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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습관 (신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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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사랑과 존경을 받는 농부가 있었답니다. 생활 속에서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고 있었습니다. 항상 유모어로 넘쳤어요. 혹시 힘든 일이 닥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여전했어요. 당연히 삶도 넉넉하고 영향력도 대단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요. 한 기자가 소문을 듣고 그를 방문했습니다. 그런 행복한 삶의 비결을 물었어요.

“행복해지는 게 제 습관입니다. 아침에 깨어날 때 밤에 잘 때 가족과 농작물 그리고 가축들을 축복하고 좋은 삶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행복해지는 게 습관이 될 때까지 몇 년 동안을 처음에는 억지로 몇 달 동안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워진 다음에도 계속 그리해왔다는 것입니다. 행복이 하나의 습관임을 일찌감치 터득했던 것이지요.

“행복은 여행이지 목적이 아니다.” (Happiness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 앞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까? 아니면 지금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인생이 목적지의 연결입니까? 졸업, 입학, 결혼, 진급이 행복입니까? 인생은 계속 이어지는 여행이고 매 순간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행복이 습관이 되어 점점 커져야지요.

1. 죄는 불행의 습관을 만든다

어느 새댁이 시집살이가 너무 혹독했습니다. 노예생활 수용소생활도 그보다 더 할 수 없었어요. 견디다 못해 밤중에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을 갑니다. 한참 뛰다가 산길로 접어듭니다. 이제 안심이다 싶은 찰라에 무슨 소리가 들려요. 뒤돌아보니까 어디선지 들리는 소리가 “네 팔자다.” 이 말에 맥이 풀려 주저앉았어요. 피할 수 없는 굴레라는 거지요.

팔자가 무엇인가요? 사람이 가는 여행길입니다. 그것이 정해져 있다는 거지요. 똑같은 일이라도 사람 따라서 경험하는 게 달라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황에 있어도 천차만별로 삶이 펼쳐집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신비한 것입니다. 짐승의 운명이나 식물의 운명은 다 같아요. 사람만이 다릅니다. 너무 신기해요. 그래서 동양에서는 삶을 팔자라고 해요.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팔자는 단지 습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1:31) 현재와 미래는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시39:1) 이런 행동들이 모여 잘 되는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 그 새댁이 그렇게 무자비한 상황에서 행복의 여정이 될까요?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 슬픈 자 팔자 사나운 자의 생각과 행동 밖에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이것이 삶입니다. 행복할 수 없는 데 행복하게 느끼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예의 감정, 죄수의 감정을 갖는다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잠재의식이 됩니다. 불행의 습관이 만들어지지요.

그래서 아일랜드 농부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감사할 것이 없어요. 춥고 몸은 무겁습니다. 땅은 박하고 기후도 나쁩니다. 돈도 즐거운 일도 없어요. 이런 식으로 늙어가면서 삶은 고통이 됩니다. 하지만 행복을 연습합니다. 맑은 공기 일할 수 있는 몸, 하나님이 주신 삶, 새소리 물소리 푸른 하늘, 맛있는 점심, 잘 보면 다 은혜이지요.

새댁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 매를 맞고 욕을 먹어도 감사하며 좋은 면만 보면 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설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이야기에요. 그럴 수 있다면 다 하지요. 오즉 하면 밤중에 젊은 여자가 산 속으로 도망을 가겠어요? 남의 힘든 것을 보고 간단히 말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지은 인간으로 삶은 고통스러워요.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감당할 수 없어요. 그래서 슬퍼하고 좌절하며 이리 저리 목적 없이 헤매 다니지요.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그 슬픔과 좌절의 습관은 우리의 남은 여생 계속 슬픔과 좌절을 줄 것입니다. 도망가는 새댁처럼 밤중에 목적 없이 달리지만 어디로 가겠어요. 가도 고생, 있어도 고생이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에 오시는 겁니다. 우리가 인격이 훌륭하고 의지가 강해서 역경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 왜 오셨겠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 처참하게 매 맞고 못 박히고 죽었겠어요? 공자님이나 부처님처럼 좋은 말 훌륭한 가르침 주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문제를 자기 몸에 받아서 모든 수치와 고통으로 대가를 치릅니다. 그가 도와주시지요.

2. 마음에 등불을 켜라

도 닦는 사람들이 하는 기초훈련이 있습니다. 단전에 촛불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자세를 취하면 언제나 초에 불을 켭니다. 그 밝고 따듯함을 항상 단전에 유지합니다. 그리고 나서 명상이나 기훈련을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그 따듯함을 유지합니다. 무슨 일을 하거나 30%는 단전에 그리고 오직 70%의 힘만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그러면 70%가 아니라 여러 갑절의 능력이 나온답니다. 그리고 30%가 나를 잘 유지하게 만들어 절대로 힘이 고갈되지 않지요. 무슨 일이건 한참 하다가도 다시 돌아와 단전의 촛불을 확인합니다. 한동안 그렇게 한 뒤에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와 힘을 더 강화시키면서 일을 잘 하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얼마나 열심히들 하는지요.

