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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가정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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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가정 (엡5:22-33)

  여기저기서 들은 우스갯소리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상여가 나가는데 유난히 많은 남자들이 길게 줄을 지어 그 상여를 뒤따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상여 바로 뒤에 죽은 여인의 남편이 개를 한 마리 끌고 가더랍니다.  그것을 의아하게 여긴 어떤 사람이 그 남편에게 다가와서 물었답니다: "웬 개를 끌고 가십니까?"  그러자 그 남편이 대답하기를 "이 개가 물어뜯어서 내 마누라가 죽었소이다" 했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답니다: "그 개 나 좀 빌려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자 그 남편이 말했답니다: "그러면 내 뒤의 줄 제일 끝에 가서 순서를 기다리시구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천당에 가면 입구에 베드로가 앉아서 천당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시험을 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부부가 둘 다 죽어서 천당입구에 도착했답니다.  한발 앞서 도착한 남편에게 먼저 베드로가 물었답니다: "어디서 왔소?"  그 남편이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베드로는 그에게 "한국"을 영어로 써보라고 했답니다.  그 남편이 "Korea"라고 쓰자 베드로는 "합격"이라 하며 들어가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가 들어가려는 순간 베드로가 급히 화장실에 다녀와야겠다고 하며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대신 문지기를 하면서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시험문제를 내주라고 그에게 부탁했답니다.  그래서 그가 베드로 대신 문을 지키고 있는데 바로 자기 아내가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곰곰히 생각한 끝에 아내에게 문제를 주었는데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어로 쓰라는 것이었답니다.

  이 두 번째 이야기를 약간 변형시킨 새 버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동시에 죽어서 천당입구에 함께 도착했습니다.  역시 베드로가 그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들 왔소?"  그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부부에게 각각 백지 한 장을 주고는 거기다 "한국"을 영어로 써보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공부를 그리 많이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먼저 거뜬히 "Korea"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여성이었던 그의 아내는 남편이 답을 제대로 쓰는 것을 확인한 후 자기 종이에 쓰기를 "Han-gook"라고 썼습니다.  먼저 정답을 써놓고 옆에서 자기 아내가 쓰기를 기다리며 지켜보던 그녀의 남편이 깜짝 놀라며 얼른 그 종이를 빼앗아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베드로님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만 깜빡한 것 같습니다. 다시 쓰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베드로는 종이 한 장을 새로 그 아내에게 내주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속삭이며 말했습니다: "영어로 써. Korea라고. 알지?"  아내는 다시 썼습니다.  그런데 스펠링을 Coria라고 쓴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본 남편이 또 기가 막혀서 아내의 귀에다 대고 말했습니다: "당신 왜 이래? Korea지 Coria가 어딨어? 제대로 써. 당신 이러면 천당 못 들어가."  그러자 그 아내가 말하기를 "내가 미쳤어. 여기까지 와서 당신하고 사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지"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웃기에는 너무나 씁쓸한 이 우스갯소리들에서 드러난 부부사이는 모두 오늘 본문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25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했습니다.  28절에서는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33절에서는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주일에 부부가, 온 가족이 다함께 교회에 나오는 것처럼 보기 좋은 것도 드뭅니다.  부부가 그리고 온 가족이 다 하나님나라에서 만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한 믿음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주 잘 아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한 가지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혼인할 때에는 돌로 만든 반지를 아내에게 끼워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돌 반지는 물질적 가치는 하나도 없는 것이고 오로지 그 돌 반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에게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돌 반지를 받아들을 수 없는 여자와는 혼인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물질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혼인을 원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유학하던 중 스위스의 레망(L man)호숫가를 거닐다가 호반에 깔린 자갈들 가운데 반지 만들기에 적당해 보이는 돌멩이 몇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고 돌아왔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일시 귀국했다가 그는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혼인할 뜻을 확인하고 나자 그는 그의 아내 될 사람에게 그 돌 반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흔쾌히 그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자신은 그녀로부터 다른 아무 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서 돌 반지를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 그 자체가 그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친 김에 돌 반지에 대해서 그녀의 부모들의 동의도 받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그 답을 듣기까지 그는 조금은 초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은 좋아한다 해도 금이야 옥이야 기른 맏딸이 혼인하는데 돌 반지 받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부모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은 그녀의 부모님들도 모두 좋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장 그녀와 함께 보석가공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들은 말은 너무나 실망적이었습니다.  그런 돌멩이로는 반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멍을 뚫으려고 기계를 대는 순간 그 돌멩이는 부서질 것이라는 대답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가 대안을 생각해냈습니다.  반지 대신 목걸이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돌멩이에다 테를 두르고 줄을 달아 목에 걸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습니다.  테를 두르기 전에 치과의사이신 그녀의 아버지는 하루 진료를 전폐하시고 치과기구를 동원해 정성껏 그 돌멩이를 다듬었습니다.  그런데 매끈하게 다듬어진 돌멩이는 참으로 놀랍게 변모해 있었습니다.  은은한 색깔의 바탕 위에 구름이며 나무며 새의 모양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 돌멩이를 돌려가면서 구경한 양가의 식구들은 저마다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한 마디씩 했습니다.  목사님이셨던 그 사람의 할아버지는 그 돌멩이 속에 교회도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품은 이들의 눈에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녀는 언제나 그 돌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마다 한 번씩 눈길을 줄만큼 그 돌 목걸이는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굉장한 보석이라도 되는 줄 알고 쳐다보는데, 얘, 너 그거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 말을 전해들은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잃어버려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목걸이가 된 돌이 아니고 돌 속에 담아 주고받은 나와 그녀, 부모님들의 마음과 사랑이니까. 우리의 진짜 돌 목걸이는 그녀의 목에 걸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걸려있는데 뭐."  혼인 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신학공부를 마친 그 사람은 귀국해서 신학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십 수 년 동안 교수직에 있다가 어느 유명한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되어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은 새문안교회입니다.

