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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있는 나라 (벧 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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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 한 사람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성도는 기도할 때 성도답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의 능력은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사가 깨어 기도하면 교계가 변화됩니다. 한 사람의 장로가 깨어 기도하면 그가 소속된 직장이 변화됩니다. 한 사람이 리더가 깨어 기도하면 그 팀이 변화됩니다. 이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기도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는 용사는 사실상 최고의 군대입니다.
  "나는 잠자는 세상을 깨우느니 차라리 잠자는 교회를 깨우겠다."

  무디의 말입니다. 그 심정을 이해하겠습니까? 우리는 잠자는 세상을 깨우기 위해 뛰어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잠자는 교회만 깨우면 됩니다. 잠자는 하나님의 성도들만 깨우면, 깨어난 성도들이 흩어져서 기도하기만 하면 세상은 뒤집어집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악한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끌어내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바랍니다.

  나라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좋은 나라 시민이 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애를 씁니다. 삶의 질과 안전과 사람 대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제 많은 나라를 불평하거나 떠나거나 국적을 포기한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 있는 나라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자신과 가정, 교회와 사회가 변화될 때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변화의 중심에 우리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누구도 분쟁과 싸움이 계속 되는 저주받은 나라에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최고의 복 있는 나라와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택하신 족속

  본문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택하신 족속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을 뜻합니다. '족속'의 헬라어 '게소스'는 형통이나 출생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다고 자랑하나 진정한 택함을 받은 족속은 혈통이나 민족의 차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따라서 택하신 족속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쓴「부흥」이라는 책에 보면 이삭의 부흥에 대해 묘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파묻어 버린 아버지의 우물을 다시 파는 데서부터 새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우물 속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메운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때 이삭은 지혜롭게도 다른 곳으로 우물을 찾아다니지 않고 아버지 시대에 파놨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역사상 부흥의 비결은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되살아났을 때, 기도했을 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회개운동이 벌어졌을 때 부흥했습니다. 21세기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히 선포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토설하며 자복할 때 부흥은 찾아옵니다. 조상들이 가졌던 믿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악들을 제거하는 것, 이것이 부흥의 선결조건입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초기 서신서라고 할 수 있는데,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칭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3장 8절에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하며 자기 자신을 '성도'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말년에 썼던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1장 15절을 보니 그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까? 처음에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였다가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되었다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게 된 사연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나서 자신의 티끌보다 더 작은 죄악까지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는 자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그렇게 강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해 민감했고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도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신앙은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최고의 깨달음이고 은혜입니다. 택하신 족속만이 죄인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순간에 용서 받은 의인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100% 전적인 은혜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욱 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나를 택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존재의 가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최고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었음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왕 같은 제사장들

  본문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왕인 동시에 제사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을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으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성전 휘장이 찢어짐으로 누구든지 성소와 지성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만인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제사장의 나라가 복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제사장은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은사이며 상급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된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돈이나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축복입니다.

  마라도나와 펠레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향해 '축구의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축구만 잘하고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펠레에게는 인격이 있습니다. 한마디 말을 할 때 그 다음 결과를 예측할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서 대처합니다. 그래서 그를 '축구의 대통령'이니 '축구의 황제'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정치가 처질은 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계속해서 총리를 맡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전시(戰時)에 필요한 지도자이기 때문에 평화시에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영국에 위기가 찾아오자 다시 한 번 총리를 맡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하고 난 다음 논공행상의 회오리에 빨려드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줄 아는 인생, 하나님이 인정하신 일을 감당하며 큰 기쁨을 누릴 줄 아는 백성이 되기 바랍니다.

  솔로몬은 매우 바빴습니다. 성전 공사를 마치기까지는 할 일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계속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에 해마다 세 번 주님의 제단에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리고 분향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은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봉사와 동시에 경배 드리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이 계속해서 역사(役事)만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예배하면서 봉사했습니다. 특별히 젊은이들,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르다 신드롬'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주한 마르다에 비해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마리아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면서 예배를 빼먹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봉사한다는 이유로 예배에 빠지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축복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는 드리지 않고 그 시간에 심방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을 가리켜 '영적 천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맙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생명 걸고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어깨를 펴고 힘을 냅시다. 미소짓고 크게 웃읍시다. 예배가 살아야 신앙이 삽니다. 졸지 말고 은혜 받읍시다. 아멘으로 화답하고 순종합시다. 고정관념과 자존심을 버립시다. 은혜 받기 위해서 우선순위와 시간을 조절합시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 예배하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는 복이 있습니다. 복 있는 제사장의 나라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거룩한 나라와 백성

  본문 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거룩한'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선별하신 존재들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고 성도와 일꾼들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사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신 언약의 백성입니다. 더욱 하나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나라와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했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복종하던 노예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빚 가운데 있어 구원 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단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확장시키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까지 더욱 더 거룩한 성도, 가정, 교회,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무사하고 평탄하고 사는데 지장 없을 만큼 돈을 버는 축복을 누릴 때는 "여기가 좋사오니…"라며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안에 있던 약속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로 걱정하거나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만나로 만족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을 회복시키시고자 고난 가운데서도 가나안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1963년 워싱턴 광장에 25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사로 등장하여 위대한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연설입니다.
  "I have a dream."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결코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지난날의 노예의 아들과 지난날의 주인의 아들이 형제의 식탁에 함께 마주 앉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에 대한 테러에 분노한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모인 집회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아들들과 노예의 아들들이 한 식탁에 앉아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꿈,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은 노예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반면에 우리 중에 한 사람은 이민선을 타고 미국에 왔습니다. 우리가 타고 온 배는 다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한 배를 타고 전진하는 꿈을 꿉니다."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누구 한 사람 행진하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손에 손을 잡았고, 6만 명의 백인과 19만 명의 흑인들이 거리를 평화롭게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분열의 위기에 놓였던 미국을 마틴 루터 킹의 꿈이 다시 하나로 만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쉽게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더욱 거룩한 사람, 가정, 교회, 나라가 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꿈은 우리를 겸손케 합니다. 시련과 고난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기도하고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어떤 꿈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힘을 내시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모두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와 백성입니다. 국가가 어렵고 고위층의 자녀들이 한국 국적을 버리는 슬픈 시대입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복 있는 나라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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