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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루에 서세요 (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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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할 때는 설교자 자신의 이야기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히 자기 자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30절에서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했지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 사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하고서 그 사람이 천국에 다녀 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울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모델이 되어 설교자들이 자기의 자랑 비슷한 것을 꼭 말해야 할 때는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최근에 느낀 것을 중심으로 설교를 펼쳐 나가려고 합니다.
설교의 원칙에서는 약간 벗어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색다른 유익이 있을 줄로 알고 이와 같이 준비했습니다.
오늘 설교에 이름을 붙인다면 간증적 설교, 또는 수필적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성전의 오른쪽에는 10층으로 된 기도탑이 있습니다.
그 안에 기도실들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기도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탑입니다.
나가서는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탑이 되고, 더 나가서는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탑이 될 것입니다.

기도탑 위에는 종들이 달려 있습니다. 
이 종들은 실제로 타종할 수 있는 종들은 아닙니다.

종이 열두 개 달려 있는데 성경에는 열둘과 관계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대개 좋은 일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열두 문이 있습니다.(계21: 12)
그 성곽의 기초석은 열두 가지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천국에는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는데 열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계22: 2)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거두시고 열두 바구니를 거두셨습니다.(눅9: 17)
애굽에서 탈출해서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엘림이라는 오아시스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물샘 열둘이 있었습니다.(출15: 27)

열둘과 관계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입니다.
종탑 위의 열두 종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탑 위에 달려 있는 열두 종을 볼 때마다 ‘목양교회 교인인 나도 예수님의 제자이다.’라고 자신에게 말하기 바랍니다.

