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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 고넬료 (행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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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고넬료는 이달리야 대라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인데 이방인에게 공식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이 임재하는 놀라운 일을 이루어 사도행전에 한 획을 그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사도들은 비공식적으로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고넬료의 훌륭한 기도와 노력으로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가이샤라의 고넬료와 그 가족과 친구와 일가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선교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지금은 베드로 같은 주님의 종들의 사역 위에 어느 때보다 고넬료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의 헌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고넬료의 신앙을 소개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여러분 모두 고넬료 같은 좋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되셔서 복음의 확산과 교회부흥의 한 부분을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고넬료의 훌륭한 신앙은 무엇입니까?

1 고넬료는 균형 잡힌 신앙을 가진 성도였습니다.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신앙생활이 조화를 이룰 때입니다.
1)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합니다.
고넬료는 이것이 훌륭해서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그리고 그 기도생활이 얼마나 신실하던지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환상 중에 천사를 보내어 그 기도가 상달되었음을 응답해 주시는 귀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2) 나와 이웃 간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이 일도 완벽해서 자신이 다스리는 유대인들에게 구제를 베풀고 사랑의 행동을 행하여 하나님이 그의 이웃사랑인 구제 생활도 기억하셨다고 천사를 통해 응답을 내려주셨습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이런 훌륭한 그의 신앙생활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이었고 응답 받는 생활이었고 복음의 확산을 돕는 큰 획을 긋는 성경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과의 영적 생활은 그런 대로 유지되는데 가족과 형제와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성도들과 불목하고 원수 맺고 좋지 않은 관계를 이루어 분쟁과 불평과 선을 긋는 일들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가족이나 형제나 성도들과의 사이는 원만하여 화평을 이루는데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부족해서 교회 안에서 세상 적인 삶의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처럼 좋은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확장하고 빛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아서 고넬료를 바라보며 나의 신앙생활에 어느 한가지가 부족하여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바로 잡아 두 가지의 신앙생활을 다 균형 잡히게 하여 우리를 만안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제일 먼저 부름 받은 제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나가다가 제자들 사이의 균열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혈질적인 성품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공격하자 예수님께 청하여 하늘의 우레를 내려 사람들을 멸하라고 간청할 정도라서 예수님이 그의 별명을 우레의 아들이라고 지어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웃과의 원만치 못한 성품과 삶이 사도의 직분을 이어가기에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죽어 가시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섬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친어머니로 모시고 살게되었습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7)

요한은 이때부터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며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때는 불같은 성품으로 실수하였지만 마리아를 모시면서 항상 한번 더 참고 생각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넉넉하고 온유한 성품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보다 마리아를 섬기는 사명을 받았기에 장수하는 복을 받았으며 마리아를 섬기다가 사랑의 진리를 깨닫게되어 사랑의 사도가 되었고 노년에는 밧모섬에 귀양가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천국을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명을 다 이룬 후에 다른 열두 사도들처럼 순교의 사명도 감당하여 주님의 사업을 완성하는 최고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이 평신도 주일에 나의 신앙생활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생활 경건생활 하나님 경외의 신앙생활이 완전한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와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한가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넬료처럼 균형 잡힌 신앙생활로 우리교회의 부흥을 이끄는 복된 평신도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넬료는 다른 영혼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고넬료의 소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씀의 사도를 보내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이 너무도 귀하고 사랑스러워 천사를 보내어 하나님이 허락하셨음을 알려 주시고 욥바의 피장 시몬의 집에 거하는 베드로를 초대하여 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가기를 꺼리고 조심하는 베드로에게 보자기 환상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섭리요 허락임을 깨닫게 하여 베드로가 초청에 응하여 갈 수 있도록 완벽한 조치를 해주심으로 베드로를 모셔 말씀을 듣는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의 고넬료의 행동이 너무도 귀합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을 듣는 일을 위하여 자신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을 불러 함께 은혜 받기를 준비한 것입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행10:24)