  신혼가정이 혼수문제로 파탄 나는 경우를 종종 보는 오늘날 우리 사회입니다.  심지어는 교인의 가정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정의 주인이실 때 부부의 관계가 튼튼하고 지속적일 수 있습니다.  부부사이가 물질이나 다른 어떤 것에 의해 이루어질 때 언제든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법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해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혼인식주례사에 단골로 사용되는 본문입니다.  그 첫 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했습니다.  이 구절은 남편이 가정의 주인이고 아내의 주인이며, 따라서 아내는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그래야 가정이 평안하며 행복할 수 있음을 확증해주는 결정적인 구절로서 흔히 인용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본문의 참 의도를 외면하는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남편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는데 반해서,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또는 "남편을 경외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이러한 복종은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전적인 사랑에 대한 확신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23절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된다는 말씀만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뒤따르는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까?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놓으시는 사랑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각각의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리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22절에서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했고, 24절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했으며, 25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부간의 관계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고 쌍방적인 것이 되어야할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 그리스도중심의 관계, 모두가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는 관계로서 정립되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인은 반드시 사랑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지만, 그 사랑이 그저 두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일 뿐이라면 그 사랑과 그 혼인과 그 가정생활은 온전하지도 안전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끼리의 사랑과 결합과 만족은 언제 깨지고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과 가정과 행복을 변함없이 묶어주시고 영원히 책임지실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가정의 주인은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셔야만 합니다.  혼인과 가정은 그래서 부부중심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중심의 관계로 이루어질 때 참되고 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 불행해지는 가정도 있지만 돈이 너무 많아서 행복하지 못한 가정도 많습니다.  돈이 가족 사이의 관계를 좌지우지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돈은 가족들 사이를 더 튼튼히 묶어주기보다는 부모와 자녀를 불화하게 만들고 형제자매를 원수 되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돈 때문에 형제나 남매 사이에서 소송이 걸리거나 부모자식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이 많으면서 가족이 화목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과 각 식구들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은 돈이 없어도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한다고 했으며(딤후3:1-2),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한다고 했습니다(딤전6:10).

  제일 가까워야 할 사람이 제일 먼 사람이 되고,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가장 큰 미움의 대상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자 이어서 그들의 자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형이 아우를 쳐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지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기본에 속하는 것입니다.  배금사상이나 황금만능주의는 결코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바르게 사랑하게 해주지 못하며 우리 가정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게 함으로써 참되고 지속적인 가정의 행복을 누립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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