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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 (행 1: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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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나라 이렇게 제목을 정하긴 했는데 원래 주보 때문에 금요일에 설교 제목이 본문과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실제로 설교를 작성하는 것은 토요일에 작성하거든요. 토요일에 하룻밤 자고나서 생각하니까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 무슨 논문제목 같아서 상당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한번 쉽게 풀어 가 보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배는 교회 절기상 정말 중요한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교회가 지키는 절기하면 성탄절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께서 아기로 태어나신 절기입니다. 부활절은 부활에 대해 믿던 믿지 않던 상관없이 사람들이 ‘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이구나!’ 이렇게 상상이 됩니다. 그러나 오순절이나 성령강림절 이런 것은 쉽지 않습니다.

상당한 성경지식이 없으면 오순절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설교 제목을 보면서 오순절이라는 말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사실 모두 가만히 앉아 있어서 그렇지 대게 다 모르거든요.

오순절(五旬節) 이 무슨 말인지 한번 보십시오. 다섯 “오” 에다가 열흘 “순”자이니까 오 곱하기 십이면 얼마죠? “오십”입니다. 오십 일 만에 오는 절기인데 이것이 유대인의 또 다른 절기 유월절(逾越節)부터 시작해서 오십일 만에 오는 절기가 오순절(五旬節)입니다.  그런데 유월절도 사실은 한문을 쓰지 않으면 전체 여섯 “육”자를 떠 올리게 됩니다. 달월(月)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사실은 유(逾)자도 그렇고 월(越)자도 그렇고 다 넘어갈 유(逾) 넘어갈 월(越) 이래서 유월절(逾越節) 이라는 말입니다. pass over 했다는 겁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나올 때 천사들이 이스라엘의 집은 치지 않고 넘어 건너뛰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을 중심으로 해서 오십일 만에 오는 절기가 오순절이고 그때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날이 바로 오순절 절기입니다.

그러면 왜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이라고 하지 않고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라고 했을까요?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을 혹 여러분 가운데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막9:1)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느니라. 그렇게 말하니까 사람들 중에서는 꼭 예수님이 그때 온다고 하고선 그때 서 있던 사람 죽기 전에 온다고 했는데 아직도 2000년이나 다 죽어서 뼈가 다 썩었는데 아직도 안 오시나 라고 오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보통은 마가가 말을 하면 짧게 말을 해서 전개가 빠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제일 짧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이 구절을 보면 마가야 말로 아주 정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여기에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아주 정확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양면성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간단하게 말을 잘 하다가도 또 어떨 때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싸울 때 보면 그런 것을 가지고 싸우잖아요. 꼼꼼할 때는 안 꼼꼼하고 안 꼼꼼할 때는 꼼꼼하다고 그러지요. 이중성이 다 있게 마련입니다.

성령의 오심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사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나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6-8)

“저희가 모였을 때에”라는 말로서 오늘 본문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희”가 누구입니까? 앞부분을 살펴보면, 바로 사도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부활 하신 주님께서 사도들과 자주 만났던 것을 제자들과 다시 만났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처음부터 그 제자들을 가리켜서 더 이상 제자들이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사도들이라고 부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훈련을 받고 할 때는 제자들이라는 이름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께서 하시던 그 일을 대신, 사역 대신 감당해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일컬어 사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권한을 주셔서 일을 맡겼다 그런 뜻에서 사도들입니다.

앞 문단을 보면 거듭해서 사도들이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2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4절) 주님의 최후 분부처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저희가 모였을 때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여기서는 저희가 사도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특징은 그래서 모이는 데 있다고 말 합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건강한 교회 부흥하던 교회가 바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입니다. 거기에 특징은 열심히 잘 모였다는 겁니다. 교회가 건강해 지고 교회가 생기가 넘치면 모우는 일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집에 빨리 가라고 해도 안가서 문제입니다. 건강한 교회 특징 중 하나가 잘 모이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십일 동안 제자들을 만나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일(3절)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3년 동안 예수님께서 공생애 줄기차게 제자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어요.