그 위에 흰색 십자가가 있습니다.
교회당의 십자가들은 대개 네온사인 설비가 되어 있어서 밤에 여기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저희 교회도 교육관 십자가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탑 위의 십자가는 밑에서 하얀 불빛으로 십자가를 비쳐서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것을 보지 못한 성도는 좀 문제가 있는 분입니다.
주일 저녁 예배나 새벽도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탑의 4층까지는 대 예배실의 2층, 3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5층부터 기도실인데 5층에는 단체로 기도할 수 있는 좀 넓은 기도실이 있습니다.
5층에는 건물 구조상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습니다.
6흥, 7층, 8층에는 한 층에 네 개씩 역시 열두 개의 개인기도실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8층까지 갑니다.
9층에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있습니다. 그 앞부분을 방으로 꾸며 놓았지요.
그리고 10층은 전망대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 왔다가 전망대를 보면서 비행장의 관제탑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겼지요..
비행장에서 제일 중요한 곳이 관제탑입니다. 
관제탑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그 비행장은 마비됩니다,
아무리 좋은 활주로를 가지고 있어도 관제탑에서 관제를 해주지 않으면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못합니다.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뜨고 내리다가는  충돌사고가 날 위험이 큽니다.
공항 상공은 의외로 복잡합니다.
그 목사님은 무심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저에게는 ‘이 교회가 이 시대와 이 나라와 이 지역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기관입니다.’ 이렇게 들렸습니다.
제가 공군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는데 항공관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는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일부터 교회부흥을 위한  속회 릴레이 기도를 기도탑에서 갖고 있습니다.
각 속회별로 돌아가면서 지역장님의 인도하에 매일 오전 10시 반에서 12시까지 기도회를 갖습니다.
5층에서 같이 기도하고  흩어져서 개인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고 다시 모여서 기도하고 끝냅니다.
수요일에는 밤 9시에 남자 속회들이 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은 시작 초기이고 교회 행사들이 많아서 조금 혼선도 있었지만 좋은 반응 속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좋아서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와서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역자들은 매일 9층에서 기도 담당순서에 따라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담임목사실이 아닌 교역자실에서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은 제가 기도할 차례가 되어서 기도탑에 올라갔습니다.
기도탑에 올라가면, 특히 10층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면 수지와 분당 일대가 환하게 내려다보입니다. 
대성전과 교육관의 방배정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방 가운데 하나는 역사자료실로 해야 하는데 전망대를 역사자료실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탑에서 이 부근을 내려 볼 때  ‘참 좋은 동네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성도들 가정의 장례예배를 많이 집례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묘소에 가서 지세, 지형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관을 할 때 지관이나 그런데 밝은 동네 사람이 나서서 좌청룡, 우백호(左靑龍右白虎) 해 가면서 간섭을 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간섭을 막을 정도의 실력도 갖게 됩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 열린 열린 음악회에서 테너 최승원 씨와 바리톤 김동규 듀엣으로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향수’ 를 불렀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헤설피 금빛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 리야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이지요.
이 ‘향수’는 이 시는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시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 발표된 수많은 시들 가운데 이 ‘향수’가 가장 대표적인 시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열린 음악회에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노래의 시작부분을 들으면서 그 전날 기도탑에서 내려다 본  이 동네의 광경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목사님 여기 벌판은 그렇게 넓지 않구요, 동막천은 실개천이 아니고 넓은 개천이에요.’이렇게 따질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따지지 마세요.
벌판이 있고 그 벌판 동쪽 끝으로 개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교회 주변은 8년 전에 저희 교회가 처음 들어올 때에 비교해보면 건물들도 많이 생기고 복잡해졌습니다.
앞으로는 변화가 더 많을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용인-서울 간 민자 유료고속도로가 기공되었는데 노선에 대한 설명을 보니까  고기리에도 인터체인지가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고기 인터체인지에서 나오는 도로는 우리 교회 앞으로 해서 수지와 연결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지형과 지세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좋은 지형과 지세를 가지고 있어서 좋은 곳, 거기에 교통이 편해져서 더 좋은 곳, 무엇보다도 목양교회가 있어서 제일 좋은 곳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이 용인-서울 간 고속도로는 22.9Km인데 2008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같은 때에 판교 신도시도 완성되어 16,157 가구, 8만 여 명이 입주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모두 저희 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도탑에서 기도하면서 오래간만에 조용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지금 너무 여유가 없이 지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원래 목회는 바쁜 것인데 저희 교회는 건축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도 뒷정리가 진행되고 있는데 실무는 모두 건축위원회에서 맡아서 수고하고 있지만 담임목사로서 늘 진행되는 것들, 문제점들을 파악해야합니다.
요즘 행사들이 참 많은데 수고는 해당 부서들이 하지만 신경을 써야하니까 늘 많은 부담감 가운데에서 지나게 됩니다.
우리는 대성전에 대해서 3,500석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저도 3,500석 이야기를 하고, 성도들도 ‘우리 교회는 3,500석이에요.’ 하는데 그 말이 저에게는 종종 ‘3,500톤이에요’ 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3,500톤의 무게에 눌려서 지내오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부작용들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실에 교회 신문 「푸른 풀밭 맑은 시내」가 한 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신문을 다시 보다가 2면에 있는 제 증명사진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그 사진은 7년 전에 찍어서 여기저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푸른 풀밭 맑은 시내」는 홍형강 장로님이 정말 세심하게 수고해서 지면구성과 편집을 하고 저도 마지막 교정을 보는데 교정을 보려면 집중해야지요.
그래도 그 때는 ‘응, 여기 내 얼굴 사진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기도탑에서 조용한 가운데 사진을 보면서 ‘아, 이 사진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겠구나! 사진을 다시 찍어야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7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얼굴 모습도 좀 변했기 때문에 바꿔야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데  제일 큰 이유는 이제는 며리가 희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 신문에 실린 제 사진을 보세요. 그 사진의 머리는 까맣습니다.
그것이 기도탑에서 비로소 발견되고 느껴졌습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그러는데, 먼저 신명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 시간에 신명기를 강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가 분량이 많기 때문에 올해 새벽기도회는 내내 신명기를 강해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자신도 모르게 하박국서 2장을 열었습니다.
하박국서 2장은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이렇게 시작됩니다.
다른 성경들은 이 성루를 망대라고 번역했는데 성루나 기도탑이나 비슷하지요.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해 수많은 질문을 하고 불평을 하고 항의를 합니다.
하박국서 1장에는 그런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은 그런 문제의 해답을 갈망하면서 성루에 올랐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박국은 답을 얻습니다. 4절 뒷부분이 바로 그 답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무슨 일을 겪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믿음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
‘다른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 수 있다,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만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하박국이 성루에서 얻은 이 대답은 바울 사도에 의해 로마서 1장 17절에서 다시 인용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새벽에 임형준 목사님이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여기 “기록된 바”는 하박국서에 기록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저희 개신교의 교리를 요약하면 이신득의(以信得義) 이렇게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믿음으로 산다, 하박국이 들은 대답을 축약한 것입니다. 
개신교가 천주교와 다른 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루의 체험을 한 하박국은 변화됩니다. 놀랍게 변화됩니다.
1징에서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불평을 하는 하박국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데 2장에는 담대하고 강하게 예언을 선포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박국의 이런 변화된 모습은 3장 17절과 18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러분, 이 말씀을 여러분의 형편에 적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많은 고통이 있더라도,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오해를 받더라도, 직장에서 진급이 되지 않았더라도, 건강에 이상이 생겼더라도, 나는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 때문에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이러, 이렇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면 ‘설교 끝났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이러, 이렇게 되기를~’ 하는 대목에 이르면 성도들은 벌써 성경 덮고 기도할 준비에 들어가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설교 끝났습니다.’ 하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는 뜻으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것입니다.

