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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모해야 할 직분 (딤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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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교회는 낮 예배 후에 장로 1인 선거를 위한 공동의회가 있습니다. 이 공동의회의 회원은 세례교인들입니다. 세례 받으신 분들은 예배 후에 한 분도 가지 마시고 투표권을 행사하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장로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을 분류할 때에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를 목회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다른 성경들도 목회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들입니다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쳐 주는 책은 이 세 가지입니다. 이 세 책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에게 교회를 어떻게 목회해야 할 것인지 실제적인 목회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목회서신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교회 세우기 지침서입니다. 매뉴얼입니다. 그 중에 일꾼을 세우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교회의 일꾼은 감독의 직분과 이어 나오는 집사들(8-10절)과 여자 집사들, 여성 지도자들을 위한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 교회는 많은 직분들의 종류들이 있지만 교회 역사에 있어서 교회 직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직분은 역시 감독직과 안수집사 직입니다. 그래서 이 두 직분을 항존직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간에 집중적으로 다루어 볼 직분은 감독의 직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데모데 목사에게 바울이 보낸 편지입니다. 디모데에게 감독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을 말해 주면서 감독은 이런 자여야 한다고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디모데 서에서는 감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반면에 디도서에서는 장로를 세우라(딛1:5-7)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감독은 무엇이며 장로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두 단어는 동의어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뜻이 있는 다른 말인가? 딛1:5절에는 장로들을 세우라고 했고, 7절에는 갑자기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 할 것이 없고...라고 하면서 두 직분이 동시에 나옵니다. 장로와 감독은 서로 다른 직분이 아니라 같은 직분을 말하는 동의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장로가 감독이며 감독이 장로입니다.

이것은 행20:17절과 28절을 보면 확실해 집니다. 바울 사도가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만났는데 여기에 보면 에베소 장로들을 향하여 바울은 행20:28절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즉 사도는 장로를 감독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장로와 감독은 같은 말입니다. 장로라 함은 나이가 많은 자, 또는 교회의 어른으로서 지도적 위치에 서 있는 자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직무상으로 보면 감독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감독”이라는 뜻은 “돌보다.”라는 뜻이며, 양무리를 돌보는 직분이 장로의 일입니다.(벧후5:2, 행20:28, 딛1:9) 양무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목자 없는 양떼는 안전할 수 없습니다. 유리하고 굶주릴 것입니다. 사나운 짐승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대신에 선한 목자의 돌봄과 인도를 받는 양떼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양떼의 행복은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처럼 양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이 목자에게 달려 있듯이 하나님(성령)은 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안녕을 위해 목자를 세우셨습니다. 바로 그 목자가 장로들입니다. 이 의미에서 장로는 교회의 양 무리들을 목양하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고귀하고 선한 직분입니다.(딤전3:1)

그러하기에 교회가 장로를 선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좋은 장로를 선출하면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이유는 좋은 장로가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입니까? 좋은 장로가 많은 교회입니다. 딤전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즉 장로가 되려고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미 직분을 맡은 자들은 좋은 장로가 되려고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들을 낳으면 목사, 장로를 만들려고 사모하고, 딸을 낳으면 목회자 사모나 권사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잘하는 일입니다. 설사 목사 장로 사모 권사는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좋은 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5:2절에 보면 장로의 직분을 수행하는 자세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라. 둘째는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라. 셋째는 양 무리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지도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세상의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독교 모임 자체가 힘없는 약자들의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핍박과 고초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공격을 앞장서서 자기 몸으로 막아야 할 자들이 장로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가 목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버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양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선한 목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시절 장로가 된다는 것은 반드시 희생과 수고가 동반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는 언제부터인가 장로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명예로운 자리로 인식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못된 일입니다. 장로직은 명예직이 아니라 초대교회 때처럼 지금도 장로직은 정말 힘든 자리입니다. 이유는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양에게 쏟아지는 비난도 자신의 몸으로 다 받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보는 것이 장로의 일차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행20:17절을 읽겠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청합니다. 이제 행20:28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바울이 지금 장로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감독자로 삼으신 것은 주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치라고 세우신 직분이라고 하는 말씀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세움 받으시는 분이나, 또한 이미 세움 받으신 분들은 이 점을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고 중한 직분이 장로의 직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온 성도들이 알고 열심히 도와 드리고 존경해 드리고 순종해 드려서 잘 감당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장로는 교회의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공인이 된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좋은 장로란 어떤 자들입니까? 어떤 자들을 장로로 세워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장로의 자격에 관하여 오늘 본문에서 15가지의 항목을 열거합니다.

1)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답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신앙과 인격이 반듯해서 안팎으로 칭찬과 좋은 평판을 받는 자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생활에 흠이 없어야 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를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를 선출할 때 아내도 봐야 합니다. 특히 아내가 자기 남편으로 하여금 장로직을 잘 수행하도록 적극적으로 내조 할 수 있는 자인지 아닌지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교수하시는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당회를 할 때에 장로님이 “예, 알았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결정을 하고 회의를 마쳤는데 집에 가서 하루 밤만 주무시고 나면 전혀 180도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겠습니다.“ 했던 것이 ”못 하겠는데요!“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3)절제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4)깊이 생각하고 분별력이 있는 건강한 마음을 소유한 자여야 합니다. 이를 가리켜 근신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여기서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소심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정해야 합니다.

6)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나그네라 함은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말합니다. 7)복음과 믿음의 도리를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입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특히 가르치는 장로를 일컬어 목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도 장로에 속합니다. 지금 살피고 있는 것들은 목사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8)술을 즐기지 아니해야 합니다. 이것을 오해해서 조금씩 해도 되는가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지 않아야 됩니다.

9)구타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난폭한 말이나 행동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10)참고 양보하는 너그러운 자세가 필요합니다.

11)다투지 아니해야 합니다. 장로는 할 수만 있으면 화평하고자 애를 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고 수렴할 수 있는 넓은 아량이 필요합니다.(딤전6:4-5)

12)돈을 사랑치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는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된다.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된다.“해야 하는데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딤전6:9-10)

13)자기 집을 잘 다스리며 자녀들이 다 잘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겠느냐고 교훈하십니다. 자녀들도 보고 장로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14)믿은 지 얼만 안 된 사람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교만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헌법을 보면 장로는 적어도 집사로  봉직한지 5년 이상 된 무흠한 자라고 했습니다. 15)끝으로 불신자들에게도 평판이 좋고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공신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믿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교과서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비슷하게라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분들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그 사람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있는가를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의 아홉까지 열매들을 아시지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이렇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선한 열매들이 풍성히 맺혀 있는가를 헤아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같은 선한열매들이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직장과 동네에서도 나타나 좋은 평판을 듣는 자로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일일이 조사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다만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서 투표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를 아무나 세울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인정에 끌려 투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면서 오늘 투표한 결과로 인하여 시험에 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투표하지만 장로를 선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결과에 순복하는 성숙한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누가 선출이 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으로 겸손히 인정하고 축하하고, 배후에서 도와 드리고 순종해 드리고 기도해 드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오늘 공동의회가 교회의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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