하지만 신자에게는 촛불과는 비교가 안 되는 뜨거운 불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인격 전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밝은 빛이 내 안에 살아서 힘을 공급합니다. 어디 촛불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내 속에서 나의 마음과 몸 전체를 비추고 계시는 작은 태양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안에 예수의 태양이 빛나게 하세요.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거나 항상 성령을 의지하고 하세요. 처음에는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한동안 내안에 비치는 그 태양을 바라보세요. 화가 날 때 어두운 마음에 먼저 불을 켜세요. 태양이 떠오르게 하세요. 도 닦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쉽고도 강해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예수를 생각하세요. 그분이 나를 돕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성령의 불을 그려보세요. 그 불빛이 내 마음을 비춥니다. 병을 다 없앱니다. 나의 앞을 비춥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그려보세요. 그런 시간이 30% 정도는 되게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세요. 그렇게 성령과 함께 하세요. 아주 습관이 되게 하세요.

이스라엘은 그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이마에 그 말씀을 써 붙였어요. 옷 술에도 집안에도 잘 보이는 곳에 그렇게 했어요.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반복하게 가르쳤어요.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게 했어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하나님은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오셨어요. 그분보다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있나요? 오늘도 말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해주겠다.(마11;28) 그래서 문제 해결하시는 예수가 마음을 밝히게 하는 것입니다. 한두 번 그러고 마는 게 아니라 날마다 시간마다 그렇게 하기를 습관 삼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환이 일어납니다. 노예가 주인이 됩니다. 창녀와 이방 여자가 하늘나라 영광의 족보에 올라갑니다. 도망자가 왕이 되고 죄수가 국무총리가 됩니다.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돌이키고 일어서는 순간, 아픔을 이기고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잠재의식까지 바꾸게 계속해야 합니다.

3. 가슴에는 비젼을 얼굴에는 미소를

행복의 습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천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봅시다. 지금 현재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면 됩니다. 과거의 아픔은 그냥 두세요. 미래의 걱정도 접으세요. 지금 현재만 즐겁게 하면 됩니다. 오늘부터 연습해서 자신을 완전히 바꾸겠다고 결심하세요. 이제부터 행복을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하고도 남으니까요.

우선 중심에 성령을 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앞에 나온 새댁과 같은 처참한 상황에서도 불빛이 보입니다. 노예생활에서 감옥생활에서 불속에서도 영광이 비쳐납니다. 사실상 행복은 외면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내면의 감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의 불빛을 확인하세요. 잊었으면 언제라도 하세요. 늘 그것을 확인하세요.

이스라엘은 성전을 마음에 두고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부분이 질서를 잡았어요.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늘 “하나님께 드리는 평생의 선물 아름다운교회”를 그려보세요. 그리고는 자신의 비전을 보세요. 가정이건 직장이건 미래의 일이건 그런 순서로 보세요. 성령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세상으로 비전을 펼쳐나가는 겁니다.

한남대학교 이사장은 김용균 장로입니다. 삼대가 한 병원을 지키고 한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산부인과병원인데 아버지도 자신도 아들도 계속 이어갑니다. 천안에 그 분의 아버지가 내려가실 때 의사가 두 사람만 있었습니다. 양쪽 다 병원을 세워서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어디다 투자하느냐가 두 분이 달랐어요. 한 분은 이름을 교육계에 투자했어요.

천안 중고등학교를 세웠어요. 국회위원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장로 아버지 장로님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천안중앙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건축하고 섬기며 거기 뿌리를 두고 치우치지 않고 왔어요. 교육계에 투자한 분은 간 곳이 없고 패가망신해 다 없어졌어요. 하지만 교회를 자기 꿈으로 삼고 봉사한 분은 큰 복을 받아 명문 가정이 됩니다.

자녀가 6남매인데 아들 전부가 장로입니다. 맏아들은 고려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장을 하고 학장을 지내면서 고대에서 제일 인기 있고 존경받는 교수입니다. 둘째가 김용균 장로, 다음은 이비인후과로 유명한 의사 다음은 이대교수로 교육부 장관을 한 김숙희 교수, 다음은 좀 문제는 있지만 실력 있기로 유명한 김용옥 교수입니다. 모두가 잘 되었어요.

72세인데 얼마나 50대 정도로 보입니다. 지금도 천안 깡패 두세 명은 일순간에 밀칠 수 있다합니다. 요즘도 그저 교회 짓는 일 목사님 사택 짓는 일이라면 전부 김용균 장로가 합니다. 아이들을 서울에다 20년 공부시켰는데 한번도 자고 온 적이 없답니다. 본 교회 가서 새벽기도하려는 것이지요. 교회와 함께 자신의 비전을 세워 행복해진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항상 미소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분명히 하십시다. 중심에 성령의 불을 확인하세요. 다음으로는 가슴의 비전을 보세요. 교회를 통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얼굴에 미소를 분명히 하세요. 이것이 자동으로 될 때까지 한 달만 연습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행복의 습관은 만들어집니다. 축복의 습관입니다.
(/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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