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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삼상 11:12-15, 롬 12:14-21, 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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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년 4월 9일 「한국복음주의 협의회」 주최로 열린 “회개 기도회”란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세분의 원로들이 자신들이 신앙을 올바로 실천하는 목회자로 살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고백한 일이 있어서 세간의 관심을 모은바 있습니다.

그들은 보수적 교단의 대표인 충현교회의 김창인 원로 목사, 진보적 교단의 대표인 경동교회의 강원용 원로 목사, 그리고 오순절 계통의 대표 격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였습니다.

강원용 목사는 자기가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하여 힘썼으면서도 정작 기독교 안의 대화와 화해와 협력을 위해 더 노력하지 못했음을 고백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사회악에 대하여 침묵한 비겁함이 자신의 삶 속에 뼈저리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던 것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창인 목사는 해방 후 교회를 재건할 당시 신사 참배한 교회를 향하여 마귀 당이요, 더러운 무리들이니 밥도 같이 먹지 말라고 했던 교만을 회개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난 후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계의 대표적인 원로 세분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다는 것만 해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여겨집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원로급 목사님들의 회개행진은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기대해 볼만하고 그 영향이 긍정적으로 확산되기를 소원하여 마지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 청산” 문제로 시끌벅적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유명인사들의 친일행적에 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교계 안에 까지 비화하여 백낙준 박사나 김활란 박사 같은 분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한경직 목사님은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템풀턴 상을 수상하고 돌아와서 63빌딩에서 축하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목사 님은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하였습니다”라고 하여 회중을 숙연케 한바 있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말을 그분은 그 자리에서 하고야 말았습니다.

사실은 과거사 청산은 먼저 본인들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현실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형편도 아닌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단 청산과정을 거치면 서로 다 용서해 주고 용납해야 합니다. 그런 목적이 아니라 단지 어떤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의한다고 하면 과거사 문제는 오히려 국민적 혼란만 가져올 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당시 교계를 지도하던 이들 가운데 아직 생존해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도 살아계실 때 과거지사를 고백하는 것이 참 좋을 듯 합니다. 일제 때인 1943년 4월에 경북노회, 경안노회, 경동노회가 해산 당하고 그 대신 “일본 기독교 조선 장로교단 경북 교구회”가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노회 같으면 “경북 교구회 안동 지교구회”가 되어 당시 모 목사님이 지교구장으로 관장하게 되었었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한 목적은 소위 하루 빨리 “황국신민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규칙 제 6조에 보면 “황국의 도를 따르며.....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하여 받든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배순서를 보면 ‘묵도’ 다음에 ‘황거요배’가 있습니다. 천황이 사는 곳을 향하여 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황국신민서사송독’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일본 제국의 앞잡이노릇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비록 당시 상황이 불가피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런 일들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비록 그것이 신앙의 정조를 굽혔던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중에 세상 떠난 후에 역사에 의하여 밝혀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떳떳할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노회도 이번에 총회의 지시에 따라 “역사 편찬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노회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일은 물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숨기고 자신을 미화하는 일은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일은 잠시 부끄러운 일이나 하나님 앞에서나 역사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2.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 사울이 암몬과의 첫 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음 당장 과거사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12절에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이니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전말은 이렇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모으고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뽑게 되었을 때 베냐민 지파, 마드리의 가족,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뜻을 이룬 백성들은 “사울 왕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거기 왔던 일부 반체제 무리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하고 멸시하면서 예물조차 바치지 않았다. 사울을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습니다. 그때 사울은 “잠잠하였다”고 했습니다. 첫 왕이 되어 이제 왕국을 수립해야하는 과정에서 개인감정을 앞세울 수 없었거니와 반대자들까지도 포용하는 아량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울은 참 대범하고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큰 전과를 세우고 공식적으로 왕으로 그 능력이 인정받게 된 이 마당에 이제는 반대자들을 숙청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사울 측근의 신하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기회에 아예 반대자들의 기를 완전히 꺾고 강력한 사울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역시 그 대범한 인품을 들어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이지 구구한 개인감정에 얽매일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역시 지금은 피아를 구별하여 서로 적대시 할 때가 아니라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나라를 세울 때란 말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보복이 아니라 용서가 이루어 졌습니다. 분열이 아니라 화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온 나라와 온 백성들에게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국은 이렇게 수립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께 데려 왔습니다. 그 여인을 예수님 앞에 세워놓고는 “율법에 의하면 이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율법대로 하라”고 하시면 이제까지 외친 사랑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용서해서 보내라”고 하시면 율법을 어긴다고 책잡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몸을 굽히시고 땅바닥에 글씨를 쓰셨다고 합니다. 긴장과 무거운 침묵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입을 여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는 또 땅바닥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그동안 그 여인에게 누가 돌을 던졌습니까? 성경에는 어른부터 시작해서 아이에 이르기 까지 다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여인과 단 둘이 남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맨 먼저 외친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용서를 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이요, 살아야 할 복음이요, 전해야 할 복음입니다.

3. 이 복음이 기독교 최초의 공동체에서 어떻게 실제로 이루어졌습니까?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때 스데반은 당국자들에게 잡혀 끌려가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매우 분격했습니다. 그래서 일제히 달려들어 성밖으로 내치고 스데반에게 몰매를 던졌습니다. 무수히 날아오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주께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바로 그 현장에 박해자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에게 두고두고 충격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이 아름다운 순교는 씨앗이 되어 사울이 바울이 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바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용서의 복음의 열매였습니다.

유명한 고리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으로 2차대전 때 그 가족이 유태인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독일로 끌려가서 강제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그 가족은 모두 죽고 그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신학공부를 하여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성령께서 “독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독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렸습니다. 제발 거기만은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로 그 원수의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과연 그녀가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당시 패전의 상처를 안고 신음하던 많은 독일인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고리텐 붐 여사 곁으로 와서 그 손을 잡기 원했습니다.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기를 향해 걸어 나오는 한 남자를 보고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자기가 감옥에 갇혔을 때 옷을 벗기고 갖은 못된 고문을 다하던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고리텐 붐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여사는 옛날의 그 끔찍하였던 일이 떠올라서 도저히 그 남자를 향해서 손을 내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사람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나이다. 나를 도와주소서”. 그랬더니 주님께서 “나도 나를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축복한 것을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해서 천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의 사랑이 고리텐 붐 여사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 고리텐 붐 여사의 영혼은 날라 가는 듯 하는 기쁨을 체험하였으며 그 육체는 10년이나 젊어지는 듯한 재생의 치료를 받았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십자가에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 빚을 용서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백 데나리온 빚진 우리 이웃을 용서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른)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다른)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가족간에 서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부부간, 부모자식간, 형제간에 서로 용서하십시오. 교인들끼리 서로 용서하십시오. 교역자와의 관계에서, 직분자 서로 간에, 교인들 서로 간에 용서하십시오. 직장에서, 사회에서 이웃끼리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럴 때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우리 교회 안에,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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