자신의 가족과 일가와 이달리야 군대의 친구들까지 초대하여 함께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넬료에게 배울 훌륭한 신앙생활의 두 번째가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서 철들기 전에는 제 앞가림조차 못하다가 자라서 철이 들면 제 앞가림을 합니다. 그것으로 완전한 성인이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자녀를 낳아 자식을 돌보고 거두어야하며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성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교회나 오는 일조차 힘듭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자라면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이끌고 나오며 그들을 신앙을 돌볼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때에 성숙한 성도요 영적 평신도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행전의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고 자신만 아니라 남도 구원하는 영적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 모두 고넬료처럼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이끄시는 좋은 영적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여년 전에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잃어버린 가족들이 혈육을 찾고,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방송국에 몰려 여의도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바라보는 온 국민들이 그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 한 여동생이 40년 만에 헤어진 단 하나의 혈육인 오빠를 찾아서 그 옷깃을 잡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누이가 40년 만에 오빠를 찾아 만나고 울면서 절규한 소리는 “오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이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고아로 자라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이 한이 맺혀서 오빠랑 같이 있었으면 그런 고생 안 했을 것이라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며 저만 아니라 온 국민이 울었습니다. 40년의 이산이 저렇게 극에 달한 한을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오산지방 중고등부 연합 수련회를 인도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러분 부모님들이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가고 여러분이 천당가면 몇 년 이산가족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10년, 40년, 100년, 아니 영원한 이산가족이 될 것이라고 하며 40년 이산가족이 되어도 그렇게 한이 많아 40년 만에 만난 오빠에게 몸부림치며 절규하는데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면 몸부림과 절규가 어떠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한과 절규를 하지 않기 위하여 가서 부모님을 전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3주쯤 지났는데 수련회에 참석했던 학생들의 담임 목사님과 전도사님 네 분이 전화를 제게 했습니다. 모두 개척교회여서 교인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들인데 수련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학생들이 자기 부모님을 전도해서 모두 12가정이 등록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평범한 평신도가 되지 말고 다른 영혼을 구원하고 이끄는 고넬료같은 좋은 영적 지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직 부모님이, 아내와 남편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친한 친구와 친척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말씀 듣는 자리, 구원의 예배의 자리로 이끄시는 참 좋은 영적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고넬료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고넬료의 집에 왔습니다.
고넬료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엎드리어 절하며 맞았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민망하여 베드로는 고넬료를 잡아 일으키며 “나도 사람이라” 라고 했습니다. 즉 자신을 맞는 고넬료의 자세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행10:25-26)

고넬료의 이 겸손한 자세가 우리들이 본 받아야할 자세이고 복을 받는 자세입니다. 성경에 복 받은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 받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고넬료처럼 겸손하셔서 이 시대에 이곳에 만안교회를 세우시고 여러분을 이 교회 귀한 평신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 겸손한 자세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부터 오게 되어 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귀하니 하나님의 말씀도 귀하고 그 말씀을 전하여 주는 베드로도 귀하여 세상 신분으로는 감히 베드로가 자신 앞에 설 수도 없는 신분이지만 그 앞에 엎드려 절할 수 있는 겸손이 나오게 되어있고 당당히 겸손의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어떻게 초대하였는가를 고넬료에게 물었을 때 그는 그 과정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하나님 경외와 말씀의 가치와 귀중성을 고백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베드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 앞에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셔서 그 말씀 앞에 겸손한 참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 겸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끼치고 삽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자신도 패망의 선봉에 서고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멸망의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겸손한 다윗은 그의 겸손으로 인하여 밧세바와의 죄도 용서받고 그 후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울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하여 자신도 멸망하고 착하고 진실한 아들 요나단까지 멸망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국군 통합병원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병원장은 준장인데 어느 날 중장이 병원을 순시 왔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순시하고 마지막으로 정신과 병동을 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병원장이 만류하였지만 꼭 한번 돌아보고 싶다는 중장의 명령에 가장 경미한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수용한 병동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장군이 순시를 왔으니 정신과 병동의 환자들이 침상 끝에 앉아서 순시를 받았습니다.
장군이 한 침상에 앉아있는 정신질환 사병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아프냐?” 그랬더니 환자가 벌떡 일어나서 장군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이 만큼 아프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정신 질환자가 한 일이니 장군은 화도 내지 못하고 순시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황당한 일을 본 밑의 장교들이 가만히 지나갈 리가 없지요?
그 날 밤에 온 병원이 비상이 걸려서 기합을 받고 모든 환자들이 고생을 했답니다. 사병이 장군의 뺨을 때렸으니 그 얼마나 교만한 행동이었겠습니까? 물론 정신질환자니까 그런 일이 나왔겠지만 우리가 교만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고 그로 인하여 다른 이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장미꽃이 아름답게 피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이 6월의 평신도 주일에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고넬료같은 좋은 평신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영화롭게하고 부흥시키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년 6월 5일 오전예배 설교전문- (조우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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