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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어린 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2) (고전 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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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버이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일반은혜입니다. 곧 어버이날에 감사 드리는 어버이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오늘 어버이주일에 어버이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특별은혜입니다. 그 어버이의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이 땅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대신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양육을 부탁 받은 분들입니다. 그 부모님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어떠하심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양육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과 은혜를 부모님을 통하여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어버이주일과 어버이날의 차이점입니다.

예수 없는 일반은혜에서도 어버이의 사랑을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합니다. 그 어버이의 사랑 앞에 서면 우리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만큼 받은 은혜에 보답을 해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갚아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크나 큰 은혜와 사랑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은혜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특별은혜이겠습니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 나의 부모님에게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나의 부모님을 통하여 나를 양육하신 하나님의 은혜, 나의 삶의 길에 앞서 가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대속하기 위하여 독생자까지 내어놓으신 하나님의 은혜, 나 같은 죄인을 자녀 삼아 천국백성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어버이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맡아 기르시도록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신 분입니다. 그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 공경을 통하여 하나님 경외를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부모를 살펴보면....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민26:59), 사무엘의 부모인 엘가나와 한나 부부(삼상1:1-2) 등 훌륭한 부모님들이 있는가 하면 엘리 제사장과(삼상2:12-17) 유다와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과 같은 좋지 못한 부모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육신의 부모는 절대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 존재가 아니기에 사실상 상대적 비교에서 좀 더 낫다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서는 50보 100보가 되겠지요.

훌륭한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

비록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이 세상의 부모 마음은 다 같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자기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혹시 그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다할지라도, 사실은 자식 사랑에 대한 배신감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물론 부모 공경이 희박해져 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말세의 징조입니다. 사랑의 중심축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부모 사랑에서 자식 사랑으로, 자식 사랑에서 자기 사랑으로.... 사랑의 중심축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자기 사랑이 최고가 되니, 그 사랑에 걸림돌이 되면 자식도, 부모도 내어버리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이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지난 주일에는 어린아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아 장성한 사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장성한 사람」은 "어린아이"에 대비된 말입니다. 곧 「장성한 사람」은 "어른"을 뜻합니다. 육신적이 아니라 신앙적입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장성한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장성한 사람」이 못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사람은 누구나 육신적으로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곧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요일4:10).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자식을 낳아 자식을 먼저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통하여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입니다.

그 내리 사랑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사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깨닫게 하신 것처럼 자식을 먼저 사랑하여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깨닫게 해야 합니다. 사랑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경험하지도,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알지 못하여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자기 사랑이 최고가 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사랑을 받아보고, 사랑을 하는 사랑의 흐름이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이 점점 희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1.누가 장성한 사람인가?

본문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여기의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사람, 남자, 어른"을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20세 이상을 말합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 수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인구조사에서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고 했습니다(민1:3). 여자와 20세 미만의 아이들은 계수에서 빠졌습니다.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육체적으로 20세 이상의 남자입니다. 곧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일반적 의미로 사람, 여자와 구별해서 남자, 아이와 구별해서 어른을 뜻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20세 이상의 남자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성년을 20세로 합니다. 지금 19세로 성년의 나이를 낮추려고 합니다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여기의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신앙적인 의미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간직해야 할 것을 간직하고, 버려야 할 것은 제대로 버린 사람들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했거나, 간직해야 할 것도 버린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아닙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여기의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자」입니다(본문12절). 희미한 거울을 통하여 보던 삶에서 대면하여 보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곧 지상에서 천국으로 그 삶의 터전이 달라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의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은 천국 백성을 말합니다. 슬픔과 고통의 그 모든 눈물을 하나님께서 친히 닦아주시는 자들입니다(계2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누가 "장성한 사람[아네르(ajnhvr)]"입니까? 바로 바로 천국의 시민이요(빌3:20), 천국의 백성입니다.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자」입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자입니다.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아는 자입니다. 곧 온전한 것을 가진 자입니다.