제가 기도탑에서 하박국서를 읽으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았던지 주일 설교 본문과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스가랴서 3장 2절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는 말씀을 가지고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모레, 5월 24일이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 목사님 회심 267주년 기념일인데 스가랴서의 이 말씀은 웨슬리 목사님이 평생 기억하던 말씀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여섯 살이 채 못 되었을 때 집에 불이 나서 위기를 만났다가 구조 받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요일 심야합심기도회에서 제가 한 설교가 사실은 이번 주일예배 설교로 준비하고 있던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목양 열린 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심야합심기도회를 가졌는데 평소와 변함없이 많은 성도들이 참석해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기도탑에서 하박국서를 읽으면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생각났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도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엄격한 에르푸스트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수도원에서 모범적인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요즘 말로 그야말로 FM이었습니다.
수도원의 작은 규정이라도 하나 어기면 상급수도사에게 달려가서 ‘내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나중에는 상급 수도사들이 귀찮아서 ‘루터 수도사, 고백할만한 가치가 있는 죄를 가지고 오게!’라고 만류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생활을 하니까 루터는 그 수도원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에르푸스트 수도원의 젊은 성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속죄 문제를 가지고 정신적 고뇌 속에서 한없이 괴롭게 지냈습니다.

루터보다 200 여 년 뒤에 웨슬리 목사님도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엄격하게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 가서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로도 수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확신이 없어 괴로워했었지요.
그 때 웨슬리 목사님이 얼마나 괴로워했던지 일기에 ‘나는 인디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갔다. 그러나 내 영혼을 구원할 자는 누구냐?’라고 적었습니다.
심지어는 ‘내 마음속에 지옥이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러다가 1738년 5월 24일 밤에 올더스게잇의 한 적은 집회에서 회심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얼마 뒤에 비텐베르그 성의 탑에서 시편 22편을 읽다가 그리스도의 속죄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에게는 그의 신앙에 변화를 준 몇 가지의 체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한 일입니다.
이 일 때문에 그는 법학도에서 수도사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말씀드린 탑의 체험입니다.
하나는 로마순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기대를 품고 로마에 갔다가 신부들의 타락에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스칼라 상타라고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러 올라가셨다는 계단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옮겨놓았는데 교황청에서는 그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면서 소원을 아뢰면 들어주신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루터도 그렇게 하다가 중간쯤에서 로마서 1장 17절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강하게 기억나서 일어나서 내려와 버렸습니다.

