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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라 (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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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선행이라 하면 의지할 데 없는 노인이나 소년 소녀 가장을 보살펴 준다던가, 장학 사업을 위해 재산을 내놓는다던가, 어려움을 만난  사람을 도와 주는 등의 행위를 떠올립니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선행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보살필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의 사랑으로 이 같은 일을 행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행을 단순한 자선 행위에 국한하면 안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선행이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 또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선은 그 가운데 일부분에 해당합니다.

이 시간 저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행이 무엇이며, 또 선을 행하는 성도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힘써야 할 선행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 둘 점은, 진정한 선행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선행일지라도 만약에 그 선행의 주인공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선행을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기준이 아닌 성경적인 기준으로 선행을 정의해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한 실상에 대하여 성경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행위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악하다는 뜻입니다. 비록 사람의 보기에는 큰 선행일지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악한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길이 무엇일까요? 한번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였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의 선함을 드러낼 목적으로 이같은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대답하셨다면 그들은 어느 젊은 관원처럼 자기들이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켜왔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요 6:28-29).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진정한 선행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만이 행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 믿는 것이 구원받는 우리의 공로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다만, 예수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선을 행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힘써 행하여야 할 선행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불타올라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불신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빈민 구제에 더욱 힘쓰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마는 그런 비난은 의미가 없습니다. 구제를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합니다. 더구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기독교를 믿지 않더라도 남편이나 아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보면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이 가정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구역장님들이 구역식구를 돌보는 것은 주님의 칭찬을 받는 아름다운 선행입니다. 주일마다 숨어서 헌신하는 손길들의 아름다운 선행이 있음으로 교회가 날마다 안정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토요일마다 성도님들이 순번을 정해서 교회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볼 때 저는 흐뭇한 마음을 갖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합니다. 또 교회학교 어린이들을 위해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 역시 주님의 인정을 받는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성도들이 서로 믿음을 격려하고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 역시 값진 선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로,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일이 선행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힘쓸 책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람을 돕지 못하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구제사업을 하는 자선 단체들을 매월 후원한다면 수많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듯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선한 행실을 힘써 행할 때 이를 보고 불신 이웃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선을 행하다보면 낙심할 일을 만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선행을 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도 만나지 않을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심하다가 선행을 훼방하는 문제에 부닥쳐서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다 보면 낙심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항상 대비해야 합니다. 초신자들 가운데는 예수 믿는 일로 어려움에 봉착해서 당황해 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좁은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당연히 핍박과 시험의 바람이 불어오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데도 핍박이 없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일로 어려움을 만났거든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기억하십시오.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2-16)

‘예수 믿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뒤로 물러가면 그 사람만 손해를 봅니다. 핍박을 겁내서 뒤로 물러가면 좋아할 자는 마귀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때로 핍박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평소에 사이좋게 지내던 부모 형제가 핍박자가 되기도 하고, 남편이나 아내가 핍박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의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것은 결코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멸망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옮겨왔는데도 아무런 시험과 핍박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마귀의 종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마귀가 가만히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시련을 당하게 될 때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도리어 주님을 위해 핍박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게 된 사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복음을 전하다가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지상 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은 전도를 하러 나가도 사람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벨을 누르면 방에서 화면으로 누가 왔는가 보고는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또는 차갑게 문전 박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고 낙심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 받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는데, 그 여종은 점을 쳐서 번 돈을 그 주인들에게 갖다 주기 때문에 재산 가치가 많이 나가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여러 날 동안 바울과 실라를 좇아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언뜻 보면, 바울과 실라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음 전파를 방해하려는 귀신의 역사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오고 그 여종은 정신이 온전해 졌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여종이 정신이 온전해 져서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어 돈벌이가 끊기게 되자 주인들이 화가 나서 두 사도를 붙잡아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러자 관원들은 그들의 말만 듣고 두 사도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명하였습니다. 두 사도는 많은 매를 맞고 그 발이 착고에 든든히 채운 채워진 깊은 옥에 던져졌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무슨 악행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물건을 빼앗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귀신 들린 여자를 고쳐 준 것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칭찬 들을 일이지 비난 받을 일이 아닌데도 이 일로 인해서 두 사도는 모진 고초를 겪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이번 일로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25에 보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하였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 감방에서 두 사도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는 것을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여 제지했습니다. 이에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였습니다. 이에 두 사도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구원의 도리를 전하니 그 밤에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믿고 세례를 받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욕을 먹게 되거든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섬기는 일도 그렇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비난 받을 일도 별로 없습니다. 비난을 많이 받는 사람은 대체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일 경우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성도들은 내 것 네 것이 없이 물건을 나누어 쓰고,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번은 구제하는 일로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파 교인들이 자기들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는 일이 있다고 하면서 히브리파 교인들을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 애당초 교회에서 구제하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그러므로 선을 행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그 일로 인해 구제를 전담할 일곱 집사를 세움으로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문제는 정지 표시가 아니고 방향 표시”라는 말이 있듯이, 성도님들께서는 선을 행하다가 문제를 만나게 되거든 “이 일을 잘못 시작했나보다”하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해결하는 더 좋은 방법을 모색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지시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열심히 봉사 헌신하는 분들을 귀히 여기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봉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안에서 사랑의 격려를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사람을 보고 봉사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한 봉사는 곧 주님을 위한 봉사이지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고 하는 봉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형제들을 섬기는 일로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 낙심치 말고 목숨을 버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성도들의 선행은 때가 되매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성경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선을 행하는 것을 농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봄철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무더운 여름 내내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고, 농약을 쳐줍니다. 마치 어린애를 보살피듯이 정성껏 가꿉니다. 그렇게 하기를 가을에 추수 때가 되기까지 계속합니다. 그 과정은 인내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인내가 없이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한 사람을 전도하여 제 발로 설 수 있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의 수고가 있어야 하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어린 아이 달래듯이 행여나 상심하지는 않을까, 시험에 들어서 믿음에서 떨어져나가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합니다. 자기 자신보다는 초신자를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합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다 보면 그 형제의 믿음이 자라나게 되고, 언젠가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헌신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껏 자신을 이끌어 준 성도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구역장님, 그 동안 제가 구역장님 속을 많이 상하게 했지요. 미안해요. 이제는 구역장님의 마음을 이해하겠어요” 그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을 때 그 동안의 수고가 봄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에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을 행하되 환경, 여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생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일을 등한히 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일이 생길수록 더욱 분발해서 하나님 섬기는 일에 열심내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가 완악하게 굴수록 포기하지 말고 더욱 끈질기게 심방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아직은 내가 교회를 위해 봉사할 때가 아니야. 차차 하도록 하자” 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기회가 주어졌을 때 때를 놓치지 말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26편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5-6)고 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노라면 때로 가뭄으로 곡식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숨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역경 가운데서도 낙심치 않고 물을 대주면서 수고한 결과, 가을이 되자 기쁨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피곤해 하고 낙심하는 것은 때가 되면 결실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힘차게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겁을 먹고 주춤합니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난관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은 낙심하지 않고 선을 행할 때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를 거두게 됨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결과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님들은 선을 행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바쁘게 살아갑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바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선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바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데 힘쓰고, 전도와 봉사에 힘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일만 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선을 행할 때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신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심으로, 선을 행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시험과 핍박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불신 이웃을 전도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덕을 세우고,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하늘의 상급을 준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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