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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웨슬리회심주일] 거듭남(신생:新生)의 표적 (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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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1-8)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할렐루야!
오늘은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3년전부터 웨슬리 회심주일에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를 그대로 해 왔습니다.
오늘은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 중 18번째 설교를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려 합니다. 요한복음 말씀 가운데 니고데모와 예수님이 나누신 대화 가운데서 새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어떤 표징이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성령으로 난 자, 즉 거듭난 자,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은 모두 어떻다는 말입니까?
거듭난다,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혹은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새로 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2. ■ 거듭남의 첫 번째 표적 - 믿음

1)신생의 표적의 첫 번째 근거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표적들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느니라,"(갈 3:26)
또 사도 요한도 이와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1:12)
이와같이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자연적인 출생에 의하지 않고, 사람들에 의해 양자로 삼는 것 같이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양자가 되었다고 해도 내면적인 변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그가 믿을 때 새로 나는 것입니다.(13절) 요한은 또 그의 서신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니"(요일5:1) 라고 하였습니다.

2. 그러나 사도들이 말하고 있는 믿음은 단순히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명제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의 신조나 신구약 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도 아닙니다.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마귀들도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난다고 하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마귀들도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어두움의 쇠사슬에 여전히 묶여 있는 것입니다.(유다6절)

3. 참된 기독교 신앙, 살아있는 기독교 신앙은 그 신앙을 가진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며, 이는 어떤 동의 곧 이해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 안에 역사하신 내적 성향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 안에서의 확고한 의뢰와 믿음을 말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 죄가 용서되며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화해되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업적이나 의에 의지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잃어버린 자요, 비참한 자며, 자기 파괴자요, 자기-정죄자요, 망해버린 자요, 또한 절망에 빠진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났다고 하는 그 믿음은, 단순히 우리의 신앙의 모든 신조들을 시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진실히 확신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하는 믿음과 잠시라도 결코 나눠질 수 없는 열매가 있는데 바로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첫째로는, 모든 외적인 죄를 이기는 힘인데, 모든 악한 말과 행실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로부터 양심을 깨끗게 하도록"(히9:14) 어디에서나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내적인 죄를 이기는 힘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열매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 여러번 언급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죄악 속에서 더 살리요? (2절)...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절)...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11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14절)... 죄에게서 해방되어"(18절) -
쉬운 말로 하면 너희가 과거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6. 살아있는 믿음의 또 다른 열매는 평안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모든 죄가 도말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기"때문입니다. (롬5:1)
우리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친히 제자들에게 분명히 유언하셨으니,
"평안을 너희(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는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16:33) 하셨습니다.

이러한 평안은 모든 이해를 초월한 것이요, 자연인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으로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파도와 폭풍이 이 평안에 부딪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평안입니다. 그것은 이 평안이 반석 위에 세워진 까닭입니다. 이 평안은 언제든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살기에 편안하거나 고통스럽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행복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배웠으니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건 간에 존재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은 그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파동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은 주님을 믿기 때문에 튼튼히 서 있는 것입니다.

■ 거듭남의 두 번째 표적 - 소망

1. 하나님께로 난 자의 두번째 성서적 표적은 "소망"입니다.
외국에 흩어져 사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벧전 1:3)
"엘피다 조산" 즉 "생동하는" 또는 "살아있는" 소망이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산 믿음에 대하여 죽은 믿음이 있듯이 산 소망에 대하여 죽은 소망이 있으니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이 아니요, 그 열매가 스스로 밝혀 주듯이 하나님과 인간의 원수로부터 나온 소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은 교만의 자손이기 때문에 모든 악한 언행의 부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이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나 거룩합니다. 이는 그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까닭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계신 모습 그대로 볼 것입니다."(요일 3:2)라고 진실되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기를 정결케 합니다.(요일 3:3)

2. 이 소망은 히브리서 11장 22절, 6장 11절을 살펴보면 "신앙의 충분한 확신" 혹은 "소망의 충분한 확신"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와 같은 영광된 특권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시는가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증거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자녀라면 곧 상속자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할 사람이 됩니다.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도 또한 주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롬 8:17)을 증거하십니다.
바로 이런 논법으로 바울은 앞절에서 이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즉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계속하여,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느니라."(롬 8:14-16)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는 말씀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곧 설사 우리 영과 함께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증거보다 슬픔이 앞설지라도 누구든지 드디어 이러한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느끼게 될 때, 그의 슬픔은 오히려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이 전에는 어떠한 것이었든지, 때가 오면 그는 하나님께로서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치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인고로 슬퍼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하나님의 영을 가지지 못했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이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인 까닭에 슬퍼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혜사가 오시면 여러분의 마음은 기뻐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할 것이며 또한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요 16:22)

사도 베드로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너희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나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그를 기뻐하도다."(벧전 1:5)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인간의 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령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그것을 받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만나입니다. 이 기쁨은 깊은 환란의 수렁 속에서도 오히려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위로가 쇠하여졌을 때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도 작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환난이 가장 심할 때에는 성령의 위로하심은 더욱 더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다가오는 멸망 곧 궁핍이나 고통이나 지옥이나 무덤을 비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시고 그 환란들을 무저갱에 던져 넣으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한 환란 때에도,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계 21:3,4)하는 "하늘 보좌에서부터 나는 큰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의 세 번째 표적 - 사랑

1. 하나님께로 난 사람의 세번째 성서적 표적이며 그리고 모든 것 중의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마음 속에 부어져 있습니다"(롬 5:5).
"그들이 아들들인고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을 그들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갈 4:6).

