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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아름다운 가정(시 1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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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Algeria)의 한 길가에 쓰러져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에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서 그의 유해를 모셔 오도록 했습니다.
군함이 알제리에서 그의 유해를 싣고 뉴욕에 도착하는 시간에 유해를 영접하려는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유해가 운구(運柩)될 때 군악대가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조기(弔旗)가 나부끼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왔습니다. 고위관리들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애도(哀悼)의 뜻을 표했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유해이기에 이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애도했겠습니까? 그는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운 용감한 장군도 아니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위대한 정치가도 아니었습니다. 세계의 영웅도 아니요, 엄청난 명예와 지위를 가진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를 지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애창하는 홈스위트 홈(Home Sweet Home), 우리말로는 ‘즐거운 나의 집’을 작사한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이라는 사람입니다.
페인은 집을 떠나 먼 타국에서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문이 활짝 열려있는 집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불빛이 하얀 눈 위에 비췄습니다.
열려진 문 안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가 보였습니다. 그때 그 가정에 아버지인 듯한 남자가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포옹하며 정답게 맞이했습니다.
페인은 전보다 더 고향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방에 돌아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내 벗 내 집 뿐이리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곳, 내가 쉴 수 있는 곳, 내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은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하여서 이 땅에서 복되게 살게 만드시고, 가정을 통하여서 이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까? 즐거운 곳입니까? 평안이 있는 곳입니까? 우리 집의 자녀가 가정에서 안식을 얻고 평안을 누리고 쉴만한 곳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정을 친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정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로 짝지어 주시고 자녀를 선물로, 기업으로 주셔서 천국에서 맛보게 될 행복을 가정에서 미리 맛보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은 천국의 아름다운 행복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셨지마는 그 가정을 복된 가정, 행복한 가정으로 꾸며 나가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1. 오늘 가정의 모습들

그런데 오늘의 가정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가정이 깨어집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지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신문에는 ‘무서운 여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더라고요. 20대의 엄모라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이 모 씨와 결혼을 해서 세 살 난 딸을 낳고 살았습니다. 남편 이씨가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러던 중에 세 살 난 딸이 사고로 인해 뇌진탕으로 숨을 거둡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마약에 빠져듭니다. 엄씨는 남편 이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에 오른쪽 눈을 바늘로 찔러서 실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얼굴에 기름을 붓기도 하고 흉기로 배를 찔러서 상처를 입히기도 해서 보험금을 많이 타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찔려서 치료를 받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자기가 술 먹고 자해했다고 해서 얼버무려 넘어 갔습니다.

남편이 사망하자 4개월 뒤에 엄씨는 재혼을 했습니다. 새 남편도 똑같은 방법으로 수면제를 먹이고 오른쪽 눈을 찌르고 염산을 발라서 멀게 한 뒤에 보험금을 또 받아 내었습니다. 재혼한 남편도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습니다.
엄씨는 자기를 낳은 친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또 먹이고 주시바늘과 염산으로 눈을 멀게 했습니다. 4개월 뒤에는 친오빠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타낸 보험금이 5억 9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불을 질러서 남동생에게 화상을 입히기도 하고, 또 남의 셋집에 들어가서 살기도 했는데 주인집에 불을 질러서 세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주인 집 남편도 치료 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이런 가정,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은 이런 가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가정은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만 따르면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인 아담은 아내를 볼 때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감탄하면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습니다. 아내인 하와는 남편을 돕고 경건한 자녀를 낳아서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에 충만하도록 했습니다.
