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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아무리 옳아도 예수님이 없다면 (빌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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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동호 목사

예수님이 12살 되셨을 때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성전에 그냥 머물고 계셨지만 예수님의 부모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동행 하시는 줄로 착각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착각의 시간이 한 두 시간 정도가 아니라 하루 정도였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리고도 그 사실을 모른 시간으로는 절대로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사흘 동안이나 다시 오던 길을 살피며 올라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신앙인의 보편적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줄로 착각하였던 것과 같이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때때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도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을 그 설교를 통하여 전하였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종종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도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크리스천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착각이 오늘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한번 확인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과 삶 속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옛날 평양에는 최권능 목사라는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다. ‘예수 천당’이라는 말로 전도를 하셨던 유명한 분이십니다. 그 목사님이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검거되어 감옥에서 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매를 맞으시면서도 ‘예수 천당’을 외치셨습니다. 신음 소리를 내지 않고 예수 천당하며 매를 맞으시는 목사님에게 일본 순사가 ‘너는 왜 예수 천당을 하면서 매를 맞느냐?’ 묻습니다.

그와 같은 순사의 질문에 목사님은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삐져 나오니 듣기 싫으면 때리지 말아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의 몸에는 예수가 꽉 차 있으셨습니다. 의식과 무의식,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는 삶을 그 분은 사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꽉 차 계신다면 말을 해도 꼭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겠고, 무슨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게 되어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으시다면 우리의 말과 우리의 봉사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힘이 계시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것들이 있어서 냄새가 나고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1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여 설명하여 네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꽉 차 있다면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만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꽉 차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사랑으로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겨야 한다.
넷째는 자기 일만 돌아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아 줄 줄 알아야 한다.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못하고, 일은 열심히 하는 듯 싶으나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자기 자신들이 있으니 자연 다툼과 허영으로 일을 하게 되어 교회 안에 갈등이 깊어지게 되고, 교만하여 자기만 잘 났다고 의시됨으로 서로 자기 일만 할 뿐 협동과 협력이 없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라고 권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빌립보서 2장의 말씀이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와 교인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개척 된지 3년 반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교인들도 많아지고, 교인들이 많아짐으로 교회 재정도 많아지게 되고, 교회 재정이 많아지게 됨으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제법 이제 교회의 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과 조직이 생기게 되었고 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한번 스스로 평가해 보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모임과 일과 조직과 사람들 속에 ‘과연 예수님이 계시는가? 예수님이 꽉 차 계시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말을 하고 일을 하고 봉사하고 있는가?’ 한번 꼼꼼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이미 빌립보 교회의 위기와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지 아니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아니하고 교만하여 일은 열심히들 하나 다툼과 허영으로 하여 이곳저곳에서 갈등의 소리가 들리고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다툼의 소리가 들려오게 되어 하나님께 걱정과 근심을 끼쳐드리는 교회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아직 심각하지는 않아 겉보기에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교회 안에도 큰 시험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건강하고 좋은 교회에 대한 희망과 소원을 가지고 이곳 까지 찾아왔는데 이 교회마저 그렇고 그런 교회가 된다면 여러분들은 또 어디로 가셔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평생을 집시처럼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랑하고 방황하다가 인생을 마치셔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살핍니다.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조건 나에게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따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의 수준이 적어도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수준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자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강하고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하여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으로 교회가 건강하고 바른 교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리면 건강하고 좋은 교회가 되는 줄로 대개 생각합니다. 제가 그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옳은 생각과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옳은 생각과 일 중심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옳은 일과 옳은 생각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경 쓸 것 없이 그저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만 신경 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 속에서 얼마든지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만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옳은 일과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 일과 생각의 중심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마음으로 말미암은 옳은 생각과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과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하는 옳은 생각과 일에는 갈등과 다툼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같이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만 돌아보지 않고 남의 일도 돌아보아 천국과 같은 교회와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일과 옳은 생각을 한다고 하여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시면, 그 옳은 일과 생각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된다면 교만하여 져서 남보다 자기를 높이고 그 옳은 일과 생각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육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옳은 생각은 다 영의 생각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옳은 생각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육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없는 옳은 육의 생각은 그렇지 못한 육의 생각과 똑같이 사망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옳은 생각을 가지고, 일을 옳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늘 충만하여 의식과 무의식속에,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한 시도 떠나지 않으시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삶은 행동에서 오고, 행동은 생각에서 오고, 생각은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누구의 마음이 들어 계십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찢기고 상한 그리고 교만한 마음이 이십니까?
욥기 10장 1절에 보면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바로 그것이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읽은 후 제 노트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아무리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여도 내 원통함을 발설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하고 내가 있습니다. 괴로운 마음, 원통한 마음, 속상한 마음, 미칠 것만 같은 마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닌 나 자신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 때 그 말과 행동과 생각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행동과 생각과 말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갈등과 분쟁과 미움과 시기와 다툼으로 우리의 교회와 세상과 공동체와 가정을 깨져 나가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생각을 하면 산다고 하여도 그 생각과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옳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음과 삶의 중심에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을 하여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하고 봉사를 하여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송가 172장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찬송인데 그 가사가 간절한 우리의 기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아멘.

옳고 그름에만 얽매여, 내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어진 것은 알지도 못하고 살아온 우리의 삶을 반성하여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 속에 모셔드리는 오늘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비와 같이 내리시는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이 촉촉이 젖어 생명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과 말과 삶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이 역사합니다. 그래야만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생각이 옳아도 우리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절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의 삶 속에 생명이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은혜입니다. 성령입니다. 그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은혜를 사모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과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충만한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과 삶 속에 넘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가 없다면 생각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일도 하지 말고 봉사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하든, 말을 하든, 일을 하든, 봉사를 하든, 나의 생각과 철학과 마음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생각과 철학으로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 충만한 교회와 가정과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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