마가는 그래서 주님의 첫 선포를 기록할 때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것이 예수님의 첫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 여러 곳에서 사람만 모였다고 하면 가지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 그러면 감이 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 보다는 구원, 죄 용서, 영생 이런 말이 차라리 가깝게 느껴지지 하나님 나라 그것은 신학생이나 논문 제목으로 잡을 주제인 것처럼 그렇게 느낌이 안 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달리 말해서 예수님이 그처럼 줄기차게 말씀하셨던 주제를 오늘 교회는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입만 여시면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문에 모인 사도들도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핀트가 조금 어긋나서“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물었을 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먼저 답을 하십니다. “그 때에 관해서 아는 것은 너희의 소관이 아니다” “6월 위기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우리의 질문에 대해서 동일하게 대답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 때에 관해서는 너희의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때의 제자들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도 늘 자신들의 정치적 관심의 틀 안에서만 파악을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지금이 때입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이스라엘이란 한 나라의 정치적인 미래가 아니라 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는 따로 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전1:8) 6월 위기설이 근거가 있든 말든 너희가 관심을 가질 일은 “내 증인이 되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을 다시금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첫째로 그 나라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도상에 표시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지도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며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사는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동일시 할 때는 인류의 재앙들이 임했습니다. 십자군 운동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인류의 사태위에 미국의 많은 설교들이 미국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나머지는 악의 세력들이라고 그렇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아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더 복잡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도상에 표시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것을 동해라고 할 것인지 일본해라고 할 것인지를 독도라고 할 것인지 죽도라고 할 것인지 그렇게 표시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으로 세워나갈 나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속에 실현되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 나라는 군인들에 의해서 확장되는 나라가 아니라 증인들에 의해서 확산되는 나라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화를 맛보고 삶 속에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만드는 나라입니다. 전쟁의 선포가 아니라 평화의 소식을 통해서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오월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을 모우는 달입니다. 다음 주일부터 시작되는 생명 사랑 나눔 잔치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는 잔치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그 입술에 감사와 찬송이 있는 자들만이 동참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복되길 바랍니다. 아직도 초대장을 손에 쥐고 있는 분들이 있지요? 사흘 내에 빨리 전달해야 합니다. 그 마음에 불만이 쌓이고 그 입술에 욕설이 자리한 이웃들의 황폐해진 삶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귀한 초대를 여러분은 해야만 합니다.

여차하면 자기의 삶을 끝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귀한 사역입니다. 자기 생명의 소중함도 남의 생명의 존귀함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정말 생명의 외경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모르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널 부러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마다 가진 삶의 기회가 소중한 축복이 되도록 인도하는 일을 위해서 마지막 노력을 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가 영적인 나라라고 할 때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어떤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나 사회 개혁의 프로그램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 통일이 가능할까요?”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통일과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언제쯤 가난한 사람들도 사람대접을 받는 사회가 올까요?”하나님 나라는 복지사회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에는 하나됨이 찾아오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사람이 존중되는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세상이 귀하게 생각하는 것과 언제나 일치하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들은 세상의 임금이나 권력에 절대 충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만 최고의 충성을 드리는 자들 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모든 영광을 오직 주께만 돌리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재래식 군사력이나 첨단의 핵무기를 통해서 지켜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셔서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는 대책 없이 주님만 찬양하는 사람들로 통해서 이루어 가는 나라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여호사밧 왕은 적군들이 쳐들어 왔는데 진을 베풀기를 맨 앞에 찬양대를 앞세우고 가더라고요. 총과 칼을 든 방패를 든 군인이 아니고 하프를 들고 노래를 하는 그 군사를 앞세우고 가서 싸우는 겁니다. 조금 세상이 보기에는 이해가 잘 안됩니다. 세상은 말 잘하는 변호사를 세워서 자기 이익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젖먹이들과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들을 통해서 원수의 논리를 격파하시는 주님인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복음서에서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을 가리켜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구약을 통 털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서 “남은 자들”이 땅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이 말씀하신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2. 하나님 나라는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로 구성되는 나라입니다. 그 때 사도들은 여전히 꽉 막힌 민족주의적인 열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사도들은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는 때가 지금이냐고 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6월 위기설을 넘어서 통일이 언제쯤 이뤄질 것 같으냐고 궁금해 합니다. 예수님은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시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8절) 그 때의 사도들처럼 오늘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보내셔서 능력 있는 증인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너희”는 사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 사도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아는 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역기간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던 무리들입니다.

