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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소서 (시 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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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계수한다는 말은 곧 날을 센다는 것입니다. 본문 90:12에 보면 모세의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무엇이 지혜입니까? 날을 잘 세는 것입니다. 우리 날 계수라는 말은 우리의 날, 우리에게 남겨진 날들이라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종말이 있는데 그때까지 남겨진 날들이 얼마나 있는지 계산하고, 효과적으로 잘 보낼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는 기도입니다. 왜 이러한 지헤가 필요한지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지난 주 한 주를 교회에 나오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 된 느낌입니다. 두 주동안 지내면서 하나님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학기가 시작하면서, 갑자기 목옆이 부어 올라서 바쁜 가운데 잠간 병원에 들렸더니 갑자기 입원을 하여서 검사를 하자고 의사가 말합니다. 의사가 당장 진단하기가 어려우니 입원시켜놓고 검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아픈 환자인지, 아니면 사이비 환자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일주일동안 들어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부곡교회의 성도님들가운데 몸이 약하시고 병원에 다니시는 분이 계시는게 병원에도 안가보고 어떻게 그 아픔과 고통을 알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픔을 이해하라고 하나님이 이렇게 병원 신세를 시키셨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사람의 심정은 무엇입니까? 내 몸이 어디가 아픈지 모르는 것이 답답합니다. 죽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 때문에 모든 가족이 긴장합니다. 그러한 불편함과 불안과 고통이 수반하는 것이 입원임을 알았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제가 있던 병실에도 여러 사람들이 입원하고 퇴원을 거듭하였습니다. 병원에 와보니 아픈 것이 일상이고, 삶의 한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는 아픈 것은 무조건 큰 불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건강이란 상대적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청년기까지는 건강하고 강하지만, 중년을 넘어서서 나이가 들면 육체가 노쇠하게 마련입니다. 누구는 귀가 아프고 누구는 다리가 아프고 누구는 심장이 아프면서 아픈 부위만 다를 뿐이지 점점 아픈 부위가 생기는 것은 일반입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 드러나서 치료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 완전한 건강도 없습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죽은 인간도 아닙니다. 건강은 자신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건강한 사람이 내일 어떤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또한 아픈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때는 다르지만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고 늙은 것을 경험하는 분들은 이렇게 기도드리세요. 이 땅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잘 죽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들에게 덕이 되고, 자손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주님의 일을 하다가 기도하다가 하늘나라 가든지, 성경을 읽다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픈 것 원망하지 않고, 부족한 것 원망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그대로 하늘나라에 가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어제 그저께는 또 다른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 동네는 지난번 장마 때도 하나님이 보호하시더니 이번에 눈사태에서도 굳건하게 단비만을 맞이한 것을 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얼마나 이 마을을 보호하시는지 모릅니다. 제가 퇴원을 한 다음날 아침부터 눈이 오기 시작하여 백년 만에 처음 오는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고속도로에 몇천 명이 갇혀서 하루 이상을 보내어야 했습니다. 학교는 수업이 휴강이 되었습니다. 차를 움직일 수가 없어서 저는 학교에서 세 시간에 걸쳐 집까지 걸어와야 했습니다. 버스가 끊어졌고, 모두 걸어서 출퇴근을 하여야 했습니다. 아니 이것이 과연 인류의 문명을 자랑하는 21세기가 맞습니까? 인간이 별것 아닙니다. 눈이 여덟 시간 왔는데 그러니 만약 눈이 삼일만 와도 큰 일 납니다. 비가 오고 가뭄이 오고 이 모든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이 인간을 보호하시지 못한다면, 인간이 단번에 멸망합니다. 대자연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금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이야 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90편 2절에 보면,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렇게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서면 인간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인생은 풀과 같습니다. 아침에 피어서 자라다가 저녁이 되면 마르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들에 오가다가 작은 풀을 보면서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풀의 수명이 짧다고 하면 인간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노하시면 그대로 갑니다.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면서 인간이 어떻습니까? 그 짧은 시간동안에도 욕심 부리고, 미워하고, 싸우고 투정하고 불평합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숨어서 부끄러운 일들을 합니다. 그렇게 보내는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언제 그러한 하나님을 깨닫습니까? 지난번 대전에서의 폭설을 경험할 때입니다. 가뭄이 올 때입니다. 인간이 병약할 때입니다. 