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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모세의 부모처럼 (출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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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인덕 목사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던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일강 하류 지역인 고센 땅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당시 자기들은 목축을 하는 자들이라고 하여 목축하기에 좋은 땅을 바로로부터 허락을 받아 얻어내어 정착을 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번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단 70명밖에 없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후손이 번성케 되어 400 여년이 흐르는 동안 거의 200만에 가까운 숫자로 늘어나게 됩니다. 이미 요셉도 세상을 떠나고 애굽의 정권이 바뀌게 되니 새로 국가 권력을 잡은 입장에서는 이 많은 수로 불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부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좀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던 끝에 산파들에게 태어나는 아이가 남자면 죽이고 여자아이들만 살려 두라고 하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실 되게 섬기는 산파들은 그런 임금의 명령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았기에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태어나는 아이들을 살려냅니다. 그러자 마침내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아이들만 살려두어라." 바로 그러한 때에 모세가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부모들은 모세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었으며 또 어떻게 모세를 키웠을까요?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행복한 가정을 꾸밉니다. 귀한 가정을 위해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주시어서 미리암과 아론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아이를 낳게 될 때쯤 바로의 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아이를 낳기까지도 그래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아들입니다. 임금의 명령을 따른다면 당연히 강물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를 숨겼다가 들키게 되면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도무지 이 아이를 그냥 강물에 던져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석달 동안이나 길렀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식 귀엽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생기고 귀엽다 해도 이건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자식 하나 귀엽다고 잘 생겼다고 그를 살려보려 하다가 들키는 날이면 온 가족이 다 몰살당합니다. 그런데도 남이 모르게 석달 동안이나 길렀다고 하니 그동안 이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습니까? 아이가 점점 자라게 되니 그만큼 울음소리도 커질 것이고 도무지 더 이상 아이를 몰래 키울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 궁리 끝에 갈대 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아므람과 요게벳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아이를 내다 놓은 곳은 왕실 가족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바로의 딸 그러니까 공주가 주로 목욕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언제쯤 목욕하러 내려오는지 그 시간까지 알아두었다가 공주가 목욕하러 내려오는 시간을 맞춰서 물이 새어들지 않도록 역청과 송진을 바른 갈대상자에 아이를 담아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고는 그 누이 미리암을 시켜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습니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데ㅐ 밭에 있는 상자를 발견합니다. 그래 시녀 한 명을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보니 남자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보니 그렇게 잘 생길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이 아이가 히브리 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에 아이가 참 불쌍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 혼자 말로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라고 중얼거리는데 아이의 누이 미리암이 톡 튀어나오더니 공주에게 말합니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바로의 딸이 그 속셈을 모르겠습니까? 아니죠. 그러나 바로의 딸에게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하였고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옵니다. 바로의 딸이 그녀에게 말하였기를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 아이를 데리고 가서 젖을 먹여서 키우게 됩니다. 당연히 모세의 친어머니는 마치 유모처럼 그 곁에서 자기의 자식을 키워나갑니다. 그리고 모세는 공주의 양자가 됩니다.

자 여기 이 모든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왕의 명령이 이미 내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므람과 요게벳은 아이를 그냥 집에 숨겨서 키웁니다. 그렇게 키워 나가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그들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적의 심장부에서 떳떳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의 딸이 항상 목욕하는 곳을 찾아 그곳에 모세를 물이 새들지 않도록 꾸민 갈대상자에 넣어 물 위에 띄워 놓고 미리암으로 그 자리를 지키게 하였던 것이요 드디어 유모의 자격으로 자식을 키울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의 부모는 임금의 명령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물론 자칫하면 자식은 물론이고 자기들 목숨까지 걸려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찌 부모가 되어 자식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끝까지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 것이요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저들은 자식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드디어 찾았던 것입니다.

모두가 다 포기하고 살던 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대였습니다. 애굽의 왕은 물론이고 왕의 명령 따라 자식을 버리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므람과 요게벳은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였기에 목숨걸고 자식을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 목숨만 건진 것이 아닙니다. 나중 모세가 자기 백성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어머니가 모세를 젖 먹여 키우면서 하나님 신앙을 심어주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세의 근본 신분이 무엇인지를 어머니는 가르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애굽의 왕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더 기뻐하였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모세의 친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가르쳤습니다. 너는 애굽의 백성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랬기에 모세의 마음 속에는 나는 애굽의 왕자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 하나가 애굽 사람에게 얻어맞는 것을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 편을 들어 그 애굽 사람을 쳐죽였던 사건도 결국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평소 어머니가 그렇게 모세를 가르쳤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어릴 적부터의 교육이 나중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자리에 서게 되는 날 그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어린이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줄어듭니까? 오늘날 부모들이 그것도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쏟는 관심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의 신앙을 위해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도하고 계십니까? 자녀들을 위해 부모로서 해 주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저 공부하라고 닦달하고 여기 저기 학원 보내 공부시키는 것이 자녀 사랑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공부라고 하는 것이 결국 인생을 가꿔주기 보다는 경쟁심만 길러주는 것 아닙니까? 언젠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마는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자녀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세상에서 출세한다고 해도 믿음을 저버린다면 그 출세라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요즘 부자 되세요 하는 말이 또한 유행인데 과연 얼마나 돈을 벌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부자가 된들 하나님 신앙에서 떠난다면 그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천하만국을 다 주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하늘나라라고 했는데 과연 자녀들이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가르치며 그렇게 기도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여러분 과연 자녀들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으며 동화책 읽어주듯 그렇게 성경책을 읽어준 적이 있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동화책은 몇 십만원 어치도 사서 쌓아 놓았으면서도 어린이 성경 이야기성경과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사줘 봤는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그런 책을 읽어주어 봤는지 한번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학교는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되고 조금이라도 지각할까봐 안달하는 그런 마음으로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보내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함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고 잠언 11장 11절은 말씀하며 또한 잠언 12장 14절은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에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바 우리 자녀를 위하여 얼마나 축복하고 있으며 또한 자녀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는지 깊이 있게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성읍조차도 정직한 한 사람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진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자녀들을 항상 축복하며 격려하는 그런 부모가 되어야 하고 자녀들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도록 입만 열면 하나님의 말씀이 줄줄줄줄 나올 수 있도록, 영어 단어 외우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울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잠언 9장 10절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진짜 우리 자녀들이 지혜로운 자요 똑똑한 아이들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깨달아 섬기도록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의 부모는 목숨을 걸고 모세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하나님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그 믿음 안에서 결국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진짜 귀한 인물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힘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축복하여 주시고 또 말씀을 그 귀에 들려주십시오.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했는데 자녀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격려하시고 바로 이끌어 주십시오. 말로만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본을 보여 주십시오. 자연스럽게 자녀들이 보고 따르도록 예배하는 자리마다 동행하십시오. 섬기는 자리마다 동행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의 귀에는 성도들의 교제의 좋은 것들만 들려주십시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자녀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자녀들의 삶에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십시오.

성경 안에 나타나는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성공한 인물들은 결코 많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때를 살면서도 목숨걸고 자녀를 키웠던 모세의 부모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녀들이 바른 신앙 위에 굳게 서도록 그렇게 말씀의 훈련자요 조력자가 되십시오. 먼저 여러분 자신이 말씀으로 훈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오. 세상 학문에만 매이지 말고 주의 말씀에 매이도록 만드십시오. 또한 그렇게 가르치십시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우리 자녀들과 함께 할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 자녀들이 큰 인물이 되어질 것이며 그렇게 우리 자녀들이 자라감에 따라 교회 역시 더욱 부흥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내리는 교회와 가정될 수 있도록 힘써 섬기며 가르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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