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 (행 8:26-40)

  • 잡초 잡초
  • 618
  • 0

첨부 1


- 설교 : 김성덕 목사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니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 중에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말씀을 좇으며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들이 낫는 표적이 나타나
그 성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빌립을 통한 복음전파는 사마리아에 머물지 아니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빌립을 통한 에디오피아 내시의 전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딤후2:9절 [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 ]
상황은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 받아
너무 너무 좋았던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반드시 실현됩니다. 행1:8절의 말씀과 같이
복음은 온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에 이끌린 헌신된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주님의 놀라우신 사역의 현장을 보게됨으로
그 한 사람이 되라고 도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전도를 포기하고 광야로 가게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26절에 [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러 가로되 ]
바로 주의 사자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주의 사자가 어떻게 빌립에게 명령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빌립은 주의 사자가
[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 는
명령을 듣고 갔는데 그곳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9절과 39절에 의하면 성령, 혹은 주의 영이
빌립에게 지시하고 있는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의 사자의 지시는 성령의 지시임을 말합니다.
빌립에게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명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면 <2>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에도 능통하지만
헬라 철학과 헬라어에도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 공통어는 헬라어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영어만 하면 어느 곳에서도
어느 정도 의사 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빌립을 지목하셔서 보내신 것은
우연에 의거한 산물이 아닙니다.
그러한 빌립이 성령충만의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항상 준비된 사람, 훈련된 사람을 계획한 곳에 사용하십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훈련받은 사람이었고
헬라적인 사고방식과 바리세적인 경건훈련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며
다메섹 도상에서 성령 체험을 통해 변화시켜
그를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몇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 동안
언어와 지적수준 때문에 불편을 겪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빌립은 하나님의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오늘날도 훈련되고 준비된 그릇만 되면
성령님이 그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훈련받아 준비되고 성령 받아
하나님이 계획한 곳에 사용되어지는 그릇들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빌립에게 일러 가로되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지시가 있다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27절에 빌림이 [ 일어나 가서 보니 ] 라는 말은
즉시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빌립은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듣고 즉각 순종하여 광야 길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이방선교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이제 땅끝까지 이르는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빌립의 순종에 의하여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삶에서 시작되어 집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행5:32절 같이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복음전도 현장에 나타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3>
빌립에게 성령께서 왜? 무엇 때문에 가야하는지를 말씀하시지 않고
무조건 가라고 말씀하신 것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이 명령은 부당한 것일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주님의 부르심은 명령이 먼저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했을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무조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종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순종해서 가보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겨우 전도의 발판을 닦은 것 같고
성령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 가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개인의 역사, 민족의 역사, 세계와 온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명령에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즐겁게 순종하지만
거리끼는 것은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발길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인도,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가장 찬란한 성공을 이루고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 우리를 광야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주님은 사람과 사건을 만나게 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 말고, 내가 원치않는 것을 명하실 때
순종할 수 있는 성령의 사람되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내가 원하는 시점,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닌 경우를
요구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헤이그 국제재판소의 초대 스위스위원이자 작가였던
<카알 힐티>의 행복론에 보면
순종하는 자에게 세 가지 것을 주시는 성령님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순종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
먼저 영육 간에 건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성령에 순종할 때 반드시 3가지는 주신다 라고 합니다.
첫째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생의 즐거움과 자유함을 주신다. <4>
둘째로 다른 것에서 얻을 수 없는 열정과 생기를 주신다.
셋째로 사람에 대한 권위를 주신다.
세상적으로 특별한 지위가 없더라도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이끌림에 순종할 때
사람들이 따르게 되는 권위를 주신다 고 합니다.
순종의 사람이 되어 성령님이 주는 기쁨과 열정과 권위가 있는 삶,
바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이끌림에 순종하는 행복한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빌립이 주의 사자의 지시에 순종하여 광야로 나아가 보니 거기에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빌립이 만난 사람은 당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였습니다.
당시 에디오피아는 모계 왕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다게'는 왕을 나타내는 명칭입니다.
애굽의 왕을 바로 라고 하는 것처럼 에디오피아는 '간다게'라고 불렀습니다.
이 내시는 오늘날로 말하면 재무장관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국사의 임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이겠습니까?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이요 권세자인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러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고 돌아가는 그에게 빌립을 보내신 것입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아주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이 에디오피아는 지금도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왔다고 만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면
그들은 약 1900년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왔습니다.
그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때에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부흥하고 발전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혁명에 의해서 공산화되고 부터 신앙에 박해가 왔고
그 때부터 이디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여느 나라처럼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가 되었다고 합니다.
빌립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에디오피아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5>
이들은 구스인인데요. 쉽게 말하면 흑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솔로몬의 후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엄청난 위명을 떨칠 때에
대하9:에 시바의 여왕이 찾아왔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솔로몬의 아이를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은 아니고 저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에디오피아의 왕족은 솔로몬의 후예임을 자처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 종교를 믿고 히브리 문화를 향유하는 것을
특권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온 것은
아마도 여기서 연원된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이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병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보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 낭송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이 가까이 가자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노방전도를 하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자면 준비된 영혼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전도를 해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준비된 영혼을 부쳐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준비된 영혼 부쳐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빌립이 병거로 가까이 달려가서
내시에게 읽는 이사야의 말씀을 깨닫는가를 물었을 때
내시의 답변은 무엇이었습니까?
31절 [ 지도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 입니다.
저는 이 답변이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재무장관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도 예사스러운 장면이 아닙니다.
그는 얼마든지 낯선 사람 앞에서
먼길 가느라 심심해서 읽어 보았다 하고 그냥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점잖을 빼며 거덜먹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시는 자기가 읽고 있는 성경에 대해 빌립에게 질문을 합니다.<6>
빌립이 마차에 올라보니
내시가 읽고 있는 본문은 사53:7-8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솔로몬 긴스버그>라고 하는 브라질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유대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유대 랍비입니다.
폴란드에서 랍비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엔가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에 이사야 53장을 읽다가
본문 32절에 나오는 [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
여기서 말씀하는 『저』가 누구인가? 를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그가 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대답은 안하고
그의 손에서 성경책을 빼앗아들고 뺨을 때렸습니다.
왜 맞는지도 모른 채 뺨을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그는 예수 믿는 유대인을 만났습니다.
그를 통하여 비로소
『저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저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저가』의 저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구약의 예언들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마침내 브라질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내시가 궁금해하는 구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그 본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그에게 이 글에서 시작해서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었고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기 전까지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가 성경을 줄줄이 왼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 주여 당신 누구입니까? ] 이 한 분의 수수께기가 풀리면
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이 한 분에 대한 대답을 안다면
우리 개인의 영혼의 문제 삶의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빌립의 해석을 들은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눈이 뜨여졌습니다. <7>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삶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분명히 내시에게 구원과 성령이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달은 내시는 빌립에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36절에 [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
우리 성경에는 37절이 "없음" 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각주 1)에 보면
[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 ]
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시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으니
세례를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 됨의 인증이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살겠다는 약속의 표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3:27절에서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그랬습니다.

