종키셔주어야 합니다. 체벌이 야만적인 것이고 체벌하지 않는 것이 인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잠언13:24“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합니다. 잠언23:13-14에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징계를 하되 우리 부모들의 화풀이가 되어서는 안되고 정말 잘못된 의지를 바로 잡는 징계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도 집에서 자녀들을 징계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징계할 때 우리가 정말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부모가 징계의 원칙에 서로 합의해야 합니다. 아빠는 징계하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야단치면 그 집은 징계가 효과가 없습니다. 저의 집의 경우 악역은 저가 맡습니다. 주로 저는 징계를 담당하고 그 뒤에 엄마가 역할을 합니다. 만약에 아빠가 야단을 치는데 엄마가 나서서 “왜 애를 야단치느냐”고 하면효과도 없고 부부싸움이 납니다. 함께 합의하여 징계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다음에는 우리의 자녀들이 불순종에 대한 분명한 책임과 징계의 이유를 설명하여 주어야 합니다. 잘못한 경우에 징계를 당한다라는 것을 서로 자녀들과 합의하고 그것을 어긴 경우에는 징계를 할때 불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 자녀들이 먼저 어떤 벌을 받을 것인가를 정하도록 하여서 스스로 자기의 죄악된 의지를 바로잡아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교정은 즉시로 해야 합니다. 전도서8:11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라고 합니다.

열아홉명의 자녀를 둔 유명한 죤웨슬레의 어머니 수잔나가 있습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와서 물었습니다.“당신의 자녀교육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수잔나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머리가 크기 전에 좀더 정확히는 다섯 살이 넘기 전에 그들의 의지를 꺽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요즘 신세대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기를 꺽지 않는다고 하면서 너무 자녀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 속에는 부패성과 죄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린 시절 교정하지 않고 잡아주지 않으면 잘못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죄성 우리의 아이들의 일반적인 모든 삶의 상식이 어디 있습니까?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거기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삶의 모든 규범이 다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재목들이 많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요셉같이 다니엘같이 에스더같이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주님의 자녀들로 우리 모두 함께 세워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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