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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마음에 맞는 성도 (왕상 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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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퇴하는 기업에는 그럴 만한 징후가 있었다. 다만 그것을 간과했을 뿐이다."
  초우량 기업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던 기업들이 일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가끔씩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최근 소니, GM 같은 초우량 글로벌 기업이 흔들리는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업 쇠퇴의 6가지 징후"라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여러분과 관련된 조직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현실에 맞지 않으면 인정사정 없이 버림받습니다.
  ① 현재 성공에 안주
  ② 부서간 높은 장벽
  ③ 전시성 관리 형태
  ④ 팽배한 보신주의
  ⑤ 인재가 떠나는 회사
  ⑥ 가로막힌 언로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번제와 기도 때문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솔로몬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는 우리 신앙의 근간입니다. 지혜와 그밖에 것들은 그 열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솔로몬이 드렸던 예배를 부러워하거나 솔로몬이 드렸던 기도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뿌리를 추구해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솔로몬의 기도와 예배와 삶의 모습에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1. 지속적인 사람

  본문 4절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니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일반적으로 제사는 예배를 뜻하고 분향은 기도를 뜻했습니다. 특별히 솔로몬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했다고 할 때 히브리어 동사를 보니 "계속해서 분향한다"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은 왕이 된 뒤 한 번만 주께 나아와 예배하고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항상 끊임없이 기도하고 예배했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지속적으로 예배하며 기도를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마침내 솔로몬을 지혜롭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왜 이렇게 지속적으로 기도드릴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여호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과거에 사랑해보았다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자꾸 보고 싶습니다. 사랑은 자꾸만 그 사람을 향해 나아가게 만듭니다.
  서로 사랑할 때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고 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특징은 발작처럼 갑작스러운 기도가 아니라 꾸준한 기도였다는 점입니다. 한 번 기도해서 끝장을 보는 기도가 아니라 꾸준한 기도, 그의 삶 자체가 기도였던 사람, 하나님과 지속적인 기도의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이 솔로몬이었습니다.

  특별히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천 번제'라는 단어는 너무 익숙하고 신앙화되어 있습니다. '일천 번제'의 기도와 예배와 예물을 드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일천의 숫자가 횟수인지 양(量)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어느 쪽이든 엄청난 규모임엔 틀림없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원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분명한 신앙 고백으로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표현인 것입니다.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의입니다.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인 것입니다. "일천 번제"란 정성과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인내가 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솔로몬은 한 두 번 하다가 집어치우는 끈기 없는 사람이 아닌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좋은 지도자였습니다.

  윈 형제의 중국 전도행전이라고 불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에 보면 감동적인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윈 형제가 전도를 하다가 공안원에게 여러 번 붙잡힙니다. 공안원들은 거칠게 떠밀며 동역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다그칩니다. "앞장서라. 우릴 속이면 네 놈 껍질을 산 채로 벗겨 버릴 꺼야!" 험악하기 짝이 없는 위협을 계속 합니다. 윈 형제는 공안원 앞에서 걸어가며 고함을 칩니다. "지금 공안원한테 잡혔어요! 그렇지만 나는 하늘의 사람이라서 집회 장소가 어딘지 몰라요! 나는 이 땅 사람이 아닙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형제자매들이 소리를 듣고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윈 형제를 '하늘의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의 많은 전도자들과 성도들이 목숨을 내놓고 전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 어려움과 박해가 있어도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견디고 인내해야 합니다.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부도 계속하면 충성이 되지만 충성도 하다가 그만 두면 아부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 예배, 전도, 봉사, 충성이 하나님 앞에서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천 번제'의 지속적인 사람, 솔로몬이 주의 마음에 맞았던 것처럼 '일천 번제'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주의 마음에 맞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겸손의 사람

  본문 7절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작은 아이'라고 합니다. 출입도 제대로 못할 만큼 약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다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겸손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뿐입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재산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학벌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기도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가장 교만하여 기고만장할 때였습니다. 그 나이에도 그는 겸손히 자기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겸손한 기도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는 고백은 반드시 나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솔로몬의 자기 겸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 책임의 막중함에 비해 자신의 경험 미숙과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고백하는 말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임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와 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그 임무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 의존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고백입니다. 실패와 성공이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고 자신을 최고로 낮춘 그야말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에 기도, 봉사, 충성, 헌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마음 속 깊이 존경하는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중심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만 높입니다.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같으면 자랑하고 과장하고 싶은데 그분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아시고 축복하시고 높여 주십니다. 남은 생애 우리 모두 더 겸손합시다. 더 낮춥시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사랑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솔로몬처럼 이 시대에 주의 마음에 맞는 최고의 겸손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섬기는 사람

  본문 8-9절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장수하는 것도 구하지 않았고 부자가 되는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백성을 위해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남을 위한 기도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도였습니다. 성도의 기도 중에서도 중보기도는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한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너무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이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합시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면 90%는 다 자기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만큼 중보기도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여러 성도에게 기도를 시켰다고 합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중보기도를 하던 중 어떤 자매가 중보기도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자매의 기도인즉, "하나님, 저는 이제까지 너무나 부족하여 저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오늘은 특별히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저희 부모님에게는 무엇보다 좋은 사위가 필요합니다. 좋은 사위를 주셔서 그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행복하게 사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 하나밖에 없다는 그 딸이 누구입니까? 자기 자신이 아닙니까? 결국 부모님을 위해 기도한다더니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자신을 위해 기도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요? 솔로몬의 기도는 지속적이고 겸손하고 남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온전한 기도,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이전에 비하면 한국교회에 돈이 많아졌습니다. 한국교회가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 기도가 사라져버리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줄 알았는데, 기도를 잃어버린 지금 교회는 사분오열 되어버리고 무력해졌습니다. 특별히 이런 민족적인 위기 가운데 하나님이 깨어 있는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순간적으로 드리는 인스턴트식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걸고 드리는 기도, 민족을 위하는 중보기도, 모세와 사도 바울처럼 기도할 때라고 확신합니다. 민족과 교회와 가정의 문제, 긴박한 사회 문제를 하나님 앞에 아뢰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듣는 마음'입니다. 복종하고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서 얻는 것입니다. 성도는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닌 들어야 할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들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이고 이기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이타적인 섬김의 지혜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을 섬기는 은사입니다. 지혜로 섬길 때에 더 크고, 놀랍고, 많은 지혜를 쏟아 부어 주십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과 백성을 섬기는 성도의 삶을 실천합시다. 우리 교회 안에 섬기는 분들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섬김이 신앙과 습관과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섬김의 예수님을 닮아갑시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주의 마음에 맞습니까?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입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의 지속적인 사람, '종은 작은 아이라'의 겸손의 사람, '지혜로운 마음'을 구한 섬김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솔로몬보다 더 크고 위대한 신앙인, 주의 마음에 맞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설교 : 김정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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