지금 에디오피아 간다게의 내시는 빌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이제는 예수의 사람으로 살기로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 생명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한사람은
결코 한 사람일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에디오피아 사람의 90% 이상이 그리스도인이고
그들이 언제 기독교가 전파된지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한
실마리를 본문이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한사람! 이 내시의 회심은 에디오피아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듭난 생명들을 잉태 시켰습니다.
이 일이 그렇게 소중한 일이었기에
주님은 빌립을 사마리아에서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 가족 여러분 !
한 생명이 유아세례 받고 한 생명이 세례 받음에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빌립이 내시에게 물로 내려가 세례를 주고 <8>
물에서 올라오는데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갔습니다.

39절에 [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고 간지라 ]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고 갔다는 표현은 점잖은 표현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빼앗아 갔다
어떤 번역에는 나꿔채갔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독수리가 병아리를 나꿔채가듯이
성령이 빌립을 이끌고 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성령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잘 모릅니다.
되려 우리의 상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더 모순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세상의 지식이나 이성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성령 사건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어
나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지요.
그런데 성령에 이끌려간 빌립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절 [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
아소도는 가사에서 약 100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곳을 중심해서 여러 성읍 이곳 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지중해 연안인 가이사랴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성령의 지시로 시작한 빌립의 개인전도는
성령으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예수를 전하고
성령으로 이끌려 아소도와 지중해 여러 성읍에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의 사람 빌립은
이렇게 전도의 시작도 과정도 마지막도 성령의 이끌림으로 이뤄집니다.
즉 성령의 주권으로 이뤄졌다는 말입니다.
39절 하반절에 [ 내시는 홀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
그 후 빌립과 내시가 만난 적은 없지만
성령으로 시작한 전도는 에디오피아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발판을 놓게 되었고
성령으로 시작한 아소도와 지중해 여러 성읍의 전도는
나중에 지중해 연안의 기독교 공동체들이
빌립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행9:32절 이하에 <9>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를 방문하였을 때
벌서 그곳에 많은 성도와 제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사람을 통해
한 영혼을 구원하실 뿐만이 아니라
한 도시를 한 국가를 구원하신다는 계획에
눈이 뜨여지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과 적용>
지금 빌립은 어떠 상황가운데 처한 사람입니까?
그는 예루살렘에 일어난 박해로 인해서
흩어지게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삶의 중요한 기반을 상실해서 실의에 차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상황에 변화에 따라 요동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있으며 소망 삼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였으며
그리스도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그 어려운 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삼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가족 여러분 !
1. 저는 여기서 가장 먼저 듣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에 대한 주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빌립의 에디오피아 내시의 전도는
우리에게 핍박을 통해서 흩어진 사람들을 보게 하시고
그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무엇을 하는가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침 우리는 116오직 전도주일을 준비하면서
태신자를 작정하고 기도하는 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 나도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상황에 휩쓸리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렵더라도 성령에 이끌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2. 두 번째 보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빌립 한 사람의 순종과 에디오피아 내시 한 사람의 거듭남이 미쳤던
엄청난 파급효과를 보십시오.
그러므로 전도는 한 사람의 헌신과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번지기 시작한 복음의 불길은 그렇게 퍼져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가족 여러분! <10>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은 그 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잘 풀려가고 있는 사마리아를 포기하고
광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할 한 사람!
주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한 사람!
그리고 겸손하게 배우기를 원하는 그 한 사람! 을 통해
복음이 세계로 전파되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2005년 우리 내일교회를 사도행전 교회로 출발케 하신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에디오피아로 번지는
복음의 불길의 주역으로 남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2005년 이 한해 남은 기간 기도하면서 준비합시다.
주여 ! 나도 빌립 같이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 되게 하소서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