2.온전한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본문 12절/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여기의 "주께서 나를 아신 것[에피기노스코(ejpiginwvskw)]"은.... 경험적으로 "확실히 안다"는 뜻으로, 과거 수동태입니다. 직역하면 「이미 내가 알려진 것」을 말합니다. 곧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다」는 말씀에서(갈4:9), "주께서 나를 아신 것[에피기노스코(ejpiginwvskw)]"으로 의역(意譯)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볼 때는 무능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로 보이지만, 그래도 주님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했습니다(딤전1:12). 내가 보는 내가 온전한 내가 아니요, 주님이 보시는 내가 온전한 나입니다. 주님이 아무나 불러 직분을 맡기지 않습니다. 무능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아니라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나임을 아시기에 직분을 맡기시고, 나로 하여금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나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하고 감사할 것 뿐입니다.

본문 9절/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부분적으로 알고"....

여기의 "알고[기노스코(ginwvskw)]"는.... 경험하여 "알다, 이해하다"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우리 성도들이 경험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부분적」이란 말씀입니다. 곧 어린아이입니다. 온전한 것을 경험함으로 이 「부분적」인 것이 쓸데없어 다 내어버릴 때,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 지상에서 천국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온전한 것을 소유한 자가 장성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온전한 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있다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히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곧 쓸모 없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은사들은 폐하여진다 했습니다. 곧 쓸모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망, 애통, 곡, 아픔」이 없는(계21:4) 저 영원한 천국,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신유의 은사가 아무 쓸모 없게 됩니다.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온전한 것을 소유한 자가 장성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 성도들이 소유할 수 있는 온전한 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뿐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심으로 사랑이 대표가 되고, 사랑 속에 다 들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눅17:21). 곧 심령천국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소유할 수 있는 온전한 것은 사랑과 심령천국입니다.

사랑과 심령천국....

이것이 더욱 자라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내게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던 사랑에서, 내게 먼 사람도,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으로 자라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심령천국.... 속에 있는 것은 밖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에서 악을 낸다」고 했습니다(눅6:45). 내 속의 심령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안의 심령천국은 더욱 밖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그의 삶을 통하여 사랑과 천국을 보여주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본이 되는 사람 곧 사표(師表)가 되는 사람입니다.

3.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딤전 4:12절/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여기의 "본[튀포스(tuvpo")]"은.... "흔적, 원형, 모형, 복사"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붕어빵 틀과 붕어빵을 말합니다. 「참 사람」으로 사람의 원본은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요13:34). 이 주님을 제자들이 3년간 동거하시며 본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고전11:1). 이렇게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 곧 장성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장성한 사람들은....

①.에녹: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히11:5)

창세기 5:21-24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②.노아: 의의 후사(히11:7)

창세기 6:13-16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③.욥: 인내의 순종(약5:11)

욥기 1:1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④.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히브리서 11:17-19절/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⑤.다윗: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13:22).

왕상 15:5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⑥.솔로몬: 평화의 왕

대상 22:9-10절/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 바로 장성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소함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장성한 사람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앞에서 이렇게 본이 되는 사람....

에녹, 노아, 욥,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믿음의 선진들로 히브리서 11장에 많은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믿음의 본이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아직 이 땅의 사람으로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보는 저 천국의 백성이 아니기에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의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자의(롬8:23) 연약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의 사랑을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합니다. 그 어버이의 사랑 앞에 서면 우리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만큼 받은 은혜에 보답을 해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갚아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크나 큰 은혜와 사랑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 공경이 희박해져 갑니다. 자기 사랑이 최고가 되니, 그 사랑에 걸림돌이 되면 자식도, 부모도 내어버리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시대」의 특징입니다(딤후3:4).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그 어버이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맡아 기르시도록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신 분입니다. 그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 공경을 통하여 하나님 경외를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고르반은 있을 수 없는 거짓입니다(마7:11). 그러기에 육신의 부모님을 잘 공경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 공경도 나옵니다.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부모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를 낳는 자입니다.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자입니다. 신앙적으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자녀를 생산하여 잘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 덕산교회에서 하고 있는 「한 영혼을 가슴에 품고 위하여 기도하며, 주께로 인도하는 일」.... 태신자 전도로 통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믿음의 자녀를 낳아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삶을 통하여 양육하고, 양육 받은 자녀들이 그 부모를, 나아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어린아이에서 장성한 사람으로Ⅱ』

누가 장성한 사람입니까? 바로 천국의 시민이요(빌3:20), 천국의 백성입니다. 또한 온전한 것을 소유한 자가 장성한 사람입니다. 나아가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믿음의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으려면,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믿음의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으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이 성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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