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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때 (왕하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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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 "이번 시험에서 80점 이상 받으면 제게 10만원 주신다고 했지요?" "그럼, 그랬지." "그 돈 아버지 쓰세요!"

아버지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은 자식에게 10만원을 주는 겁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를 다 받으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과의 관계를 보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는 모조리 쓰레기들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모두 받아주시고 대신 우리들에게는 더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언짢아하시거나 짜증을 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즐거워하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절망, 미움과 원망, 분노의 쓰레기를 다 받아주시고 즐거워하십니다. 그리고는 평안과 행복, 희망과 사랑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한국 교회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가짜 예배에 굶어 죽어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늘어놓기는 하지만 어떤 기도의 응답도, 기도의 능력도 체험하지 못하는 가짜 기도에 굶어 죽어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나약한 성도들 때문에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이 무기력한 교회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래가지고 교회가 제대로 될까 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에 붙잡히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이 사람이 아닙니다. 이 시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능력 있는 성도가 되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서 세상을 염려하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결코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신앙의 주역이 되십시오. 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주역이 되십시오. 때마다 일마다 묘한 방법으로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간증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십시오. 살아있는 믿음과 칭찬 받는 믿음과 소문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돌려서 세상을 한 번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 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했던 예루살렘보다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세상은 수만 가지 악이 독버섯처럼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 패역한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이 고난의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도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이 썩고 무너지는 세상을 고칠 수 있는 힘은 성령의 능력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교회에 영적인 역사를 일으키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소문난 증인이 되십시오.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소문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땅에는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심정으로 광야 같은 인생을 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한다지만 탕자의 형처럼 집 밖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탕자의 형을 보십시오. 그는 동생처럼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모범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기뻐할 때에 함께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불평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원망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미움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잔치의 자리를 외면했습니다. 그는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병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 형처럼 병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없습니까? 믿음이 병들면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강퍅한 마음이라는 것은 심령이 굳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몸에 마비가 오면 꼬집어도 모르고 깨물어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심령이 강퍅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심령이 마비되면 아무리 영양가 있는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시키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강퍅한 심령, 완악한 자신의 심령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좋은 집도, 아무리 좋은 논밭도 그대로 버려 두면 못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인격, 좋은 인품도 그대로 두면 잡초가 우거져서 금방 못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심령이 완악하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심령이 열려있는 사람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꿀송이 보다 더 달아서 심령에 감동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강퍅한 심령을 그대로 버려 두지 말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끝없이 받으십시오. 그래서 심령의 강퍅함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만하지 마십시오. 교만하면 심령이 강퍅해집니다. 교만하면 완악해 집니다. 교만은 인생에 문둥병과 같습니다. 교만하면 그 인생은 썩어버립니다. 통증도 없이 썩어 내리게 하는 것이 교만이라는 병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때때로 돈 때문에 교만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안다는 것 때문에 교만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제대로 많이 배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정쩡한 사람이 교만합니다. 돈도 조금 있으려고 하는 사람이 교만합니다. 있는 척 하려고 말입니다. 조금 아는 사람이 교만합니다. 아는 척 하려고 말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돈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 돈을 거두어 가십니다. 지위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언젠가 그 지위를 거두어 가십니다. 학벌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언젠가 그 자신을 가장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로 내려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교만한 마음을 다 내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교만 때문에 내게 있는 것조차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교만함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비참함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개념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는 기사와 이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죽었던 우리의 심령이 살아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생기의 바람을 맞아 여러분의 심령에 기쁨과 감격이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생기의 바람이 불어서 심령이 뜨거워지고, 잃어버렸던 꿈과 비전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은 분명히 은혜의 시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할 시대입니다. 작은 거인이 일어나는 능력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땅의 많은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외면하고 있습니다. 외면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무식한 교인이라고 치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지식을 강조합니다. 앎의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우리를 향한 사탄의 계략임을 기억하십시오. 