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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어리석은 사람 (잠 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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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은 사람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
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
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
(잠언 5장 11절-14절)

1. 누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얼굴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속의 생각과 행동을 보고 붙여지
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가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스승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훈계할 스승이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됨의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본능대로 움직이는 동물에 불과합니다.

성경에 보면 어리석은 사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4:1절에“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
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사람이 어리석다고 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생각대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행(自行)자지(自止)라고 합니다.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제 멋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의 가르침이나, 훈계를 싫어합니다.
훈계를 싫어하는 사람치고 지혜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나, 스승의 훈계를 경홀히 여기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낳자마자 몇 분 있으면 제 발로 일어서고 걷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못합니다.
그러다가 1년이 가까워져야 겨우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얼마나 느리게 성장하는 존재들입니까?
이것을 돌보아 주는 손길이 있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치고 바른길로 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6:20절에“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훈계를 등한히 여기고 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요즘 온통 어리석은 사람이 많아진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말도, 스승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말씀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이기 때
문입니다.
과학 지식은 발달했는지 몰라도 인간됨의 품성과, 윤리적 행위와, 정의를 실천하려는 노력들은 쇠퇴해진 것
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할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적어진 세상이란 말입니다.

모두 자기 앞 차림만 하는 개인주의로 떨어져 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학교 교육을 보십시오.
인성 교육은 저 멀리 밀려났습니다.
교육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일이어야 하는데, 사람 되게 하는 일은 밀려나고, 지식과 기술만 돈 주고 배우는
것으로 전락된 것이 오늘의 교육 현장입니다.
사상도 없고, 가치관도 없고, 추구하는 목적도 없는 교육이 되어 버렸습니다.

옛날 교육에는 나라 사랑하는 교육이라도 있었는데,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모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중 국적 자들의 시비 거리가 보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 까지 사라진 것 같습
니다.
하기야 어떤 네티즌의 말처럼,‘국적을 포기하고 싶도록 만든 정치가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2. 그러면 어리석은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1) 훈계(訓戒)를 멸시한다고 하였습니다.
<훈계>란 <가르침>과 <꾸지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것을 멸시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1:7절에“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 하느니라”고 하였
습니다.
훈계를 멸시하며 살 때는 결국 인간됨의 도리를 져버리게 됩니다.
잠언 13:1절에“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니라”

잠언 15:32절에“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2:1절에“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 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고 하였
습니다.
잠언 13:18절에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징계를 받는 자는 종영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훈계를 듣지 않고 징계를 멸시한다는 말입니다.

2) 후회하며 살게 됩니다. 
결국 마음이 완악해져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죽습니다.
회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알아야 합니다.
잠언 5:11-14절에“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
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
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전반의 화려함 보다 후반이 더 중요합니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후회란 기회를 놓친 것을 의미합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 오지만 그것을 잡지 못할 때 후회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배울 때 배워야하고, 회개할 때 회개해야 합니다.
후회란 늦게 깨달은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후회란 미련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항상 현재이어야 합니다.
나중에 회개하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허물>과 <죄>는 나중까지 가지고 갈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현장에서 범한 죄인까지도 기회를 주었습니다.
‘가서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회개할 기회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듣고도 행치 아니합니다.
그러다 비바람이 불어 닥치고, 홍수가 나면 물에 떠내려갑니다.
흔적도 없이 다 떠내려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참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혜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7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집!,
무너지지 않는 인격!
무너지지 않는 재물!

이 모든 것이 어디에 근거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면 세 가지 복이 다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재물과, 명예와, 건강의 복이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이번 서울 관악노회에서는 대만에서 교육 선교대회를 가졌습니다.
둘째날 아침 설교시간에 설교하는 목사님의 목회 간증에서 들은 말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동안 재정이 모자라 일한 사람들에게 재촉을 받는데, 하루는 과격한 사람이 목사의 멱살을
잡으며 돈 내 놓으라고 하는 것을 그 교회의 모 장로님이 보고서는, 자기의 집을 팔아 건축비를 충당하고는 자
기는 허술한 셋방살이로 이사 와서 추운 겨울날 심방을 가보니, 너무나 추워서 담요를 무릎에 덮고 덜덜 떨면
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 목사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더니, 그 장로님이 지금은 어떤 집에서 사는가 하면, 일산에서 아파트 6
0평짜리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결코 재물과 명예와 건강을 보상으로 주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교회 안에는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담임목사가 그처럼 고난에 처했을 때 과연 자기의 집을 내 놓을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
다.
아마 우리 교회에서도 분명 그런 경우에는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재물은 하나님이 보증해 줄 것이란 말입니다.

거꾸로 우리에게 왜 재물을 맡기지 않습니까?
재물을 주면, 그 재물로 인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정말 큰 재물을 맡겨도 먼저 하나님 사랑할 줄 알면, 이제라도 맡겨 주실 것입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을 인격과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재물뿐 아니라 명예와, 생명까지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스승의 주일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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