예수님이 선택해서 세운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증을 안고 있었기에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3년 동안 훈련을 시켜서 이제 마지막 인수인계를 하고 떠나야 하는데 아직도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킴이 지금입니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날 이 본문을 보다가 굉장히 위로가 되더라고요. 제자 훈련을 하면 일주일에 한차례 두세 시가 불러서 일 년을 하는데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지 않아 어쩔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주님을 보니까 일주일에 168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3년이 지나도 아직도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주님이 속 터지는 장면을 보니까 내 속이 후련해지더라고요. 그들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나 예외가 없이 그들의 관심은 계속해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척 일석을 바라시고 3년을 다니면서 자리만 있다고 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부활 하시고 나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들 모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그들 대부분은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통일보다 독도문제가 더 그들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였을지 모릅니다.

주님은 지금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들을 사도들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이란 조건 절은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는 이런 권능은 주어지지 아니하고 권능을 부여받는 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 일어나는 일 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삼위일체의 한 분이시며 초자연적인 분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우리는 부릅니다. 성령은 특별히 아버지 하나님이 창조와 아들 하나님이 구원과 관계가 있다면 성령 하나님은 권능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초자연적인 능력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에게 왜? 이 능력이 필요할까요? 그들의 마지막 행적을 여러분은 기억합니까? 3년 동안 따라 다니던 선생님이 체포되어서 심문을 받게 되니까 그 12사람 중에서 그래도 늘 자기가 제일가는 제자라고 자부했던 베드로를 보십시오. 여종이 와서 당신은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 같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요? 아니 당신을 보니까 예수님을 같이 따라 다니던 사람이 맞네, 이 사람이 생사람 잡겠네. 아니 당신 말하는 어투를 보니까 경상도 사람이 맞는데 뭘 그래 그런데도 자기가 탄로가 날것 예수님의 이름에다가 저주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 절대 모른다고  이것이 3년 동안 따라 다니던 수제자 제자들의 성적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일을 하려면 뭔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어질 권능은 사도들의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부터 임하는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사도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이 주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은 사도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에 대해서 많은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능을 받게 될 결과로 사도들은 증인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권능을 부여받을 때에 증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증인이란 무엇입니까? 어떠한 사건, 사람에 대해 들은 바가 있고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 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3년 넘게 주님과 함께 생활해 왔습니다. 바로 곁에서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주님의 설교를 직접 귀에 들었던 사람이고 주님의 이적을 직접 눈으로 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0년 예수를 믿는 우리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이렇게 들으면 완전히 논문제목처럼 들리는 것은 교회가 그렇다니까요? 예수님이 그처럼 열심히 말씀하셨던 그 주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 나라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어느 아파트 단지가 괜찮은 단지인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대학 입시가 바뀌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 그것은 멀리 있는 주제처럼 들립니다.