만물을 다스리며 행복하게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옵니다. 죄가 들어오므로 가정이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져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깨어져서 서로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형제간의 관계가 깨어져서 형제끼리 살인극이 벌어집니다. 자연은 엉겅퀴를 내고 반항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이렇게 망가진 인생을 본래의 위치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서는 본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서 본래의 모습으로, 본래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서 우리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을 회복시켜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가정의 모습으로 나가도록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지금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지마는 좀 더 나은 가정, 좀 더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습니까? 그 모습으로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계명을 지키는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이 되어야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 있느냐, 첫째로 1절에 보면 부모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만 들어도 벌벌 떨고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경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너무 크고 위대하셔서, 하나님이 너무 거룩하고 존귀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생각하면, 존경하고 조심하는 것을 경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며칠 전에 방송을 보니까 사람이 평균 연령까지 살 경우에 남자들은 3명 중에 1명이 암으로 죽는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5명 중에 1명이 암으로 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암을 두려워하는지 모릅니다. 암 보험 많이 듭니다. 조금만 몸이 아파도 암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합니다. 벌써 몇 년째 금년의 소원이 뭐냐고 했을 때 1위가 건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암보함을 듭니다. 생명보험을 듭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질병을 두려워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내일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가 너와 함께하고 내가 너를 붙들어 줄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이여, 나에게 이런 사람 100 명만 하락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내가 세상을 변화시켜 놓겠습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 십자가만 자랑하는 사람, 죄 짓는 것만 부끄러워하는 사람, 이런 사람 100 명만 하락해 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세상의 온갖 것을 다 두려워합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만 두려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부모들,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존경하면 그의 부탁과 말을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들은 척 만 척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 얼마나 두려운 분인가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전도하라’고 하시면 두려워서 억지로라도 전도하려고 애를 씁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은 그렇게 말해도 내 맘대로 한다’고 합니다. ‘주일성수하라’고 하면 하나님이 두려워서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주일에도 시간나면 오고 오기 싫으면 말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헌신하라, 사랑하라’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 명령이 너무 크고 두려워서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그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계명, 그 말씀을 즐겁게 따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그 명령에 순종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복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어떻습니까? 힘이 듭니까? 아니면 즐겁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내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지키는데 힘이 든다고 하면 하나님을 덜 사랑하고, 덜 두려워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힘들어서 지키지 못하는 것이 뭔가 생각해 보세요. 어떤 계명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가를.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복 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해 보세요. 그것도 즐겁게 해 보세요. 그것이 복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부모가 있는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말씀대로 살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계명대로 순종해 보세요.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사랑해 보세요.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사랑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아내는 남편을 주께 하듯 순종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한번 순종해 보세요.
이웃의 아내나 남편을 탐내지 말고 넘보지 말고 짝지어 주신 남편과 아내에 감사하고 만족해 보세요. 식물을 성실로 삼아서 열심히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 잘 믿으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건성으로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별 짓을 다 하니까 불행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 두려워하고 말씀대로 살아보세요. 아름다운 가정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싱가폴에 어거스틴 텐이라는 유명한 박사가 있는데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싱가폴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상의 총애를 받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기도 합니다.
그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들 하나를 두고 이혼을 했습니다.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10년 동안 그는 아들을 키우면서 혼자 살았습니다. 수상이 그를 너무 아끼니까 참 좋은 아내 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약혼을 했습니다. 결혼날짜까지 정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가는 순간부터 그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었습니다. 성령의 체험을 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와 자식을 버리고 나간 아내를 여태까지 미워했는데 미워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사랑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혼한 지 10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내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당신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우리 다시 합쳐서 삽시다.” 그 다음부터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내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새로운 여인과 결혼하려고 했던 바로 그 날에 열네 살 된 아들을 앞세우고 다시 결합을 했습니다. 전보다 더 아름다운 가정을 꾸몄습니다. 어거스틴은 수상의 분노를 사게 되었지만 용서를 구하고 전보다 교수와 국회의원직을 더 충실하게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오는 것은 성격차이가 아닙니다. 신앙의 차이입니다. 성격차이가 아니라 신앙의 유무(有無)입니다. 배우자가 내 마음에 안 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십시다. 나하고 좀 다르다고 하십시다. 사람이 다르지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배우자로 짝지어 주실 때는 돕는 배필로 짝지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부족한 면이 있다면, 그 사람이 모난 성격이 있다면 그 성격을 도와주라고 나로 하여금 아내와 남편이 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성격적인 차이가 있으면 아, 이것을 내가 도와주고 이해하고 보완해 주어야 할 부분이구나, 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게 되면 그 가정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노랫말을 쓴 조운파 집사님이 우리교회에 왔을 때 그렇게 간증하지 않았습니까? 노랫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런 노랫말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래하고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았습니다. 깨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별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합쳐졌습니다.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교회에서 간증했던 탤런트 임동진 장로님, 그는 아내를 보기를 뭐같이 보았습니다. 가장 인기 없는 사위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제일 아내를 사랑하고 제일 사랑받는 사위가 된 것 아닙니까?     
신앙만 들어가면 깨어지려던 가정도, 깨어졌던 가정도 다시 회복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만 바로 믿으면 행복한 가정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부부 사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예수님 바로 믿고 상대방도 예수님 바로 믿게 해 보세요. 말씀대로 살게 해 보세요.
