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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만 쓰시지 않습니다 (창 2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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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아브라함이 그랄이라는 곳에 정착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대단한 미인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보고 흘깃흘깃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늘 아내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낯선 이곳에서도 그런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꾀를 냈습니다. 그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하자고 말을 맞춘 것입니다. 그는 그랄 왕에게도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밤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네가 맞아들인 여인으로 인하여 너는 죽으리라. 그 여인은 남편이 있는 몸이다.”하고 일러주신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아직 사라를 가까이 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여 당신은 죄 없는 사라도 죽이십니까? 그들은 분명히 서로 오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조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손은 정말 깨끗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마음에 걸리는 일을 하지 않은 줄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나에게 죄를 짓지 못하게 너를 지켜준 이가 누군지 아느냐? 너로 하여금 그 여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나다. 그러니 그 여인을 곧 남편에게 돌려보내라. 그 남편은 예언자이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네가 죽지 않으리라. 만일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는 물론이고 네 식구들도 죽으리라.” 아비멜렉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종을 다 불러 모으고 이 일을 그들에게 낱낱이 다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꾸짖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슨 못할 일을 했기에 너는 나와 내 나라에 이렇듯 엄청난 죄를 뒤집어 씌웠느냐? 너는 나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였다.” 때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제 아내 때문에 제가 맞아 죽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더구나 사라는 실제로 제 누이이기도 합니다. 같은 아버지의 피를 받은 누이입니다. 어머니가 달라서 내 아내가 된 것입니다.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받았을 때 나는 사라에게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를 것을 당부해 두었던 것입니다.” 아비멜렉 온 집의 여인들이 이전에 아기를 낳지 못하다가 이 일 때문에 아브라함의 기도로 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이 세상은 완전한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상태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엉망진창입니다.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사람들처럼 죄인입니다.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더 인간적입니까? 물론 그런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비인간적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데도 더 까다롭고 인색하기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따지고 말 꼬리 물고 늘어지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덜 인간적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신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많이 실망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만 불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불완전해도 다듬어 쓰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인격적으로 덜 갖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하나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약점을 보시고 협박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우리도 별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그런 사람이지요.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늘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직분도 받고 하나님의 일도 하고 그런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이나 선지자도 다 그런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죄제라는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만 쓰시지 않습니다.’ 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누구에게나 실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람을 하나님은 완전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합니다. 에덴에서 축출 당합니다. 그런 인간은 늘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늘 넘어집니다. 늘 쓰러집니다. 꼭 술 취한 사람과도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이 가는 길을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는 덜 갖춘 사람입니다. 잘 살아보려고 해도 그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탄의 공작에 무너지는 경우를 늘 경험합니다. 그 보다 우리가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변했습니다. 모세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살인 전과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늘 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어중간하게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늘 실수를 합니다. 우리가 실수를 하면 곧 돌아서야 합니다. 실수는 실수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실수를 약점으로 잡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신문이나 방송을 보세요. 다 의인인 것 같습니다. 남의 약점을 덮어주는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꼭 세상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물론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지 못하면 안 되지요. 자기 실수를 인정할 때는 뒷말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 불의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후손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의인이라 하지만 우리의 속성이 다 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넘어지기를 잘 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결심을 얼마나 했습니까? 그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부인한다고 해도 자기는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그렇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 시간에 졸고 있었습니다. 시련을 당하시는 주님을 외면했습니다. 그는 정작 어려울 때는 칼을 들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약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상한 갈대라 했습니다. 꺼져가는 심지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약하다는 뜻입니다. 누가 나는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야 다 그런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새 나도 모르게 넘어집니다. 그게 우리 인간입니다. 베드로도 장담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역시 장담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환경에서는 다들 겁을 먹고 흩어진 것입니다. 훌륭한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하물며 우리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약점과 실수투성이입니다. 비록 믿음이 강한 자라 할지라도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확신이 세상의 공포들에 대항하는 최선의 안전이 된다는 것을 익혀야 합니다. 명백한 위험이나 유혹이 있을 때에는 그들은 특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덕과 성실의 길을 불변하게 따를 때 보다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난번 보다 더 훨씬 죄가 큽니다. 그는 동일한 죄를 다시 지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변명입니다. 자기 아내가 하마터면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뻔 했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자기 동생이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는 죄를 범했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썩은 고목처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늘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늘 우리는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흔들리는 가지처럼 늘 불안하고 그렇습니다.

Ⅱ.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만 쓰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깨어진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되 질그릇입니다. 잘 깨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납니다. 우리는 견고하지 못합니다. 늘 긴장과 조심을 해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늘 조심과 긴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 이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벌을 내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잘못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담도 실수했습니다. 노아도 실수했습니다. 롯도 그러합니다. 이들이 한 행위는 백 번 잘못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 보다 수준이 낮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실수가 많습니다. 허물투성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만 쓰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악한 사람만 쓰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기쁘신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만 쓰신다면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어떤 자격이 있는가를 보시고 합격 돼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실격자입니다. 자격 미달입니다. 어느 한 구석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다 죄인입니다. 다 엉망입니다.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조건 없이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죄가 많아도 불러주신 것입니다. 허물이 많지만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 하실 때 까다롭게 보시지 않으십니다. 이를 보면 우리는 정말 행운입니다. 신약을 보면 그 당시 예수님은 굉장한 인기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온 세상의 관심을 온통 한 몸에 지니고 다니신 듯합니다. 그러나 요새처럼 신문 기자가 그를 기사화 한 일도 없습니다. 또 특별히 후세를 위하여 기록을 남긴 일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예수님의 복음의 행적을 남긴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 그들이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그런 것이 위대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관계가 없습니다. 복음의 일꾼들이 살아가는 길이 다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난 성격을 가진 사람도 부르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하나님이 왜 저런 사람을 부르셨을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다 성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그보다 잘 난 사람이 없는 것 아닙니다. 우리보다 더 건강하고 우리보다 더 멋진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때로는 성격적인 장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가타부타 할 자격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대단한 실수를 했습니다. 똑같은 죄를 연거푸 범한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자기 동생이라고 거짓말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행인 이곳에서 자기 아내를 빼앗길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숨이라도 건져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속인 것입니다. 그 곳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손대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내라 합니다. 그래서 그는 풀려 난 것입니다. 여기서 본 아브라함은 정말 신사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만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죄가 있어도 사용하십니다. 허물이 있어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합시다. 우리는 남의 약점을 보지 맙시다. 우리도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늘 생각해도 자격 미달입니다. 그러니 부르신 그분이 좋아하시는 일을 해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6.5 -박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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