지금껏 거저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별로 신통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철저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부어 주실 것이며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사이에는 긴 문장들이 나오고 있지요? 동네 이름들이 나오지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맨 먼저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제일가는 도시 수도입니다. 교회에 오늘 처음 나와도 예루살렘 하면 이스라엘 수도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곳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지금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고향처럼 되어버린 곳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부터 증인노릇을 하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그 현장에서부터 사는 동네에서부터 전도자의 노릇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복음 전하기 쉬운 곳입니까? 여러분, 가족들에게 전도해 보셨습니까? 만만치 않습니다. 차라리 길을 가는 사람을 붙들고 사영리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자연계에 자연법칙이 있듯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도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쉽지만 어떤 때는 성질 부렸던 그 어머니에게 사영리를 전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아는데 “너나 잘해라” 자녀나 부모 사랑하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소중한 사람을 건너뛰어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 복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사도들에게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곳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다르게 생각하면 예루살렘 거기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소입니다. 주님을 십자가로 내 몰았던 살기가 등등한 동네가 바로 예루살렘 동네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장 적대적인 환경, 거기가 바로 복음전파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 여러분에게 가장 적대적인 사람 할 것 없이 여러분은 복음 전해야 하는 빚을 똑같이 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피해가야 할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피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나아가서 증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것은 마치 수원과 경기도 관계 대구와 경상북도와의 관계입니다. 말하자면 울산뿐 아니라 경상남북도 전체를 복음증거의 다음 타깃으로 정하라 그런 이야기 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 번째 언급한 도시 사마리아, 사마리아와 사도들과 사자로 시작하니 관계가 좋은 줄 아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십시오. 보시면 바로가면 사마리아로 통과하면 하루에 갈수 있는 길이라도 유대인들은 무정 사흘 길을 걸어도 너희 동네에 들어가기 싫다 이것이 사마리아에 대한 보통 유대인들의 감정이었습니다.

우리도 5장 전도지 초청장을 받았지만 누구에게 전해야 할지 생각을 하면 딱 “저 사람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선을 그어 마음의 선을 그어서 “저 사람은 아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많은데 내가 하필 저 사람에게 전도지를 들고 가서 초청장을 들고 가서 우리교회에 나오라고 할 리 만무하다. 그렇게 선을 그어 놓은 사람이 있지요? 그 사람에게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기피합니까? 주님은 그 사람을 만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를 경멸합니까? 주님은 그 사람에게 초대장을 전달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전도 지역입니다. 친한 사람, 싫은 사람 모두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들의 사역의 종착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증인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지역은 우리가 선교해야 될 지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로 구성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우리가 계속해서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대한민국 사람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대한민국사람이 맞지만 우리는 민족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민족, 이것이 다른 민족의 이익을 희생하는 다른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민족주의로 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라가 완성되면 모든 민족과 나라와 족속과 방언 가운데서 아무래도 능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로서 구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8년 유학생활하면서 제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받은 학위가 아닙니다. 내가 받은 학위는 목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주보에는 내가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를 기록해 놓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유학을 하면서 정말로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나가서 보니까 인종과 관계없이 언어와 관계없어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영적으로 함께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저는 20년 동안 아직도 못 만나본 친구가 브라질에 살고 있는데요. 브라질은 워낙 나라가 넓어서 간다고 바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20년 동안 서로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 브라질 친구는 같이 공부할 때 어떨 때는 포르투갈 말을 유창하게 합니다. 내가 그냥 멍하게 쳐다보지요 알아듣는 것이 있어야지요. 그이만 실수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한국말을 막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못 알아듣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할까요? 마음이 통하니까 말이 통하는 줄 순간적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지으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족속을 초월해서 구성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주님이 말씀하시는 오순절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3. 그 나라는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씩 확장되어 가는 나라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많은 사람은 주님이 사역하는 기간에도 그런 소망을 숨기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니까 예수님의 심정에서는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발걸음이 도시인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향하니까 모두 기대가 잔뜩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은 하지 않지만 주님이 보좌에 앉으면 양쪽에 누가 앉을 것인지에 관심이 잿밥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진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도 치맛바람이 있었더라고요.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치맛바람의 여인, 예수님을 만나서 뭐라고 했지요? “선생님 우리 아들 하나는 선생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혀 주십시오.”