그러면 행복한 가정은 반드시 되어집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기초가 됩니다. 그런 부부가 되고, 그런 부모가 되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자녀에게 복을 유산하는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자, 이렇게 부모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삶을 살면, 예수님을 잘 믿는 삶을 살면 자신이 복을 받지만 또 누가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2절을 보세요.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며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예수님을 잘 믿기는 부모가 잘 믿는데 복은 누가 받는다고요? 본인뿐만 아니라 후손이 복을 받아요. 자식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자녀가 잘 되는 것이 부모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부모의 신앙과 삶은 자식이라는 나무에 거름이 됩니다. 부모가 신앙생활 잘 하고 많이 뿌려 놓으면 그 자식들이 거두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뿌려 놓았더니 자자손손이 복을 받습니다.

다윗의 자식이라고해서 다 의로운 사람이겠습니까? 못난 자식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보시고 그를 자라버리지 아니하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쳐서 고쳐서 그를 써서 예수님 오실 때까지 그 가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부동산을 물려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부모가 지혜로운 부모입니다.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육 자료로 쓰기 위해서 두 가문을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같은 동네에서 자란 에드워드란 사람과 마르크 츄크라는 사람의 가문을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에드워드는 신앙 좋은 여인과 결혼을 하여서 기독교적인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마르크 츄크는 처음에는 그도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었는데 방탕한 여인과 결혼하여서 그 자신도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에드워드의 5대 손을 조사해 보니까 896명이었는데 그 중에 목사가 116명, 교수, 학장, 총장이 86명, 의사가 60명, 장교가 75명, 변호사, 판사가 130명, 문학가가 75명, 상하의원이 4명, 부통령이 1명, 장로, 집사가 286명이었습니다.
마르크 츄크의 후손 5대손을 계산해 보았더니 1,062명이었습니다.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65명, 살인자가 70명, 교도소생활 5년 이상 한 자가 96명, 정신병자가 58명, 460명이 불학무식(不學無識)한 자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통계를 보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처지에서 훌륭한 인물이 날 수 있습니다. 또 좋은 가문에서 잘못된 자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범죄자가 많은 경우를 보면 가정적인 배경이 아주 좋지 못한 부모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부모가 신앙생활 잘 해서 자녀들이 땅에서 강성하고 복을 누리는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이렇게 축복을 물려줄 수 있는 가정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자손손에게 저주를 물려주는 부모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부모의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4. 계명을 잘 지키면 나누어 주는 가정이 됩니다.

다음은 <부귀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에 물질이 행복의 보장이거나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물질이 너무 궁핍하게 되면 때로는 부부사이에 금도 가게 되고 때로는 자녀가 엇길로 가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물질이 행복의 척도나 기준은 아니지마는, 물질이 풍부한 것이 예수 잘 믿는 결과도 아니지마는, 물질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것이 신앙의 결핍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면 복을 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쪼그리고 앉을 땅 한 평 없이 사시다 가셨습니다. 참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복음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포기하고 하나 가진 곳 없이 살다 갔습니다. 이런 특수한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믿음대로 살면 경제적인 면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마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정말 믿음대로,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필요한 물질을 채워 주시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십니다. 체면 차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일하면 먹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말고, 도박이나 해서 한 탕 하려고하는 마음이나 주식으로 부자가 되려고 한다든지, 이자 많이 받으려고 사채를 놓아서 돈을 떼인다든지 이런 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물질 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잘 믿는 나라들 보세요. 부흥된 나라들 보세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이런 나라들 보세요. 국기(國旗)에 다 십자가를 그려놓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가장 깨끗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회교국가, 불교, 힌두교 국가들 보세요. 지하자원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들어가지 못 합니다. 러시아 보세요. 그 대단하던 나라가 하나님을 공산주의를 외치더니 남은 것은 가난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살면 자녀들이 잘 되고 강성하고 경제적으로 부요와 재물을 허락해 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지마는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두 배나 가득하게 잡았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채워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살아서 주님이 채워주시는 경험들을 늘 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가정생활 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부모가 있는 가정,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부모의 신앙으로 자녀가 잘 되는 가정,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그리고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어서 남에게 나누어 주는 가정, 행복한 가정입니다.