지금까지 사탄은 우리를 속였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많이 알아야 한다고 속였습니다. 앎에 대한 신앙으로 우리를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기독교는 앎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과 마귀가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였던 능력과 권세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만방에 선포하십시오. 성령의 임재하심과 능력을 만방에 간증하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온 땅에 선포하십시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이름의 권세를 모르는 사람들은 직무 유기자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직무 유기자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모르는 성도는 직무 유기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무익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무익한 종이 차지할 땅은 바깥 어두운 곳입니다. 그리고 무익한 종이 취할 행동은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이 시대, 악의 권세에 갇혀 신음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패역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과 권세를 가진 사람을 쓰십니다. 능력과 권세를 가진 교회를 쓰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기를 원하신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제자도 있었고, 아예 팔아버린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셨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거기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비겁했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두려움에 떨었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 문을 걷어차고 예루살렘 거리를 뛰어다니며 복음을 외쳤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과 초조와 근심에 쌓여있던 제자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복음의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때에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더 높으냐고 서로 대접을 받으려는 공동체도 아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광채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새 시대를 향한 소망으로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전하지 말라는 대제사장 앞에서 사람의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라고 외쳤습니다.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전 생애를 쏟아 헌신하는 것은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 모든 재산과 물질을 드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투자했습니다. 예루살렘 시내가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은 새술에 취했다고 말입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예수쟁이들의 영향력은 염병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사람의 용기만으로 되는 것입니까? 사람의 지식으로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의 입을 빌어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이여, 이 시간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의 심령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뜨겁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곳에 성령의 불이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봉독한 본문에서 엘리사는 그의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내게 갑절의 영감을 주옵소서" 여기에서 영감이라는 말은 영적인 감각을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루아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루아흐라는 말은 성령입니다. 따라서 영감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지금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엘리야가 행했던 성령의 능력을 갑절로 달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서 거룩한 욕심을 품으십시오. 더 잘 믿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십시오. 더 많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십시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포기하십시오. 그런 사람을 우리 주님께서는 토해 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엘리사가 이처럼 갑절의 영감을 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이렇게 요구했던 것은 어두운 시대에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이 시대를 밝혀줄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엘리사의 시대는 엘리야의 시대보다 더 패역한 세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패역했다고 한다면, 엘리사의 시대에는 그 패역함이 온 백성들에게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시대가 정치적인 타락에 머물러 있었다면, 지금 엘리사의 시대에는 그 타락이 종교와 생활 전반에까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사 시대의 문제를 볼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받고 산길을 내려오는데 젊은 아이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했습니다. 어른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도 문제지만, 이것은 영적 지도자를 존경할 줄 모르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잃고 방황하는 한 시대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단의 영이 역사하는 사람의 특징은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세계를 모릅니다. 그래서 갑절의 영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절실하게 매달립니다. "내게 갑절의 영감을 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시대는 어떻습니까? 끔찍한 범죄의 행태들은 더 이상 어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음주, 흡연, 강간, 살인이 청소년들로부터 연령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어제 토요일자 신문에 보니까, 창원에서 음란사이트를 개설해서 241억원을 벌어들인 사이트 운영자가 구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 사이트에서 '얼굴 노출 없이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말에 현혹되어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에게 자신의 음란 행위를 보여준 여성이 20여만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성 회원이 130여만명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갈대로 갔습니다. 영성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습니다. 이 땅의 백성들이 영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얼굴을 구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기 욕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온갖 시선을 집중하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요구했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는 칠갑절의 영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쓰임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갑절이 아니라 100갑절의 영감을 요구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큰 등불이 필요하듯이 시대가 악할수록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성령이 충만한 저와 여러분들이어야 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를 보면 그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족보가 화려한 것이 아니고, 학력이 찬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위 세상의 어떤 백그라운드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12마리 소로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무신론자였던 니이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인생의 걸레쪽지들 같은 사람들만 선택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로 전락했다고 혹평했습니다. 