나머지 열 제자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상상해 보세요. 오른쪽 왼쪽에 앉는 것을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면 속이 상할 리 없습니다. 뭐, 달라고 하든지 말든지 너 해라 그러면 되는데 속이 상하는 이유는 그 말을 들으며 속이 뒤틀리는 이유는 자기도 거기에 관심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뭐라고 했지요? 오른쪽에 앉던지 왼쪽에 앉던지 그것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알아서 정한 사람에게 줄 것이고 “네가 정말 내가 마시려고 하는 잔을 마실 수 있니?” 물으니까 그 엄마의 그 아들이라고 “예” “아멘”그럽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는 예수님처럼 순교에 예수님이 마시려는 그 잔을 순교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 아무데나 “아멘”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잘 해 보셔야지요.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지금 올라가기만 하면 이제는 새 나라가 건설되면 누가 오른쪽 왼쪽에 앉는지, 이것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하는 그때에도 아무도 물 떠와서 발을 씻어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 네가 해! 서열이 내가 빠르잖아 네가 해!” 모두 이런 입장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떠 와서 하나씩 발을 씻겼을까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또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생각했기 때문에 문화의 비유를 가지고 한참 후에 올 것을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하고 오붓한 시간이 있으니까 “선생님,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 알바 아니요”사도들의 호기심이나 조급함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이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마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는 일에 그렇게 알려고 밤새워서 기도할 것 없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알려준 일에 대해서 순종하려고 해야지 감춰 논 하나님의 뜻을 그처럼 알려고 발버둥을 치고 하나님이 다 알아듣도록 이렇게 큰소리로 사흘 내에 초청장을 돌리라는 말에는 순종을 하지 않고 이것이 꺼꾸러 가는 겁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마치 사흘 넘도록 가지고 있으면 큰 재앙이라도 임할 것처럼 빨리 전달해 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이 할 일입니다.

6월 위기설이 제대로 될 것인지 아닌지 비상식량을 사 두어야하는지 하는 일에 관심을 쓰지 말고 그것은 하나님에게 맡겨버리고 우리에게 속한 것은 나타난 일이며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비록 때와 기한은 그들이 알 바가 아니지만 그들이 알아야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권능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땅 끝까지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증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선 곳에서 시작해서 더 넓은 지역으로 증거하는 일을 감당을 해야 합니다.

오순절에 능력으로 성령께서 오신 그때부터 심판대로 예수님이 오시는 그때까지 그 기간사이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거기에 대해 관심을 같지 말고 그 기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땅 끝까지 이르러서 증인이 되는 그 일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일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순례자들입니다. 땅 끝까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날 까지 그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 질 때에 끝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산에 사는 우리들은 울산이 복음화 되는 일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도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울산에는 100만이 넘게 있습니다. 아직도 지금 있는 교회 수 보다 배나 더 많아져야만 합니다. 아직도 지금 울산에 있는 교회 크기보다 더 큰 교회들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5000명이 목표가 아니라 10000명이 목표로 일할 수 있는 교회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나타나야합니다.

그러므로 구주대망  2005년 5월은 좋은 교회 울산교회가  이 사명에 충실하는 달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 주간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로 나아가야 됩니다.  “초청장을 전달했습니까?”  한 장도 아직 전하지 않았다면 좀 심합니다. 사흘 내에 다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준비한 초대장을 전달해 주십시오. 정말 사람들 손에 쥐어 주기가 힘들면 하다못해 그 집 우체통에라도 살짝 넣으십시오. 그렇게라도 하십시오. 집에 두는 것 보다 훨씬 나은 일입니다. 보관하는 것은 2005년에 초청장을 얼마나 만드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보관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니까 집에서 보관하지 말고 전달해 주십시오.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초대를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지를 한번 기다려 보십시오. 오늘 울산 복음화를 위해서 내일의 조국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그 영광을 찬란히 이 땅에 나타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아멘.

생사나 잔치를 이제 한주가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가 가지고 간 초대장을 남김없이 전달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우리가운데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목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새 생명은 기도의 열매인 것을 생각하고 날마다 기도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하늘의 기쁨이 가득하게 하여 주소서 (설교 :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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