합동신학원리라는 신학교에서 교회사, 특히 종교개혁사를 오래 강의하다가 은퇴한 김명혁(金明爀)이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고 계신 분인데 특히 한국복음주의협의회라는 단체의 회장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가 지금 원로목사님들을 모셔다가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주제로 조찬기도회를 연속해서 열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명혁 목사님은 루터의 여러 가지 체험 가운에서 이 탑 속의 체험이 제일 중요하다고 늘 강조합니다.
루터에 대한 세미나 같은 모임에서 김명혁 목사님이 발언을 하려고 하면 ‘아 저 분 또 탑 속의 체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구나!’ 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의 틀림없이 그 이야기입니다.

루터도 탑의 조용한 시간에서 그를 그렇게 괴롭히던 신앙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조용한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교회의 기도탑이 하박국의 성루 같은 곳, 마르틴 루터의 탑 같은 곳, 웨슬리 목사님의 올더스게잇 작은 집회소 같은 곳이 되기 바랍니다.
새벽기도회가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혼자서 갖는 묵상의 시간, 기도의 시간, QT, Quiet Time, 조용한 시간, 주님과 나만의 시간이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나오는 파수하는 곳, 성루가 실제적인 파수하는 곳, 성루, 예루살렘 성벽의 한부분일까 하는 것은 의심이 갑니다.
“내 파수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이는 경비병에게 배당된 초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이 군인이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박국이 어떤 인물인지 기록이 거의 없으니까 군인이었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파수를 서도록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수를 서면 경비하는 일에 모든 힘을 써야지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여기 “내 파수하는 곳”은 영혼의 파수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영혼에 침입해 들어오는 것들이 없나 지키는 곳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루”는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망대라는 뜻입니다. 멀리 바라보는 곳입니다.
이 망루도 영혼의 망루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나는 어떻게 되는가 바라보는 망루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망루에 오르세요.
문제를 가지고 망루 밑에서 뱅뱅 돌지만 말고 망루에 오르세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는지 기다리세요.
바라보세요.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타나실 것입니다. 대답하실 것입니다.
분명하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2절 뒷부분을 보세요.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분명하게 대답할 테니 분명하게 기록하라는 뜻입니다.

3절을 보세요.
‘네가 답답하냐?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라. 나의 말은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한다.’ 말씀하실 것입니다.

4절을 다시 보세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은 ‘믿음으로 살아라!’ 하는 명령입니다.
‘의심되는 것이 많더라도, 모순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많더라도, 힘들더라도 믿음으로 살아라!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라!’ 강한 명령입니다.
성도라면 다른 것에 앞서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명령입니다.

성루에 오르기 이전의 하박국과 성루에 올랐던 이후의 하박국은 다릅니다. 아주 다릅니다.
하박국은 정말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불평만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끼면 그 자리의 분위기가 깨집니다.
친구들이 그에게 툴툴 보이라는 별명을 주었습니다.
하박국은 전형적인 툴툴 보이였습니다.
툴툴거리면서 성루에 올랐다가 담대한 말씀의 용사가 되어서 내려왔습니다.
하박국서 3장은 하박국의 찬양이지요.
툴툴 보이가 찬양 보이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루에 오르세요.
성루에 오른 하박국을 변화시켜 준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요즘 몽골 단기선교 팀이 토요일 오후마다 모여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가보니까 돌아가면서 한주간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는 순서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질감과 일체감이 형성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선교 팀을 인솔할 교역자가 자기의 지난 주간 생활을 이야기했습니다.
교역자실이 지난 주간 행사들과 단체 손님들,  급한 심방, 경조사들 때문에 참 바빴습니다.그렇게 바쁜 가운데서 기도순번이 되어 하루를 기도탑에서 지냈는데 참 좋았다고, 다음 순번이 기다려진다고 했습니다.
제 순서가 되어서 저도 좋았다고, 다음 순번이 기다려진다고 말했습니다.

여자 속회, 남자 속회도 다음 기도 순번이 기다려지시기 바랍니다.
기다릴 것이 없이 자주 와서 기도탑에 오르세요.
바쁜 일들 잠시 뒤로 미루고 그렇게 하세요.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루에 서시기 바랍니다.

성루에 올라, 서서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려고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받고, 변화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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