어쩌면 니이체의 평가는 바른 평가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 땅의 걸레쪽지 같은 사람들이라도 불러서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으로 삼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지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겠다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즉시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하나님의 부름 앞에 주저 없이 순종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매여있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당당히 달려갈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엘리사가 그랬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황소 두 마리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그 고기를 구워 사람들을 대접한 후에 엘리야를 따라 나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령한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와 감격이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내 가족과 이웃들을 보더라도 안타까움이 없습니다.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은 발달했지만 영성은 죽어있습니다. 신령함과 이적과 기사를 모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많이 모인다고 해도 그들의 주변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썩은 신앙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초비상이 걸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복음의 전파는 메아리만 되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행여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향해서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의 촛대를 옮기시는 것은 아닌지 저는 시간마다 때마다 걱정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성령을 우리에게서 거두지 마시옵소서." 젊은이들이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날로 악해져만 가고 어두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영감을 상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예배에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주여, 내게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찬송 한 곡을 불러도 하나님의 은혜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번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영적인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진 사람은 기도해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찬송을 불러도 장송곡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예배는 또 왜 그렇게 지겨운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날마다 때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사모하십시오.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엘리사는 길갈에서, 벧엘에서, 여리고에서 엘리야로부터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끝까지 따라갑니다. 그는 길갈이든, 벧엘이든, 여리고든, 요단강이든 엘리야를 놓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심으로 따라갑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자리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자리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러한 각오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탤런트 김수미 씨가 쓴 책 가운데 보면 그의 일곱 살 때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름날 아버지를 따라서 들에 나가게 됩니다. 아버지가 막내딸인 자기 이상으로 아끼는 송아지를 어린 딸에게 맡기면서 개울에 멱감으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송아지를 맡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큰성 시집갈 밑천이여, 잘 먹여라!" 얼마 후에 갑자기 천둥소리가 요란하더니 온 천지가 깜깜해졌습니다. 얌전히 풀을 뜯던 송아지가 천둥소리에 놀라 언덕 아래로 뛰어갑니다. 어린 수미는 밧줄을 팔에 감았습니다. 송아지가 언덕 아래 자갈길에 도착하자 수미는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갈밭을 뒹굴며 질질 끌려갑니다. 손이 터져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가냘픈 옷은 찢겨졌고 배에서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달려왔는지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댑니다. 천둥소리만큼이나 큰 소리로 "밧줄 놔 버려!" 그러나 어린 수미는 가시덤불에 팔뚝이며 배가 쓸려서 시뻘건 피를 흘리면서도 소리를 질러댑니다. "못 놔유, 죽어도 못 놔유! 우리 성 시집 못 가유!" 구르다시피 뒤쫓아온 아버지는 송아지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찢겨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아버지도 딸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못 놔유! 못 놔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 외침과 절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주님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못 놓겠습니다. 주님을 놓치고 나면 내 가정이 망합니다. 주님을 놓치면 우리 민족이 망합니다. 내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나는 죽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성령의 임재를 잃어버리면 망합니다. 주님, 절대로 못 놓습니다. 놓을 수가 없어요.
야곱이 천사를 붙들고 씨름합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 가운데도 놓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기 전까지 나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이 매달림 때문에 자신도 살고 가족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매달림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는 이 매달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시겠다는 약속을 주시기 전까지 나는 절대로 못 놓습니다. 내게 갑절의 영감을 주시기 전에는 절대로 놓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울부짖어야 할 기도 제목입니다.

지금 우리는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 수준이 갑절이나 높아져야만 내 가정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수준이 갑절이나 높아져야만 내 민족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앙의 부흥이 갑절이나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갑절이나 몸부림치며 뜨겁게 기도해야 될 성도들의 기도가 요청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갑절이나 더 뜨거운 열심이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갑절이나 더 헌신과 충성이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왭니까? 세상이 배나 악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이 배나 더 몸부림하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가 배나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는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갑절의 권세가 필요합니다. 갑절의 영감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영감이 우리에게 갑절이나 임하게 되면 우리는 가정을 축복의 가정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 악한 권세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탄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있습니다. 악한 어둠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영감을 사모하십시오.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십시오. 엘리사처럼 갑절의 영감이 임하지 않으면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매달리십시오. 지금은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너무 어두워졌습니다. 영적 무관심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 악함이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복음이 왜 이토록 무력하게 느껴집니까?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렇게 힘이 없습니까? 세상을 정복하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신음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러한 영적 무관심과 무기력함과 무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오 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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