그들의 기쁨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마음의 '즐거움이요 그들의 방패요 대단히 큰 상급'입니다. 영혼의 소원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음식이요 음료인 것입니다.

2. 이런 의미에서 또한 "내신 이(하나님)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 5:1). 그의 영이 구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합니다'(엡 6:24). 그는 주님과 밀접히 결합되어서 '한 영'이 되었습니다. 그 영혼은 주님을 의지하고, '만민 중에 으뜸이신, 온통 사랑스러우신'(아 5:10) 주님을 선택합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나에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아 2:16) 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3. 이러한 하나님 사랑의 필연적 결과는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영혼, 곧 우리의 원수와 우리를 능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주님께서는 더욱 강력히 말씀하셨으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기록된 계명은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했으니 그와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이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요일 3:16).
요한은, 이 말씀에 이어 결론하기를,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미 죽음의 나라에서 생명의 나라로 옮겨간 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이같이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요일 3:14).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것을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압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사랑의 영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동 4:13). 사랑은 하나님께로서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하나님을 압니다(동 4;7).

4. 하나님을 사랑하는 둘째 열매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요(순종이 사랑에서 분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뜻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곧 마음으로든 행동으로든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여, 마음과 생활 모두에서의 순종이며, 모든 성품과 모든 행동양식 있어서의 순종입니다.
여기서 뜻하는 가장 분명한 성품의 하나는 "선한 일에 열심하게"(딛 2:14)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대로, 선을 행하려고 선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의 전부를 소비하기를, 또 소비되기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보상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의인의 부활로서 만족스러운 보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 거듭난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은 거듭난 사람인가?
1. 이렇게 하여 저는 성서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제가 발견된 신생의 표적들을 평이하게 말하여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는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대답하고 계십니다. 만약 이 대답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설명된 것이라면, 이 대답은 곧 "성령으로 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판단으로 보건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이와같이 하나님께로 난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요일 3:19).
여러분 가운데 이 말씀들을 음미해 본 사람마다 한 진리를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데 그 진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 하는 사실입니다(사람에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답하시요).

문제는 "당신이 세례를 받음으로 어떻게 되었나?"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무엇인가?"(책임을 회피하지 마시오)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양자로 삼으신 영이 지금 당신의 마음 속에 있습니까?" 이 질문을 당신 마음 속 깊은 곳에 던져 보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과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할례로 할례 받았던 사실을 인정합니다(사도 바울은 세례란 뜻을 강조하여 할례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의 영, 영광의 영이 지금 여러분 속에 머물러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할례는 무할례가 되었습니다"(롬 2;5)

3. 그러므로 당신 마음 속으로 "내가 한 때 세례 받았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슬프게도 그 결과는 결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세례받은 탐욕자와 주정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례받은 거짓말장이와 세례받은 오입장이들, 도둑들 그리고 세례받은 착취자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까?

4. 정말로 당신들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당신들은 지금 죄와 허물로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중생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세례 때 외의 새로 남이란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당신들 모두를, 희망도 없이는 저주 아래 두는 것이요, 아무 도움 없이 지옥에 맡겨두는 결과가 됩니다.
어떤 이들은 타락된 자들을 지옥에 맡겨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물론입니다. 죄인들을 진멸하시요.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시요. 기브온 족속을 남김없이 죽입시다. 그들은 그렇게 되어 마땅합니다."

여러분은 오직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요일 3:15)고 하신 말씀들이 무슨 뜻인지를 먼저 배우십시오.

5. 진실로, 진실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또한 거듭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시 남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례 때 거듭났었다고 하는, 상한 갈대로 만든 지팡이를 이 이상 더 의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였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였음을 누가 부인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러분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거듭나야만 합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한 때에, 사탄이 당신의 마음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된 표적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배웠습니다. 세례를 받았거나 안받았거나, 당신의 영혼에 이 표적들이 없다고 하면, 그것들을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들은 영원히 멸망받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세례를 받았다면 당신에게는 오직 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마귀의 자식이라면, 다시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잃어버렸던 양자의 영, 다시 말하여 '아바 아버지여!' 하고 마음으로 외칠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 :
아멘, 주 예수여! 주님의 얼굴을 다시 찾는 준비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양자의 영을 다시 받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들에게 지금 다시 당신의 이름을 믿을 힘을 주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피로 속죄함 곧 죄사함을 얻은 것을 느끼고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로 났으므로 죄를 질 수 없음"을 알고 느끼게 하옵소서. 산 소망을 향하여 다시금 태어날 수 있게 하셔서, 주님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그들 스스로를 정결케 하도록 하시옵소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오매" 사랑과 영광의 영이 그에게 머무시므로, 영육 간의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그를 씻도록 하시오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완전한 거룩에 이르도록" 그를 가르치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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