5절과 9절에 보면 나누어 주는 가정,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의(義)를 계속해서 행하는 가정,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6절에 보면 흔들리지 않는 가정,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사랑의 실천들

돌로레스 커렌이 쓴 ‘건강한 가정의 모습’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이 책은 연구해서 쓴 것이 아니고 사회사업가, 심리학자, 성직자, 가정상담자 등 500여 명의 경험과 의견을 수집하여서 정리해 놓은 책인데 어떤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냐, 그 요소가 뭐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위에 있는 요소들을 말하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먼저 모든 식구들이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고, 칭찬하고 ‘당신의 어깨에 우리 가정이 달려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이렇게 늘 격려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가정들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집에 가셔서 꼭 한번 해 보세요. “사랑합니다. 정말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난 것이 내 행복입니다.” 그렇게 고백해 보세요. 그러면 싫어하는 것 같아도 굉장히 좋아한다고요. 특별히 경상도 사람들은 그 말을 잘 못해요.
어느 성경공부에서 그런 숙제를 내 주었더니 자기 아들한테 이야기 했어요. “엄마한테 아빠가 엄마 사랑한다고 해라.” 자기가 못해서 아들에게 말했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남편과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세요. 가정이 굉장히 따뜻해 질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말로만 하지 말고 바디랭귀지(body language), 몸으로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손을 잡아 준다든지, 껴안아 준다든지, 그러면서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적어도 가족끼리는 하루에 네 번씩은 안아주면서 사랑을 표현하면 굉장히 아름다운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네 번은 못해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꼭 모든 가족들에게, 학교 가는 자녀를 안아주면서 축복해 주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사랑의 포옹을 하면서 격려하는 가정, 행복한 가정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집에 들어 가는대로 꼭 한번 안으면서 사랑의 고백을 해 보세요. 숙입니다. 다음 주일 물어 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냐고 어색해 할는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좋아할 것입니다. 모든 가족에게 하루에 한 번씩 꼭 포옹을 하면서 사랑의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분쟁을 빨리 매듭짓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분쟁이 있을 때 분쟁을 오래 끌고 나가면 그 사이에 마귀가 틈을 탑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분을 내고 아내와 남편이, 식구끼리 싸워서 그 분을 삭이지 아니하면 마귀에게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 놓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분을 다 삭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가정을 보니까 다투기도 잘 하는데 풀어지기도 잘 하는 가정이 있어서 물어보았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보니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풀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은 해 지기 전에 푼다, 해가 지려고 하면 한 쪽에서 “여보, 해가 넘어 가는구먼요.” 하면 상대방에서 “알았어요.”라고 하며 푼다고 했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 보세요. 기분 좋을 때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해 놔야 됩니다. 그렇게 해 놨다가 먼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아침에 싸우고 점심 때 토라져 있다고 할지라도 해가 넘어 갈 때는 “해가 넘어 가네요.” 하면 “알았어요”하고 손잡고 풀어져야지 그렇게 풀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출근해 보세요. 얼마나 가뿐하겠어요.
분쟁을 빨리 매듭짓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같이 식사하고 같이 운동하고, 시간이 좀 나면 1년에 하루라도 여행을 하면서 온 가족이 대화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같이 보면 절대로 대화가 안 됩니다. 텔레비전을 안 볼수록 가족끼리 대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만 똘똘 뭉치면 행복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남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온 가족이 교회에서 청소를 한번 해 보세요. 보육원에 가서 도와보세요. 집 앞을 쓸어 보세요. 남을 돕는 가정이 되면 정말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지키는 부모가 있는 가정은 아름답습니다.
부모의 축복을 물려받는 자녀가 있는 가정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먹고 살 수 있는 물질을 채워주시고 남에게 나누어 주는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그리고 학자들이 경험을 통해서 모아놓은 원칙, 말로 사랑을 고백하고, 바디랭귀지, 몸으로 사랑을 표현해서 하루에 한 번씩 안아주고, 내가 먼저 해가 지기 전에 갈등을 풀어 나가고,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같이 지내려고 하고, 온 가족이 남을 도와주려고 하는 삶을 살게 되면 정말 행복한 가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한걸음, 한걸음 접근해 나갈 줄 믿습니다.

5월 가정의 달에 내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우리 가정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내가 있음으로 우리 가정은 천국이 되어서 자녀들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기를 기뻐하는 가정인가, 내 아버지 때문에, 내 어머니 때문에 자식들이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는 가정은 아닌가,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가, 행복한 가정의 통계와 말씀을 잘 적용하여 생활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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