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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창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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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본문은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는 불행의 불씨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독차지하려는 에고이스트라고 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의 타락도 사람이면서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될려는 이기적인 욕망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행복의 정상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행복이 축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결코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기적인 인간의 자리 곧 인간의 바벨탑은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며 또한 세상을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자기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에는 너무나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로 다가오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로 올 때에 받아 들이는 것과 다른 사람을 자기 자리에 세워주는 것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구분이 되는 자리입니다. 전자는 여전히 자기 취향 곧 자기 기준에 맞추어 자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자신을 내려 놓은 자리 곧 자신보다 남에게 배려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우리를 찾아주신 예수의 자리입니다. 행복은 나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있을 때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두 형제는 이 관계가 이뤄지지 않아 형이 동생을 죽이고 마는 참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불씨가 본문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나 혼자만으로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복된 삶인 것입니다.

1. 인간 삶이 혼자서 이뤄지지 않음을 인식해야 합니다(2).

  세상을 혼자산다고 한다면 내가 가고 싶은데로만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겠지만 분명한 것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가는 곳에 무슨 일이 생길런지 모르는 일이며 내가 하는 일에 어떤 것이 맞물리게 될런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금은 당장 필요한 것이라서 어떤 일을 해냈는데 그것이 인간 삶을 해롭게 하는 무서운 독소가 된다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덫이 인간 삶을 삼켜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이 훗날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런지도 모르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자신이 한번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세상은 나 혼자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 혼자라면 피해갈 수도 있고 그것을 피해가면 아무일도 만나지 않을 수 있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 세상입니다. 혼자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기에 내가 먼저 함께 사는 것을 찾아야 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속에서 나를 바르게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사는 인생이라면 행복의 개념도 필요없고 애써 노력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인이라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은 필요없고 자기 혼자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에 어떤 댓가도 치루기를 원치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만 세상에 있는 것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분명한 것은 가인에게는 동생이라는 다른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세상을 자기 하나에게서만 판단하고 생활하는 사람이라서 자기가 동생하나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삶은 결코 혼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2. 이웃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5).

  이웃이 있는 자리를 예수께서 설명해 주신 것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나타내 보인 삶의 모습입니다. 이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웃에 대한 개념을 한 마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이웃이 있는 자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먼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자리를 잡은 후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을 때에 그 사람이 이웃이 되며 나에게도 이웃이 있다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사람을 통한 참 이웃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또 다른 사람의 이웃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겐 한결같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었으나 참된 이웃이 있는 삶은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4:29) "고 했습니다. 여기에 이웃이 있는 자리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하여 상을 얻는 자리 곧 함께 하여 보다 더 좋은 세상을 열어가게 하는 삶을 일컬어 이웃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하여 세상이 더 힘들게 된다면 이것처럼 고통스런것은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나보다 더 잘되는 사람을 용납하지도 못하는 이웃 곧 형제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을 보며 더 좋은 것을 찾으려 할 때에 이웃을 만나게 되고 나와 함께 더 좋은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세울때에 이웃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의 가인은 이런 이웃이 없어서 더 외로운 인생이 된것입니다. 행복의 자리에 자신을 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3. 행복을 함께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7).
 
  하나님께서 인간 아담을 지으시고 혼자사는 것이 좋지 못해서 돕는 배필로 여자 하와를 지으신 후에 하신 말씀이 "둘이 한몸을 이룰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혼자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행복지수는 절반 곧 50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행복은 혼자서는 경험되어지지 않고 함께 할 때에 자신의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갖고 있는 행복은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니고 함께 할 수 있을 때에 만이 그 행복의 모양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형 가인은 동생에게 있는 행복 때문에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즉 동생에게 있는 것이 자기 것이 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십니다. 가인의 빗나간 삶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거나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다라는 것 모두가 빗나간 자리 곧 잘못된 자리입니다. 진정한 선한 것은 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함께 하는 삶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을 함께 하며 사는 자리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을 함께 하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원치 않고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함께 하는 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결  론

  인간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어떤 고지를 정복하는데 있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세상속에서 발견하고 사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행복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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