인간이 약할 때 우리는 그것 때문에 핑계대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지난 주에는 은혜의 연속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는데 아내에게 양복을 남겨놓으라고 하고, 아내는 먼저 떠나고 나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와이셔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옷에다 바로 양복 겉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너무 창피한 가운데 택시를 탔습니다. 아저씨가 극동방송을 틀어 놓으시더군요. 신앙인이시군요 이렇게 말하니까 그때부터 이 아저씨 간증을 시작합니다. 딸아이가 둘 있는데 큰 아이가 1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믿음이 좋고 깨끗하게 산 아이입니다. 단기 선교도 가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는 아이인데,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학교에 편입하여 다니는데 심장 밑에 4기에 해당되는 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거부하고 기도하면서 암과 투쟁하는데 아버지가 놀란 것입니다. 어느날 딸 아이가 소원이 있다고해서 말하라니까, 오늘 교회에 가서 등록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삼년전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완강하게 교회가기를 거부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죽는 아이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하여 교회에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음을 선고받고 죽기까지 그 묵묵하게 받아 들이고 불평하지 않고 아픔과 싸우는 모습이 아버지를 감동시켰습니다. 딸아이가 죽기까지 흩으러지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장례를 나가는데 서울에 있던 교회에서 관광버스 7대가 왔답니다. 그 아이의 신앙자취에 감동된 성도들과 청년들입니다.

간증을 들으면서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이 처녀의 목숨을 하나님이 앗아가셨을까요? 저에게는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딸아이를 통하여 하실 일도 많을텐데 왜 데려가셨을까요? 한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깨끗한 이 처녀의 목숨을 원하신 것입니다. 처녀의 생명을 취하시고 완악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신 것입니다. 이 딸 아이는 그 운명을 불평하지 않고 안으로 삼키면서 받아 들였습니다. 어린 처녀가 왜 살고 싶지 않고 왜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인 것을 안 후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아이의 믿음이 놀랍습니다. 딸의 죽음을 지켜본 아저씨가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더 깊은 신앙인이 된 것이 놀랍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내리려는데 아저씨의 눈에는 눈물이 흥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한이 됩니다. 아이가 일찍부터 교회 가자고 졸랐을 때 왜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예쁘고, 깨끗한 우리 딸이 보고 싶습니다.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저는 목사라는 것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감동이 되어 그분을 위해 기도해 드렸습니다. 딸을 위로해 주시고, 이 감격 간직하고 남은 인생 살다가 다음에 천국에서 만나기를. 사는 날동안 이 감격을 전하면서 믿음이 자라기를. 지치지 않고 외롭지 않게 가족들이 주님 안에서 살아가기를.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돌아보니 그분은 누구보다 뛰어난 간증인이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방선교의 부름을 받은 스데반의 사역이 바울을 통해 이루어졌듯이 딸이 살아 생전 이루려던 사명은 아저씨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가슴 아프지만 하나님은 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때로는 원망도 되고 불평도 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금 느껴야 합니다. 거기에 비한다면 인간은 그저 아침에 핀 꽃이 저녁에 말라버리는 것 같이 하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죄악을 범합니다. 백년을 산다할지라도 짧은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돌아가야 하겠지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충고합니다. 90편 12절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잘 계수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한계가 있습니다. 세월이 가듯이 어제처럼 생각없이 살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덜 중요한지 판단하고 중요한 일을 위하여 열심을 바쳐야 합니다. 시간을 아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중요하다면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내 마음에 있는 열심을 바쳐야 합니다. 시간있는대로 전도해야 합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부지런히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내가 사랑해야 나의 욕심이 사라지고 섬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잠시 후면 하나님 앞에 누구나 설터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앞에 서면 우리가 지나온 인생 다 보여 주실텐데 어쩌시겠습니까? 쓸데 없이 술이나 먹고 있고 화투판에 앉아 있고 남에게 불평하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자기 분에 못이겨 화풀이 하고 분노를 폭발하면서 살아온 나의 인생 돌아보면 회한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사순절입니다. 이번 기간에 내 인생에 어떤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지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찮은 것 말고, 귀한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는 나의 남은 인생을 잘 계산하시기 바랍니다. 젊은 분이나 나이 드신 분이나 살아 있기에 남겨진 인생의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을 계수하여 지혜롭게 살면서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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